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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종말론자들의 자기 합리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역사 종말론자들의 자기 합리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용보기
저자는 자신의 역사(학)적 실천에 근거해 '우리 난쟁이'들이 더 많은 '시끌벅적함'을 통해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집단적 행동과 대안적 역사 방향을 위한 자유를 확보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의하나님을 알리는것이다. "강한적"과 싸우려면 어떤 경우이든 '실천적 용기'와 '투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p.276 '끊임없이 등장하는 역사의
"역사 종말론자들의 자기 합리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용보기
저자는 자신의 역사(학)적 실천에 근거해 '우리 난쟁이'들이 더 많은 '시끌벅적함'을 통해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집단적 행동과 대안적 역사 방향을 위한 자유를 확보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의하나님을 알리는것이다. "강한적"과 싸우려면 어떤 경우이든 '실천적 용기'와 '투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p.276 '끊임없이 등장하는 역사의 종말론은 특정한 지적, 정치적 실천,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실천의 좌절 및 패배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 p.268 1990년초반 동구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맹주국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더이상의 냉전체제는 존재하지 않는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로써, 공산주의 진영과 서구 자본주의 진영간의 싸움은 싱겁게도 자본주의의 승리로 낙찰된것 처럼 보였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문화담론의 핵심으로 등장했따. 더불어서,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이 독서시장을 강타했다. 지난 10년간 세계사의 흐름 사상과 역사의 충돌과 갈등에 대한 거시적인 탐구는 어느덧 진부한 학문 연구로 치부되어졌다. 그래서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하려하면, 사람들은 고리타분한것 쯤으로 받아들였다. 정치를 논하는것 처럼... 내가 학교를 들어갔을때 학내에서 탈역사에 대해서 논의한것을 본적은 없다. 난 그때도 지금도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고, 발전 혹은퇴보를 거듭하면서 인류의 시간을 일구어내고 있다고 믿기 때무이다. 그렇지만, 분명한건 80년대 나의 선배들이 역사에 대하여 일종의 경외심과 진지함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의 세대는 더이상 역사에 대하여 그러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신념과 같은 절대적인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역사를 이야기하지않는 지금의 시점에서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원래 제목은 역사는 끝났는가 이다.)을 읽으면서 나는 역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해줄수 있는 책으로 선택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의 목적은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는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탈 역사를 주창했던 역사학자들과 지식인들을 파고들어라므로써 그들의 탈 역사 주장에 대한 비판의 근거와 합당함...이론적 배경과 그들의 행동양식을 보여주므로써, 탈역사의 주장들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는 저서이다. 1.탈역사적 관점에서 역사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첫째 정치적 계급적 저항이 있따. 둘째 이성이 본성을 지배한다. 세번째 근대사회가 이룩된다 네번째 근대사회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으로 사회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다섯번째 사회 안정구조가 이루어지면서 더이상의 정치적, 계급적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탈역사가들이 바라보는 역사의 흐름이다. 그 대표적인 지식인들을 보자. 첫번째 인물 에르스튼 놀트는 우파 지식인으로 그는 헤겔 우파의 변증법을 가져오면서 현재의 역사를 "고정된 토대위의 운동"으로 정의 내린다. 즉 개개인 혹은 작은 집단간의 갈등은 존재하지만 집단이 속한 사회 체제는 안정되어서 더 이상 변화할 이유가 없다는것이다. 두번째 프랜시스가 토대로 잡은 꼬제브는 헤겔철학을 토대로 초인과 같은 존재를 통해서 역사가 완성된다는 기회주의적인 해석을 통해 역사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 예로 나폴레옹을 통해서 역사가 종말을 이룬다는 그의 설정은 스탈린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미국으로 이어진다. 세번째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융어는 숲행으로의 도피를 통해서 불의와 싸워야할 지식인의 임무에서 도망친다. 숲행이란 겉으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피난처로 도망치는 행위지만, 결국에는 지배자에게는 순응하면서 피지배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지식인의 이중성을 교묘하게 합리화 시키는 행위일뿐이라고 니트함머는 비판한다. 결국에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써 자신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융어는 숲행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비롯한 파시스트 동조자 또는 무기력한 가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 융어는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네번째 슈미트는 선과 융어와 같은 도피와 파시스트의 입장에서 역사 종말을 고한다. 다섯번째 하이데거는 헤겔 철학의 우파로써 정치적 지배 계급에 편입하면서 정치 권력자와 민중에게 마치 훈수를 두는 지식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좌파와 우파의 역사 종말의 입장을 보여준후 역사종말론자들이 자주 이용했던 발터 벤야민 (문화, 문학 비평가이자역사학자)이 죽기 직전 완성했던 역사에 관한 그의 저서를 다시 재검토하므로써 과연 벤야민이 역사 해석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 벤야민은 피억압자들에게 있어 신학과 맑스의 결합을 통한 메시아적인 어떤 희망을 스스로에게 부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속이라도 과거의 역사 경험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할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식인들은 벤야민의 저서속에 담긴 개별적인 개념과 대상에만 집중하므로써 그의 역사 인식을 왜곡시켜왔다. 그러므로 벤야민의 역사 인식을 재해석할 필요가있다고 니트함머는 주장한다. 마지막에서 니트함머는 탈역사 주창자들에 대한 특징을 이야기한다. 첫번째 특징은 모두가 최소한의 중 부르주아지 출신이며,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고, 직업정치에 뛰어든 경험이 거의 없으며, 단지 기질과 관심면에서 정치적 지식인들이었고, 시대 정신의 내적 담지자 였으며,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엘리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번 이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신조를 옮겨왔따. 두번째 그들은 자신들의 오류로부터 세계를 보호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이 체제에 종속되어 있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해야하는것 처럼 계속해서 지식을 생산해낸다. 세번째 자신들의 실천적 패배에 관하여 그들은솔직하지 못했으며 그러므로써 참여와경험에 대한 그들의 구체적인 토론을 봉쇄해버렸다. 네번째 그러므로써 대중과 권력의 동맹이란 과학 기술에 의한 자연 지배라는 역사적 토대에 의거해 자기 조정적 체제로 발전해 갔다는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이체제 안에서는 개별인간의 자유가 더 이상 전체 새건들과 의미 연관을 맺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것의 구석 언저리 , 회상적 환타지, '가정'의 영역에서 현실화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탈 역사가들이 바라보는 역사에 관한 관점의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특정 주요 국면에서 지식인과 대중들의 관계를 잘못 바라보고 있다는점이다. 특히 주체성과 대중의 관계와 관련해서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것은 핵심적 고찰과관련되기 때문이다. 탈역사 저자들은 자신들을 대중의 일부로 보지 않으며 대중이라는 존재를 사회적 요구에 대한 충동적 기계적으로대응하는 존재, 주체성도 없고, 역사적 인식 능력과변화 능력도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린다. 결국 그들은 대중 개개인이 아니라 단순이 대중을 복수가아닌 단수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역사를바라볼때 역사의 주체는 대중이다. 니트하머는 탈역사가들의 역사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대중은 일정한 자유와 책임을 지닌 개별 인간들이며, 지식인들 또한그 일부라는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끊임없이 등장하는 역사의 종말론은 특정한 지적, 정치적 실천,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실천의 좌절 및 패배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i*****7 2004.11.0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내용보기
"도망친다"라는 말은 "용기"와는 정반대 범주에 속한 개념입니다. "용기 없음"은 곧 "비겁"과 동의어이며, "비겁자(coward)"를 정의할 때 술부(述部)를 다른 어휘로 채울 것 없이 "도망" 연관어를 기용하면 충분합니다. 영어에서도 quitter(중도 포기자)가 곧 loser와 동의어로 쓰인다고, 영어 문화권에서 가장 혐오하는 인간형이 바로 이런 비겁자들(자신에 대해서건 세상을 향해서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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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다"라는 말은 "용기"와는 정반대 범주에 속한 개념입니다. "용기 없음"은 곧 "비겁"과 동의어이며, "비겁자(coward)"를 정의할 때 술부(述部)를 다른 어휘로 채울 것 없이 "도망" 연관어를 기용하면 충분합니다. 영어에서도 quitter(중도 포기자)가 곧 loser와 동의어로 쓰인다고, 영어 문화권에서 가장 혐오하는 인간형이 바로 이런 비겁자들(자신에 대해서건 세상을 향해서건)이라고 어느 유명 전문가께서 힘주어 강조하더군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건, 그저 기술적 지식만 잔뜩 머리에 담는 걸로 끝나지 않고, 이처럼 문화나 인간 내면에 다져진 근본 이치까지 깨달아야(암기가 아닌 체질화, 내면화, 자발적 동의)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여튼, 이처럼 도피는 결코 용기가 아니라, 그 모순개념 반대개념의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헌데 저자는, 번잡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라든가, 나를 나라는 인간으로부터 점점 소외시키는 "일"로부터 도망치는 게 진정한 용기라고 주장합니다.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그처럼 숨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 모든 풍진과 족쇄로부터 멀리달아나버리고 싶은 마음과 마음들이 인지상정을 (어쩌면) 이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도피 심리는 원칙적으로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며, 사람이 사람 속에서 부대껴야, 이기든 깨지든 그게 진정한 삶인 법입니다. 도피 속에서 이룬 승리, 안정이란 가장 초라한 자기기만에 불과하죠. 헌데 그럼 저자는 책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걸까요? 오히려 더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쳐라" 이것은 정반대로 새겨야 합니다.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면 그건 사람도 아니죠. 사람의 본분을 저버리라는 게 아니라, 의무와 책임과 본질도 아니면서 "남에게 자기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람이 슬쩍 당신 어깨 위에 얹으려는 가짜 책임"을, 대놓고 맞서 싸우지는 말되(아마 당신은 그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을 겁니다), 단호히 결연히 도망침으로써 남의 노예, 이유 없는 마모를 겪지는 말라는 겁니다. 아니, 다 맞는 말 아닐까요? 

그래서, 도망쳐서 어디로 가라는 걸까요? 바로 "사람, 남들"입니다. 특정한 타인은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지옥일 수 있지만, 나 아닌 인간 보편은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학교이고, 정의의 심판자들입니다. 우리가 왜 "길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라" 같은 말 흔히 쓰죠. 이 말에는, 나와 아무 이해 관계 없는 사람을 랜덤으로 골라 이치를 물어 보면, 그 걸려든 사람이 누구든 무관하게 정답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기대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못사는 사람, 못배운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래도 나와 같은 세상을 사는 무작위의 타인이, 심사가 배배 꼬여 정반대의 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을 만큼 나와 공감을 이뤘으리라는 어떤 소박한 기대가 깔린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치어서, 사람들한테 질려서 어디 산속으로 도망가고 싶다고들 합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잘 시청해 보면, 그분들 대개 누군가한테 된통당하거나 배신당하거나 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연이 나오는데 거의 95%이상이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걸 이뤘지만 그래도 자연이 좋아서 그런 은둔을 하는 분은 거의 없더군요. 그런데 잘 들어 보십시오. 과연 그분을 둘러싼 네트워크 중, 백이면 백, 혹은 팔십 칠십이 그를 배신하고 등졌을까요? 그 중에 한두 명이 그분에게 큰 상처를 줬기에, 그분들이 사람을 등지고 자연으로 향하게 된 겁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를 이용하거나 하는 사람은, 알고보면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보다는 당신에게 공감하고, 동정하고, 뭔가 힘을 실어 주고 싶어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게 사람이란 존재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이건 누구도 부인 못할 진실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라"는 결론을 담은 게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나쁜 몇몇에 휘둘려 당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훨씬 많은 다수의 선한 사람들에게 과감히 안기라"는 조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쁜 관계, 소모적인 관계로부터 먼저 절연, 도망칠 필요가 있겠지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인생이라야, 그게 단 1초라도 세상에 태어난 의미, 이유, 의무를 찾는 길입니다. 

v*****7 2019.07.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