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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단편집이다. 곱씹어볼수록 대단한 작가다. 끔찍하게 무서운 작가다. 그 부드럽고 무심한 시선 아래 번득이는 것은 날카로움과 폭력이다. 진정 소설가다운 소설가를 만났다. 제목은 유치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데, 날카롭기는 막 갈은 칼날 같다. 멋진 작가다.
이 작품집엔 <가을이 오면>, <분홍 리본의 시절>, <약콩이 끓는 동안>, <솔숲 사이로>, <반죽의 형상>, <문상>, <위험한 산책> 등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처음 제목만 보고는 어린 시절 이야기인가 했다. 로맨스였으면 핑크 리본이라고 했을 텐데...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하지만 이 작품집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읽다보면 어느 틈에 벼랑 끝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한 박자 비켜선 일상과 그 시선...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의외의 독특함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인 작품집의 느낌은 느리면서도 집요하고, 일상을 비판하면서도 의외의 날카로움으로 찔리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명철한 관찰과 예의바른 거리 유지도 느껴졌고, 일상과 심리에 대한 세심한 터치는 부드러우면서도 무심한 시선과 잘 어우러졌다. 찌르면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이 작가는 슬며시 찌른다. 일상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독자의 의식을...
<가을이 오면>에서는 무심하게 사는 것 같은 늦깎이 대학생 여주인공의 일상에 한 남자가 들어서고 진물이 흐를 정도의 심한 알레르기는 마치 우아를 떠는 엄마와의 갈등처럼 함께 폭발하고... 그게 마치 가을이 오면 모든 게 가라앉는 것 같은 일상 같다. 사실 무심해 보이는 그 여대생, 담배 핀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책에... 햇반과 김치만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남자의 입에서 볶아지는 김치볶음밥이 얼마나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지... 이 작가, 사기 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 사기에 기꺼이 넘어갔다.
<분홍 리본의 시절>은 일산에 사는 어느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서울을 떠나 일산의 오피스텔에서 1년을 산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어찌 보면 통속적인 이야기다. 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과거에 연인이었던 나는 그들과 새로이 엮이고, 현재의 섹스광 여자가 끼어드는 그렇고 그런 얘기. 하지만 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정점을 지나 결말까지 이르는 단계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심리나 행동의 표현이 기가 막히다. “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 소름끼치는 한 마디. 공포가 따로 없다.
<약콩이 끓는 동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끈적끈적한 뭔가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음산하고 음란한 뭔가가... 그걸 약콩을 끓이는 냄새로 지울 수 있을까... 결국 그 음산함과 음란함은 한 약한 몸을 가만 두지 않았다. “영험시런 여우는 죽을 때가 들면 죽을 데를 딱 찾아든다등마, 그래 그랬으까, 으째 그랬으까?” 대단한 비유가 살아있다.
<솔숲 사이로>는 깊은 산 속의 산허리에서 막 걷기를 시작했는데, 도착해보니 벼랑 끝 같은 느낌이었다. 시원한 느낌이 아니고 허전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느 날 나타났다가 또 어느 날 훌쩍 떠난 사내는 사내지만, 남은 자들은 뭔가. ‘그게 잘못이었다. 나는 네 낯섬에 매혹되었으면서도 그 낯섬을 제거하려 했다. 너를 동화시키려 했다. 너를 나로 만들려 했다. 내 젊음을 너에게 투사하려 했다.’ 떠돌이 사내는 떠돌 때만 머무는 것... 시작은 살짝 <B사감과 러브레터>의 느낌이 났다. 그래서 불안의 냄새가 났다.
<반죽의 형상>, ‘사람들은 N과 내가 친하다는 걸 알면서도 둘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면전에서 하곤 했다.’ 이 작품은 여자들이라면 백번 공감을 하며 읽을 것 같은 작품이다. 남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반죽 속에 들어있는 두 형상처럼 서로 사랑하며 질투하며 미워하며 익숙해지는 그런 두 여자의 관계를... 사랑과 우정 사이라고나 할까. ‘남자와의 약속 때문에 나와 마지막 저녁을 먹지는 못해도 잠시라도 팔짱을 끼거나 허리를 안거나 손을 잡지 않고는 못 배기는 N의 형식적인 애정에 나는 가벼운 염증을 느꼈다.’ 언뜻 보면 가볍게 느껴지는 관계, 그런 단계를 어떤 단짝 동무 여자들끼리도 거쳐지나갈 것 같지만, 작가의 붓은 좀 더 거칠게, 좀 더 넓고 진하게 퍼진다. 작가의 힘이다.
<위험한 산책>은 명철함과 신랄함을 덮고 있던 작가의 무심함과 일면 부드러운 손짓이 그 폭력성과 날카로움을 모두 드러낸 작품이다. 한 박자 비켜섰던 시선과 몸짓이 온통 일상을 헤집고 피를 뿜어댄다. 현실은 단 한번 위험한 산책으로 일상의 평온함과 나약함을 뒤흔든다.
이 작가, 무섭다. 무서운데 자꾸 곱씹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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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8월. 그리고 선풍기 앞에서의 젖은 머리를 말리며 씻어도 덥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마흔의 우울을 창비 소설선으로 꽂히는 대로 읽고 있다. 잘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 모르겠으나 40년의 시간동안 학습하지 않고 학습을 못했고 학습에 게을렀다는 생각이다. 남편말을 인용하자면 난 너무 어설프다인데 뭐든지 어설픈게 싫지만 알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어설픈게 나 자신이므로 머리가 너무 복잡하면 불안해 지기도 하고 해서- 학습적 표현이 잘 안되지만...분홍 리본의 시절을 읽으며 했던 생각이다.
소설인 줄 알았는데 7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그런데 소설같지가 않다. 같이 있어도 외로울 것이냐, 혼자있어서 당연히 외로울 것이냐하는 끊임없이 복잡하고 미묘했던 감정을 7편으로 나눠 놓은 듯하다. 예를 들자면 나는 모임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거길 왜 갔을까?할 일이 없어 너무 심심해서...내가 모임에 가면 당연히 따가 된것은 분명한데...라는 이야기의 풀이와 같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소설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이 작가는 일상 속에서 친구를 사귀기 위해 사회에 일원이 되기 위해 한사람이 겪는 정신적인 충돌을 썼다. 사람을 만나고 와서도 내가 그때 거기서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이었을까?하는 것이다. 요즘은 나도 자신 없는지 사람을 만나고 오면 꼭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가을이 오면.--우아한 엄마의 딸인 알레르기성 피부에 못생긴 늦깍이 여대생에게 찾아온 잘 생긴 남자 이야기. 엄마의 우아함에 질리고 우아한 집요에 치를 떠는 담배 피우는 딸. 잘 생긴 것들은 뭘 해도 우아함을 집요하게 뽐내는가싶게 열등감 덩어리같은 딸 이야기. 읽고 나서 입안이 씁쓸했다.
분홍 리본의 시절.--이사간 곳에서 옛연인이었던 선배를 만난다. 선배 부부와 술 친구가 되어 잘 살다가 선배 부인은 학교로 돌아가고 선배와 나만 술 친구로 지내다 선배의 애인이 등장하고...나는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사가는 그날 선배 부인이 찾아와 하는 말.....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복슬강아지에게조차 말을 놓지 않을 것 같은 선배 아내의 존댓말이었는데 말이죠. ---쾌감이란게 없는 작가다. 성적인 표현에 있어 웃음조차 나오지 않게 썼다.
약콩이 끓는 동안.--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도 읽고 뭘까?했던 느낌. 미련하면 여우라도 되어야 한는데.
솔숲 사이로.--말없이 왔다 말없이 가버리는 사람을 내가 제일 싫어 한다. 가면 간다 오면 온다 말을 해야 잠시 마음이라도 놓지 않냐말이다. 말없이 왔다 말없이 가버리는 못된 놈 이야기.
반죽의 형상.--나와 N의 같은 여자 이야기. 대식가가 된 나와 거식증에 걸린 N과의 결별하고 싶은 우정.
문상.--이야기가 머리속을 윙윙 도는데...처음 문상을 알면서도 문화 상품권 줄임말로 읽었다. 아들이 날마다 문상 문상해서 나도 모르게 문상?하고 착각을 ...ㅡ.ㅡ;; 문화센터 시를 강의하는 강사와 수강생 우정미와의 찝찝한 이야기. 남들이 안들어도 라디오처럼 끝까지 할 말 다하는 우정미. 선배니임~하고 말끝을 늘이는 우정미. 둘이서 여관엘 갔는데 삐져 있는 강사 등뒤에서 터럭을 주워 꽃다발 만들었다고 내미는 우정미를 읽고 머리 얻어 맞아 깨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이 작가는...나도 꽃다발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도무지 애로란 없다.
위험한 산책.--그와 나의 관계를 은밀히 사주하고 있는 남편과 그와 나의 일상, 남편과 나의 일상. 여기서도 바람피우면서 주변적인 설명뿐.
이해를 못한 부분도 많고 힘들었지만 다시 읽게 된다면 표현을 더 잘 할수 있지 않을까?싶다. 일관성이 없어 찝찝하지만 이 작가 자체가 평범한 일상을 그림 그리듯 썼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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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반하니 퍽 좋구나. 이 작가의 글에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빠져들게 될 줄 어찌 알았을까. 수필의 힘이 컸다. 술을, 음식을,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정성들여 마시고 먹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쓴 소설이라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소홀히 읽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이걸 확인하게 된 셈이다.(책을 선물해 주신 woojukaki님께 한번 더 고마움을 느끼면서) 만약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난 불평했을 것이다. 어둡고 축축하고 역겹고 비릿하고 누추하고 고단하고 짜증나고 지친 일상과 비슷한 관계와 비슷한 절망들에 대하여. 그 시절 내가 싫어했던 분위기와 주제는 여전한데, 나는 작가의 표현들에 반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참 근사하고 멋있다. 불쾨햐고 눅눅한 묘사마저 매혹적이어서 한 줄씩 만지고 싶을 정도다. 얼마나 삶에 애정을 품고 있으면 이런 관찰, 이런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는 게 힘들다고 온몸으로 토해 내는 인물들의 하소연에 애가 끓는다는 느낌, 받았던 것 같다. 모처럼 그들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읽었으니까. 박완서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 게 있다. 내 안의 악이라고 해야 할지, 위선이나 허영이라고 해야 할지, 애써 모른 척하고 싶은 나의 부정적인 면모들을 작가의 글로 말미암아 부딪히게 될 때마다 나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나 자신을 반성하곤 했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 글의 소재나 주제나 배경은 비슷해 보이지 않는데 내가 겪는 마음의 여정이 비슷했던 것 같다. 나도 참 독한 면이 있구나, 내게도 지긋지긋한 열정이나 집착이 있구나, 내가 숨기려고 하는 내 단점이 이런 것들이구나, 내 뻔뻔함이 내 가식이 내 허물이 이렇게 놀림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구해 놓았다. 이 책보다 더 이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에서도 작가의 젊음을 바탕으로 내 젊은 시절을 읽을 수 있었는데, 더 앞에 나온 책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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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우선, '가을이 오면'과 '약콩이 끓는 동안'은 전에 읽은 단편인데 어디서 읽었나 돌이켜보았더니 각각 2008 황순원문학상 모음집과 2007 이상문학상 모음집에 담겨있던 소설이었다.
어쩐지, 들어본 듯하나 익숙하지 않은 이 작가의 책이 덥석 손에 잡히더라니.
지금까지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 혹은 인물 그 자체를 냉소적이고 냉엄하게 표현한 작품은 많이 접한 듯한데, 이 작가의 작품들처럼 비루하단 느낌이 들진 않았었다. 하찮고 시시한 너절함. 비루해서 안타깝고 애처로운 것이 아니라 통쾌하고 내 밑바닥을 들여다 본 듯 알싸하다고 이야기하면 이 작가의 성향을 조금은 알아챌 수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나는 대목도 많아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 다만, 한 가지. 소설 속 비루한 인물이 나같아서, 내 마음같아서, 내 인생같아서 뭔지 모르게 찝찝할 수도 있음에 주의.
'푸르른 틈새'와 '처녀치마' 그리고 '사랑을 믿다'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순간 툭 하고 뭔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 아니 내가 그것을 툭 쳤는지도 모른다. 곪은 부위처럼 민감한 그것, 오래 전에 단념했다고 믿었던 그것, 그러나 어느 틈에 농익어 진물을 흘리는 그것, 입안에 다소 끈끈하고 신 침을 고이게 하고 미간을 오르라들게 하는 그것, 툭 건드려진 뒤부터 움찔움찔 움직이며 몸을 비트는 그것. 나는 책장의 흰 가로장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울면서, 내가 내 뒤통수를 내리찍는 이런 상쾌함이 없다면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무엇이겠는가, 생각했다.
네가 진정 가슴을 치고 울어본 적이 있느냐. 남자나 실연 때문이 아니라 네 하찮음, 네 우열함, 네 교정되지 않는 악마성 때문에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삶을 저주해본 적이 있느냐.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죽음밖에, 그 무서운 백지의 차원밖에 남지 않았음을 절감해본 적이 있느냐.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지옥인 시체의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느냐. - 분홍 리본의 시절 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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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어들었을때 내게 있어 분홍 리본이라고 이름붙일만한 시기가 언제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수줍은 마음 고이담아 보낸 어릴적 편지에 그 시절일 담겼을까? 흔희 우리가 예상하는 핑크빛,분홍빛은 아마도 행복이나 사랑으로 대표되는게 당연하리라.그렇다면 그 분홍의 시간이 지난뒤에는 어떤 빛깔의 세상을 만날것인가? 내가 원하는 작약꽃빛이나 에메랄드 바다빛은 너무도 멀리 있고 회색과 검은색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 불그스레한 빛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꼬집어 말하면 이 책엔 분홍빛은 찾을 수 없다. 그에 가까운 어떠한 빛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화려한 가면속에 감춰진 일그러진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 7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책에는 총체적으로 작가 특유의( 이 한권으로 특유라는 말을 쓰기 어렵지만 이 책에서 보면) 시선이 담겨있는데 그 시선을 뭐라 표현할까 생각하니 질문자의 답변에 단답형의 대답을 하면서도 말이 짧기는 하나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혀를 가진 작가라고 느꼈다. 가을이 오면 - 우아한 엄마를 둔 주인공 로라는 절대적으로 우아할 수 없는 태생을 지녔다. 엄마와 그녀의 관계는 핏줄로 이어진 적의 관계로 묘사된다. 로라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있는 눈이 크고 외국소녀같은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로라는 피부에서 녹아나는 진물이 범벅이 되는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채로 세상끝에서 세상에 속해 살지만 엄마와도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우리는 사실 많은 벽을 쌓고 살고 있다. 물론 극적인 비유였지만 그것 역시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홍 리본의 시절 - 주인공 나와 내가 한때 사랑한 선배부부의 이야기인 이 소설속에도 상대에 대해 절대로 하대를 하지 않는 선배의 아내과 자유로운 세상속에서 헤엄치듯(그 세상은 바로 아내였지만) 살아가는 선배는 역시나 화려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남편의 외도와 아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네들의 속내는 선배의 아내가 진실의 혀로 쏟아내는 부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나쁜것,천한 년,밤이나 낮이나 그짓 생각밖에 안하는 새대라기.. 75쪽' 차마 내뱉을 수 없었던 많은 말들은 단어만 다르다 뿐이지 누구가 쏟아내고픈 또 다른 입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전달하겨 애쓰는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약콩이 끓는 동안 - 이 단편이 작가 권여선을 세상에 드러냈다. 사고로 횔체어를 타고 집에 있게 된 노교수와 몇 년이나 박사논문을 쓰지 못하는 여제자가 논문지도를 받으러 노교수집을 드나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지만 노교수는 원하지만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자신이 어떤걸 원하는지 모른는 채 살아가는 여제자의 충돌로 이어진다. 서로의 입장에서 나만를 보는 시선도 곁들이고 있는데 두 사람외에 매일 약콩을 끓이는 파출부와 노교수의 명예에 맞지않는 제밥꺼리 찾지 못하는 두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허상만을 바라보는 사고를 비꼬는 듯 하다.
반죽의 형상이나 문상에는 반복적인 설명이 함께하고 있는데 반죽의 형상에는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나는 버스를 반복적으로 나타내면서 정확하지 않은 소통의 부산물로 폭식증과 거식증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문상에는 주변 모두에게 거절당하는 한 여자와 주인공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원하지 않는 관계맺음을 이어가면서도 끊지 못하는 아니 어는 한 곳에 적을 두고자하는 심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솔숲 사이로와 위험한 산책은 마치 꿈꾸는 이의 꿈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했다. 글의 흐름을 따라 읽고는 있었지만 글이 어디에 있느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쉽게 읽힐꺼라 생각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난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처음 접하는 권여선이라는 작가의책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읽은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졌다. 편혜영이라는 작가가 송곳으로 우리의 드러네내고 싶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일부분을 걷드렸다면 권여선이라는 작가는 날이 잘 선 모양 예쁜 칼로 도려낸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분홍 리본의 시절, 그 시절이 지나면 어떤 리본의 시절이 올까 묻는다면 과연 작가의 답은 어떤걸까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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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던 시절,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 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비'에 비유한 이가 있었다.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그 우아함, 하지만 넘실대는 파도의 위협을 위협으로 보지 못한 나비는 젖은 두 날개만을 얻을 뿐이다. 왜 갑자기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가 생각났던 것일까? 책의 제목에 쓰인 '분홍색'이란 단어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핑크빛은 대개 긍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다. 많은 이들로 하여금 싱그러웠던 첫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랄까? 성공적인 미래를 지칭할 때도 '핑크빛 미래'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분홍색으로부터 많은 이들은 달콤함을 느끼는 듯하다. 그런 분홍색으로 만들어진 리본과 함께 했던 시절은 분명 아름다웠을 것만 같다. 세상에 조금은 덜 물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풋사랑이 한창 진행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웠다 하여도 과거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아무리 달콤할지라도 끝난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심한 듯한 작가의 시선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는다. 이처럼 날카로워도 좋을까? 종이가 있다면 소리없이 두 동강이 났을 것만 같은 날카로움. 하지만 소설이 품고 있는 날카로움은 작가에 의해 창조된 것임과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세상, 고귀한 의도조차도 180도 비틀리어 해석되는 이 곳. 너무 지저분해도 문제지만, 너무 깨끗해도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히 물들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한 때는 그래도 깨끗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안쓰러운 발악이다. 실상 사는 것은 발악하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곤 하지만 냉혹한 결과만이 주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단란한 가정을 깨뜨린 주범이 되기도 하고, 어미의 가슴에 못을 박는 악녀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삶을 왜곡시키는 것은 의외의 등장 인물일 수도 있고, 상대의 치밀한 계략일 수도 있다. 작가가 어떠한 기제를 사용하건 주인공은 마냥 핑크빛 과거를 그리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우린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엄마를 향한 로라의 무한해 보이는 증오나 주선배 부부 사이에 끼인 연희의 수림을 향한 질투와 혐오를 탓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문상>의 주인공마냥 시도때도 없이 "썩을!"이란 단어를 내뱉으며 분노를 삭히는 것은 어쩌면 탁월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아무리 우릴 속일지라도 결국 우린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착하고 못되고의 문제를 떠나 일단은 살아야만 하는... 그런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은 바람에 심히 흩날릴지라도 뿌리만은 잃지 않아야 하는 혹독함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 적당히 물들면서, 분홍색을 분홍색 아닌 따가웠던 상처로 인식하는 혹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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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첫 작품을 읽었던 때가 아직 생생하다. 어떻게 보면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후일담 같기도 했던 그 소설은 젊음을 '푸르름'에 비유할만큼 상투성을 두려워하지 않은 제목의 직접성만큼이나 생경하기도, 절실하기도, 미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이한 작가다, 라는 생각과 후속 작품을 기다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권여선의 활동을 보기 힘들었다. 자전적인(작가는 부정하겠으나 첫소설이란 어떤 의미에서든 자전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소설 한권 만을 남기고 침잠했는가 했으나 최근 문예지에 단편들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 반갑다. 단편집 분홍리본의 시절은 권여선의 특이함이 잘 드러나있다. 매끄러운 형식이나 연민, 공감 등의 손쉬운 해결을 거부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나 있어 인상적이다. 삶의 가학성과 아이러니, 인간의 비루함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정면 대결하겠다는 나직한 고집을 느낄 수 있다. 세월이 흐른만큼 첫 작품에서 훌쩍 성숙해진 보는 눈의 깊이가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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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건물의 그림자와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려고 하릴없이 몸을 조금씩 돌렸다. 바람의 방향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림자는 바닥에 쏟아부어진 치명적인 기름얼룩처럼 선명하게 고여 있었다. 예전에 늙은 사내는 밤이면 종종 기사를 불러 술을 마셨지만 그가 온 다음부터는 혼자 술을 마시거나 그저 드러누운 채 그가 일하는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곤 했다. 그는 간단한 일거리를 가져와 방에서도 일을 했다. 나무를 깎고 다듬느라 까치처럼 그의 뒤통수가 까딱거렸고 러닝 끈 양쪽으로 드러난 갈색 삼각형 어깨의 근육이 움찔거렸다. 그는 젊고 강하고 능숙하고 투명했다. 사내는 그를 질투했지만 그 질투는 늪처럼 끈적이지 않고, 늪 건너편 들판에서 솟구치는 새벽 연기처럼 희고 푸르렀다. 드세요. 만취할 때까지 드세요. 취하면 쓰러지세요. 술이 깨면 다시 드세요. 이렇게라도 버티지 않으면 옛날 원장님처럼 된답니다. 말은 안하셨지만 원장님은 그를 잊지 못하셨죠. 그래서 그토록 쉽게 정신을 놓으셨어요. 우리 모두 어디선가 상처 입어 루비처럼 단단해진 심장 하나만 품은 채 솔향기로 숨어들어왔지요. 더는 다치지 않고 더는 믿으려 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이루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건지도 몰라요. 기사님, 어르신, 두 분 다 괴로울 정도로 술을 드셔야 해요. 다시는 술을 먹고 싶지 않을 때까지 드셔야 해요. 오래전에 선생님이 어르신께 해드렸듯이, 이 막내가 기사님께 똑같이 해드릴게요. 선생님은 쉬지 않고 고기를 구우면서 버티셨지요. 저도 그렇게 쉬지 않고 술을 따르면서 버티고 싶어요. 뜨내기 일꾼 하나가 떠난 것뿐이에요. 하나의 신념과 작별하는 일이 그렇듯 하나의 감정과 하직하는 일도 결코 쉽지는 않답니다. 하지만 그를 따라 우리 중에 누가 또 떠난다면 남은 식구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중 한사람이 떠나는 건 우리 모두 떠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어서 드세요. 솜씨 없는 그가 얼렁뚱땅 담가놓은 술이랍니다. 맛은 거칠지만 제법 솔향기가 진해요. 다 드셔서 없애세요. 그를 우리 속에 남겨두지 말자고요. 어서 드세요. 그가 남겨놓고 간 게 이것뿐이라면 좋겠네요. 하지만 어쩌면 더 고약한 선물을 어딘가 숨겨놓고 갔을지도 모르죠. 오래전 그처럼요. 아무도, 심지어 상냥한 유치원 교사조차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연신 눈알을 이쪽저쪽으로 굴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를 비롯한 수강생들은 자기 생각의 궤도만을 매끄럽게 도는 그녀의 다변을 오분 이상 멍하니 듣고 있어야 했다. 어느 순간 스위치를 꾹 눌러 끄듯 홍이 우렁찬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자기 생각의 궤도만을 매끄럽게 도는 그녀의 다변을 오분 이상 멍하니 듣고 있어야 했다.
소설집을 읽으며 내내 뭔가 불쾌하고 불편한데,..... 이상하다. 나중에 이 작가의 소설을 또 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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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작가의 작품 『푸르른 틈새』를 읽었을 때 나는 그 고고한 관념에 반했다. 그리고 그러한 고고한 관념의 사족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히는 그 유려한 문장에도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십여년이 흘렀고, 작가의 소설집을 부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고고한 관념도 유려한 문장도 여전한데 어딘지 모르게 껄끄럽다. 고고한 관념은 자꾸 관념의 사족으로 읽히고, 유려한 문장은 자의식의 과잉으로 받아들여진다.
“잇몸 같은 어머니는 실은 날간처럼 싱싱하고 붉었고, 미역처럼 미끄럽고 천덩거렸다. 어머니는 집요라는 말보다 더 집요했다. 그녀는 어머니만큼 놀라운 집중력과 인내심을 품은 여자를, 어머니만큼 복수심과 파괴충동이 드높은 여자를 클레오파트라 이전엔 일찍이 안 적이 없었다. 그것도 자신이 낳은 딸에 대해서만...” 소설을 통한 엘렉트라 콤플렉스 임상분석쯤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향한 그녀의 놀랍고 집요한 반감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지원받지 못한 성장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남자 친구를 향해 보이는 위선으로 치장된 무욕 앞에서 그녀는 자지러지고 만다.
“... 선배는 내 오피스텔에서, 반나절쯤 수협 공판장에서 어정거리고 반나절쯤 국립도서관의 밀폐된 흡연실에서 줄담배를 피운 다음 밤안개를 잔뜩 맞으며 걸어온 노숙자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작가의 또다른 특징인 것 같다. 작가는 그저 묘사할 뿐 허투루 계몽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묘사하고 또 묘사한다(오규원 선생의 시작법이 생각나는 대목...). 서울의 위성 도시쯤에서 만난 선배 부부와의 묘한 관계, 그리고 그러한 그러한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등장하는 수림이라는 여자,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하다 나에게 되돌아오는 오류 가득한 화살...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며 마지못해 만나고 마지못해 헤어지지 못하는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몰카에 가까운 묘사...
“... 세상 모든 인간이며 사물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천연덕스럽게 다시 그 자리에 출현해 자신의 맹점을 비웃는 통에 그는 종종 억울하고 약이 바짝 올랐다.” 언젠가 계간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의 인물들은 어딘지 나약해 보이면서도 어느 순간 상상 초월의 섬찟한 악마성을 발휘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것이 가장 극명하다. 사고로 운신이 힘들어진 교수와 교수를 돕기 위해 파견된 대학원생 여자, 그리고 교수의 두 아들과 교수의 가장부인 아줌마...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들 사이를 약콩 끓이는 소리와 냄새가 부유하고, 어느 순간 폭발한 이들 사이의 관계는 또 그렇게 폭발할 때만큼이나 빠르게 시들어간다. 그래서 생은 평화로운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솔숲 사이로」. “... 문을 밀고 대청마루로 나오자 상의 주머니에 꽂아둔 펜꽂이의 루비가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났다. 늙은 원장은 왼쪽 유두에 따끔한 불꽃이 튀는 듯한 이 순간을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이렇게 햇볕에 튀는 루비의 불꽃을 느낄 때면 원장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극지방의 백야가 떠올랐다...” 솔향기라는 이름의 단식원, 그 단식원에 들른 손님과도 같은 청년과 단식원의 식구들인 원장, 영양사, 막내, 기사들의 묘한 관계... 시간은 뒤죽박죽이고 그것이 (영양사가 원장이 되고, 막내가 영양사가 되는) 하나의 사이클을 두고 벌어지기 때문에 자꾸 등장인물들을 놓치게 된다.
「반죽의 형상」. “휴가의 예감은 결투의 예감처럼 끔찍하고 달콤하다. 모욕에 결투로 응하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그 깨끗한 변제에 대한 향수는 인류의 정신 속에 면면히 남아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결투는 모욕을 청산하는 가장 명쾌한 방식이다... 나를 모욕한 자를 죽이거나 모욕당한 나 스스로 주는 것만큼 모욕을 완전연소시키는 방식이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 휴가 또한 과거의 모욕에 대한 뒤늦은 결투신청이라고 할 수 있다.” 모욕에 대하여 이렇게 명쾌한 설명은 또 없었으리... 대학 4년, 직장 4년 도합 8년을 거치면서 키워온 친구와의 우정...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모욕으로 점철된 세월이었을 수도 있었으리... 긴 휴가를 통하여 세상과의 단절 혹은 친구와의 단절을 꾀하는 그녀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혹은 중간에 실패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문상」. “... 그중 눈길을 끄는 부위는 단연 입술이었다.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은 지나치게 옅은 빛깔이었고 어류의 알집처럼 투명했다. 마치 입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발톱이 덜 여문 갓난아기의 분홍 발가락 두 개가 붙어 있는 형국이었다. 부푼 물집처럼, 터뜨려주고 싶은 몹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씰루엣이었다.” 시인인 그에게서 잠시 비정규적인 학습을 받은 그녀로부터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한 통... 자신의 큰 아버지 장례식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고, 그는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어떤 모임에든 한 사람쯤 있을 법한, 무시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이를 알아채리지 못하거나 이에 눈감아버리는 그녀와 얼떨결에 들어선 여관방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를 향하여 씹어뱉는다. ‘썩을!’
「위험한 산책」. “... 말만 앞서고 바쁜 척만 했지 우산도 그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에 비하면 무엇이건 잡은 것을 놓지 않는 남편의 강한 악력이 그녀에게는 더 편안했다.”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고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이 간혹 집에서 보이는 괴이한 행동,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그러한 기벽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그녀, 그러한 그녀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학창시절의 후배인 그... 그리고 그녀의 꿈 속에서 나타나 그녀를 뒤에서 강하게 끌어 안은 정체모를 힘... 애착이 사라진 그녀와 남편, 그리고 욕망만이 떨떠름하게 잔존하는 그녀와 그... 모종의 두 관계에 꼭지점으로 자리잡은 그녀의 삶에는 어떤 위험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작가를 판단하는 나의 태도가 바뀐 것은 이런 것 아닐까... 그러니까 예전에 작가는 고고한 관념의 틈새를 유려한 문장이 채우면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런데 지금 작가는 고고한 관념의 벌어진 틈새는 방치한 채 유려한 문장을 향한 열망만을 고스란히 양산해가고 있는 것 아닐까... 고고한 관념과 유려한 문장이 비빔밥과 고추장처럼 잘 어우려져 다시 한번 빨갛고 맛있게 비벼지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