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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이 가져온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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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정폭력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그에게 숨겨져 있는 유전자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가 폭력적인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폭력에 대한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이 일상이 된 아이에게는 폭력적 상황은 special 한 것이 아닌 default 값이 된다. 그것이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나마 나을 수도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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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가정폭력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그에게 숨겨져 있는 유전자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가 폭력적인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폭력에 대한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이 일상이 된 아이에게는 폭력적 상황은 special 한 것이 아닌 default 값이 된다. 그것이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나마 나을 수도 있겠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돈스키스 두 지성이 지적하는 바는 이러한 불감증이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경외의 대상이든 두려움이나 비난의 대상이든 외부의 거대한 권력에 의미를 두었다. 오랜 시간을 '신'에 대해 생각했으며, 중세가 지나고 나면서 '이성'에 눈을 돌렸다. 그것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우리 삶이 옳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현세에서 즉각적이고 명료한 보상을 주는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자로 등장한 것은 주변인들이었다. 사회 구성원끼리 경쟁하고 배신하면서 개인은 파편화 되고 공감이나 소통이 설 자리를 잃었다. 


이 책의 두 저자가 지적하는 개인주의와 유대의 파편화 등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뒤로 하고 있다. 이는 그들 뿐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현재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이런 현상의 문제는 결국 아이히만 같은 실재하는 '악'에 대한 비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이히만이 사실은 '아주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 시대에는 멀리가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내가 옆사람에게, 그들이 나에게 무관심을 무기로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한때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경종을 울렸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고 그런 권력을 가질 정도의 사람이 아닌 아무런 힘도 없는 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단테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격변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비워져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저자들 또한 '악은 독재자가 아니라 익명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 대해서 무감각할 수 있는 능력은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무관심과 방관으로 타인의 상황을 지나치면서도, 가끔은 태연하게 상대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댄다. 이러한 도덕적 불감증의 상황을 지적하는 것조차도 조금 당연스레 여겨질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해졌다.  


과거의 거대한 권력이나 정치의 힘이 아닌 우리 자신이 그러한 권력의 일부로 존재하게 되면서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도덕성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대중 권력의 형성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 새로운 조류가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런 도덕적 성찰이 동반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이 정치력을 뛰어 넘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아고라가 형성되었지만 그곳은 윤리적 성장이 뒤따르지 못하는 덩치 큰 아이일 뿐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인간에게 인조인간이 묻는다. 왜 저를 만드신거죠? 인간의 대답은 무성의하다. '그냥 만들수 있으니까.' 이는 기술의 진보가 윤리의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 우리시대가 겪는 공동체의 붕괴, 구성원의 개체화, 느슨한 유대의 등장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감을 덜어주는 대신 공감의 부재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결국 어떠한 연대도 가져오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단결된 힘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들이 그리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당연히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우정, 사랑일 수밖에 없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서가 아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의미에서 읽어본다면 의미가 특별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6.01.24.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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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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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자는 현대 사회를 유동적 근대라고 정의하고, 불안정성이야말로 이 사회의 모든 병증의 근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사회를 평범한 악, 정치의 위기, 공포의 지배, 스스로를 소비하는 대학이라는 측면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그 결론으로 서구의 몰락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맺음하고 있다.   평범한 악이란 말은 한나 아렌트가 나치 하의 부역자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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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저자는 현대 사회를 유동적 근대라고 정의하고, 불안정성이야말로 이 사회의 모든 병증의 근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사회를 평범한 악, 정치의 위기, 공포의 지배, 스스로를 소비하는 대학이라는 측면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그 결론으로 서구의 몰락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맺음하고 있다.  
 평범한 악이란 말은 한나 아렌트가 나치 하의 부역자였던 아이히만의 법정을 표헌한 말로써, 악의 상징 같았던 나치가 주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평범성 뒤에 숨어 있다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두 저자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악이야말로 어떤 악이 평범함을 가장하는게 아니라 평범한 그 자체와 구분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선악의 구분이 분명했던 시대를 지나 악과 또다른 악으로 나눌 수 있는 악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악마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익명성 속에 숨은 저마다의 악이 별다른 제약 없이 드러나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일회적이고 즉각적인 현 세태는 정치의 부재와 공포의 지배로 표현할 수 있다. 오늘날 정치는 전체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정치가 각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즉 정치는 스스로의 토대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소통 속에서의 정치의 부재는 그 많은 소통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이 그 앞으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러니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거악을 해소해야 하는데 의견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그 대안을 합의할 수 없고, 독재자에 대비되는 민주주의 정부는 이런 시위세력을 외면하고 마치 자신들과 관련 없는 일인양 발뺌할 수 있다. 민주정은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무엇을 해도 괜찮으며, 관료제의 뒤에서 정작 책임질 일에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이런 사회를 대신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소비이다. 극단적인 공포가 오늘날 마케팅, 정치, 그 밖의 많은 것의 기반이 된다. 매스컴에서는 공포스러운 폭력의 상황을 확대해석하는데 이를 위해서 국민의 자유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의 당위성이 획득된다. 20세기 초반에 인류는 자유를 위해 나아갔지만 오늘날은 자유를 제한하며 안전을 획책하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안전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비대칭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랍의 손쉬운 테러를 보면, 이건 무한히 자유를 빼앗아도 획득할 수 없는 안전을 꾀하는 무한한 경쟁일 뿐이다.  
 이 사회의 소비 지향적인 면모는 다른 책에서도 충분히 논의 되는바, 두 저자는 대학 그 자체가 스스로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특히 유랑학자를 자처하는 돈스키스는 유랑학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정착하지 못하는 무직의 학자라는 직업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측정할 수 없는 학문을 측정하려다 보니 교수라는 자리가 인맥에나 연관되는 사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대학은 관료들의 무관심한 계량화와 교수들의 맹목적인 인정 추구에 휘말려 한때 국가보다 오래 지속됐던 몇백년 동안의 대학의 영광 자체를 위기로 몰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을 다시 조명하고 있다. 슈펭글러가 이야기하는 서구의 몰락은 보수적인 입장에서 기존체계가 파괴되는 비극을 이야기하지만, 그 책의 본래적인 목표와는 반대로 타자들을 외면하는 용도로 인용되고 있는 희극이기도 하다.

e****e 2016.05.1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감수성에 대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감수성에 대하여" 내용보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첫 책이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조금 난이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 한 번 더 읽을 예정이다. 이해를 위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갇혀있던 생각들이 불꽃튀듯 파바박 깨지는 경험들을 무수히 많이 했는데, 그동안은 주로 철학이나 심리학에 관한 책들과 사고만 많이 해서인지, 지그문트 바우만과 같은 저명한 사회학 학자의 책을 읽어보니 내면으로만 향했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감수성에 대하여" 내용보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첫 책이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조금 난이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 한 번 더 읽을 예정이다. 이해를 위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갇혀있던 생각들이 불꽃튀듯 파바박 깨지는 경험들을 무수히 많이 했는데, 그동안은 주로 철학이나 심리학에 관한 책들과 사고만 많이 해서인지, 지그문트 바우만과 같은 저명한 사회학 학자의 책을 읽어보니 내면으로만 향했던 시각들이 바깥으로 확장되는 배움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다. 그의 유명한 '액체근대' 이론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와 더불어 이 역동하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치부터 심리학까지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부분들을 엿보고 싶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의 '도덕적 불감증'을 강추한다.

g*********0 2017.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