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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니 이 만화책을 읽게 된 것은 ‘괄호 쳐진 인생의 한 토막,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여 완성하다’는 구절 때문입니다. 사라진 기억을 이어 붙인다는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이색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내 인생의 괄호>는 뇌에 생긴 성상세포종으로 뇌전증, 그러니까 간질 대발작을 일으킨 젊은 여성이 오랜 투병생활을 거치는 동안 사라졌던 기억들을, 가족들의 도움으로 회복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만화라는 다소 생소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만화책을 읽고 리뷰한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구성한 엘로디 뒤랑은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괄호>는 뇌전증을 앓았던 자신의 투병이야기인데, 완치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작가가 사라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만화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뇌전증은 과거에 간질이라고 부르던 질환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면서 구토를 하게 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황하기 마련인데, 본인은 어지럼증, 복통, 근육통을 느낄 수 있고,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가 갑자기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강력한 뇌파를 만들어내는데, 이 책의 작가처럼 뇌종양처럼 국소적인 원인으로 인한 경우에는 수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제거하면 증상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발 부위기 분명치 않거나 너무 넓어서 수술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만화책의 저자처럼 수술적 접근이 어려운 경우에는 최근에 개발된 감마나이프라는 기계를 사용해서 종양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경우는 감마나이프가 상용화된 초기에 시술을 받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완치하는 행운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치료과정에서 뇌부종이 생기는 상황이 있습니다. 종양에 부종이 곁들여지는 경우는 신체의 다른 부위에 생긴 암종이 뇌로 전이한 경우에 많고 원발성 뇌종양의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경우는 원발성 뇌종양이었지만 감마나이프로 시술을 받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뇌수종이 생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감정의 기복이 유별난 편인 것 같습니다. 말풍선을 넣어 통상적인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감정이 북받치면 한 면에 굵은 선으로 소략하게 표현하기도 하기도 하고, 상징적으로 심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작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때로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이야기의 시작부분에 그렸던 세 쪽 분량(8-10쪽)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180-182쪽)에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된 동기를 앞에 가져왔던 것 같은데 굳이 뒤에서 반복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이어지는 발작으로, 혹은 힘든 투병과정에서 주변과 격리된 삶을 살다보니 과거에 친했던 친구들과 나누었던 추억들이 전혀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뇌전병은 질병의 특성상 주변에 알리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알리지 않는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문제도 있어서 참으로 어려운 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전증이 기억의 소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기억은 곧 우리의 일관성이자 이성이고 감수성이다. 심지어 우리 행동을 구성하기에, 기억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루이스 부뉴엘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읽은 <만화항생제>처럼 만화가 어렵게 생각하는 의학적 사례를 쉽게 설명하는 좋은 표현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책읽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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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괄호...뇌전증 투병기?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인 엘로디 뒤랑은 20대 초반 학위를 딴 후 뇌전증을 앓으면서 자신의 치유과정을 그림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한 자전적 에세이다. 평소 같으면 큰 관심이 없을 법한 주제였으나 딸이 병마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런 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아 읽게 되었고 이를 통해 반드시 완쾌되리란 확신을 가져본다. 주인공 쥐디트는 21살에 찾아온 뇌전증으로 인해 기억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측불가한 언행과 발작 증세가 동반되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기억의 편린들을 그림을 통해 잇기 시작한다. 그림은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을 위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즉시 메모의 수단으로 그린다. 물론 글도 썼지만 납득할 수 없는 건 그림을 통해 형상화한다. 그리고 엄마, 아빠, 상드린 언니, 장 프랑수아는 그녀가 기억을 잇는 데 도움을 준다. 단순한 도움이 아닌 철저히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연결시켜주는 모니터링과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가족의 고통과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녀의 회복은 어쩌면 요원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중요했다. 아르장퇴유 병원 개보수 공사시 4킬로미터에 이르는 복도 벽화를 그리다가 시작된 뇌전증, 처음에는 목의 염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으나 이상증세를 보여 프라말레 신경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주선받게 된다. 하지만 상담 후에도 레져 센터에서 일을 하다 크리스토프와 휴가를 떠나고 그곳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기억상실을 맞이한다. 이상행동을 자각한 그녀는 휴가도중 크레테유로 돌아온다. 다시 찾은 신경과에서 뇌전증 증상을 알게된다. 얼굴이 창백하고 이상한 얘기를 꺼내며 눈이 풀리거나 초점이 흐려지거나 경기를 일으킨다. 속이 메슥거리지만 정작 토해도 나오는 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억상실이 찾아온다. 그녀는 발작 증세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을 우려해 메모 습관을 들이고, 발작의 원인을 찾기 위한 레그레톨 증량이 이루어진다. 뇌전증은 삶의 연결고리를 단절시키는 합선처럼 전기합선을 일으키는 불꽃(P.57)과 같다. MRI 검사를 통해 뇌전증 원인인 종양을 발견, 네귀니 교수에게 생체검사를 의뢰한다. 두개골을 절개하여 조직검사를 한 결과 성상세포종(일종의 암)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논문을 시도하지만 몇 달의 허송세월만 보낼 뿐 진전이 없어 그만두면서도 종양을 독감 정도로 인식한다. 점차 약물치료가 강화되면서 그녀는 점점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잦아지고 매일 반복되는 수면과 약 복용만이 일상의 전부인양 비춰진다. 시간의 개념조차 없어진다. 크레테유 집과 앙리 몽드르 병원을 오가는 일상이 이어진다. 신경과를 방문해 뇌파검사와 모니터링을, 병원에선 MRI와 추가검사, 약국을 거치는 쳇바퀴 생활이 계속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느 정도 발작의 횟수도 줄어들고 안정이 되면서 치료방법을 찾는다. 그결과 최첨단 시설을 갖춘 마르세유 병원의 감마 유닛 장비를 통해 두개골 절단 없이 치료하는 길을 찾았고 결국 병원 특실에 입원, 뇌정위 수술기구를 통해 머리를 두개골에 고정시킨 채 시술이 진행된다. 다음날 퇴원, 통증이 없어지는 효과를 본다. 이후 18개월간 MRI 검사만 반복된다. 처음 3개월은 기억력 감퇴를 동반한 병세가 악화되는 위기를 맞이한다. 기억력은 최악으로 치닫고 발작은 수시로 일어났으며 늘 잠에 취해있고 도저히 혼자 생활하는 게 불가능했다. 늘 엄마 뒤를 따라다녀야 할 정도였으니까. 또한 두통이 따랐고 검사 결과 뇌부종을 확인한다. 그 사이 조카도 탄생해 가족들이 모처럼 기쁨을 맞이하기도 한다. 뇌의 부기를 빼기 위해 코르티손 소염 치료를 받는다. 체중증가 부작용을 막고자 식단 무염식도 개시한다. 이로 인해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뇌전증 증상인 시야협착증과 빛 반짝임 증상을 겪는다. 몸에서 뇌전증 치료제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대체 치료제를 찾기에 이른다. 18개월후 드디어 마르세유 병원으로부터 낭보가 날아든다. 방사선 치료로 인해 종양이 괴사했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점차 발작증세가 줄어들고 비록 짧지만 외출도 가능했고 복시증상과 빛 반짝임 역시 줄어든다. 이젠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시작한다. 나아가 벨빌로 독립해 나가 산다. 점점 삶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살사를 배우고 랑지스 극장 알바를 하면서 합창단 활동도 병행한다. 파리를 산책하거나 롤러블레이드를 즐기는 등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돌입한다. 그림을 그리고 메모, 필기를 통해 기억력 회복에 주력하고 노래 가사 외우기, 살사 춤동작 외우기, 계산기나 손가락을 이용해 숫자 계산하기,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이나 치료과정에서 놓친 부분 챙기기, 그들보다 7살이 많았지만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치룬 학생들이 다니는 뤼에유 공립학교에 들어간다. 그 결과 사회생활 적응과 뇌 단련을 통해 머릿 속 연결고리를 찾게된다. 시술 3년후 다시 대학에 들어가는 기쁨을 맛본다. 약을 통해 뇌전증의 발작에 대한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감마유닛 시술 5년후 완치판정을 받는다. 가족들의 끊임없는 애정과 도움, 그녀의 필사적인 갱생의지에 의해 다시 사회로 복귀한 작가는 그림을 통해 뇌전증 투병과정을 가감없이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가를 느끼며 더불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녀의 삶을 반추하면서 겪었을 고통과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의 지난한 세월, 그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텅빈 기억을 꽉 채워나간 그녀의 투병기는 한 마디로 감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