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책]중세교회사 - R.W.서던
"[책]중세교회사 - R.W.서던" 내용보기
중세가 고대와 현대와 구분되는 특징은 교회와 사회가 하나였다는 것이다.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인간집단일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활동과 지식과 사상까지도 이행하는 완전한 사회로서,교황제와 수도회로 대표되는 중세 교회사가 곧 중세 사회사였다.<전체적인 정세>1.중세초기 (700년경-1050년경)서유럽은 전염병과 기근과 파괴와 교역위축때문에 가난이 극심해져 정신적 위
"[책]중세교회사 - R.W.서던" 내용보기


중세가 고대와 현대와 구분되는 특징은 교회와 사회가 하나였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인간집단일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활동과 지식과 사상까지도 이행하는 완전한 사회로서,

교황제와 수도회로 대표되는 중세 교회사가 곧 중세 사회사였다.



<전체적인 정세>


1.중세초기 (700년경-1050년경)

서유럽은 전염병과 기근과 파괴와 교역위축때문에 가난이 극심해져 정신적 위안을 위해 초자연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수도원이 증가하고, 성유물이 중요시되었다.


수도원은 영원한 구원을 받을수 있는 기회이자 안정과 안전을 구하는 통로로서 땅에 있는 천국이었고,

성유물은 일상의 희망이면서 국가와 법과 질서와 개인의 복리의 수단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것이었다.


영원함의 실현에 대한 강렬한 의지로 인해 구약율법을 토대로 한 십일조제도 등 이시기에 규정된 규칙은 어지간한 변화에도 파괴되지 않았다.


2.성장의 시기(1050년경-1300년경)

자본의 축적, 인구증가, 그리스제국과 이슬람제국의 정치적쇠퇴 등으로 급격한 발전을 하게 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부가 축적되자 초자연적 힘으로 통제하던 낡은 사회적종교적 조화는 무너지고 복잡해진 사회에 맞는 다른 질서가 생겨났다.

역할이 분화되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새로운 통치기법들과 새로운 전문지식이 등장한 것이다.


한편으로 성직자는 성직자들의 특권(중형을 얻도받지 않을 권리, 재산세를 내지않을 권리 등...) 지키기위한 유대감이 커져 교회조직은 당시 상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길드보다더 더 막강한 조직이 되어 세속과 타협하게 된다.


신학 뿐만 아니라 철학, 자연과학, 그리고 예술의 업적도 많아졌다.


3.불안의 시대(1300년경-1550년경)

도시는 예상치못한 큰 인구증가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교회사에 중요한 결과를 끼쳤다


농촌의 종교가 관습에 의한것인 반면 도시의 종교는 정서에 의한것이다.


안정되고 고립된 농촌환경에서는 새로운 견해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낯선 사상이 쉽게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더욱이 극단적인 빈부격차, 실직의 불안, 소외감 등으로 인한 도시생활의 어려움은 새로운 유형의 종교조직들과 신앙열정을 만들어냈다.


한편으로 왕과 대신들은 성직자들을 견제하면서도 위험하고 조직이 없는 민중집단보다는 교회계급제도와 결속하였다.




<교황제>


1. 초기시대(700년경-1050년경)

이시기에 서방 교회로서는 교황권에 관한 정교한 이론체계 보다는 성베드로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교황에게 불복종하는것은 성베드로에게 불복종하는것과 같았다.

이와 더불어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로 인해 교황의 권위는 절대적이 되었다.


*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는 총대주교구들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하고, 황제의 휘장과 로마의 궁을 기증하고, 로마와 이탈리아와 서방의 모든 속주들에 대한 제국의 권력을 교황에게 이양한다는 문서이다. (그러나 8세기 이후에 작성된 위조문서라는것)


2. 성장의 시대(1050년경-1300년경)

"교황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집-


-그리스도의 대리자

성인들과 성유물 보다는 관할관과 주권이 중요해진 사회에서 교황들의 권위를 모호하지 않게 뒷받침해줄수 있는 칭호를 만들었다.

교황의 권위는 성베드로의 대리자에서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확대되어 완전한 권력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다.


-교황의 사법권

중세 정부는 시혜의 베품이 있어야만 복종을 이끌어내어 정의집행을 할수 있었다.

정의집행권한(=사법권)은 주권을 통제하는 실질적인 길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교황이 다른 모든 군주들을 능가했다. 확실하고 항구적인 교황의 시혜는 수도원과 귀족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통한 것이다.

교황청에는 법률부서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백명이 넘게 근무했다. 1159-1303년에 재위한 유력한 교황들이 모두 법률가였다.


교황성이 베푼 특권들(중형에서 면제, 재산세 면제, 파문에서 해방, 부채의 경감..)은 수도회의 동맹을 공고히 다지게 했고, 이것은 수도회들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11-12세기에 교황제가 성공을 거둘수 있는 가장 중요한요인이 된다.


3. 교황권의 쇠퇴(1300년경-1520년경)

- 면죄부 남발로 교황 권위의 하락

초기에는 면죄부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13세기말에 접어들면 정치적 이유로 세속군주들에게 면죄부가 부여되다가 곧 개인도 면죄부를 돈으로 살수있게 되었다.


- 성직임명권에서 귀족의 영향력 강화

성직임명은 '성직자들과 지역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이과정에서 족벌주의, 뇌물수수, 가문의 치부를 위한 공금횡령 등이 난무했다.

이로 발생되는 문제를 막기위해 1335년 베네딕투스 12세는 모든 주교임명을 교황에게 일임한다는 법령을 공표한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귀족으로서는 교황 한사람만 구워삶으면 되니 결국에는 교황은 귀족의 조종을 받게 되었다.




<수도회>


1. 초기의 수도회

순종의 실천을 목표로 하는 베데딕투스회가 대세였다.


- 영적인 군사

수도사들은 초자연적 적들을 몰아내는 영적인 군인들이었으므로 귀족들과 부자들이 막대한 재산을 수도원에 기부하였고, 정치권력의 중심지에는 수도원을 세우려했다.


- 대리 고행

중세의 고해제도는 중죄를 지을 경우 벌이 지나치게 무거웠으므로 귀족들은 몇달씩이나 아무활동도 못하게 되기도 하였다.

수도원은 귀족들로부터 금액을 받고 이 고행을 대신해주는 역할을 했다.


- 가문의 품위

귀족이라 하더라도 티오는 한정되어있으므로 모두가 높은 지위에 오를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는 전쟁에 나가고 일부는 백마를 타고 이웃나라 공주를 찾아 ....)

수도원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등의 정부사업에 협력하였으므로 귀족 자녀들에게 출세의 기회를 제공했다.

더불어 영적 추구라는 품위는 가문의 명예를 지켰으므로 귀족들은 수도원에 토지를 기꺼이 기부하였다.


수도원의 입장에서도 고귀한 신분의 구성원은 자랑거리였다. (일부 수녀원은 명망높은 가문의 여성들만 받아들이기도 했다.)


베네딕투스회는 은둔, 금욕주의로 시작되었으나 사회적 응집과 통치의 중심이 되었다.



2. 중기의 수도회

11세기에 사회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새로운 수도회들이 등장하게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 참사수도회: 다양성, 사회조화, 온건한 규율 => 이후 도미니쿠스회로 이어짐


- 시토회: 단순성, 사회도피, 엄격한규율 => 이후 프란체스코회로 이어짐


- 탁발수도회: 내면의 회심, 실질적인 신앙의 표현, 병적 흥분이 분출되는 도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됨, 구걸로 생계유지

탁발수도회는 자율적인 집단이므로 행정적 의무가 없고, 성직자들의 사회승진을 위한 암투가 없었으므로 학문이 발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들과 형이상학을 연구하여 신학을 발전시켰다


- 프란체스코회: 철저한 부정, 모든 소유를 없애고, 부와 조직을 포기하고 '신성한 복음의 방식대로 사는것"

과두정의 폭력과 사치와 불안정에서 비롯된것으로, 부란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일으키는 이익이므로 부패한것으로 보아 가난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많은 자선행위로 프란체스코회에는 기부자들이 많았다.



3. 후기의 수도회

복잡스러워진 사회만큼 조직과 활동이 정교해지고, 개인주의 성향 및 다양성을 띈다. 

그리고 수도생활을 원하는 여성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 독일 쾰른의 베긴회: 여성집단. 손수 노동해서 먹고 사는것을 거룩한 신앙생활로 보았다.

여성들은 짓눌리던 세상에서 나와 꾸밈없이 영적생활을 하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새로운 자유를 못마땅하게 여긴 기득권을 가진 남성 수도사들의 탄압으로 베긴회는 쇠퇴했다. 


- 네덜란드 테벤테르의 형제회: 남성집단, 수도회칙과 서약이 없었다. 

일상업무를 생계수단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길드조직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어 길드조직은 이들의 노동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서적제작은 길드조직이 손을 대지 않은 분야이므로 유지할수있었다. 



m******5 2019.08.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