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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학생에 비유한다면, 이 정도 될 것이다. '너무 착하고, 너무 모범적이고, 공부도 너무 잘하고, 하지만 덕분에 다소 심심하고, 다소 재미없고,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책의 첫 페이지-언제 발행했는지, 발행인이 누군지, 펴낸곳이 어딘지가 쓰여진 그곳-에 보면 이런 설명이 쓰여져 있다. "이 책은 200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었으며, 2002년 가담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전자도서는 2003년 문화관광부 우수 전자책으로 선정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러한 수상들은 당연한 일로 느껴진다. 모범생한테 모범상주는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책의 구성은 '싱겁다'싶을 정도로 명확하다. 우선 지식인론에 대한 문제의식을 언급하고 용어 정리-지식인, 인텔리겐차 등등의 사회, 정치적 함의에 관한-를 간단히 한 후 우선 서양의 지식인론을 언급한다. 지식 사회학의 거두(?)인 만하임을 시작, 그람시와 사르트르를 언급하면서 '근대적 지식인론'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이어지는 푸코, 리오타르, 바우만에 대한 설명으로 '포스트모던 지식인론'에 대한 설명을 끝낸다. 이후에는 우리 사회 지식인론의 역사를 고찰하는데 1950년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우리사회 엔간한 지식인론-심지어 참으로 기상천외하다아니할 수 없는^^;;;'신지식인론'이나'선비론'까지-을 다 언급하고 설명해내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의 지식인론인 '시민적 지식인론'에 대한 설명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럼 저자가 '시민적 지식인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포스트모던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식인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것이다.(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바우만의 지식인론을 서술할 때 '굉장히 호의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만 그런 느낌이 드는건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하버마스의 '소통행위론'을 끌어들여오는데, 개인적으로는 하버마스의 이론을 너무도 어렴풋이 아는터,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도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저자가 이러한 개념을 끌고 들어옴으로써 지식인을 또하나의 '계급'으로 파악해 '엘리트주의적인 경향'으로 빠지게 되는 함정을 가볍게 뛰어넘었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울러, 단순히 지식인 '론'에 그치지 않고 지식인이 해 나아가야 할 역할-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식인의 종언'까지 나아간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식인 비판에 의해 더욱 풍성해지고, 그만큼 필요한 분야는 더욱 많아진 것으로 보여진다-을 하나, 둘 설명하며 무엇보다 '실천'을 강조한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외에도 이 책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면, 무엇보다 저자의 '성실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에 대한 수많은 문건과 관련 학자들의 저서에서 나온 지식인론을 정리해낸 저자의 능력과 노력에 대해 정말이지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다. 혹 '지식인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교과서로 나는 별 생각없이 이 책을 꼽을 것 같다. |
|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특정 계층에 속하지 아니한 체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 하지만 ‘지식인’ 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 문구가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지진 않는다. 경제적 자본에 따라 계층을 구분 짓는 전통적 방식에 따르자면, 이들 계층은 과연 어디에 속할 수 있을까? 특정 직업을 가진 이들을 두고 ‘지식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모호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꽤나 엘리트주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기에 몇몇 이들은 ‘지성’ 혹은 ‘지성인’이라는 단어를 선호하기도 한다. 어쨌건 이러한 어감의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지식인’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학자들 역시 이 개념을 정의 내리는 것을 쉽지만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모든 개념이 그러하듯, ‘지식인’이라는 개념 역시 사회의 변혁 과정 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겪어왔다. 칼 만하임의 자유부동하는 지식인론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탈근대적 지식인론에 이르기까지의 지식인에 대한 개념의 변화 과정은 실로 흥미롭다. 자유부동하는 지식인론이 그 명칭에서 보이듯, 지식인을 특정 계층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계층으로 판단하였다. 그렇기에 지식인은 사회의 문제를 (특정 계층의 눈이 아닌) 총체적으로 파악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만하임은 파악하였다. 하지만 그람시에서부터 이는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을 위해 고안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설정한 지식인은 민중으로 하여금 이 사회에 모순에 눈뜨고(대자적 계급의 즉자적 계급화) 더 나아가 사회에 변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주체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계몽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그람시의 개념은 사르트르와 푸코를 거치면서 좀더 정교해진다. 그리고 리오타르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지식인에게 부여되었던(?) 엘리트적인 특성이 죽었음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에 바탕을 두고 저자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우리나라에서 전개되었던 지식인의 개념과 관련된 논쟁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식인의 개념이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사회의 부정부패, 군부 독재와 같은 사회 부조리 앞에서 지식인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참여를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엿보이는 그람시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지식인론은 만하임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듯싶다. 동시에 실존주의의 개념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저항’적인 측면에 대한 무관심, 변질로 인하여 민중을 계몽하고 선동하는 위치로부터 우리의 지식인은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지식인 개념의 변화 속에서 ‘시민적 지식인’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을 끌어낸다. 저자는 모든 시민을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설정한다. 특정 정도 이상의 교육을 받는 것이 지식인이 될 수 있는 필수 조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민적 지식인’은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상, 삶 속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시민적 지식인론에서의 지식인은 기존에 제기되었던 계급이나 계층의 문제 이외에도, 자신이 속한 사회적 상황에 따라 환경, 여성 등 다양한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지식인 사이의 연대를 강조함에 있어서도 기존의 중앙 집중주의, 서구 중심적 형태를 지양해야 하며, 정보화는 이를 위한 좋은 토양이 되어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정보화의 정도에 있어서의 격차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적 지식인의 개념 하에서도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지식인은 있는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현 사회에서, 이러한 거대한 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나니 한숨이 나온다. 어쩌면 ‘지식인’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사치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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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누구인가? 교수 작가 언론인이면 모두 지식인이고,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무조건 지식인인가? 강수택 교수(경상대, 사회학)는 "사적 관심에 매몰되어 있다면 지식인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지식인의 존재적 위기에 대한 갈파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지식인들이 사회의 변화 방향과 속도에 갈피를잡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들의 외침을 각종 혼란에 빠진 사회가 감지하지못하고 수장해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21세기 지식인은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시민의 의미를 ''도시 지역 주민'' ''시민 계급의 구성(부르즈아)''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 분류하면서,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 앞으로 사회의 지식인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최근 펴낸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에서 ''시민적 지식인''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일반 시민의 모델로서 제시되고 권장되어야 할 지식인 상은 정부가 제창하는 ''신지식인 상''이 아니라 ''새로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시민적 지식인 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시민은 잠재적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관심을 생활 세계의 공적인 영역으로 넓히고 지적인 노력을 통하여 공적인 사안의 해결에 지적으로 기여하는 순간 지식인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강수택 교수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이 전개될 지식인 담론의 화두로 ''시민적 지식인론''을 제시했다. 강 교수의 시민적 지식인론은 모든 지식인은 잠재적 시민이며 또한 모든 시민은잠재적 지식인이라는 관념에 기반한다. 특정한 직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계층을 뜻하지도 않으며 특정한 사회적 기능을 기준으로 삼지도 않는다. 다만 생활세계를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지성으로써 참여하는 모든 시민은 지식인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지식인은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시민적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강수택 교수는 ''주체적 역할''과 ''해석적 역할'', ''비판적 역할''을 강조했다. 강 교수의 시민적 지식인론은 모든 지식인은 잠재적 시민이며 또한 모든 시민은잠재적 지식인이라는 관념에 기반한다. 특정한 직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계층을 뜻하지도 않으며 특정한 사회적 기능을 기준으로 삼지도 않는다. 다만 생활세계를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지성으로써 참여하는 모든 시민은 지식인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지식인은 시민이라는 것이다. ''주체적 역할''에 대해, "생활 세계 주체로서의 시민에 대한 지식인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며 시민이 자신의 삶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행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 ''해석적 역할''에 대해, "해석자에게는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고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바른 해석을 골라내고 바람직한 해석의 규칙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가 부여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비판은 시민적 지식인의 본질적 요소이자 핵심적 역할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비판적 역할''은 "생활 세계 안팎에서 생활 세계의 건강한 유지와 발전을 저해하는 일체의 요소를 드러내고 이에 저항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덧붙였다.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강 교수는 서구의 사르트르 그람시 푸코 리오타르 바우만의 지식인론과 1950년대 이후 우리 사회 지식인론의 역사적 흐름을 정리한 후에야시민적 지식인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강교수는 ''시민적 지식인''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지식인들 사이의 연대''와 이에 기반한 ''지식인 운동''을 제시했다. 그동안에는 "전통적인 명망가 지식인이 여러 역할을 혼자서 감당"해 왔으나, 급속히 분화되고 전문화된 사회 속에서는 "명망가 지식인이 여러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고 사회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개별 지식인들 사이의 상호 주체적인 연대에 기반한 공동의 노력만이 시대에 부합하는 역할 수행 모델이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강 교수는 ''지식인 운동''의 하나로 국제적 연대가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국제적 연대는 정보와 소통의 망을 구축하는 것인데, 이로써 전세계의 진보적 지식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강교수의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는 지식인론의 흐름을 분석한 책이다. 서구 사회 지식인론과 현대 한국 사회 지식인론을 분석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지식인을 다시 묻는 까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탄생하여 그 의미가 변화해 온 역사적 궤적, 이러한 의미 변화에 특별히 커다란 영향을 끼친 서구의 지식인론,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전개되어 온 지식인론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요청되는 지식인 상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서구 주요 지식인론자들은 다음과 같다. 칼 만하임(자유부동하는 지식인론), 안토니오 그람시(유기적 지식인론), 장 폴 사르트르(실존부의적 지식인론), 미셀 푸코(특수적 지식인론),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지식인 종언론), 지그문트 바우만(탈근대적 지식인론) 등이다. 또 195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지식인론의 흐름을 시대별로 분석했다. 1950년대는 ''창백한 인렐리론''으로, 1960년대는 ''참여 지식인론의 확립과 균열''로, 1970년대는 ''민중적 지식인론의 등장''으로, 1980년대는 ''지식인 논의의 확산과 진보적 지식인론의 등장''으로, 1990년대는 진보적 지식인론의 쇠퇴와 새로운 비판적 지식인 상의 모색''으로 보았다.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기능적 지식인''의 필요성을 강요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는 여전히 지식인의 전제는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자신의 결론에 앞서 우선 서구의 근대적 지식인론과 탈근대적 지식인론, 그리고 한국사회 지식인론의 역사를 뒤좇는다. 만하임, 그람시, 사르트르의 근대적 지식인론과 푸코, 리오타르, 바우만의 탈근대적 지식인론은 엘리트주의를 넘어서는 서구 지식인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195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가장 큰 흐름을 형성한 지식인론은 ''비판적 지식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갈등과 억압으로 점철되어 온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사회의 비판적 참여 지식인들은 시대마다 쟁점이 된 상이한 갈등에 참여하여 시대의 증인이자 예언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이 책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