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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를 다룬 정통적 전기물은 물론 많아도, 문학의 캐릭터로 형상화한 적은 별로 없었다. 베토벤의 경우, 로맹 롤랑이 대작 '장크리스토프'를 통해 잘 그려내어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훌륭한 외과 의사가 제 몸에 메스를 대어 수술을 할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하게, 악성 베토벤의 생애를 마치 베토벤의 악풍을 본딴 듯 문자로 심오하게 그려내기란 설사 베토벤 본인이 문학적 재능까지 있었다 치더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수 세기 후 롤랑의 그 작품은 단지 위인의 생애 뿐 아닌, 차라리 베토벤 음악의 문학적 재현이라 해도 될 만큼 깊이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단지 신의 사랑만을 분에 넘치게 받은 이에 불과했다면, 베토벤은 신의 피조물이 그 한계 내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모든 필멸의 고뇌를 성숙한 인격으로 다 소화해내고 말았다는 점에서 진정 더 위대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일단 이 이야기는 잠시 접고. 1984년작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는, '대체 천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활력 있는 대답을 이미지로 재현해 대중 앞에 내놓았다는 점에서, 일면 모차르트라는 역사적 존재의 충실한 구현의 공이 있기는 하다(딱 그 점에 한해서). "아... 어떻게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경탄. 살리에리 역시 보는 우리들을 대변하여(이 점에서 차라리 이 영화는 2인칭 시점이다), 그 천재성에 대한 격렬한 질투를 한 인격으로서 잘 표현한다. 일단 이 이야기도 잠시 미루고. 1990년대 초반 '람세스'로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크리스티앙 자크는. 기묘하게도 자신이 평생을 바치다시피 해서 구축한 이집트 코드의 거대 집성에, 중세 비교의 단편적 흐름(기독교 일각이 수용한 유대 카발라 포함), 여기에 계몽사상을 일단은 내세웠던 프리메이슨 화소까지 두루 엮어서, 다소 황당한 '팩션'을 고안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읽어 보면 아는 것이겠으나, 나로서는 소설의 서두부터가 너무도 당혹스러운 스탠스를 잡고 있었던데다, 그 각각의 테마를 연결해 나가는 고리 역시 엉성하기 짝이 없어, 대체 이 과감하다면 과감한 시도를 어떻게 뒷감당 마무리를 할지 귀추가 주목되긴 했다. 발상 자체는 참신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프로젝트'는 애초에 무리다. 그 각각의 컬트는 현재 그 현상과 본질이 명쾌하게 구명된 바가 없으며, '프리메이슨'만 해도 그게 과연 단일 개념으로 포착될 수 있는 실체이기나 한지가 벌써 모호한 판이다. 정말 난감한 건, 고대 이집트 코드와 기됵교 사이에는 일신교-다신교의 차이를 넘어서 이론 체계에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강이 흐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가운데 비교라는 조약돌 하나를 던져 넣어 다리를 만들 생각을 하는 자체가 지나친 만용이다. '그래서 모차르트라는 대마법사를 준비한 거 아니겠음?'이라 반박한다면, 하하... 그 귀추가 어찌될지는 읽어보면서 주목할 일이긴 하겠다만.,,,, 내가 보기에 이건 정말 무리다. 무리. 모차르트의 생애를 연대기별로 정확히 짚어나가되 곳곳에서 수호천사처럼 그를 지켜주는 프리메이슨 단원이 등장해서,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해도 사악하고 불완전한 인간계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갖가지 곤경을, 분명하고 정해진 운명의 궤도에서 이탈하는 일 없게 고비고비에서 그를 지켜준다...는 설정, 주제에의 착실한 전진을 돕는 이정표와, 정주행 중 졸음운전을 할 수 있는 독자에게 각성 효과를 주는 아프리카산 카카오정제 노릇 둘을 동시에 행하는 장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 끝까지 통할지의 여부는 지켜 봐야 알 수 있는 일. 26쪽. '테오필루스'가 라틴어식 이름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큰 잘못이다. '테오필로스'라고 해서 기원은 당연 그리스식이며, 이것이 로마로 와서 그대로 번역되어 '아마데우스'가 되었을 뿐 라틴어에 편입된 적은 없다. '테오필루스'는 그리스 영향을 받은 외래어식 독일어이며, 이 이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독일에서 이름으로 적잖게 쓰이는 형태이다. 성귀수 씨가 단어 하나 안 빼먹고 착실히 번역하는 스타일임을 감안하면 이는 크리스티앙 자크 본인의 실수일 수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숨마 테올로지카(신학대전)'에서 보듯, 어근 theo-는 중세 이후 확실히 라틴어 코르푸스에 편입된 건 맞다. 허나 단지 어미가 -us라 해서 theophilus라는 이름이 라틴어식인 건 아니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라틴어화하지 못할 명사는 하나도 없게 된다. 모차르트가 영국으로 건너가 조지 3세 부처를 만나는 부분에서, '메클렘부르크'라고 표기한 대목이 있다. 이는 잘못이며, 영어(영국의 왕비니까)든 독일식이든(태생이 독일) 메클렌부르크(Mecklenburg-이 이름은 구 동독의 州로 지금도 살아 있는 이름이다)라고 해야 한다. 오로지 프랑스어에서만 자음동화에 따른 철자 표기의 변형이 이루어지는데(Mecklemburg로),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불어 원문대로 굳이 그걸 살리고 싶었다면 '메끌랑부르'정도로 해야 일관성이 있는 셈이다. 영국인의 성명을 적는데 한국어 번역본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 그러나 어색하다. 다시 말하지만 '메클렌부르크'든지 '메끌랑부르'든지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이고, 저런 이상한 절충식(?) 표기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차르트를 그 부친 대부터 후원한 지기스문트 폰 슈라텐바흐 백작이 나온다. 이 사람은 이름 그대로 슈라텐바흐 백작 가문의 상속자 신분으로, 20대 중반에 사제 서품을 받고, 이후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죽자 그 직위를 이어받게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게르마니아 대주교'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이는 잘못이라고까지 하긴 뭣하나 정확성이 결여된 번역이다. 대체 어느 교구가 얼마나 크기에 그 이름이 '게르마니아'라고 붙었겠는가? 18세기 로마 가콜릭이 그 행정 체계를 그토록 엉성하게 가졌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로마 가톨릭은 알프스 이북 일대에 교황의 첫째 가는 여러 대리인이 필요했고, 이를 '게르만 지역 으뜸 주교(들)'라는 뜻으로 primas germaniae라고 했다.모든 대주교가 이 직책을 부여 받은 건 아니다. 이 primas는 복수 대격이 아니라, 명사 변화 제 3유형 주격으로 그 단수 속격이 primatatis로 변하는 그 타입이다(뒤의 germaniae는 명사 단수 속격임). '프리마스 게르마니아이'에는, 따라서 폰 슈라텐바흐 백작이 역임한 잘츠부르크 대주교, 또 저 멀리 마인츠 대주교, 트리에르 대주교 등이 있었으며, 쾰른 대주교는 선제후이긴 하나 primas는 아니었다. 얼른 들어도 게르마니아 대주교라니 로마 시대도 아니고 얼마나 어색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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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를 처음 만난 건 소설 <람세스>를 통해서였다. 그의 감칠맛 나는 표현들과 생생한 묘사들은 나를 그의 책에 빠져들게 했고, 나로 하여금 그가 쓴 책들을 모두 찾게 만들었다. 그가 쓴 책들은 모두 이집트에 관한 소설들이었고, 그 결과 나는 그와 더불어 이집트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첫 만남을 가졌던 크리스티앙 자크를 한동안 잊고 지냈었다. 바쁜 일상에 파묻혀서.. 그러다 우연찮게 발견한 그의 새 소설 <모차르트>! 반가움보다 왠일인가 싶었다. 크리스티앙 자크하면 이집트였는데, 갑자기 모차르트라니! 클래식 음악 역시 이집트만큼이나 나의 관심사에 들어 있었기에 난 그를 믿고 주저 없이 책을 샀다.
막상 사고도 이 책은 한참동안 나를 만날 수 없었다. 맛있는 건 아껴두었다가 먹는 마음으로, 나의 큰 기대로 인해 이 책은 나의 책장에서 창고 박스로 또 다시 책장으로 나온 뒤에도 나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이 책이 나를 만나게 된 건 다시 시작된 나의 신년 계획과 함께였다. 매년 초 내가 세우는 계획 중의 하나! 1년에 책 100권 읽기!
모차르트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몰라도 모차르트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나 역시 그의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음악가 모차르트라는 사람은. 하지만 인간 모차르트는 잘 몰랐다. 천재 음악가였다는 것과 아버지의 적극적인 교육으로 유럽일대에서 연주를 했었다는 것 정도밖에. 그런 그를 조금 더 잘 알게 해주었던 건 영화 <아마데우스>였다. 영화를 본 뒤 나에게 모차르트란 자신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감사할 줄 모르고 술과 여자만 좋아하던 탕아로 보였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자크를 통해 나는 모차르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재이기에 외로웠고, 천재이기에 괴로웠던 몽상가의 모습을..
남들은 말을 배우기도 어려울 나이에 피아노를, 음악을 배운 모차르트. 천재신동으로 유럽을 순회하며 연주회를 펼치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성장을 한 뒤에 그는 천재성을 크게 인정받지 못 했다. 아니, 어느 음악가도 그의 재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어릴 땐 귀여운 신동이었지만, 그가 성장해 나타났을 때 그는 밀쳐내야 할 경쟁자일 뿐이었다. 이미 어렵게 한 자리씩 높은 자리를 꽤 차고 있는 이들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다. 그나마 그가 받을 수 있는 자리는 그의 아버지가 닦아놓은 자리였기 그와 그의 아버지가 원했던 높이의 자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멋진 음악이라 한들 음악이란 그저 귀족들의 여흥거리에 불과했던 시대. 음악을 하려면 먼저 귀족들의 옆구리를 살살 긁어주어야 했던 시대에 모차르트는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나 자유로운 몽상가였던 모차르트에게는..
어느 시대나 그렇겠지만 예술가들의 삶은 힘들기에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펼치기 위해선 우선 대중으로부터 혹은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했다. 그런 과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펼치는 것은 곧 생계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 시대의 대중인 귀족들은 특별한 정치적 세력을 갖고 있지 않은 모차르트에게 힘을 실어 줄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귀족들의 옆구리를 간질이는 재주가 없는 모차르트가 예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은 내심 그의 뛰어남을 인정을 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겸손하게 내비치기보다는 당당하게 과시하는 모차르트가 얄미웠을 것이다.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가는 자기 밥그릇을 뺏기기 십상이었기에, 그의 재능이 싹을 피우기 전에 잘라내야만 했다.
게다가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이용해 교묘하게 떠나려고 하는 모차르트를 자신에게 돌아오게끔 만들었다.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채워줄 이가 모차르트 뿐 임을 알았기에 모차르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가 자신의 새장 속에서 자신을 위해 울어주길 바랬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시기 질투하는 이들 사이에서 외로웠고, 자신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줄 수 없어서 괴로웠을 것이다.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날개짓을 했지만 정작 날아오른 건 얼마 안 되는 거리라면? 게다가 그나마도 날지 못하고 다리에 묶인 끈 때문에 다시 날아올랐던 곳으로 끌려 내려간다면? 그래서 다시 시작한 곳에 서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소설 <모차르트 1. 대마법사>는 화려하게 태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다시 좁은 새장에 갇혀 힘들어 하는 모차르트의 이야기였다. 위의 어느 구절처럼 아직 운명은 그를 향해 문을 열어주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알 수 없었다. 왜 그가 대마법사인지, 또 왜 그가 이집트인 모차르트인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다음 책을 만나봐야겠다. ^^;;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볼프강 (잘츠부르크에 흐르는 강 이름) 아마데우스 (신이 사랑한자) 모차르트 (용맹하다, 의기가 드높다)
- 연필과 지우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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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을 접한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람세스와 태양의 여왕을 읽고 난 이후 오랜만에 접하는 그의 소설인데다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출간된 소설이기에 더 기대가 컸는지도 모른다.(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람세스 내용 중에서 네페르타리가 죽는 장면을 아직도 복사해서 가지고 있을정도로 람세스를 열렬히 좋아했었다!!) 거기다 약 500페이지 분량의 책이 4권이라니!!!
충동적으로 꺼내들고 읽기 시작한 크리스티앙 자크의 '모차르트'는, 수많은 작가들이 묘사하고 노래한 모차르트들과 같이,'크리스티앙 자크만의 모차르트'였다.
이집트학을 전공한 크리스티앙 자크는 이번 작품에서도 모차르트와 이집트를 접목시킨다. 모차르트에 대해 나름의 '유럽식 핑크빛 환상(?)'을 가지고있었던 나로서는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유럽과 이집트의 퓨전이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책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시각을 프리메이슨과 모차르트, 그리고 프리메이슨을 노리는(?) 오스트리아 정부로 옮겨가며 진행된다. 얼마나 많은 사료를 검토하고 이야기를 진행했는지는, 책을 직접 보면 잘 알 수있다. 크리스티앙 자크는 현재 공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으며, 날짜까지 기재되어있는 그 하루하루의 이야기가, 마치 그들만의 '일기'인 듯한 느낌도 강하게 준다. 그래서 이야기의 진행방식은 더 흥미롭다.
다만, 내가 프리메이슨에 대해 개념이 조금만 더 잘 잡혀있었어도 이 이야기를 읽는데 크게 지장은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이든다. 보통 '성당기사단'등으로 잘 이해되는 프리메이슨에 대한 내 이미지는 협소하기 짝이없어서, 이 책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최종 평가는 4권을 모두 다 읽은 다음에 내릴 생각이다. 나는 이제야 1권을 마쳤고, 이제 2권에 돌입했다. 크리스티앙 자크가 생각하는 모차르트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당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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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자크란 이름을 보고 람세스의 감흥을 생각하며 앞페이지 몇 장 읽고 덜컹 구매했는데,.
잘 모르겠다 모차르트 1권을 다 읽고도 2권 읽고 싶단 생각이 안 들고 그대로 책장에 있다 1권도 읽다가 두었다가 읽다가 두었다가;;
람세스는 시간 날때마다 못봐서 안달이었는데;;
모차르트 앞에 "다빈치코드"를 읽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냥 여전히 우리집 책장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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