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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그프리드 겐테는 187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독일인이다. 지리학을 전공한 뒤 쾰른 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는 첫 발령지 워싱턴을 시작으로, 사모아, 모로코, 중국, 조선 등 당시 유럽 열강의 분쟁지역을 두로 다니면서 취재를 했다. 20세기 벽두 1901년 6월, 조선에 건너온 겐테는 그가 보고 느낀 조선에 대한 소감을 쾰른 신문사에 연재했다. 이 책은 당시 연재물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박윤석의 《경성 모던 타임스》를 보면, 1920년대 신사들은 정장에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여성들은 점점 멋을 부리고 화장품값은 날로 올라갔다. 박승직 상점이 내놓은 화장품 ‘박가분’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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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으로 가는 길
북청사변(北淸事變)이라고도 불리는 의화단(義和團) 운동
취재를 위해 중국으로 파견된, <쾰른 신문>의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 1870~1904)의 다음 방문지는 조선(朝鮮)이었다.
그가 방문할 계획을 세운 1901년에는 만주와 조선, 시베리아 해안의 항구마다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었고, 베이징[北京]에서 서울로 가려고 해도 일본의 증기선을 타야만 했다.
그는 “바이허[白河] 하구에서 서울의 관문 제물포까지의 거리는 800킬로미터(이므로,) 구간이 짧아서 시속 12노트로 해안을 따라 운항하는 느릿한 배라도 이틀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1)”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즈푸[芝罘]를
지나 조선으로 직진하는 항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제대로 옷을 입은 승객’만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통해 일본인 승객과 중국인 승객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제대로 옷을 입은 승객’이 어째서 ‘유럽식 정장을 입은 승객’으로 치환되는지 몰라도, 자신들의 전통차림 대신 유럽식 정장을 하고 서양인과 어울려 식사를 하는 일본인과 일등석 티켓을 구해도 중국전통차림을
고수하여 “머리를 땋아 변발을 하고 기다란 비단옷에 실내화처럼 생긴 가죽신을 신고 느릿느릿 다가오기
때문에2)” 다른 국가의 손님과 격리된
중국인의 모습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조선(朝鮮)과의 첫 만남
텐진[天津]에서 다구[大沽]를 거쳐 제물포에 들어온 지그프리트 겐테는 “주민들(이) 정신 없이 소리를 질러 혼을 뺀 후 관광객들의 짐을 빼앗아 하나씩 사방팔방으로 집어 던지며 도착하는 여행객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동안, 짐을 지키기 보다는) 조용히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3)”
낯선 곳의 이국적인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의 시선을 처음 빼앗은 것은 조선인들이 입고 있던 의복과 독특한 머리 모양이었다.
“중국처럼 조선에서도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의복이 원칙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옷감의 소재가 달라 신분과 부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여름 한복은 정말 실용적이고 편해 보였다. 가장 주요한 부분은 바지였다. 크고 헐렁(할 뿐 아니라)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광목으로 되어 있거나 더 가벼운 삼베로 짜서 거추장스럽게 처지지도 않았다.
조선인들은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머리 부분을 매만지는 데 상당한 정성과 비용을 들였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머리나 모자에 특별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남자라도, 결혼하지 않았으면 어른들의 일에 참견을 해서는 안 되며 머리에 갓을 쓰지도 못했다.
정수리 부문과 땋은 머리만 남겨놓고 모두 밀어버리는 중국의 변발과 달리, 조선에서는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모아 땋기 때문에 풍성하고 모양이 매우 아름다웠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비슷했다.4)”
이후 그가 강원도 당고개에 있는 금광을 방문하는 길에 야영을 해야 했다. 그는 “이미 조선 관련 책을 읽고 최악의 사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서운 해충과 온갖 좋지 않은 소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였다.
(하지만 서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 목욕을 하러 강으로 나갔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벌써 마을 주민들은 물속을 이러 저리 걸어 다니고 있었다.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몸을 씻거나 심지어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종 기록에 나오는 주민들의 불결함과 조선 숙소에 대한 온갖 공포는 사실무근으로,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5)”고 지적했다.
또한 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에서 “문화민족을 자부하는 백인들이 자신들만이 소유하고 있다고 평소 자랑스럽게 여기던 특별한 시설6)”인 욕실 관련 시설을 보고 놀라면서, 조선을 지구상에서 가장 불결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이 편견임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 즉, “조선의 여행객들도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나 농가의 머슴들을 보고 독일인의 청결성을 판단한다면, 조선에 대해 세계 관광객들이 내린 성급하고 분별없는 주장처럼, 우리 역시 부끄럽고 부당한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다7)”고 반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 혼혈인 집단에서 벌어지는 최근의 현상, 즉 미국인들이 가진 일에
대한 충동과 열정은, 그에 비해 비교적 구식이며 타성에 젖어 퇴화된 우리 유럽인들의 눈에도 극단적이며, 연민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어느 정도 병적인 상황으로 보일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침의 나라에서도 유럽인의 삶은 분명히 광적인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삶을 영위하는 데 이런 양극단적인 현상이 인간과 인성 교육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해보면,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끊임없이 돈만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금욕생활을 하는 은둔자에게서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더 많은 매력을 느낄 것이다.8)”라고 하여 문화상대주의적 자세를 드러냈다.
이처럼 그는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여행기를 연재하여, 서구인에게 잘못 알려진 조선(朝鮮)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려고 노력했다.
옥의 티
p. 9 그나마 다구[大活]에서 즈푸[芝罘]구간은 언제라도 배가 운행되고 있고, ~ ⇒ 그나마 다구[大沽]에서 즈푸[芝罘]구간은
언제라도 배가 운행되고 있고, ~
p. 84 조석식 명칭인 제물포가 많이 통용되어서 그런지, ~ ⇒ 조선식 명칭인 제물포가 많이 통용되어서 그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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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지그프리트 겐테,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권영경
옮김, (책과 함께, 2007), p. 10 2)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 22 3)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 70 4)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70~71 5)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107~108 6)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 166 7)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166~167 8)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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