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리뷰의 제목을 쓰기위해 이렇게 고민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아담이라는 정신지체의 삶을 통해 평화라는 깨달음을 얻었던 나우웬의 삶과 생각보며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남보다 우월하기 위해, 잘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잘난사람, 뛰어난 사람, 특출난 사람만을 찾아다녔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아담은 누군가가 보살펴주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무언의 아담을 통해 주변사람들이 밝아지는 것은 아담을 귀찮은 존재나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영혼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영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사랑 그 끝없는 길을 위하여 오늘도 나는 작은 몸짓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예수회의 사제였던 헨리 나우웬은 카톨릭과 개신교 양 진영에서 모두 사랑 받는 몇 안 되는 성직자이다. 그는 65세에 하나님 품에 안겼는데 오늘에 비하면 생을 짧게 마감하였다. 나우웬은 그 짧은 삶 동안 여러 책을 남겼는데 그것들을 통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과 은혜를 주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인데 전체가 118페이지로 무척 얇다. 하지만 내용은 정말 풍성한 은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헨리 나우웬이 좋아서 읽게 된 이 책의 참 맛을 보러 함께 가보자.
본서는 능력의 길, 평안의 길, 기다림의 길, 삶과 죽음의 길, 이렇게 네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짧은 글속에는 나우웬의 싶은 통찰과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 중 몇 개의 글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능력의 길을 보자.
능력의 길에서는 권력(power)과 무력함(powerlessness), 그리고 능력(power)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남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힘.'
이다. 남을 장악하여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힘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참으로 두려운 힘이다. 공동체를 분열 시키고, 한 사람을 파멸 시킬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권력에는 경제적 권력, 정치적 권력, 종교적 권력,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종교적 권력이 가장 나쁘다고 나우웬은 말한다.
"가장 교활하고, 분열을 일으키며, 상처를 주는 권력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사용되는 권력이다."(p26)
이것은 지난 역사가 분명히 증거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데 권력이 사용될 때, 좋은 소식은 금세 나쁜, 아주 나쁜 소식으로 바뀌고 만다."(p27)
이것이다. 과연 이보다 더 슬픈 소식이 있을까? 이보다 더 하나님을 슬프고, 화가 나게 만드는 소식이 있을까?
예수님은 이땅에 기적 같이 임하시어 십자가 위에서 무기력하게 돌아가셨다. 어느 권능자가 그런 무기력함을 피조물에게 보이려할까? 무수한 비난과 불신을 각오한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하나님의 이해하지 못할 그러나 사랑이 가득한 결단이
"진정한 하나님의 무기력함과 하나님이 친히 한 부분이 되신 인류의 무력함이 사랑의 집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p33)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다.
하나님은 가장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연약한 능력, 무력한 능력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런 그분을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다.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분은 우리에게 같은 것을 요구 하신다.
"힘을 통한 능력에서 무기력함을 통한 능력으로 옮겨가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p38)
그분은 참으로 오묘하신 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행하지 아니 하시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기다림의 길을 보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을 싫어한다. 그것은 수동적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우웬은 그것을 다르게 본다.
"인내하는 삶이란 현재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며 그 곳에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p76)
관점을 달리 해 보라. 기다림 혹은 인내는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 오기를 내가 허용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무기력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허락과 요구가 없다면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지만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은, 삶을 향한 아주 혁신적인 자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소망하는 것이다."(p78)
기다림은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가득 품을 수 있게 해주는 근거이다. 그것이, 그 시간이 언제 올까 나를 초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반가운 손님을 맞게 해 주는 행복한 시간이다. 기다림은 적극적인 마음의 행위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조금 다르게 얘기 했지만 나우웬은 네 이야기 모두 하나님과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하나님 안에서의 능력과 평안, 그리고 기다림, 삶과 죽음은 모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께서 주신 우리의 소명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얇은 책이지만 참으로 풍성한 은혜가 담긴 책이다. 초신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지만 초신자든 기신자든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별을 5개를 주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책이다. |
요즘에 책을 통해 만나고 있는 헨리 나우웬의 책들은 내가 알고 있던 여러가지 삶과 신앙의 여러주제들을 새로운 관점과 시각으로의 발돋움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영성에의 길이란 제목아래, 능력, 평안, 기다림, 삶과 죽음의 4가지 길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의 바람봄과 나아감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소극적인 자세로 밖에 여겨질수 없었던 기다림의 과정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과정으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할) 훈련의 과정임을 이야기 해주고 있으며, 능력을 강한 권력이나 물권에서 찾지 아니하고 가장 낮고 무력한 자리에서 찾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의 질병과 장애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담이라는 장애인을 통해 참된 평안을 깨우치게 되었으며 두려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던 죽음의 길 또한 온전한 열매 맺음으로 나가오게 합니다. 진정한 영성에의 길이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겪고 있고 당하고 있는 것들 속에서의 변화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라보는 관점과 시야의 변화이며,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의 전환이며, 비로소 행동과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한 문자적인 내용의 전달이 아닌 헨리나우웬. 그분의 삶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깨우침과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진정한 능력과 평안, 기다림과 죽음을 통한 열매맺음의 긴 여정의 길 가운데 승리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인상깊은구절] 연약함의 신학은 하나님이 권능을 부어 주시는 신학이다. 그것은 유약한 이들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밧어나 자신의 빛을 밝히고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을 하게 하는 사랑의 능력을 주창하는 남녀들을 위한 신학이다. 그렇다. 우리는 가난하고, 온유하고, 슬퍼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깨끗하며, 평화를 이루며, 적대적인 세상에 의해 항상 핍박받는 자들이다. 그러나 유약하거나 학대받아도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것이며, 이 땅은 우리의 기업이다. 우리는 위로를 받으며, 배부를 것이고, 자비함을 입으며,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볼것이다. 이것이 능력, 진정한 능력,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다. |
내가 처음 접한 헨리 나우웬의 책은 그가 안식년을 보낸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안식의 여정"이었다. 그 책을 읽은 후 나는 나우웬의 팬이 됐고, "스무살 마크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어 봤다. 나우웬 신부의 책에서 일관되게 느낀 것은 그의 솔직하고 겸손한 성품이다. 그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연약함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고, 은혜 속에 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 "영성에의 초대"는 얇은 책자 이지만 나우웬의 겸손, 솔직, 영혼에 대한 깊은 통찰이 묻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하버드 대학의 교수를 그만 두고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에 가서 함께 살게 된 중증 장애인 아담에 대한 그의 경험이 이 책에서도 다시 한 번 나타나고 있다. 나우웬 신부는 남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제대로 말조차 못하는 아담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평화를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평화와 안식의 길이 열리면서 위로 부터 오는 능력도 갖게 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