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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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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 인간의 영혼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원천 중 하나가 바로 그림자다. 우리가 거부한 그림자는 아주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문이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는 우리들 영혼의 그림자에 대해 말한다. 첫째, 그림자. 둘째, 낭만적 사랑과 그림자. 셋째, 만돌라 등을 통해 하나씩 풀어간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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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 인간의 영혼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원천 중 하나가 바로 그림자다. 우리가 거부한 그림자는 아주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문이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는 우리들 영혼의 그림자에 대해 말한다. 첫째, 그림자. 둘째, 낭만적 사랑과 그림자. 셋째, 만돌라 등을 통해 하나씩 풀어간다. 특히 모순에서 역설로의 진화에 있어 혁명적인 사건으로 이것은 우리를 더욱 심오한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역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고 경이로운 황홀경으로 은총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받아들여 의식적으로 승화시킬 때 발전한다는 것이다. 존슨은 그림자가 이런 역설에 이르는 문이라 말한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심리적인 옷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대변하듯, 페르소나는 진짜 자신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아는 진짜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이자, 자기가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 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 데 실패한 부분이다.(p.19)” 자아와 그림자는 같은 원천에서 만들어지고 서로 정확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빛을 밝히는 것은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 없이 서로 존재하지 못한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 우리의 의식도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과 잠재된 그림다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그림자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게 된다. 메피스토도 파우스트만큼이나 악마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힘든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둘의 만남에서 에너지가 고조되어 폭발 직전에까지 이른다. 그렇지만 둘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제어하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생생한 대화는 둘 모두에게 자아와 그림자의 부활에 관한 최고의 가르침을 제공한다. 생명력이 소진된 파우스트는 마침내 구원을 받아 열정을 지닌 붉은 피의 소유자로 변모한다. 비도덕적인 삶에서 구원되어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찾는다.(p.59)” 그림자는 의식으로 통합되어감에 따라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다. 파우스트의 내면은 자신의 그림자인 메피스토를 받아들임으로써 채워진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를 만나서 온전해지고,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만나서 전일성을 획득한다. 그림자든 자아든 한쪽을 돌아보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쪽의 변형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k******4 2018.08.27.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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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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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로버트 존슨/고혜경에코의서재/2015.9.10.sanbaram   사람에겐 누구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면이 있다. 대부분 잘못된 선택이나 남보다 못하다 여겨지는 것들이다. 이렇게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부분을 그림자라고 한다. 그러나 물 위에 떠 있는 빙산 보다 물 아래 가라앉아 있는 부분이 크듯 우리의 의식도 같다고 한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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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로버트 존슨/고혜경

에코의서재/2015.9.10.

sanbaram

 

사람에겐 누구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면이 있다. 대부분 잘못된 선택이나 남보다 못하다 여겨지는 것들이다. 이렇게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부분을 그림자라고 한다. 그러나 물 위에 떠 있는 빙산 보다 물 아래 가라앉아 있는 부분이 크듯 우리의 의식도 같다고 한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는 의식의 저변에 숨겨져 있는 그림자에 대해 탐구하고, 우리에게 그 실체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융 연구소에서 수학한 미국의 정신분석가. 국제적으로 저명한 강연자이자 수많은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신화로 읽는 남성성He>,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We>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 인간의 영혼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원천 중 하나가 바로 그림자다. 우리가 거부한 그림자는 아주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문이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는 우리들 영혼의 그림자에 대해 말한다. 첫째, 그림자. 둘째, 낭만적 사랑과 그림자. 셋째, 만돌라 등을 통해 하나씩 풀어간다. 특히 모순에서 역설로의 진화에 있어 혁명적인 사건으로 이것은 우리를 더욱 심오한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역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고 경이로운 황홀경으로 은총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받아들여 의식적으로 승화시킬 때 발전한다는 것이다. 존슨은 그림자가 이런 역설에 이르는 문이라 말한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심리적인 옷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대변하듯, 페르소나는 진짜 자신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아는 진짜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이자, 자기가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 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 데 실패한 부분이다.(p.19)” 자아와 그림자는 같은 원천에서 만들어지고 서로 정확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빛을 밝히는 것은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 없이 서로 존재하지 못한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 우리의 의식도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과 잠재된 그림다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그림자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게 된다. 메피스토도 파우스트만큼이나 악마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힘든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둘의 만남에서 에너지가 고조되어 폭발 직전에까지 이른다. 그렇지만 둘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제어하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생생한 대화는 둘 모두에게 자아와 그림자의 부활에 관한 최고의 가르침을 제공한다. 생명력이 소진된 파우스트는 마침내 구원을 받아 열정을 지닌 붉은 피의 소유자로 변모한다. 비도덕적인 삶에서 구원되어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찾는다.(p.59)” 그림자는 의식으로 통합되어감에 따라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다. 파우스트의 내면은 자신의 그림자인 메피스토를 받아들임으로써 채워진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를 만나서 온전해지고,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만나서 전일성을 획득한다. 그림자든 자아든 한쪽을 돌아보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쪽의 변형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종교에서 제시하는 비전은 양쪽의 두 대극을 존중하면서도 중간지점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해준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것을 라고 불렀다. 이 중간지점은 타협이 아닌 창조적 화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중간지점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이 지점은 칼날처럼 날카롭기 때문이다.(p.68)” 중심의 빛에는 그늘이 없다. 그곳은 마치 성배처럼 이 세상 너머 다른 세계의 시공간에 존재한다. 초월의 순간이다. 얼핏 보기엔 빛과 어두움이 뒤섞여 회색의 타협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곳은 광휘가 빛나는 통합의 지점이다. 성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태복음 6.22)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자기 안의 가장 고상하고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를 다른 누군가에게 투사하는 것을 뜻한다. 드물긴 하지만 이런 투사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p.81)” 사랑한다는 것은 훨씬 고요하고 인간적인 경험인 데 반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질풍노도와 같다. 낭만적 사랑에는 우리 존재보다 더 큰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쓴 덴미크의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세 가지라고 했다. 첫 번째는 에너지가 넘칠 때이고, 두 번째는 고통이 중단될 때며, 세 번째는 자신이 신의 의지를 따른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때이다. 첫 번째는 청년기에 해당되며, 두 번째 것은 아주 단기간만 지속된다. 만일 우리가 삶의 이중성 문제를 이미 극복했다면 자신이 신의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는 절대적 확신에 도달한 것이라고 한다.

 

어두움 없는 빛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또한 여성성 없는 남성성이란 의미가 없다.(p.96) 모순은 무의미라는 괴멸스런 짐을 우리에게 지워준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떤 힘겨운 고통도 감내할 수 있지만 의미가 없다면 견뎌내기 어렵다. 모순은 메마르고 파괴적이지만 역설은 창조적이다. 그것은 현실을 강력하게 껴안는다. 역사상 존재하는 종교적인 체험은 모두 역설로 표현된다.(p.97)” 심오한 진리는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돌라는 두 대극을 화합하는 전형이며 갈등과 이중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리의 안내자라고 한다.

 

모든 말은 만돌라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문장은 만돌라의 특질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문장은 분열된 세계를 통합하지만, 조악하고 빈약한 문법구조로 구성된 문장은 상처를 입힌다. 아마도 중첩된 부분이 너무 적어서 통합하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p.128)” 앵무새는 평범한 문장보다는 욕을 훨씬 쉽게 배운다. 우리가 욕이나 저주의 말을 뱉을 때 엄청난 열의를 담기 때문이다. 물론 앵무새가 내용을 이해하고 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욕을 할 때 에너지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짐승들도 그림자 안에 숨겨진 힘을 감지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만돌라는 중립지역이나 타협의 장소가 아니라 삶의 색채가 화려하게 겹쳐지는 곳이다. 우리는 색채의 향연인 파바니스에 도달할 때까지 여정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도에는 성인의 특질을 규정하는 단어가 셋 있다. 사트, 치트, 아난다가 그것인데, 사트는 삶의 존재론적 측면을 의미한다. 대개 시소에서 좌측에 위치하는 부분이다. 치트는 이상적인 가능성으로 대개 오른편에 위치한다. 아난다는 지복, 기쁨, 깨달음의 황홀경을 뜻하는 바로 이것이 시소의 중심축이다. 사트와 치트가 서로 짝을 이루고 이를 충분히 의식할 때 아난다라는 삶의 기쁨 또는 법열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소유함으로써만 얻게 된다.(p.34)” 이와 같이 우리는 의식과 의식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의식과 그림자가 균형을 이룰 때 행복과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되새겨 모순된 듯 보이는 둘을 창조적 화합으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k******4 2018.04.06. 신고 공감 4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