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권에는 가까운 지인들에 관련된 여러 단문소평과, 그에 짤막하게 곁들인 그만의 문장론이 실려 있다. 법고와 창신 간의 길항을 고뇌하는 한 글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그의 글은 아무리 당대에 파격이라고 평가받아 정조로부터 문체 반정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고는 해도, 현대인의 눈에는 古文 클리쉐의 끝없는 반복과 변조로밖에 보일 수 없다. 이런 문장에서 시대의 재사의 창의와 발랄함을 엿보려면 역사지식, 연암 개인에 대한 애정, 한문 원문을 세심하게 뜯어 읽어 내려갈 소양 등이 모두 필요하다. 번역은 현대 한국이 보유한 이 분야 최고전문가분들이 손본 것이라 마음 푹 놓고 읽기만 하면 된다. |
|
돌베개의《연암집》은 1932년 박영철이 편한 활자본 《연암집》을 텍스트로 삼아 연암의 시문 전부를 국역한 책이다. 산문은 237편이고 한시는 42수다. 타고난 나쁜 놈이라도 착한 일 한 가지쯤은 하는 법이다. 친일파 박영철의 손에 의해 연암의 글이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자는 우전 신호열(1914-1993)과 김명호이고, 역본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한국문집총간 252집 소재《연암집》을 대본으로 국역하고 역본에 원문을 첨부하였다.
박영철 편《연암집》은 필사본과는 달리 원집과 별집 각 5권으로 총 10권이다. 근간이 되는 글은 연상각선본(제1권과 제2권)과 공작관문고(제3권)이다. 여기에 한시를 모은 영대정잡영(제4권), 중년 이전의 짧은 편지를 모은 영대정잉묵(제5권), 1797년 정조의 어명으로 지은 서이방익사(제6권), 중년에 지은 소품 산문을 모은 종북소선(제7권), 그리고 한문소설로 간주되는 초기 전 9편을 묶은 방경각외전(제8권)이 합쳐져서 1차로 연암의 문집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유고를 편집해 추가한 고반당비장(제9권)과 엄화계수일이 (제10권)이 더한다.
연암과 정조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문체반정을 언급하게 된다. 연암의 글쓰기 철학은 한마디로 법고창신이다. 항상 법고와 창신의 묘미를 살려야 하고 병통을 제거해야 하는데, 법고주의의 병통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고, 창신주의의 병통은 상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연암은 <초정집서> 에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