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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과거를 누구나 볼 수 있어서 벼슬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서얼 출신은 벼슬하기 어려웠다. 과거는 봐도 나라에서 부르지 않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출신과 상관없이 사람을 알아보고 뽑아 쓴 왕도 있지만 둘레에서 말이 많았겠지. 자기 생각을 밀고 간 왕이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얼마 없었을 거다. 불쌍한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한글도 다른 왕이나 양반은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한글을 만든 까닭은 한자를 잘 알게 하려는 거였다는 말도 있지만, 세종이 백성을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믿고 싶다. 세종이 일부러 한자 때문에 만들었다고 말했던가. 한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한글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썼을지. 힘들게 한자로 써야 했겠지. 양반이 한글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모두 안 쓴 건 아니다. 먼 곳에서 아내한테 보내는 편지는 한글로 쓰기도 했다. 만약 조선에 한글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거다. 조금이라도 한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서 살아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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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의 탄생'은 '조완선'님의 신작입니다... '조완선'님은 주로 '역사미스터리'를 쓰시는 작가분이신데요~ '조완선'님의 다른작품들 '외규장각 도서의비밀','천년을 훔치다','비취록' 모두 재미있게 읽은지라..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얼른 읽어봐야지 했었는데..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홍길동전'은 '모르면 간첩'이 아니라 '간첩'들도 다 아는 유명한 소설입니다.. 관공서에 가면 누구라도 '홍길동'의 이름을 볼수 있으니 말이지요..ㅋㅋㅋㅋㅋ 그런데 '홍길동'은 '세종'시대의 실존인물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명한 의적이였는데 결국 체포되어 참수되었다고 전해지는데요... '허균'은 '홍길동'을 모델로 '홍길동전'을 집필했는데요 그러나 그는 '신분차별'없는 이상국을 만들기 위해 혁명을 꽤한죄로, 가장 끔찍한 사형방법인 '거열형'에 처해지고 그의 사상이 집약되었다는 '홍길동전'은 '금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죽기전에 '허균'은 '홍길동전'을 숨겨놓았고, 최초의 한글소설을 우리는 읽을수 있는거지요 그리고 168년후.... '박지원'은 자신의 새로운 소설 '허생전'을 쓰는 도중에...유명한 '책쾌'인 '조열'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평소 '조열'로 통해 희귀본들을 주로 구했던 '박지원'은 그에게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지요 . '전라도 부안'에서 '허균'의 소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허균'은 '전라도 부안'에서 유배생활을 했었고... '허균'은 그곳에서 실존인물인 '홍길동'의 자취를 쫓는 '교산기행'을 집필했는데요.... '교산기행'의 발견소식에 반가운 '박지원'에게 '조열'은 그 책을 가져다 주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조열'은 한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데요 '책쾌'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데...책을 구해다주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금서'같은 경우는 대놓고 못 구입하니까 말이지요 '조열'이 나타나지 않자,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지라 '박지원'은 그를 찾아다니는데요.. 그렇지만 그의 동료들에게 '조열'은 살해당했단 이야기를 듣습니다. 결국 직접 '허균'이 쓴 '교산기행'을 찾아다니는 '박지원' 그러나 시체만 늘어나는데 말이지요...연쇄살인범의 정체와..'교산기행'의 행방은??? 그리고 168년전... '허균'은 자신의 제자인 '이식'으로부터 '홍길동'의 참수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의적이자, 신출귀몰했던 그의 죽음 소식을 듣자, 실망한 가운데.. 계속 '홍길동'의 원혼이 그를 맴돌고.. '허균'은 결심을 합니다...소문이 아닌 실제 그의 삶을 추적하자고..... '홍길동'의 삶을 추적하는 '허균'의 이야기와 '교산기행'의 행방을 추적하는 '박지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데요 '허균'은 보면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대부'로 태어났으나...'승려'들과 '기녀'들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두루 사귐을 가졌고 그가 실제로 혁명을 일으키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교류와 자유분방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탄핵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그리고 결국 ㅠㅠ 그래서 많이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시대를 앞선 인물..그러나 그의 사상은 역모가 되어야 했지요 '허균'이 쫓던 '홍길동'의 이야기, 그리고 '홍길동전'을 집필하는 이야기 (교산기행) '박지원'이 쫓던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교산기행'...거기다가 '허생전'까지 이어지는 장면이 좋았는데요 결국 '걸작의 탄생'은 '허균'의 '홍길동전'과 '박지원'의 '허생전' 둘다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이 두 작품과 두 거장들을 배경으로 만든 역사 미스터리..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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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얼마전 작가의 전작인 <비취록>을 읽었다. 그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조완선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걸작의 탄생>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전작만큼이나 이번 작품도 기대이상이다. 솔직히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들은 어떤 느낌인지 몰라 간혹 좋은 작품임에도 나와 맞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역사소설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두 작품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소재들이 우리들을 이야기속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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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의 탄생>에서는 교산 허균과 연암 박지원을 만날수 있다.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100년이 훨씬 넘은 시간을 두고 태어난 두 사람을 한권의 책에 담아내고 있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책속에 남기고자 하는 생각들은 뭔가 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작은 것들을 소재로 책속에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사실인듯 사실아닌 허구의 이야기이다. 살짝 책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이고 사실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역사적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이야기속에 빠져들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거열형을 당한 허균. 백육십여 년이 흘러도 복권이 되지 않은 유일무이한 인물이며 조선 천지간의 괴물이라 불렸다. 그가 남긴 책들은 금서로 지정되 유통되는 책이 없다. 그런 상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박지원. 교산의 책을 가져오겠다고 떠난 조열은 돌아오지 않고 죽었다는 소식만 전해진다. 병사가 아니라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직접 찾아가보는 박지원.
홍길동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허균.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탐관오리들만 골라 응징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환영이 나타난다. 원통하고 애절한 넋을 달래줄 인물로 자신을 점찍은 것이라 생각하는 허균. 그것을 인연이라 생각한 허균은 홍길동의 고향인 장성으로 떠난다.
교산 허균과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이렇게 두 인물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과 금서의 행적을 찾아 길을 떠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주거니받거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시공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혹여 두 인물의 이야기들이 교차하니 조금은 혼란스럽지 않을까하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오히려 박진감 넘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떠나는 그들을 통해 우리들은 그 의문들이 풀릴지 궁금할수 밖에 없다. 역사속 인물들을 허구의 이야기속에서 만나는 것이 흥미로운 것은 진실과 사실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약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야기의 출발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는 그들을 보며 우리들은 긴장할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없어지길 바라고 누군가는 어떻게해서든 찾으려 한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단지 책과 사람이 아닌 그것이 남긴 생각과 사상일 것이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그 시대의 백성들만이 바라던 것이 아닌 지금의 우리들도 바라는 세상일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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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은 그 어느 문학상의 대상보다 훨씬 재미있고 알찼다. 역사적인 두 인물을 한 서적으로 교차시켜 그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영리함이 독자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탐정소설보다 더 스피드하게, 스릴러보다 더 짜릿하게 읽혀진 '걸작의 탄생'! 빽투더 '90대가 아닌 빽투더 조선시대로 되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매혹의 요소가 가득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역작 '장미의 이름'은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금서 하나로 인해 차례차례 독살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책 한 권이 대체 무엇이길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것인가. 짧은 소견으로 든 생각은 그러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금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항적 열망. 그리고 멈출 수 없는 호기심. 결국 이 두가지로 인해 죽음의 강을 건널 수 밖에 없었다. '걸작의 탄생'도 마찬가지였다. 책 한 권으로 인해 글쓴이 허균은 목숨을 잃었고 금서인 그 책을 뒤쫓던 연암 박지원은 위험에 처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던 그들조차 멈출 수 없게 만든 '호기심'. [교산기행]은 그들에게 그런 책이었다.
'조선 천지간의 괴물'으로 불렸던 저자 허균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였다. 역사 속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거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종종 걸음쳤던 것과 달리 당대 최고 명문가의 적자이면서 형제 자매가 다 문에 능하고 자신의 재능이 나라를 뒤흔들만큼이었으니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금수저 인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초중년 운과 달리 말년운은 사납기 그지 없었다. 말도 안되는 모함으로 역모죄로 다스려져 여섯 조각으로 몸이 찢어지는 거열형을 당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조선 역사 속에서 훗날 복권되지 않은 이는 허균 하나라는 점이다. 그 죄가 얼만큼 큰 것이었길래. 과연.
우리는 여전히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으며 성장하고 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시대를 지났고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 허균의 삶이 이토록 비참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소설은 [홍길동전]을 쓰기 위해 홍길동의 발자취를 찾아 그의 활동지인 문경과 변산을 오갔던 '교산'과 교산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남긴 또 한 권의 기록물을 찾아 문경과 변산으로 교산의 발자취를 찾아 답보한 연암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씨실과 날실처럼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 첫 출발점은 책쾌 조열이 '허균의 책'을 구해오마 약조하고 떠났다가 살해당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에 한껏 기대치에 부풀어 올랐던 연암 박지원은 어진 책쾌의 죽음과 그토록 갈망했던 책의 소재를 수소문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곳에서 또 다른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백년도 더 된 홍길동의 추종 무리들이 조용히 조선 땅을 떠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낙원이 바다건너 일본인지 자세히 그려지진 않았으나 계급이 없고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홍길동의 나라'를 염원하고 있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 세 말하면 입 아파질 소리였고 결국 떠나지 못했으나 자신의 뜻을 펼쳐볼 용기를 낸 허균과 결국 책을 얻지 못했으나 자신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연암의 뒷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한 세기를 사이에 두고 태어난 두 천재들의 보폭에 맞추어 글을 읽어 나가는 일은 독자에겐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즐거움도 함께 던져주어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고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그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꿈만 꿀 뿐 그 세상을 이루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17세기에도 18세기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허균, 박지원 같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이 중요한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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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1932~)의 명작 <장미의 이름>은 노老 수도사 호르헤가 금서禁書 하나를 지키는 것이 주요한 줄거리 입니다. 호르헤가 지킨 금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詩學> 제2부 '희극론喜劇論'이었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이 있어야 신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웃음은 그 두려움을 없앰으로써 '인간에게 신의 존재를 필요 없게 만든다.'는 게 호르헤가 희극론을 지킨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책을 지키려는 사람과 그 책을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 간의 극한 대립이 있었더군요. 책은 다름아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홍길동전>입니다. 왜 <홍길동전>은 금서가 되었을까요? 허균이 살던 시대에는 '홍길동'이라는 이름만 언급하거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무조건 역모죄로 잡혀 형벌을 면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만큼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당시 세도가에게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걸작의 탄생》(조완선 장편소설, 나무옆의자)에서는 <홍길동전>이 금서가 된 이유와 홍길동전을 찾아나서는 허균의 55일 간의 여행, 그리고 허균의 행적을 탐색해가는 연암 박지원의 행적을 소상하게 적어가고 있습니다. 이 여행의 기록이 걸작을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 였던 겁니다. 결국 금서인 홍길동전을 세상에 알린 허균은 몸이 여섯 조각으로 찢겨 죽는 거열형을 당하게 됩니다.
<장미의 이름>이나《걸작의 탄생》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연 책 한권이 세상에 웃음을 없애고, 역모를 막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힌트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이란 무엇이냐?" 이윽고 중운 스님이 두 눈을 뜨고 옆에 있는 벼루를 가져왔다. "종이와 벼루는 농토이고, 붓과 먹은 쟁기와 호미이며, 문자는 씨앗이니라. 하면 책은 무엇이겠느냐?" "......" "책이란 바로 양식이니라. 하나 양식이라 해도 다 같은 양식이 아니니라. 세상 천지에 온갖 서책이 있다만, 범부의 손에 들어가 화(禍)를 입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적기가 오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하는 책도 있느니라. 양식을 잘못 먹으면 탈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중략) "군주는 백성의 하늘이요, 백성은 만물의 빛이라 하였습니다. 귀한 서책이야말로 스님의 말씀처럼 양식이 되어야 함은 물론 그늘진 곳을 비추고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빛이 되어야 하지 않니까? 빛이 어둠을 물리치듯 귀한 서책이 세상에 나와 사악한 마음을 물리치고 정화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서책의 도리를 다함이 아니겠습니까?" (중략) "진귀한 책일수록 때를 잘 만나야 하느니라. 제아무리 만물을 비추는 빛과 같이 빼어난 책이라 해도 사납고 포악한 자의 손에 들어가면 빛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세 치 혀가 백 명의 청중을 움직인다면 귀한 서책은 후대에 전해져 십만, 백만을 사로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처럼 귀한 양식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이냐? 하나 때가 오기도 전에 빛을 잃어 사라진다면 천하의 걸물을 다룬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259~261쪽)
<홍길동전>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홍길동전>을 다루고 있는 《걸작의 탄생》은 제목처럼 내용도 전혀 다릅니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어 일으킬 정도의 흥미와 박진감, 그리고 재미를 줍니다. 특히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허균과 박지원을 연결 시키고 있다는 점도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
(독사讀思의 글쓰기 by 보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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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선 작가의 소설인 '외규장각도서의 비밀', '천년을 훔치다', '비취록'을 모두 읽었지만 '걸작의 탄생'이 단연 내용과 구성력이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이전의 소설은 약간(?) 용두사미식 흐름이었다. 시작은 사건을 키우고 갈등 요소를 제시하나 결말에 가서는 생뚱맞게 사건을 해결한다. 소설을 소설일뿐이란 것을 작가 스스로 증명하듯이...
이에 반해 '걸작의 탄생'은 작가가 내놓은 역사 팩션 중 가장 짜임새가 좋고 그만큼 몰입도가 훌륭하다.
이 책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기 위해 실제 현장을 견학하는 이야기와 박지원이 역모죄로 몰려 죽은 허균의 저서 홍길동전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교차편집했다.
홍길동전이란 소재만 빼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마치 역사가 반복된다는 듯이.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사건을 매조짖는 방식도 이전의 소설과는 다르다. 실제인지 가상인지 묘하게 줄타기를 한다.
조완선 작가의 걸작이 드디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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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꾸물꾸물한 날, 글이 써지지 않아 고심하는 연암이 책의 첫 장에 나타난다. 열하일기로 그 시대에 반향을 일으킨 문장가가 아닌가! 허생전을 짓고 있는 그는 '이참에 사대부들의 속내를 깊이 다뤄볼 생각'(p.13)을 하고 있는 참이다. 그 때, 책을 진정으로 아끼는 책쾌 조열이 그를 찾아와 허균의 책을 찾았다 한다. 금서로 되어 유통되지 않는 책 소식에 연암은 솔깃해진다. 책은 시대를 훌쩍 거슬러가서 연암이 궁금해하는 허균의 시대로 건너간다. 연암이야 속이 타겠지만 독자들은 160년전의 허균의 세상과 연암의 세상을 번갈아가며 읽을 수 있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작가의 문장은 예스럽고 수사법도 옛 글의 수사법처럼 쓰고 있다. 조선시대를 재현하기에 맞춤이다. 그렇게 허균은 100년전의 홍길동을 추적하며 글을 쓰며 고심하고, 허균은 160년전의 허균을 추적한다. 두 줄기의 각기 다른 추적은 순서를 바꾸어가며 점점 더 흥미를 더해가고 독자는 우리가 아는 역사와 모르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가의 재주를 잊은 채 이야기에 빠져든다. 허균과 연암 모두 의문을 해결하고자 여행을 떠나고, 사건의 중심을 향해 하나씩 하나씩 단서들을 모으며, 전진해간다. 하나씩 하나씩 실마리가 풀릴 때마다, 홍길동의 행적을 담은 책이 왜 금서가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두 시대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겹치면서 하나의 이야기 줄기를 형성하고, 때로는 반복되면서 때로는 서로를 보충해가면서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금기시 되는 시대는 지났다. 적어도 신분에 의해 평등이 박탈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여전히 자신이 가진, 혹은 자신의 주변이 가진 부와 명예의 정도에 의해 완벽한 평등은 아직도 불가능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길동이 바라던 세상은 누구에게나 꿈의 세상이다. 금지된 희망이 된다해도 어느 시대나 숨은 불꽃은 피었으리라. 홍길동의 후예들이 그의 혼을 불러오기 위해 숨은 횃불을 들듯이 누군가는 횃불을 들고 그 정신을 전했으리라. 시대의 정신을 앞질러가며 민중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두 문장가를 서로 비교하면서, 그들이 가진 공통 요소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가는 재미가 있다. 의문의 죽음, 베일에 싸인 인물들 등 책을 놓치 못하게 하는 장치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어 단번에 읽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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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살인과 그 배경에 얽힌 책에 대한 이야기라면, 조완선의 <걸작의 탄생>은 교산 허균이 쓴 시대를 앞지른 금서인 <홍길동전>과 <교산기행>을 쫓는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 속에 허균의 행적을 담은 역사추리소설이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한 곳에서 벌어진 이야기인 반면, 조완선의 걸작의 탄생은 교산 허균의 행적을 그대로 쫓아가는 연암 박지원의 여정을 담은 기행이다. 이야기는 연암 박지원에게 책쾌 조열이 찾아와 허균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쾌 조열에게서 얻은 홍길동전의 서문을 읽고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기 위해 쫓아다녔던 곳에 대해 적은 <교산기행>이란 책을 쫓는 박지원의 이야기는 허균이 홍길동에 대한 공문을 읽고 홍길동의 행적을 쫓는 이야기와 서로 얽히면서 한 공간에 시간을 넘나드는 서사를 서로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그러던 중 금서를 찾아오겠다던 책쾌 조열은 살해되고 만다. 조열은 죽인 자는 누구이고, 조열이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금서는 어디로 갔을까? 박지원이 쫓아가던 이야기는 어느덧 허균이 쫓던 홍길동의 이야기와 중첩되어 나타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지만 교산 허균과 연암 박지원은 같은 세상을 꿈꾸던 서로 다른 세상에 살던 비슷한 인물이 되어 간다. 허균이 홍길동의 이야기를 쫓으면서 소설을 썼던 것처럼 박지원은 허균의 금서를 쫓으면서 소설을 구상하게 된다. 이 소설들의 모태는 평(平)한 세상이다. 홍길동이 새롭게 만든 이상국에 대한 봉추거사의 다음의 말이 바로 이들이 만들고자 했던 나라다. "바다에는 곡이 있을 수가 없다.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법이 없으며 어느 한 곳 끊기지 않고 사방팔방 곧게 뻗어 있다. 평 자는 바로 대해를 가리키니 만백성이 하나이며 타고날 때부터 차별 없는 세상을 이르는 것이니라. 모든 무리가 똑같음을 평등이라 하고 근심 걱정 없는 마음을 평상과 화평이라 함과 같은 이치니라" 그런데 왜 지금 우리에게 이 말이 와 닿을까? 조선시대와 다르게 자유와 평등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누구나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이 아프게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말처럼 지도자는 온데간데없고 가진 자들의 탐욕은 끝이 보이지 않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은 여전히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성'임을 아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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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다 쓰고 나서 이 도서관 컴퓨터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다시 쓴다. 다시 쓰려니 이게 뭔가 싶다. 이걸 굳이 내가 기록으로 남겨서 다음에 다시 읽을 일이 있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글이고 누가 읽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단지 다음에 이 책 읽은 것을 잊어버릴까봐 어딘가 남겨두고자 하는 필요로 적는 글인데 말인다. 중간에 갑자기 마우스 커서가 꼼짝을 안하길래 다시 적으니 이번엔 수시로 저장을 해가면서 적어야 겠다.
허균이 유배에서 풀려나 산중에 있던 중 홀연히 나타난 홍길동의 원혼(?)을 따라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다 결국 채석강까지 다다랐고 그 과정에서 홍길동을 따르는 무리를 만나고 그들이 남쪽나라로 가는 과정까지 목격한 후 그 과정을 교산일기라는 기행문으로 적고 또 홍길동전을 집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책은 분량의 반 정도를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연암 박지원이 교산기행이라는 책의 흔적을 찾아 허균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또 마침내는 허생전과 열하일기라는 책을 쓰게 되는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처럼 반반의 과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시에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까지 추리소설의 느낌마저 주어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힘을 지녔다.
그런데 아주 좋은 책이라고 선뜻 권하기엔 대단히 재미있거나 어떤 반전이 있거나 문체가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드는 책이긴 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상 책은 최소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주고 불평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힘은 있다.
도서관의 이 끈적거리는 자판이 주는 불쾌한 느낌을 감수하면서 독후감을 적는다. 시간이 흘러가면 이 책은 또 어떤 느낌을 줄까. 아니면 같은 책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느낌을 주겠지.
자질구레한 오자 외에 결정적인 오자는 한 개.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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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어릴 적부터 전래 동화로 많이 보아 익히 알고 있다. 전래 동화로 읽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그림들에 눈이 팔렸고 요술을 부리는 홍길동이라는 동화 속 인물에 매료되었던 기억만이 오롯이 남아있다. 분신술을 사용하여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며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아시다시피 '홍길동전'은 교산 허균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조선시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허균의 이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교산의 이 소설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중 소설이 될 수 없었다. 출간되자마자 금서 중의 금서가 되어버린 교산의 소설 '홍길동전'.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홍길동전'은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어떻게 후세에 전해져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되었을까. <걸작의 탄생>이란 소설은 바로 그 의문을 갖고 시작되는 소설이다. 즉, 홍길동전의 탄생 비화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쓰인 이야기다. 더불어 작가는 조선시대 교산 허균과 같이 '새로운 세상'이라는 이상을 품었던 또 다른 한 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바로 '열하일기'의 주인공 연암 박지원이다. 두 사람의 이상이 담긴 두 개의 소설, <홍길동전>과 <허생전>, 이 두 소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책쾌 살인 사건을 다룬다. 소설을 내용을 여기서 요약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이 '걸작'을 직접 읽어야 하는 이유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홍길동전 탄생 비화를 다룬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인터넷 드라마로 제작된 방송이었는데 내용에 관심이 생겨 보게 되었다. 교산 허균이 쓴 소설은 드라마에서도 금서가 된다. 그 이유는 허균이 소설 속에 담은 내용이 그 당시 상황으로는 역모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신분이 엄격한 유교사상의 조선에서 왕도 없고 노비와 양반의 구분이 없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허균은 역모죄로 몰려 사지가 절단되는 참형에 처해 죽고 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허균을 일러 '조선 천지 간의 괴물'이라 일컫고 있다. 허균, 그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망나니였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 비운의 천재였을까.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가 담을 수 없는 커다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유는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상을 후손이 우리들도 여전히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내다본 인물이었다. 교산 허균이 쓴 <홍길동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을 <허생전>의 연암 박지원이 추적하며 걸작의 탄생 비화를 밝혀 나가는 걸작이 탄생했다. 읽는 동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책에 몰입했다. 정말 몰입해서 재미있게 본 책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느낌을 받는데 그것은 바로 한 편의 영화와 같다는 사실이다. <걸작의 탄생> 역시 한 편의 웰 메이드 영화를 본 듯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멋진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영화화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교산 허균과 연암 박지원이라는 두 명의 천재의 삶을 다루는 게 버거웠다고 했는데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멋진 '걸작'을 세상에 '탄생'시켜줘서 감사하다고.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면 강추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