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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5부는 1940년경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억압을 견뎌낸 민족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또한 일제 말의 현실이 적극적으로 묘사되고 평사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후일담 형태로 채워진다. 5부 1권인 [토지 17]에서 서희와 길상은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며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묻고 있고, 5부 2권인 [토지 18]에서는 인실과 오가다, 양현과 영광의 가슴앓이가 그려지는 가운데 길상은 사상범 예비검속에 따라 다시 수감된다. 5부 3권인 [토지 19]에서 윤국과 영광 그리고 양현의 슬픈 사랑이 이어지고 정양 차 찾아온 임명빈의 지리산에서의 삶이 관련된 인물들의 삶과 함께 그려진다. 5부 4권인 [토지 20]에서 영광은 만주로 떠나고, 윤국은 학병으로 나간다. 양현과, 서희 모두에게 시련이다.)
윤국이 학병으로 나가면서 양현과 영광사이의 연락은 두절되었다. 초겨울 양현이 돈암동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때는 이미 영광은 만주로, 영선네는 지리산으로 들어간 후였다. 인천으로 돌아온 양현은 영광이 감아주었던 목도리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음력설을 앞두고 서희가 서울에 왔다. 그리고 환국에게 양현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환국은, 무릎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양현도 그랬지만 양현의 등을 쓸어주며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더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자기자신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190쪽) 서희는 양현을 데리고 내려간다. 자신이 낳지 않았지만 딸처럼 모든 사랑을 주었던 서희, 생모는 아니지만 생모이상으로 따랐던 양현, 윤국과의 혼사문제로 어긋났던 이들의 인연이 ‘모녀’라는 관계속으로 다시 들어온다.
덕희가 양현문제로 서희를 비난하고 환국과 말다툼한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환국이 데리러 올때까지 안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환국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열흘이 지나자 친정 어미인 변씨가 아이들과 딸 덕희를 데려다 준다.
이상현은 늙은 주정뱅이로 하얼빈의 뒷골목을 배회하고 있다. 홍이와 송장환, 윤광오 부부의 배려로 그나마 거처를 마련했다. 석이 가끔가다 하얼빈에 올 때면 이상현을 찾아온다. 영광은 홍이와 함께 영화관을 동업하는 심재용이 사장으로 있는 카바레에 취직을 한다. 심재용은 유인실과도 연락이 닿는다.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된 두메는 시간이 날때마다 홍이를 찾아온다. 만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해방의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리산엔 징용을 피해, 학병으로 나가기를 거부하고 온 청년들이 모여 있다. 명희가 오빠 명빈을 찾아왔다가 그들을 위해 써 달라고 오천환을 소지감에게 주고 간다. 징용 갔다 도망쳐온 홍석기를 어장에 데리고 와 일을 시키다가 산으로 보낸 몽치, 그 일로 경찰서에 끌려가 곤욕을 치룬다. 홍이 처남 허삼화, 어장 선주의 아들 여동추, 조병수의 아들 조남현의 힘으로 경찰서에서 풀려나자 모화와 식구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온다. 우개동이 산으로 정탐을 왔다가 청년들에게 붙잡혀 맞아 죽고, 이범호는 명희가 준 돈으로 무장을 하자고 선동한다.
양현이 문밖에 나왔다가 읍내서 들어오는 사람을 통해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걸음에 달려와 서희에게 그 소식을 전한다. 푸른 해당화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서희, 그 말을 듣자 마자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395쪽) ‘이때 나루터에서는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둑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395쪽)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1897년 한가위로부터 시작된 [토지]가 근 50여년에 이르는 이야기를 해방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평사리 최참판댁 무남독녀 최서희의 일대기이자 당시를 살아내었던 민중들의 삶의 이야기가 끝이 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아주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람들의 다음 이야기를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헤어졌던 부모형제들을 만나고, 민중들을 억압했던 친일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아마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이야기를 써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총 5부, 21권으로 된 책읽기도 끝이 났다. 작년 12월초부터 읽기 시작하여 거의 5개월에 걸쳐 읽었다. 가능한 필사를 해가며 읽으려 했던 처음의 생각은 중간중간 필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운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어쩌면 다시한번 찾아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읽으면서 무엇을 놓쳤는지 찾아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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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편 빛 속으로 (2~7)
드디어 <토지> 마지막에 도달했다. 사실은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헤어져 있던 가족들은 상봉을 하고, 안타까웠던 사랑은 이루어지고 기타 등등 행복한 결말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결말은 없었다. 21권도 앞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있었다. <토지>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상현이 오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등장을 했다. 가족과 자식들도 책임지지 못했고, 사랑도 지키지 못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도 못했던 사람. 3.1 만세운동 후에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독립에 대한 희망도 버리고, 기화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리에 도망쳐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무기력으로 일관했던 남자였다. 타인에 의해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사람은 개인의 고뇌로 더 많은 것을 잃는듯하다.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것일 것이다. 임명희도 이상현과는 다르지만 답답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무엇엔가 끌려 다닌듯한 느낌,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
지리산으로 들어온 사람들중 이범호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사회주의 신봉자였다. 지리산에서 편을 가르고 무장을 하기를 선동한다. 항일운동, 해방을 목표로 해왔던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야하고 반동에 대항하는 무력은 필수라는 답이돌아왔다. 용정에서 홍이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두메도 사회주의 발전을 위하여 감성적인 부분처럼 썩은 부분은 도려내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항일운동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왔지만, 그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은 이렇듯 분분하기에 해방이 된다고 끝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는 독립과 동시에 새로운 갈등들이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는듯했다.
일제시대라는 큰 물줄기 속에서 정치적인 상황에 분노하고,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리고 했지만, 토지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큰 이야기는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들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 이웃간의 정은 또 어떠했던가. 1부에 등장했던 많은 사람들은 어느덧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또 옛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나가고 있었다. 부모의 업으로 끊임없이 고뇌해야하고, 출생 때문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형은 밀정으로 동생은 독립운동을 하지만 혈연이라는 이유로 서로 보듬어야했다. 끝없이 자식 걱정을 하고, 자식 덕분에 웃으며, 싸우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가족이란 이유로 힘이 된다. 힘든 세월을 살아나가면서도 깊은 정을 나누는 이웃들의 모습은 삶이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상들이 사람을 지배하지만, 결국 사람이 먼저라는 마음이 없을 때는 한낱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 허영으로만 끝나지 말고 진정한 인류애를 전제로 할 때만 빛을 발하지 않을까?
오가다의 말을 통해 삶의 신비로움을,
거대하고 은밀하며 기적과도 같은 우연, 만나는가 하면 히어지고 아아, 인간들의 끝이 없는 드라마, 오가다는 진정 그 찬란함에 눈부심을 느낀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간에 행복이든 행북이든 불행이든 간에 삶은 찬란하고고 신비롭다. 그것은 어떤 힘으로, 무엇에 의해 짜여졌더란 말인가, - p 207
환국의 말을 통해 인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그리고 동천에 얼어붙은 달과도 같이, 물론 봄의 환희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연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 p 230
자연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문장들, 난해하지 않으면서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문장들은 그 자체만으로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것 또한 <토지>를 읽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도쿄 대공습이 이루어지고,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신문을 장식하면서 사람들은 일본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렇듯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소식으로 <토지>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수 많은 문제들은 남겨 두었다. 긴 시간동안 계속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터였다. 시대의 큰 물줄기에서 해방이란 역사적 사실은 던져 주었지만, 등장인물들의 인생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끝까지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중일테니까. 1969년 <현대문학> 9월호에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한다. 25년 세월을 토지와 함께한 작가는 어떤 맘이 들었을까?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면 토지를 읽으면서 왜 '한'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떠올렸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토지>를 읽었다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면이 느껴진다. <토지>에 관한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토지>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가지고 싶다는 목표 하나를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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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토지>를 펼친 후, 때론 ‘과연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혹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다가와 나의 일상 속으로 불시에 찾아와 말을 걸었고, 결코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과연 나라면?’이란 물음이 또한 마음을 뒤흔들었다. 돈, 권력의 유무를 차치하고, 면면의 인물들의 삶은 그자체로 아름답고도 애달픔 그 자체였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한 고비 넘어 숨을 돌리면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다가도, 끝도 없는 펼쳐진 그 막연한 길에 대해, 그 불안과 두려움이 고개를 들 때, 불쑥 다가와 조곤조곤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 불안과 두려움, 가슴 속 깊이 차오르는 그리움마저도 온몸으로 끌어안으라고. 그렇게 견디는 삶의 환희를 오롯이 일깨워주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마지막을 향해 치달릴수록 명쾌해졌다. 생명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가치, <토지>를 읽다보니, 나 스스로 참으로 유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해졌다. 앙칼지고 모난 마음의 언저리를 자꾸만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그 느낌은 그 누군가의 품처럼 온몸이 짜릿하도록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결코 잊을 수 있는 따스함이었다. <토지>의 힘은 숱한 시간이 다져낸 생명에 대한 긍정의 힘이 아닐까? 이제껏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나와 비슷하게 읽던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때론 쫓기듯이 읽기도 하였다. 하지만 만족스럽지가 않다. 자꾸만 곁에 두고픈 마음이 커져, 최근 개정판 <토지>를 꼭 소유하겠다는 마음이 한 가득이다. 2012년, 21권의 <토지>를 꼭 읽겠다는 다짐을 이미 달성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선물해도 좋지 않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손끝이 간질간질하다. 그만큼 또 읽고 싶다. 아니, 어떤 아쉬움과 시원섭섭함보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들로 가득 차오른다. 월선, 봉선(기화), 김환, 이용 그리고 기억에 가물가물한 수많은 인물들이 그리워지고 또 그리워진다.
<토지 21(5부 5권)>의 마지막을 향하면서 왠지 모를 외로움과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던 것도 사실이다. 만주로 떠난 이들(석이, 상현)이 직접 등장하였고, 영광이 만주로 떠났고 그 어미는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양현을 데리고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 잠시 내려온 환국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갈등들이 풀리기보다는 그 다음의 이야기가 또한 궁금해진다. 과연 어떤 책을 펼쳤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한다. 광복을 앞둔 상황 속, 그 암담함과 처절함, 결코 속속들이 들어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고통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박 겉핥기식의 역사를 통해 분개했던 것은 어쩌면 학습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그 숨 막히도록 살벌했던 시대, 그 핍박 받고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결코 나와 별개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결코 머나먼 나라의 타자일 수가 없고, 그것은 과거의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해, 아니 외면하고 오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그 잔인함과 잔혹함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마음과 몸이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 찰 수 있는지도 더욱 뚜렷해지고 명쾌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음하며 좌절하고 움츠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도 가득 찼다. 그래서 스스로를 수시로 돌아보게 된다. 아니, 끊임없이 그들과 호흡하면서 나를 다지고 싶다. 흔들리는 마음들, 갈등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방황하는 그 마음들이 단단하게 묶고, 사람냄새 진하게 풍기고 싶다. 살뜰하게 나의 마음 밭을 다져줄 <토지>의 존재만으로도 풍요로워진다.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꿀의 단맛에 취했을 것이며 세속적인 거짓과 허무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내 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 기쁨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시간이 그리 허술했다 할 수 없고 허허헛헛... 내 자랑이 지나쳤습니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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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토지>의 마지막 한 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원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래서 빨리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하며 힘겹게 읽어갔다. 과연 책 <토지>의 마지막은 어떻게 끝날지. 궁금증에 궁금증을 더하며 읽어간 책 <토지>.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의 느낌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허탈했다. 힘겨웠던 토지의 삶은 조국의 광복과 함께 끝이 났고, 몇 달에 걸쳐 읽어 온 책 <토지>의 이야기도 끝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난 극적인 결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 <토지>는 영웅소설이 아니었기에 극적이지 않았다. 다만 우리네의 다양한 삶을 진솔하게 담아냈을 뿐. 그렇기에 책 <토지>의 끝도 화려하기 보단 잔잔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수록 책 <토지>에서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생각이 많이 담겨져 있었다. 어쩜 그것은 내가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후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물 하나하나에서 박경리 선생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분의 삶이.
힘겹게 인생을 살다 가신 박경리 선생님. 그분의 말년은 평온했지만, 그분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분의 생을 두고 가히 평온하기만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책 <토지>를 우리에게 남겨주실 수 있으셨을 테지만. 불구의 몸으로 모진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조병수. 그의 말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생에 대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았던 가정생활. 어찌 보면 불구 같은 가정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 없이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 일찍 죽음을 맞이한 남편으로 인해 젊은 과부로 어린 딸을 키워야 했으며, 사상범으로 몰린 사위 때문에 어린 손자를 혼자 키우는 딸을 지켜봐야했다. 하지만 불구 같던 가정생활을 보냈기에 박경리 선생님은 화려한 꽃을 찾아다니며 뽐내는 나비 같은 삶이 아니라, 모든 것과 더불어 사는 겸손한 물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련지.
작가 박경리 선생님이 바라본 인간사가 이러했으리라. 눈부시도록 찬란해보이다가도 한없이 하찮아 보이는 인간들.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이에게 인간들의 삶이란. 허무하기만 했다. 책 <토지>를 읽고 난 뒤 난 100살이 넘게 산 것처럼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너무나 많은 인간사를 보며, 나 역시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인간사를 겪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리광쟁이인 것만 같았던 서희가 다시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며, 악독했던 조준구가 결국 추하게 죽어가는 것이며, 책 <토지> 속 여러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난 그들과 함께 많은 걸 경험하고 겪어야 했다. 그것은 내가 삼십년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소비하게 했다.
박경리 선생님의 속마음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책 안에서는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유키코처럼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견해를 담아내었다. 어느 한 쪽도 일방적이지 않았고, 각 사상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쏟아내었다. 책 <토지>의 마지막도 그저 조국의 광복을 기뻐할 뿐.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는 구분짓지 않았다.
- 연필과 지우개 -
제5부 1940년경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억압을 견뎌내야 했던 민족의 삶이 확대된 공간을 오가며 다양하게 펼쳐진다. 서희는 박 의사의 죽음, 양현과 영광의 슬픈 사랑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며, 인실과 오가다의 재회, 길상의 관음탱화 조성, 소목장이가 된 조병수와 아버지 조준구의 처절한 죽음, 후일담형태로 채워지는 평사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로 주요 인물간에 얽혔던 한이 한겹씩 풀어진다. 또한 해도사와 소지감 등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모임, 이홍의 딸 상의의 일본인 학교생활, 일본인의 앞잡이가 된 우개동의 행패 등을 통해 일제말의 현실이 적극적으로 그려진다. 1945년 8월 15일, 양현은 강가에 나갔다가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이를 서희에게 전한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1897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달려온 <토지>의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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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이다. 끝이 났다.. 솔직히 드디어라기 보다는, '드디어'라는데에는 기다려왔다는 듯이라는 속뜻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니.. 그냥 어쩌다보니, 아쉽게도. 끝이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러시아가 전쟁에 참여하면서, 서희가 옥에 있는 길상이를 걱정하면서, 입맛을 거의 잃는다.
그래서 양현이가 서희를 위해 은어를 사러 갔는데, 거기서 독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책은 독립을 위한 소설이었다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쉽다.
길상이는 어떻게 되엇으며, 윤국이는 집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명희는 재혼을 하는지, 찬하와 오가다 그리고 인실은 만나게 되는지. 그리고 오가다와 인실은 아이를 키우게 되는지. 남희는 어떻게 정신적인 병에서 헤쳐 나오는지, 홍이는 상의과 상근이 그리고 보연이를 다시 만나는지 석이는 집에 들어오는지. 영광이와 양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건지.
나의 상상에 맡기는 건가?
서희를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땅에 떨어지면서.. 어떻게 되는걸까????
아, 근 두달 반정도, 토지와 함께 한 나의 생활.. 즐거웠다.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이곳을 헤메었으니....ㅋㅋㅋ 아~ 평사리에 한번 가봐야겠구나.. 서희가 살았던 곳. 최참판댁을 느껴보고싶네..
엄청난 책을 쓴 박경리 선생님이 정말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대단해 보인다는 말의 어감이 웃긴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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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조선은 독립을 했고, 토지는 끝났다. 1897년인가 부터 시작했다는 토지는 그렇게 50년 세월을 흘러 1945년8월 15일, 21권의 장정 끝에 막을 내렸다.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소설이 끝났다고 해서, 소설 속 그들의 인생이 무슨 큰 변환을 맞았거나 매조지 지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세월은 늘 흐르고, 처음 시작할때도 그들의 인생 한켠을 비집고 들어가 그때 부터 함께 했던 것이, 끝날 때도 그 사이에 인물은 많이 죽고 바뀌었지만, 또 그들의 인생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덮어두고 빠져 나왔다. 아아 약 50년 남짓의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고, 태어나고, 그리고 살아있어도 무대 전면에 나섰다가 곧 사그라들어 뒷방에 나앉았다. 100년도 못되는 짧은 삶을 사는 우리는, 그 안에서도 꽃피우고 앞에 나서 무언가를 해나가는 시간은, 혹은 남들이 관심가질만 하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은 그렇게 짧더라. 젊음이란 무엇보다 귀한 것이던가? 젊었을때 고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인생의 방향도 결정한다. 나이들고 나면 무대에서 더이상 주연이 아니다. 이 소설속 천하의 최서희도 마찬가지. 내게도 이미 그 젊음은 지나가 버렸고, 이제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올일은 별로 없지만, 난 아직 뒷방에 나앉진 않으련다. 내가 멈추지 않는한 그것은 끝난 것도, 사라진것도, 나앉은 것도, 포기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다. 세월의 어느 한 토막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렇게 같이한 시간들을 공유한다. 마치 그것만 있는 것처럼. 예를 들어 나는 엄마가 나를 낳기전에 살아온 모습, 즉 그녀의 어린날이나 젊었을 때를 알지 못한다. 마치 그 세월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내게는 엄마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엄마를 알기에, 늙고 약해진 엄마를 바라보는 것은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많은 날들이 있지만,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사람들과 내가 어울려 지낸다면 그들 또한 나의 지금 모습을 공유하고 바라볼 것이다. 마치 그것이 나의 다인 것 처럼. 어린시절 단칸방에 살면서 석유 곤로를 사용하고, 퍼세식 화장실을 쓰고 똥차를 흔히 보던 그런 모습은 나도 일부러 떠올리지 않는한 멀어져 버렸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도 퍼세식 화장실이었다. 그것은 어느 시골이 아니고 서울특별시의 한 국민학교. 나도 잊은 그 모습들을 지금의 사람들이 심지어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그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지금만 살아간다. 마치 지금의 세월만 있는 것처럼. 이 소설 속에서의 세월만 흐른것은 아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도 많이 늙었다. 소설에서 50여년이 흐르는 동안 작가도 중년에서 노년으로 20년 이상을 보냈다. 작가와 함께 늙어가면서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지점에 이 긴 소설을 다 읽어낸 나는 그러한 세월 동안 나타난 작가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전형적인 장년에서의 노년으로의 변화였다. 소설 내내 담담한 어조로 토지속 그네들의 삶과 생각을 그려내던 작가는 4부 어디쯤에선가 뜬금없이 갑자기 독자를 찾는다.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뭐 '독자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어쩌구~~~' 하는 구절이었는데, 헉 충격이었다. 갑자기 왜 작가가 독자와 적극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거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집필하다보니 작가의 그당시 감정이 묻어난 것 같은데 그러한 대목은 21권 내내 그 전에도 그 후에도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소설의 문체로 보면 엄청나게 이질적이고 생경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보니 작가의 삶속에 녹아있는 그의 글쓰기가 보이는 것 같아 한켠 웃게 만드는 즐거운 사건이었다. 또 재미났던 것은 5부가 되면서 이미 노년이 되어버린 작가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설명해 주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앞에는 나오지 않는 특성이었기에 재밌었다. 앞에서 책을 읽어서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을 굳이 이 인물은 그때 어쩌구 저쩌구해서 만났다가 맺어진 이런 인연이 있다라는 둥, 이 사람과 이사람은 그때 무슨일로 해서 엮여서 무엇을 함께 겪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그런류의 되새김 말이다. 전형적인 할매의 특성. 다 알고 있는데 또 설명해 주고 또 설명해 주고. ㅎㅎ ^^ 4부에 그렇게 심하게 철학과 사상에 집착하던 작가가 5부에서는 또다시 친근하게 이야기로 돌아온 것은 반가웠는데, 그 때 할매의 특성인 했던 얘기 또해주는 것까지 같이 들고 돌아왔다. 아~! 세월은 왜이리 흐르고 흘러 우리를 변하게 하는지. 우리는 그 흐름속에 조금씩의 편차는 있지만 그에 해당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렇게 살아가더라. 이 책은 내게, 내삶에 대해,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 나라에 대해, 내 뿌리에 대해 많은 울림을 주었다. 또한 이런 대작을 쓴 작가의 고민과 공부를 엿보며 또 많은 울림을 받았다. 비록 지금 안계시지만 이런 아름다운 소설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토지에서 나오는 한 구절에 대한 내 생각을 덧붙이고 끝내련다. 소설속에서 보면 1930년대인데도 도시에 가면 도둑이 들끓고, 눈감으면 코베어간다 이런 말이 나온다. 그것을 보면서, 대체 언제부터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져서 서로가 서로를 믿기 힘든게 된걸까?를 생각해봤다. 나는 최소한 그런것이 내가 존재했던 70~80년대나 되어서야 나온 얘기이겠거니 하고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대해 나 나름의 답을 또 찾은 것 같다. 일제시대 이전, 즉 조선시대에는 반상의 구분이 엄격한데다가 모두가 농민, 어딘가를 다니는 사람은 장꾼 밖에는 없었다. 도시에서는 당연히 양반과 그의 종들만이 살았고. 즉, 태어나 죽을때 까지 그 곳에서만 살다가는 것이다. 농사는 천직이요. 이동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알고, 도둑질이나 속임수 등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금방 탄로나게 마련, 그 마을에 발붙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무슨짓을 하면 걸릴수 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반상의 구분이 없어지고, 먹고 살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도시라는 한 곳에 모여 살게 되며, 익명성이란 것이 생긴다. 내가 무엇을 훔쳐도 이들은 내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모른다. 숨을 곳이 마련 된 것. 이렇게 숨을 곳이 있는 상황에서 먹고 살기가 어려우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사기치고, 등쳐먹고, 훔치고 강도질 하는 나쁜놈들이 생기게 마련. 도시에서 인심이 야박하고 흉흉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은, 도시에 사는 인간들이 말종이라 그런게 아니다. 말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만든 사회 시스템의 문제였다. 즉 사람은 그대로라도, 먹고 살기 힘든게 그대로라도,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인심은, 크게는 범죄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부나 어떤 사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제대로 된 설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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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1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