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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그의 글의 매력에 흠뻑 빠진 적이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 , <나는 걷는다>와 같은 현대의 유명여행기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사실적이고 운치있는 장면장면의 묘사, 따뜻한 마음을 담은 스토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끝없는 지식, 그리고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롭고 이로운 것을 모색하는 날카로운 사색을 만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기기묘묘함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것이 연암의 문학세계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열하일기>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호질>, <허생전>, <일야구도하기>와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열하일기보다는 연암집에 나오는 소설, 산문, 한시 등 연암의 대표작을 모은 것이다. 한꺼번에 연암 대표작 100편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연암의 대표작들을 통해 왜 이것들이 우리의 고전인지를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먼저 문예성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한문소설 10편에서 현실에 대한 풍자가 우아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그는 권세와 명성과 이익만 쫒고 우정과 도의가 사라진 양반사회를 개탄한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을 보면 <호질>, <양반전> 등 타락한 양반들과 함께 하층 민중들이 등장한다. <마장전>, <광문자전>에서는 떠돌이 거지가, <예덕선생전>에서는 똥치는 인부가, <김신선전>에서는 불우한 중인이 순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진정한 친구임을 알수 있다. 양반에 대한 풍자와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비속한 표현도 있지만 우언이나 허구적 설화등의 방식을 차용함으로써 작품의 고상함을 잃지 않고 있다.
둘째, 사상성 측면에서의 진정성과 진취적 발전성이 돋보인다. 이덕무, 홍대용, 이서구, 박제가 등은 당시 기준으로는 명문 양반가 출신의 연암과 친구가 되기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정작 흉금을 털어놓는 친구로 발전한다. 연암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도가, 불가, 장자의 이야기까지도 배척하지 않는다. 무궁한 포용성이야말로 그의 문학의 특징중의 하나이다. 옛것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하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연암문학에 베여있는 기본정신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연암문학의 의미도 크다고 본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규범에 얽메이지 않고 참신한 표현과 기발한 발상을 구사하는 사실적이면서도 민족문화적 개성이 담긴 산문들이 그의 문학작품들의 특색이다. 이는 세계가 급속히 통합되면서 우리의 고유함과 삶의 향기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주체적이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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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이르기를, "성은 같이 쓰지만, 이름은 홀로 쓰는 것이다." 이를 본따 재치있는 문장을 만들어 산문 읽는 재미를 선사한 연암의 표현이 눈길을 끈다. "문자는 같이 쓰지만, 글은 홀로 쓰는 것이다." 종종 책을 읽고 글을 남기지만 미숙함과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자마자 극복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18세기 지성인이 21세기 독자를 일깨운 대목이 아닌가. 세상을 살다보니 어떠한 것도 머물러 있는 법이 없음을 설명하면서 해와 달도 가고 가서 그 둥근 바퀴를 멈추지 않으니, 내일의 해는 오늘의 해가 아니다 하였다. 그러므로 '미리 헤아리는 것'은 이치를 '거스리는 것'이요. '붙잡아 두는 것'은 '억지로 애쓰는 것'이요, '돌려보내는 것'은 '공순히 따르는 것'이니라. 심기가 한곳에 머물거나 막히지 않도록 하고 명을 공순히 따라 명에 비추어 자신을 살펴보며, 이치에 따라 돌려보내고 이치에 비추어 사물을 살펴본다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곳에 강물이 흐를 것이요, 흰구름이 피어날 것이라 하였다. 일상에서 머뭇거리며 우물쭈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여지없이 흐르고 해와 달은 그 자태를 바꾸어간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더 나은 마음가짐을 위해서라도 고전이 일깨워주는 표현의 묘미를 모른체 하지 말아야겠다. 요즘의 내 상태를 점거해보면 날마다 치열하게 몰입하는 일없이 하루를 소비한 날에는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럴 때면 읽고 있는 책으로나마 그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싶다. 좋은 책 한권을 골라 페이지속을 산책하듯 걷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서 걸음을 멈춘다. 바로 이 문장!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떤 자리에 놓여있는지 확신을 갖게 하는 문장들! 짧은 문장속에 깊은 성찰과 고뇌가 함축된 지적인 문장들! 때로는 냉소적이지만 때로는 해학적인 문장들! 문장과 문장사이를 거닐다가 나를 만나고 부족한 나를 대하고 여전히 힘겨운 나에 대해 줄곧 생각해본다. 날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생각을 해보리라 다짐도 해본다. 인간의 삶이란 본래 의지할 때가 없으며, 오직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발로 디디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호곡장]이란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을 일컫는다. 인간의 일곱가지 감정(칠정)은 모두가 통곡할 만하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노엽거나 사랑과 미움이 극에 달했을 때도 모두 통곡할 만하다고 하니 억눌린 감정을 시원스레 풀어버리는 일에 통곡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감정의 극에 달하는 경우를 겪어본 적이 없는지라 이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과 통곡만 짝을 이루어 놓았으니 사람이 죽어나갈 때 그제서야 '아이고'를 외치며 부르짖는 통곡은 억지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 매사 칠정의 감정에서 우러난 지극하고 참된 목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보이라고 말하는 연암선생의 훈계가 21세기에 적지적소한 이 느낌을 뭐라 표현할까.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며 감정의 찌꺼기로 막혀버린 내 칠정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고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나은 나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한때 일상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여행자의 기분이 이런 것이리라. 우리가 때때로 떠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를 물색하러 떠나는 일, 여행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암 박 지원 선생의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통찰이 범상치 않음을 ,수록된 산문집 75편에서 알아 볼 수 있다. [열하일기]에서 발췌한 부분,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편에 등장하는 '소리'에 대한 사변이 참으로 기막히다. 순식간에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 이는 깜짝 놀라서 들은 경우다. 찻물이 때론 약하게 때론 세게 끓는 듯한 소리, 이는 운치있게 들은 경우다. 거문고의 낮고 높은 가락이 잘 어우러져 나는 듯한 소리, 이는 슬퍼하면서 들은 경우다. 한지를 바른 창문이 바람에 우는 듯한 소리, 이는 혹시 누가 왔나 하면서 들은 경우다. 그런데 이는 모두 소리를 올바로 들은 것이 아니요, 다만 마음속으로 가상한 바에 따라 귀가 소리를 지어낸 것일 뿐이다. 음악을 듣고 괜찮은 공연을 보면서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매혹되어 시간을 빼앗긴 지 얼추 10여년이 되어간다. 한국에 살았다면 이도 잘 안됐을 일이다. 이제껏 살면서 잘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음악감상이다. 들려오는 소리가 한결같이 객관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각자의 주관적 판단 때문이다. 상황과 감정의 흐름에 따라 달리 들리는 소리들. 그랬구나. 어제와 오늘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달랐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연암은 조금 더 나아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려운 상황을 포기하지 않고 그 끝을 보려면 과정자체를 즐겨야 하며 마음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갖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발상! 연경까지 가려면 그 하룻밤에 아홉번 도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발병이 나서 포기해야 하니까. 아홉 번 강을 건널 적마다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려온 물소리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울렁증과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공포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순간들이 좀 많았겠는가. 그러면서도 결국 도를 깨우쳤다는 유머러스한 말도 남겼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린 사람에게는 귀와 눈이 누를 끼치지 못하지만, 제 귀와 눈만 믿는 사람에게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병폐가 되는 법이다. 각자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공감하는 바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이성과 감각에 있어서 지금이 더 발전적이고 낫다고 말하기를 주저해야 할 것 같다. 18세기 사람의 범죄 프로파일링 능력이 21세가 사람보다 낙후되었다고 말하기엔 연암의 관찰력이 무척이나 뛰어나다. 함양에서 일어난 "한 처녀의 의문사에 대한 소견"을 읽으면서 독특한 글쓰기에 비법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한 분석하고자 하는 그 디테일에 있음을 알았다. 와! 그 시대 사람도 이런 사고를 하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니, 알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나는 과학과 기술의 능력이 지금에만 통용되고 소비되는 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학문이 깊고 인품이 호방했던 연암 선생의 문학선집은 소설 10편, 산문 75편, 시 15수등 100편의 글을 싣고 있다. 은은하다거나 흔한 기품보다는 선비의 기상과 장대한 포부가 느껴졌고 인간적인, 늘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두루두루 섞인 인성이 보여서 눈물겹기도 했다. 가족과 벗을 잃은 슬픔과 애틋함을 비문으로 옮겨 놓은 글과 웃음과 해학이 넘쳐 흐르는 글들, 특히나 자신이 쓴 "열하일기에 대한 변명" 의 글에서는 '안갔다왔으면 말을 말어' ... 딱 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론에만 치우친 글들이 난무했을 시기에 그런 섞여듦이 있었기에 세상의 인심이 변화한 게 아닐까. 융합과 통섭의 시기에 연암의 글을 찾아 읽는다면... 책 읽는 기쁨이 이보다 더할 데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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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배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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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노벨문학상은 중국 작가 모옌에게 수여되었다. 소식을 들은 한국 문학계는 지금 복지부동 모션이다. 중견 시인이나 중견 소설가가 대충 펜을 놀린 삼류 여행기나 써대고, '힘내세요' 스타일의 케케묵은 자기계발 글이나 끄적대면서 입에 풀칠할 생각을 하고 있는 마당에 노벨문학상을 바란다면 그건 망상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비록 고은, 김지하, 황석영 선생이 두터운 후보자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과연 이들의 문학적 정수를 제대로 번역된 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을지 심히 의문이다. 해외번역은 고사하고 국내 독자들로 하여금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알찬 작품선집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우리 문학계의 빈곤한 현실이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이 만일 18세기에도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분명 조선이 일본이나 청나라보다 앞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에겐 바로 연암 선생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70여년 전의 조선을 살았던 연암의 문학이 작금의 현대문학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의 '국민작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창강 김택영은 중국의 당송 팔가에 비견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문가의 한 사람으로 연암을 꼽은 바 있지만, 우리 문학사의 최고봉에 속하는 대문호다. 연암의 문학관을 집약한 말이 바로 '옛것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하자'는 '법고창신’ 네 자이다. 연암은 고문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것과 동시에 고문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표현법과 조선 고유의 속어ㆍ속담 등을 구사한 참신한 소품문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연암은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적 개성을 추구한 '우리 근대문학의 선구자'라는 정평을 얻었고, 아울러 평범한 일상사를 가볍고 참신하게 표현한 '소품문의 작가'로 오늘날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김명호 선생의《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돌베개, 2007)는 저자가 우전 신호열 선생과 함께 번역한 『연암집』을 저본으로 하여 연암의 소설 10편, 산문 75편, 시 15수, 이렇게 총 100편의 대표작을 엄선해 실은 책이다. 크게 소설, 산문, 한시의 3부로 구성되는데 제2부 산문은 다시 서문, 발문, 기, 서간문, 비문, 추도문, 논설로 나뉜다. 1부는 10편의 소설로 「민옹전」「광문자전」「양반전」「김신선전」「마장전」「예덕선생전」「우상전」「호질」 「허생전」 「열녀 함양 박씨전」을 수록했다. 잘 알겠지만,「호질」과 「허생전」은 『열하일기』의 대표작이다. 「호질」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범은 천명을 알고 그에 순응하므로 간사한 무당이나 의원에게 홀리지 않으며, 몸을 바르게 지켜 나가고 제 본성을 다 발현하므로 세속의 이익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곧 범이 지극히 현명한 까닭이다. 가죽 무늬의 반점斑點 하나만 슬쩍 보여주어도 천하에 문文을 과시하기에 충분하며, 아무리 작은 무기라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만 의지하여 무武를 천하에 과시한다."(98-9쪽)
2부의 산문 75편들 가운데 특별히 독자들에게 추천하고픈 것은 「영처고서」(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소단적치인」(글 잘 짓는 이는 병법을 안다)「초정집서」(옛 글을 본받되 새롭게 지어라)「북학의서」(왜 청나라를 배우자고 하는가)「수소완정하야방우기」(진솔한 나의 모습) 등이다. 특기할 점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현재 무관 이덕무의 글로 밝혀진 「종북소선자서」가 아무런 주석이나 해명없이 그냥 연암집에 실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려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열하일기』의 대표적 에세이인 「호곡장」(통곡하기에 좋은 장소)「야출고북구기」(한밤중에 고북구를 나서며)「일야구도하기」(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상기」(코끼리에 관한 명상) 등 4편도 아울러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래 예문은「소단적치인」의 유명한 구절이다. 일자천금! 그야말로 명문이다.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 병법을 알 것이다. 비유하자면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다.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다.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병騎兵이 기습 공격하는 것이다. 억양반복抑揚反復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151쪽)
3부는 한시 15수를 소개한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때마다 유독 생각나는 연암의 시가 있다. 바로「연암억선형」(작고하신 형님을 그리며)이다. 연암의 부친 박사유는 1767년에 별세했고, 연암보다 열다섯 살 위인 형 박희원은 20년 뒤인 1787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정월에 연암은 부인 전주 이씨와 사별한 상태였다.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 연암이 오랜 가난과 은둔의 생활을 청산하고 벼슬길에 나서자마자 부인과 형님이 작고하는 슬픔을 겪었으니 말이다. 연암의 처지와 심정을 생각하며 다같이 감상해보자.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옷 입고 가 냇물에 비친 나를 봐야겠네" 自將巾袂映溪行 (43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