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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은 현재 기독교 교파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한정으로는 독보적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로교회의 태두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심오한 가르침과 교의의 중요성을 논하자면 책 수천 권의 논변으로도 부족할 터이며, 실제로 수사나 비유가 아니라 그를 주제로 삼은 저서들만 해도 수천 권이 거뜬히 넘어갈 것입니다.
이처럼 수억 개혁교회 신도들로부터 끝없는 추앙을 받으며, 또 비록 그의 종교적 노선을 직접 따르지 않는 입장이라 해도 그가 프로테스탄트 발전에 끼친 공헌을 두고는 입이 마르게 칭송하는 이들도 매우 많습니다. 종교사 한정이 아니라 널리 문화사, 나아가 유럽의 정치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이란 아마도 그의 존재가 아니었던들 애초에 발생과 진전 동력을 상실했을 터입니다.
한편으로, 그의 예정설과 같은 교의는 오늘날 많은 수정이 이뤄지기도 한 형편입니다(물론 수정 없이 그의 초기 도그마를 굳건히 믿는 이들도 많습니다). 무수정 근본주의 예정설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그의 이런 방향성 자체가 이후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찬이건 반이건 간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벌써 오백 년도 넘은 과거의 인물에게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면 사실 살아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속한 시대 기준으로 위대한 것은 주저 없이 인정하는 게 오히려 이성적이고 공정한 태도입니다.
"제국화된 기독교에 의해 형성된 세계, 중세 후기 크리스텐덤은 분열되고 있었다."
이 책 중 저는 이 말이 참 좋았습니다. 흔히, "종교개혁"에 의해 기독교가 분열한 것처럼 단정하지만, 이미 그로부터 4세기 전에 서구 대이교 사건이 있었고, 메인스트림으로부터 "이단"으로 단죄받은 이런저런 혼란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으며, 후스나 위클리프 같은 용감무쌍한 선각자들이 이미 일으킨 파장도 대단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제국은 로마와 손 잡고 "하나의 황제, 하나의 제국"을 허울뿐이나마 유지하고 싶어했겠지만, 제후들은 이미 종교적으로건 정치적으로건 억지 춘향격 통일 질서에 대해 큰 회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중세 후기부터 이미 로마 가톨릭은 백성들로부터건, 상부의 정치 체제로부터건, 권위와 신뢰를 상실했던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보통 칼뱅파 직계를 두고 "개혁 교회"라고 이릅니다. 영어로는 reformed church인데, 이 용어는 보통 루터파나 그 외 프로테스탄트 지류를 놓고서는 잘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구자들이 이미 앞선 시기에 활동했으나) 그래도 종교개혁의 선구자라고 하면 마르틴 루터인데 말입니다. 즉, "개혁교회"는 왠지 칼뱅파만을 일컫는 제2명칭,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루터파나 성공회가 "덜 개혁된 교회"라든가 "구교에 가깝다"는 식의 폄하 뉘앙스가 끼는 건 또 아닙니다.
"장로교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교회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칼뱅의 사상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이 말은 뒤집어 분석하면, 세계 전체를 놓고 시선을 두었을 때 장로교회의 입지는 우리 한국인들(신도건 아니건 무관)의 선입견과는 달리 다소 축소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이 땅에서 이만큼이나 교세가 넓혀진 장로교회의 맏형의식(특권 의식이 아닌), 소명감은 특별해야만 한다는 데에는 또 공감대가 이뤄지겠지요.
칼뱅은 명저자, 문필가로도 널리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이론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붓이 막힘이 없고 시원시원한 건 대단한 축복입니다. 글솜씨 하면 또 마르틴 루터가 빠질 수 없는데 그가 다소 서민적이고 직설적인 스타일이라면, 칼뱅은 그 성장 배경을 반영하듯 깐깐하고 세련되며 정밀한 개성이라는 게 차이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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