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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문제일까 작가가 문제일까, 수준 낮은 독자로서 내 소양의 문제 일까 화를 억누르며 읽어내느라 오래도 걸렸다. 한강씨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소설의 외국어 번역의 역할에 대하여 주목하는 계기가 된 것은 고무적이다. 그것과 함께 외국 문학의 우리말로의 번역도 질적 수준의 확보가 필요하다 생각해 본다. 물론 훌륭한 우리나라 번역작가들이 영어, 일어, 불어, 독어, 서반어 등 외국의 언어를 배워오면서 소개했던 경험이나 전문성이 (그 반대의 경우 -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한글을 배워서 우리 문학을 다른 언어권의 서적 시장에 소개하는 방향 - 보다)상대적으로 더 많이 축적되어 있으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잉게보르흐 바흐만의 '삼십세'를 읽었을 적에 느꼈던 열패감과 울화와 유사한 감정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솟아났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보다 읽기 거북했다. 원작자 자체가 문학적 방법론으로 문장의 형식을 파괴하여 비문을 남발한 것이 아니라면, 번역의 미흡함이 일부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독서를 방해했다. 이만교 작가가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에서 구사했던 익살스럽고 독특한 문체와 유사한 빈정거림과 시니컬함이 로맹 가리의 문체에서도 기능적으로 비교할 수 방식이라고 느껴졌지만, 문장 자체의 완결성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각설하고,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해석론을 뒤로 제쳐두고, 스키어 레니는 자유를 위해 온갖 정치적 요소로부터 소외 되고자 한다. 실상 인간의 사회적 속성때문에 완전무결한 소외는 불가능하다고 하겠지만, 이를 간편하게 달성하기 위해 '감정'적 요소를 사용한다.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명징하게 내팽겨쳐지는데 효과적이다. 뿐만아니라, 인간사회에서 상처주지 않는 방식의 삶보다, 상처주는 삶의 방식이 훨씬 손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온갖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의지로 뭉쳐지 염원 그 자체인 버그의 산장의 무질서 상태와 지속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반면, 변혁과 혁신을 꽤하지만 유아적인 놀이로 폄하되는 제스 일당의 방식은 무책임하다는 측면에서 아나키하며 이러한 특성이 결국 버그 등과 다르지 않다. 그 발로가 현실세계에 대한 강한 반발과 그 대안에 대한 교조적 맹신 혹은 이해 없는 이행에 비롯된 탓일지 모르겠다. 완벽히 장 일당과 동일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제스의 이념적(체 게바라 사진이 표창하는) 고뇌 또한 연결 연결되어 레니와 유사성을 가진다. 변혁이나 혁신 따위는 어차피 인간들 수준에서 이행될 것이 아니라 지구 자체가 힘껏 달아올라 모든 것을 녹인 다음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현명하다는 측과 체나 전태일 처럼 신화적 '선'이 체화된 선구자(윤리적 완결성에 기반한) 혁명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한탄 자체는 매우 유사하다. 이렇듯 어처구니 없는 듯한 허무주의적 결정론의 조우는 당시의 문화적 행태(비판하되 책임지거나 행동하지 아니하는)와 이념적 반동(현실 사회주의 세력의 민주적 시스템 붕괴)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이러한 시대적 정치적 혼란 속에 극단적인 개별 존재들이 만났을 때 어떤 화합이(만남 조차)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 드는데, 이에 대한 대답이 레니와 제스의 만남일지 모르겠다. 너무 단순하고 간단히 자의적으로 해석하자면, 결국 '소외'라는 반동적 원칙과 신념, '변혁'이라는 시대적 소명은 결코 결합될 만한 것이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그런 원칙이나 신념, 가치관을 이겨낼 만큼 강력한 것이고 이론적 인과 따위는 간편하게 극복하는 것이라고... 그게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죄악이자 희망일 수 있다고. 읽는 내내 꼬불꼬불 머리 속이 뒤엉켜 있었지만, 로맹가리씨 참 영리한데 괴팍하다는 개인적 감상을 지을 수 없었다. 로망가리를 더 읽을지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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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이 마음먹고 로맹가리의 전집을 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산발해있던 작가의 작품들을 다 찾아 읽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도 얼마나 예쁘게 만들었는지,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로맹가리의 책은 죄다 읽고 꽂아두고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책이라면...그게 로맹가리가 썼든, 무명의 인터넷 작가가 썼든 칼같은 글쓰기로 내 마음에 마구 마구 칼질을 해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책 역시, 그간 읽었던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책이 출간된지 거의 50년 정도 되고, 그 즈음의 시대상은 내 관심사도 아니고, 따라서 알고 싶지도 않기때문에... 책 속에 담겨져 있는...그 무언가를 놓쳤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유머와 냉소와 위트나 그런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책을 더 잘 읽기 위해서 당장 역사 책을 펼쳤던지 아니면 그 즈음에 나왔던 다른 작품들을 들춰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그런 열정같은 것은 이제없다. 살다 운이좋아,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순간에 뭔가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이고... 또 아니면 말고. 로맹가리의 다른 책 리뷰에서도 썼던 것 같은데, 마음 산책에서 만들어낸 로맹가리 책의 디자인은 정말 훌륭하다. 당장 표지 밖으로 뛰어나올 것 같은 로맹가리의 아우라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문지사에서 나온 '새벽의 뿌리'가 책장에 꽂혀져 있다. 그 책만 읽으면 로맹가리하고는 영원한 작별을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