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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사랑의 감성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표현한 소설이 있을까? 아지즈 네신. 오르한 파묵과 더불어 터키문학계의 대표적인 작가인 그는, 풍자 문학의 대가이자,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영혼이었다. 실천하는 지식으로서 평생을 기득권 세력과 투쟁했던 행동하는 지성이기도 했다. 일전에 유배생활을 담은 그의 소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수는 없다'를 접하고, 범상치 않은 스토리텔링과 핍진한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행간의 의미들이 아직도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마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가 힘차게 행군하며 아들과 작별인사를 했던 장면을 연출하듯 말이다.
유일한 마술, 유일한 힘, 유일한 구원, 유일한 행복. 사람들은 이것을 소위 사랑이라고 부른다. - 헤르만 헤세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은 아지즈 네신의 우화 중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6편을 묶은 책이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이 소설집은 사랑, 그 처연한 감성의 속살들을 아름답게 담고 있다.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없는 사랑. 그 감성을 시적 언어로 끝없이 펼치고자 했던 작가의 시선 또한 아름답다. 인간 군상들에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랑'의 코드를 동식물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독수리와 물고기의 사랑의 춤,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의 고통, 담쟁이덩굴의 사랑의 열망, 대리석 조각 남녀의 사랑의 외침,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 영원을 꿈꾸는 이들의 사랑의 이상, 한 남자의 일생을 건 사랑의 여정.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불가능한 사랑에 도전한다면, 아지즈 네신은 불가능한 사랑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도전'한다.
<빛나는 것, 그것은>에서는 천공의 독수리와 바다의 물고기(익투스)가 온몸으로 춤을 추며 서로를 갈구한다. 결국 늙은 독수리는 다른 곳을 향하는 물고기를 따라 힘겨운 날갯짓을 한다. 독수리에게 가장 명예로운 죽음은 천공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 하지만 익투스 곁에서 마지막 날갯짓을 멈추고, 바다 깊숙히 가라앉는다. 닿을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연인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담는다. 공항에서 이별의 아쉬움 속에 눈물로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처럼.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에서는 참나무와 인형이 사랑에 빠진다. 인형가게에서 아이들 손에 이끌린 인형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우연히 참나무 한 그루 앞에 버려지게 된다. 참나무는 사람들에게 손바닥만한 안식처처럼 그늘을 마련하고, 그들이 버린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흡수한다. 인형을 가엾이 여긴 참나무는 그것을 끌어안고 품으려 한다. 하지만 인형의 옷가지만 흡수할뿐, 오랜 시간이 흘러도 플라스틱인 인형을 품을 수 없었다. 품으면 품을수록 고통만 더해갈 뿐. 결국 어느 양치기 소년의 실수로 인형과 그것을 품고 있던 참나무는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그 밑둥에는 다시 새로운 참나무의 싹이 돋는다.
<감아 안아야 할 그 아름다움의 이름>에서는 담쟁이덩굴의 사랑의 열망이 가슴 아프게 그려진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담쟁이는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바닥을 기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구름과 그 너머 별을 향해 항상 키를 높여야 한다. 무엇이든 감아 안고, 함께 그것과 하늘을 향해야 하는 운명. 하지만 담쟁이덩굴은 수차례 꽃나무와 선인장, 나무에게 배신을 당한다. '저는 평생에 걸쳐 껴안고 의지하면서 높이 오르는 기쁨을 함께 나눌 누군가를 찾았죠. 하지만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고통을 함께 나눌 담쟁이덩굴마저도...' 결국 담쟁이덩굴은 붉은 태양 아래서 숨을 거둔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잉태하듯 여기저기 씨들을 뿌리며 조용히 사그라든다.
<찰나에 만나다>에서는 두 대리석 조각 남녀의 사랑의 외침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역사의 흔적 속에 갇힌 남자와 여자. 시간을 초월해 잠시 조우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바라만봐야 하는 운명이다. 한 박물관 전시관에서 남자 대리석 조각은 벽면에 위치한 여자 대리석을 향해 손을 뻗다가 결국 무너지고 만다. 그의 손이 벽에 맞닿아 여자 대리석까지 함께 말이다.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에서는 영원을 꿈꾸는 이들의 사랑의 이상을 펼쳐보인다. 나비가 애벌레에서부터 고치, 나비가 되기까지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치지만, 정작 나비로 사는 것은 단 하루에서부터 고작 몇 달이 전부다. 시인의 유일한 희망은 삶의 비의를 담은 몇 줄의 시구를 짓는 것이다. 이 작품이 훼손되지 않고 까마득한 후대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얻지 못한 시인은 단 한줄의 시구도 짓지 못하고 자신의 생을 끝맺고 만다.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러한 시인을 사랑하게 된 여자는 건축가를 꿈꾸던 학자였다. 자신이 건축가가 되었더라면 자신이 창조한 건축물들이 자식을 대신하고, 그것들을 자신처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뭔가를 창조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하여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도 아이 낳기를 갈망한다. 결국 나비가 생을 마감하듯, 힘겹게 시작한 시인과 여자의 사랑은 아쉬운 이별로 마무리된다. 시인의 아이를 품은 여자가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마치 나비가 폭풍우에 휩쓸려 바다 한가운데에 떠밀렸을 때, 온 힘을 다해 알을 낳을 곳을 찾다가 결국 난파된 배의 나무판자 위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했듯이, 여자 또한 아이를 품고 떠나가버린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결국 종(種)을 보존하려는 동물적인 본성임을 깨닫게 한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는 튤슈를 찾아 떠나는 한 노인의 이야기다. 4살 때 처음 봤던 튤슈라는 14살의 소녀. 그의 직업은 튤슈를 사랑하는 일이다. 70이 넘도록 튤슈를 찾아 세계 곳곳을 찾아나선다. 튤슈는 어디에나 있고, 또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노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20대의 흑인 여성이었다가 아시아의 한 중년 주부였다가... 도처에서 노인의 튤슈는 등장한다. 그러면서 매일 광장에서 '나는 튤슈를 정말 사랑해'를 외친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랑의 다양한 얼굴들, 언제 어디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사랑의 신비로움을 전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문득 과선배가 이 소설을 읽고, 잊고 있던 창작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했다. 무엇이 그를 소설쓰기로 이끌었을까 내내 생각했다. 그냥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 마음 속의 열망(글을 쓰고자 하는)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시시때때로 삶의 다양한 유혹들이 닥쳐오지만, 그 꿈을 향한 올곧은 마음을 튤슈를 통해 현현시킨 건 아닌지... 그래서 결국 튤슈를 찾아나서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것이고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 될 것이다.
이토록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우화를 본 적이 없다. 리뷰가 장황해지는 건, 그 느낌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전에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낭만적 편집주의자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갔었다. 아지즈 네신의 이 소설과 겹쳐 읽기를 한다면, 쉽게 풀리진 않겠지만, 사랑의 다양한 빛깔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1995년 아지즈 네신은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을 통해 '네신 재단'으로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의 아들 알리 네신은 재단을 운영하며 아버지의 작품을 통해 벌어들인 인세를 고스란히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고, 일체 체벌이 없는 기숙학교를 설립한다고 한다. 문득 그의 대표작인 <생사불명 야샤르>와 <제이넵의 비밀 편지>는 꼭 구입해서 읽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역자는 다시 한번 이 작품이 사랑의 본질조차 변질되어가는 황량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켜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거라 얘기한다. 또한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든, 애달픈 것이든 간에, 그리고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옛사랑을 추억하는 이들에게도 지나간 '어떤 사랑'을 되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사랑의 아픈, 조각을 제대로 마주하며 책장을 덮는다. 사랑. 그 시시하지만 도저한 이름을 되새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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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기 전까지 꼭 한 번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러한 소망, 모든 경우의 수마다 다채로운 무한의 사랑, 그 사랑에 대해, ‘말해’, 내면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는 꿈틀거리며 속삭인다. ‘너는 언젠가는 그러한 이야기를 써야만 해. 너는 너만의 사랑에 완전히 몰두하겠지만 그것이 세상에 드러날 때 그건 즉시 모든 인간들의 사랑 이야기가 되어야만 해. 그러한 사랑이 너를 구원하고 세상의 사랑을 깊게 할 거야.’ 아지즈 네신이 말하고 있는 여섯 가지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는 내 이러한 소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욕망하게 한다. 그래서 내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줄 수 있는 의미를 격렬하게 확장시킨다. 이 여섯 가지 사랑 이야기 속에는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 될 사랑이 하나 포함되었다는 예감이 든다. ‘풍자’와 ‘해학’의 국민 작가로 잘 알려진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읽는 건 해질 무렵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살의 살아있는 무늬를 즐기는 것처럼 눈부시고 따스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지즈 네신이 살아온 삶의 무게와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터키에서 무려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 체제와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며 이백오십여 차례의 재판을 견뎌낸 훌륭한 지식인이며 약자와 소수, 억압받는 개인을 옹호한 인권 운동가였으며 몸소 출판사와 출판사를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외면하는 사회에 맞써 싸운 투사였다. 그는 스스로 손가락이 여섯 개라고 말하면서 항상 손에 펜을 놓지 않고 쉼없이 작품성이 뛰어난 많은 작품을 써내려간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며 이백 개가 넘는 필명으로 엄청난 양의 글을 생산해낸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어린이들과 고아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통해 얻어지는 인세는 모두 그가 세운 ‘네신 재단’을 통해 고아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풍자’를 완성하는 건 웃음이 아니라 그 풍자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다. ‘풍자’는 불합리, 모순, 억압, 시련, 저항, 투쟁 등의 비극적 낱말과 가깝다. 우리는 풍자가 단웃음이 아니라 쓴웃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웃을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울음’을 경험해야만 한다. 개인은 영혼과 신념으로 거대한 권력과 맹목적 집단과 무신경한 대중들과 싸우고, 선동하고, 투쟁하고, 희생해야만 한다. 거기에서 풍자는 피와 고통을 뒤집어쓰고 태어난다. 우리는 풍자를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웃음’을 상투적으로 쉽게 소비하지만 그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 이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과 시선을 두지 않는다. ‘해학’의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졌을 네신의 삶, 자신의 삶을 해학으로 승화시킨 네신의 삶을 생각하면, 웃음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책에 담긴 ‘사랑’은 이제까지 알려져 있는 네신의 면모와는 좀 다른, 격렬하고 치열한 사랑이다. ‘사랑을 한다’라는 의미에는 ‘낭만’이 포함되지 않는다. 타인의 사랑을 바라보는 건 낭만적일 수 있겠지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순간순간은 늘 치열한 결핍과 격렬하게 끓어넘치는 감정과 정상을 넘는 도취와 몰입으로 이루어진다. 여섯 편의 사랑 이야기는 만만치 않은 공감과 그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열망과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쉬운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쉬운 건 사랑스러울 수 있지만, 사랑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고 아지즈 네신은 꼿꼿이 말하고 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거대한 신념과 세계를 희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숭고한 이야기, 오랜 방황과 시련과 시행착오 속에서 마침내 사랑을 얻었지만 그 사랑에 잠식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것이냐 아니면 그 사랑 속에서 자신을 얼마나 지켜가면서 상대방과 공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처절하고 아픈 융화를 담아낸 섬뜩한 이야기, 자신의 삶의 목적과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서 사랑과 욕망을 결합해 계속해서 가치를 추구하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담고 있는 끝없는 이야기, 순간을 통해 영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관한 희생과 자기파괴의 이야기, 완전하게 소유하고 서로를 탐하지만 그 내면의 의미에 도사리고 있는 치명적인 허점과 사랑의 단계적 변태에 관한 묵묵한 이야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직업이며 일이며 자기 생의 존재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에 대한 뜨거운 평생의 이야기, 네신이 표현한 사랑 속에 우리가 경험한 사랑과 우리가 꿈꾸는 사랑이 있는가를 경험하는 건, 우리가 꿈꿀 수 있고 또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랑의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독서를 통해, 사랑은 확인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생각해보길 권한다. * 아지즈 네신의 책을 누군가에게 권해주고자 할 때 나는 약간의 당황을 경험한다. 네신의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권해주기에도 적절하고, 청소년기를 벗어난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걸맞기 때문이다. 독자층이 폭넓다는 의미는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에 담겨 있는 주제나 의미가 인간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울림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눈높이를 가지고 있는 네신의 작품이야말로, 가장 건전하며 또 한편으로는 불온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될 네신의 다른 작품들을 기대한다. 우리는, 이제 막 네신의 빙산의 일각을 만났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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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 튤슈, 아무리 발음해도 입에 붙지를 않는다. 왜 이리 어려운겨. 그래도 그는 그렇게도 튤슈를 사랑한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이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단다. 나는? 나는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사랑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개인적으로 연예인은 이리저리 참 많이 좋아하고 나 이사람 좋소 해봤지만 내가 진정으로 내 마음 다 바쳐서 사랑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다소 어려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길래 이렇게 어렵고 빙빙 돌아가는 사랑 이야기를 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던게 사실이다.
첫 시작부터 참 가슴 아프다. 옛날에 불렀던 고래아가씨아 코끼리 아저씨였나? 그 둘은 결혼에 성공했는데 하늘의 제왕과 바다의 발레리나의 사랑은 왜 그렇게도 슬프게만 끝이 났던걸까. 아름답지만 너무 처절한 그들의 사랑이 비현실적이기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나보다. 이런게 어딨어 하고는 휙 하고 장을 넘겨버렸다. 가슴 여미게 아팠던 첫 이야기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헤어짐이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참 어려웠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길 바랬던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 그들도 슬프게 끝났다. 그리고 담쟁이덩쿨의 혼자만의 사랑도, 모두모두 내가 보기엔 너무 슬프고도 안타까웠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건 너무 슬프잖아!
하지만 마지막 튤슈를 사랑하는 한 노인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건네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작품의 제목이 책 전체 제목인지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항상 내 사랑을 감춰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많은 부분 감추고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걸까? 하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내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했다. 튤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튤슈인 것이다. 그저 튤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누군가가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내 사랑을 알아준다면 결국 튤슈도 내 사랑을 알아주는 게 아닐까.
너무 어려웠다. 내가 아직은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란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튤슈를 사랑하는 것을 알아주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이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줄 때 모든 사람이 사랑을 존중하고 아름답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도 원론적인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아, 사랑. 참으로 어렵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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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가 누굴까?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걸까?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ㅡ.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그리고 사막 한 가운데서 밤하늘의 달을 향해 끊임없이 하늘로 뻗어가려는 듯한 담쟁이덩굴이 그려진 표지. 그것만으로도 내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여섯 가지 이야기를 꾸미는 이들은 모두 독수리, 물고기, 참나무, 인형, 담쟁이덩굴, 나비, 시인.. 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은유했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연상케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빛나는 것, 그것은_ 갈 길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결국 한 명은 자신의 길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둘은 죽음이라는 이별의 순간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_ 여섯가지 이야기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참나무와 인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부부의 생활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한 남자의 아내가 되면서, 결혼 전에 꿈꾸던 것과 실제 결혼 생활에는 결국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더욱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하나가 되길 꿈꾸면서 사랑을 키워나갔지만 결국 서로에게 고통만을 안겨줄 수 밖에 없어 괴로워하는 참나무와 인형의 모습은 참 안타까웠다.
그밖에도 참신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여섯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으며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나는 '불가능한 사랑'을 그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들과 비슷한 우리의 삶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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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에 식상함을 느낄 즈음, 아지즈 네신의 탁월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인간 이외에도 사랑을 하는 수많은 무생물이 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독수리, 물고기, 인형, 나무, 대리석 조각품, 나비 등 사랑에 아파하고, 그리움에 애가 타는 그들의 사랑, 열망, 노력,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함을 심어준 여섯 편의 단편 모두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처음과 마지막에 실린 [빛나는 것, 그것은]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다. 하늘을 사랑하는 늙은 독수리와 바다를 사랑하는 물고기 익투스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기에 쉽게 물러설 수도 있었을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고고하기만 하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들을 아름다운 날개짓과 춤사위로 표현하면서,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독수리는 더 이상 낮게 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날았고, 물고기는 숨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바다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희생하며 불가능을 이겨내는 듯 하지만 결국 독수리가 숭고한 죽음을 선택한 후에야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을 부추긴 죽음만이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지만, 그들은 분명 행복했다. 직업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튤슈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그는 4 살 때부터 튤슈를 사랑했으며, 그녀를 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는 노인이다. 튤슈가 누구이며, 그녀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녀를 사랑하는지는 노인에게 있어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튤슈를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그 노인이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튤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사랑을 이야기 하자면 밤을 새고도 모자를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지만 사랑만큼 쉽고도 어려운 것도 없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로 오로지 자신만의 입장만을 내세운 채 상대방을 판단하고 구속하려는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도, 자신이 희생한 댓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함을, 사랑은 결코 희생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행운은 없을진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한 욕심을 부리며 스스로를 불행에 처하게 한 남녀 조각상의 회의적 사랑을 보며 닿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사랑에 지나친 욕심을 내어선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짧은 인생 동안 사랑에 눈멀고 사랑에 휩쓸려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유용한 교과서가 될것이다. 그러나 터키 문학을 처음 접해서일까? 다른 책들과는 달리 쉬이 읽혀지지 않아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아야 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체와 단편을 좋아하는 내게 안성맞춤일 거라 생각하고 쉽사리 선택한 책이었는데, 나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싫은 점이 있다기 보다 동물과 식물, 사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랑의 감정에 나 스스로 동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그 내용에 완전 몰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을 오롯이 내던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터키의 국민작가인 아지즈 네신의 풍부한 표현력과 세밀한 은유적 방식을 내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활자만 읽기에 급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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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문학? 터키문학이라곤 오르한 파묵외엔 듣도 보도 한 적이 없기에...... 터키에 눈이 번쩍. 게다가 튤슈??? 라니 주저없이 탐독 시작.
유일한 마술, 유일한 힘, 유일한 구원, 유일한 행복, 사람들은 이것을 소위 사랑이라고 부른다. _헤르만 헤세
위의 글귀로 떡하니 이야기는 시작.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겠다는 선포 정도랄까. 위의 여섯 챕터로 분리된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빛나는 것, 그것은 _ 독수리와 물고기의 사랑의 춤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 _ 참나무와 인형의 사랑의 고통 감아 안아야 할 그 아름다움의 이름 _ 담쟁이덩굴의 사랑의 열망 찰나에 만나다 _ 대리석 조각 남녀의 사랑의 외침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 _ 영원을 꿈꾸는 이들의 사랑의 이상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_ 한 남자의 일생을 건 사랑의 여정
바다에 대한 의심은 나를 점점 더 그 중심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는 반짝이는 별과 청명한 달과 강렬한 붉은 태양과 포근한 구름을 발밑에 두기는 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이 밟고 있는 진흙탕에 비치는 그림자였을 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겠죠.
우리 몸에서 시간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건 뾰족한 부분들이죠.
완급이 참 애매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가 싶으면 턱하니 끝나버리고 어째 동화인듯 지침서인듯 혹은 뭔가 철학적이고 싶은 듯...... 아무튼 굉장히 무난한 선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정서상 터키의 문학이 한국어로까지 번역되어 등장하려면 공감대의 형성이필요할지 모르겠으나... 이거 영 뭔가 읽어도 읽은것 같지 않은 그런......
처음 시작은 마치 '이별의 말은 나로부터'와 흡사한가 했더니. 마지막 튤슈의 이야기는 '라이온하트'가 떠올랐다.
어쨌거나 이번의 경우는 두가지 다 다른 쪽들이 낫다.
But, 호기심에 찾아본 이 작가 아지즈 네신.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터키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풍자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며,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한다는데다... 구비문학적 성격이 강한(음...그런 것 같다.) 터키 문학의 정점에 있다하며... 수많은 풍자 문학상을 수상했다 하는데다......
평생을 기득권 세력과 투쟁하는 데 바친 실천적 지식인으로 터키의 폭력 정권에 맞서 평생 250번 이상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와 수감생활을 반복. 1995년 사망 후, 유언에 따라 모든 인세가 고아를 위한 재단에 기부된단다. 뭐 네이버의 설명에만 따르면 거의 전사 수준이신 듯.
그리하여 조금은 심플해보이는 튤슈외의 다른 책을 한번 접해봐야 제대로 감상이 가능하겠다는...... 애매한 사랑이야기.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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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만끽해야 할 5월 이지만 여름을 향하고 있는 날씨에 섭섭함이 인다. 자꾸만 봄 가을이 짧아져가는 탓에 느껴지는 마음이리라. 그러나 밤이라는 시간대는 잠시 그 모든것을 잊고 서늘함에 나를 맡길 수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시원한 요즘 같은 때는 마음이 쓸쓸하더라도 자연의 힘을 빌어 잠시나마 고독함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잠깐 나갔다 온 밖의 풍경은 바람에 의해 평안함을 안겨 주었다.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낯선 곳에서 머금은 향기를 내뿜는 것이 결코 낯설지 않고, 내게서 퍼져나갈 익숙함이 어떤 이에게도 낯설게만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에 바람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봄바람은 많은 것을 안겨주며 무엇이든지 설레임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봄날, 사랑이 다가온다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 그래서 오늘 내가 쏘인 바람을 통해 책 속의 불가능한 사랑을 잠시 가능성으로 바꿔보는 나름대로의 상상을 해보았다.
이 책에서 그들의 사랑을 불가능을 꿈꾼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만 생각했던 나는 저자의 상상력의 기발함에 독특함을 느꼈다.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을 시작으로 나무와 인형의 품을 수 없는 사랑, 담쟁이 덩쿨의 꿈 등을 지나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모호함과 난해함의 극을 보여 주었지만 우리가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없는 것, 생명이라기 보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생각할 수 없는 것들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생명력은 열정으로 그득 차 있었다. 상대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랑도, 아픔도, 희망도 생기지 않았을 테지만 삶 자체로 받아 들이는 모습은 그들의 전부를 토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 왔든지간에 현재 나의 사랑에, 현실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어떻게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건 찰나이기도 했고, 스스로 찾아나선 길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선택과 도약이 되기도 했다. 그들의 계기는 달랐지만 아픔과 희열을 맛보는 사랑을 할 때는 늘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 생명력은 독특했지만 마무리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하는 드러남, 급하게 그들의 세계를 마무리지어 버리는 성급함은 현실과 환상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아닌, 뚝뚝 끊어져 버리는 느낌이 단락이 끝날때마다 어긋남을 만들어 내었다.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때 난데없이 연인이 헤어지고, 대리석 남녀의 만남이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갑자기 무너져 버리고, 튤슈를 찾아 헤메는 노인은 튤슈에 대해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에서는 앞에 단편의 교묘한 연결을 무너뜨리는 이질감을 띄고 있었고 이 작품과 교묘하게 맞물리는 듯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 모호함을 안겨 주고 있었다. 이렇듯 6편의 단편이 비슷한 분위기로 가는 듯 하다가 결국은 흩어져 버리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 참나무와 인형의 고통적이지만 비극적인 안타까움이 깃든 분위기로 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조금은 뒤죽박죽이 되는 느낌, 마무리가 늘 아쉬웠는데 마지막 두편의 단편에서 느껴졌던 혼란스러움은 그러한 분위기를 고조시켜가고 처음 느꼈던 독특함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분명 생명의 깃듬을 여기 저기 불어 넣는 것이 숭고하다고까지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 생명이 소중하고 귀하다 생각했는데 일정한 분위기로 가지 못하는 것이 내내 아쉽다.
하지만 사랑은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며 모든걸 다 바쳐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환희를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누가 되었든, 그들이 생명이 있건 없건 내 멋대로 그들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랑이 두려워서 상처 받을까봐 안하는 사람보다 상처를 받은 후라도 사랑한 사람이 낫다고 햇듯이 사랑은 분명 특별한 감정과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하나하나가 진귀하기에 어떠한 것에도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나를 되돌아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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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5개를 꽉꽉 눌러 찍어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새롭고 신선했다. 오랜만에 좋은책을 만났다는 기쁨에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평에 대해서도 나쁘다, 좋다가 확실하게 나눠지는 이 책이 나에게 이런 느낌으로 다가올지 읽기전 까지만해도 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혼자서 보물상자에 꼭 숨겨두고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을만큼 좋았다. 사람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자신에게 확고한 사랑의 정의를 마음속에 내려놓고 있지만 사랑에 빠지게 될때는 생각했던 것만큼 멋진상대가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다. 그저 끌림에 의해 사랑이 시작될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느사랑이 예쁘고 덜 예쁘다를 평가내릴수는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것이 사랑이며 이 책은 불가능한 사랑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빛나는 것, 그것은》 늙은 독수리는 날카로운 바위에 둥지를 틀고 가장 높은 봉우리의 꼭대기 바위에 머물며 낮은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독수리는 자신이 고귀하게 태어나서 고귀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것이며 절대 아래를 볼때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익투스를 알기전까지 그는 늙었지만 용맹한 독수리였다. 바다의 발레리나인 익투스는 수면위로 비상해 춤을 춘다. 바다속에서의 익투스는 어느무엇보다 아름답다. 어느 여름날 아침 독수리는 춤을 추는 익투스를 만나게 된다. 익투스는 첫눈에 독수리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서로의 춤은 계속되고 독수리는 익투스를 낚아채려는 갈매기에게서도 그녀를 구해준다. 익투스는 바다를 떠나서, 독수리는 하늘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었기에 서로에게 닿을수 없고 서로의 것이 되지도 못했다. 마침내 익투스가 떠나게 되었고 독수리는 익투스를 가능한 끝까지 따라가리라고 마음먹는다. 상대방의 낯선매력에 빠지기 시작하여 사랑을 시작하게된 독수리와 익투스처럼 같은공간안에 존재하지 못했어도 그들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춤으로 느꼈던 사랑의 감정이었고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했다.
《품을수 없는, 안길수 없는》 장남감 가게에는 엉성하고 싸구려 원단을 입고 있는 인형이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팔려가는 꿈을 꾸지만 결국은 부자와는 거리가 먼 부부에게 팔려간다. 그곳으로 간 인형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고 결국 경비원의 딸에게로 간다. 하지만 개구장이 남자아이들은 또 인형을 못살게 굴었고 인형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도시에 가난한 노파가 손녀에게 그 인형을 선물하지만 손녀는 인형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다. 인형은 참나무 밑에 홀로 남겨진다. 자신을 보호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랬고 참나무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참나무는 자신이 인형을 보호해주기로 생각하고 인형을 품기로 결정한다. 참나무는 인형과 동화되는 고통을 참고 견뎌냈다. 하지만 참나무와 인형둘다 서로를 품으면서 더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둘은 그제서야 서로를 잘못 품었음을 알게된다. 사랑으로도 그들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인형과 참나무는 자신들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고 둘다 거리감을 둔채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감아 안아야 할 그 아름다움의 이름》 담쟁이 덩굴은 인내심과 생존욕구가 강해 황무지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다. 건조하고 메마른 딸에서 뿌리를 내린 담쟁이 덩굴은 고독에 맞서 싸우며 살아남겠다는 다짐을 한다. 담쟁이 덩굴의 훈명은 휘감아 껴안는것과 무엇인가를 타고 올라가야하는 것이 거스를수 없는 천성이다. 담쟁이 덩굴은 구름에 오르고 별에 다다르고 싶어 했다. 어느날 담쟁이 덩굴은 노란색 꽃을 피운 금작화에게 다가가 너를 껴안고 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고백을 한다. 하지만 끝내 금작화는 자신이 구름까지 다가가려고 노력해도 자꾸 자신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담쟁이 덩굴은 금작화에게는 등을 돌린후 선인장에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사랑을 맹세한다. 하지만 선인장역시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속에서 담쟁이 덩굴도 이미 지칠대로 지쳤고 늙어버렸다. 이제 담쟁이 덜굴은 마지막 힘을 다해버티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달콤한 꿈과 이상으로 시작을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는 서로 상처를 입게 되기도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조금씩 양보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 각자의 길의 끝으로만 달려가려 한다면 결국 사랑도 내리막길로 치닫게 될것이다.
《찰나에 만나다》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은 팔목은 떨어져 나가고 팔꿈치는 대리석 늪에 묻혀 있었고 오른팔은 허공으로 향해 들려있었다. 그리고 석관의 맞은편에 있는 여자 조각상은 신체의 일부분은 손상된채 방치되었지만 청아한 자태만은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석관 덮개의 남자는 미소를 머금은 여자를 바로 보고 누워 있었다. 낮에는 관람객들에게 전시실이 개방되었기에 남자조각상은 전시실 문이 닫히기만을 고대했다. 이윽고 남자가 여자에게 인사를 건내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한다. 남자는 얼굴이나 몸매보다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리도 둘은 밝은 달 아래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날이 밝으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고 서로를 바라보고 닿지 않는 곳에서 그리워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한순간도 행복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어P122 그렇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왔던 조각상들은 석관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사고로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부서져 버린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운명을 함께할수 없었다. 낮동안에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를 먼거리에서 바라볼수 밖에 없는 애절한 사랑이었다.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 나비는 모든 곤충들이 으레 거치게 되는 변태과정을 마쳤다. 애벌레 시절부터 하루종일 나뭇가지를 기어다니며 자신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보고는 했다. 그리고 고치안에서 천천히 나비로 변해왔다. 나비로서 첫날갯짓을 하는 순간부터 죽음과 혹독한 전쟁을 치뤄야만한다. 자신을 위험속에서 보호하며 안전한 장소에 알을 낳아 종족을 지속시키는 것이 나비의 유일한 희망이다.예술가는 각자의 이름에 맞는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시인역시 세상에 대해 잔인한 전쟁을 하고 있다. 자신이 죽었을때 훼손되지 않고 까마득한 후대에까지 자신의 시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열망을 포기할수 없다. 여자는 어릴때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마흔일곱인 그녀는 오랫동안 학업에 몰두하고 경제적으로 집안에 도움이 필요해서 결혼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남자친구는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건 결혼과 남편이 아니라 그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다. 세사람의 사랑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한것이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방인은 여행을 하려고 갔던 곳에서 골목을 헤매던중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남자는 무슨일을 하느냐는 이방인의 질문에 "튤슈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남자의 나이는 이미 일흔살이며 하루 24시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튤슈만을 사랑해왔고 죽을때까지 그녀를 사랑할것이라고 대답한다. 남자가 네댓 살쯤 아버지의 구멍가게 앞에 여자애가 지나갔고 그녀의 이름은 튤슈였다.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낯선 도시를 헤매고 있다. 물론 여러 세월동안 튤슈를 만난적이 있다. 자신의 옆에 스쳐지나가는 튤슈를 보고도 애석하게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다른남자와 함께 있는 튤슈를 보기도 했고 흑인인 튤슈를 만나기도 했으며 붉은색 머리를 가진 튤슈를 만나기도 했다. 찾을래야 찾을수 없는 그녀를 찾기위해 열정은 강렬해져갔다. 남자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오고 그 사랑이 영원할수도 순간에 사라져 버릴수도 있다. 남자는 그 사랑을 쫓기위해 매 시간, 매 순간을 사랑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책에서 사랑은 다양하고 마주치고 있는 상황도 모두가 다르다. 극복할수 없는 사랑도 존재할테고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사랑까지 다양하다. 사랑에 있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신념이 확고하다고 해서 사랑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도 아니며 상대를 덜 사랑한다고 상처받지 않는것도 아니다. 사랑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상처와 아픔은 생길것이며 사랑을 받으면서 치유되어 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사랑을 할때 내 모든것을 내어주면서 사랑을 하고 있는건지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위해 보호막을 치고 있는건 아닌지 말이다. 사랑은 언제나 자신의 선택일것이고 선택했다면 열정을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