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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본 조선,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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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그프리드 겐테는 187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독일인이다. 지리학을 전공한 뒤 쾰른 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는 첫 발령지 워싱턴을 시작으로, 사모아, 모로코, 중국, 조선 등 당시 유럽 열강의 분쟁지역을 두로 다니면서 취재를 했다. 20세기 벽두 1901년 6월, 조선에 건너온 겐테는 그가 보고 느낀 조선에 대한 소감을 쾰른 신문사에 연재했다. 이 책은 당시 연재물을 모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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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그프리드 겐테는 187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독일인이다. 지리학을 전공한 뒤 쾰른 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는 첫 발령지 워싱턴을 시작으로, 사모아, 모로코, 중국, 조선 등 당시 유럽 열강의 분쟁지역을 두로 다니면서 취재를 했다. 20세기 벽두 19016, 조선에 건너온 겐테는 그가 보고 느낀 조선에 대한 소감을 쾰른 신문사에 연재했다. 이 책은 당시 연재물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나는 한 세기 전 우리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살아갈 방도를 얻고, 미래에 관한 혜안을 얻는다지 않던가. 조선은 왜 망했을까 하는 내 나름의 해답을 찾고 싶은 호기심도 한 몫 했음을 고백하고 싶다.

겐테에게 조선은
외부의 세력에 물들지 않아서 아직까지 고유함을 그대로 간직한 미지의 분위기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신선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티베트는 제외하더라도, 오랜 문화를 지난 나라 중 외국인을 철저히 멀리하는부정적인 이미지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는 그가 일본에 대해서는 폐쇄적이었던 중세 봉건사회에서 선경지명과 넓은 안목을 갖고 세계 정치로 발돋움하는 과도기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당시 외세들은 조선에 매장된 자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 가령 조선의 광산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등이 각축전을 벌였다. 1905년 평북 창성에서는 대규모 금맥이 발견되어 금광촌이 형성되기도 했고, 미국은 평북 운산에 금광채굴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저자 역시 당시 독일인이 관장하고 있던 광산을 방문한 뒤 그 내막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또한 겐테는 금강산 장안사를 둘러보고 당시 정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 한국 동란 때 장안사가 전소되었던 터라 묘한 흥분마저 일었다.

그의 시선은 당시 서울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에도 쏠렸다
. 겐테에 따르면 당시 수도 한양에는 절이 없었다. 다른 왕도에는 모스크나 대성당을 끼고 있기 마련이었으니 이방인의 눈에는 의아했을 것이다. 그만큼 조선의 억불 정책은 철저했다.

사실 이는 조선 왕조가 그 완고함이 지나쳐 국제 정세에 둔감했고
, 한번 세운 국정 방침은 철칙이라 스스로 개혁할 의지가 없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겐테는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조선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여전히 만주통치 이전의 중국 대륙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술회한다.

저자가 묘사한 서울 풍경은
1920년대 조선의 모던 타임스와 비교해 보는 맛도 일품이려니 한다. 가령, 다음을 보자.

조선인들은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머리 부분을 매만지는 데 상당한 정성과 비용을 들였다. 가계부 지출 항목에서도 머리 장식에 드는 비용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젊은 사람들은 머리나 모자에 특별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기 때문이다. - 71

박윤석의 경성 모던 타임스를 보면, 1920년대 신사들은 정장에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여성들은 점점 멋을 부리고 화장품값은 날로 올라갔다. 박승직 상점이 내놓은 화장품 박가분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한다.

한편 겐테가 제주도를 찾았을 때 마침 고관의 야간 행차에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 이 때 길 양쪽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 횃불에 의존해서 속보로 달렸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인근 길을 잘 아는 남정네들을 깨워 주변 길을 안내하게 했다고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시각이 의외로 합리적이다 싶었다
. 가령, 그는 조선 광부의 놀라우리만큼 안전하게 움직이는 준비성에 놀라워하고, 조선 선원들의 끈기와 냉철함에 감탄한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신던 짚신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공학에 뛰어난 독일인의 세심함을 잘 보여준다
. 가령 삼실을 꼬아 만든 짚신은 등산용으로 아주 훌륭했다는 것. 신발 바닥이 얇지만 단단해서 뾰족한 자갈돌이나 단단한 바위 위를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겐테의 글은 참 성실하면서도 좌우감각을 잘 지녔다
. 당시 조선의 실상을 전하는 외국인이면 으레 내보이기 십상인 우월감 같은 무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넉넉하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것을 빼면, 곁들인 사진들도 은근 정겹다.

한편 겐테는 조선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모로코로 자리를 옮겼다가 불의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4.04.1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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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 1901년, 조선(朝鮮)의 풍경
"[16-13] 1901년, 조선(朝鮮)의 풍경" 내용보기
조선(朝鮮)으로 가는 길   북청사변(北淸事變)이라고도 불리는 의화단(義和團) 운동 취재를 위해 중국으로 파견된, <쾰른 신문>의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 1870~1904)의 다음 방문지는 조선(朝鮮)이었다. 그가 방문할 계획을 세운 1901년에는 만주와 조선, 시베리아 해안의 항구마다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었고, 베이징[北京]에서 서울로 가려고 해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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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으로 가는 길 

 

북청사변(北淸事變)이라고도 불리는 의화단(義和團) 운동 취재를 위해 중국으로 파견된, <쾰른 신문의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 1870~1904)의 다음 방문지는 조선(朝鮮)이었다.

그가 방문할 계획을 세운 1901년에는 만주와 조선, 시베리아 해안의 항구마다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었고, 베이징[北京]에서 서울로 가려고 해도 일본의 증기선을 타야만 했다.

 

그는바이허[白河] 하구에서 서울의 관문 제물포까지의 거리는 800킬로미터(이므로,) 구간이 짧아서 시속 12노트로 해안을 따라 운항하는 느릿한 배라도 이틀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1)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즈푸[]를 지나 조선으로 직진하는 항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제대로 옷을 입은 승객’만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통해 일본인 승객과 중국인 승객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제대로 옷을 입은 승객’이 어째서 ‘유럽식 정장을 입은 승객’으로 치환되는지 몰라도, 자신들의 전통차림 대신 유럽식 정장을 하고 서양인과 어울려 식사를 하는 일본인과 일등석 티켓을 구해도 중국전통차림을 고수하여 머리를 땋아 변발을 하고 기다란 비단옷에 실내화처럼 생긴 가죽신을 신고 느릿느릿 다가오기 때문에2)다른 국가의 손님과 격리된 중국인의 모습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조선(朝鮮)과의 첫 만남 

 

텐진[天津]에서 다구[大沽]를 거쳐 제물포에 들어온 지그프리트 겐테는  주민들() 정신 없이 소리를 질러 혼을 뺀 후 관광객들의 짐을 빼앗아 하나씩 사방팔방으로 집어 던지며 도착하는 여행객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동안, 짐을 지키기 보다는) 조용히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3)

 

낯선 곳의 이국적인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의 시선을 처음 빼앗은 것은 조선인들이 입고 있던 의복과 독특한 머리 모양이었다.

중국처럼 조선에서도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의복이 원칙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옷감의 소재가 달라 신분과 부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여름 한복은 정말 실용적이고 편해 보였다. 가장 주요한 부분은 바지였다. 크고 헐렁(할 뿐 아니라)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광목으로 되어 있거나 더 가벼운 삼베로 짜서 거추장스럽게 처지지도 않았다.

 

조선인들은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머리 부분을 매만지는 데 상당한 정성과 비용을 들였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머리나 모자에 특별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남자라도, 결혼하지 않았으면 어른들의 일에 참견을 해서는 안 되며 머리에 갓을 쓰지도 못했다.

정수리 부문과 땋은 머리만 남겨놓고 모두 밀어버리는 중국의 변발과 달리, 조선에서는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모아 땋기 때문에 풍성하고 모양이 매우 아름다웠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비슷했다.4)

 

이후 그가 강원도 당고개에 있는 금광을 방문하는 길에 야영을 해야 했다. 그는 이미 조선 관련 책을 읽고 최악의 사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서운 해충과 온갖 좋지 않은 소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였다.

(하지만 서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 목욕을 하러 강으로 나갔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벌써 마을 주민들은 물속을 이러 저리 걸어 다니고 있었다.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몸을 씻거나 심지어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종 기록에 나오는 주민들의 불결함과 조선 숙소에 대한 온갖 공포는 사실무근으로,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5)”고 지적했다.

 

또한 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에서 문화민족을 자부하는 백인들이 자신들만이 소유하고 있다고 평소 자랑스럽게 여기던 특별한 시설6)인 욕실 관련 시설을 보고 놀라면서, 조선을 지구상에서 가장 불결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이 편견임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 , 조선의 여행객들도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나 농가의 머슴들을 보고 독일인의 청결성을 판단한다면, 조선에 대해 세계 관광객들이 내린 성급하고 분별없는 주장처럼, 우리 역시 부끄럽고 부당한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다7)고 반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 혼혈인 집단에서 벌어지는 최근의 현상, 즉 미국인들이 가진 일에 대한 충동과 열정은, 그에 비해 비교적 구식이며 타성에 젖어 퇴화된 우리 유럽인들의 눈에도 극단적이며, 연민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어느 정도 병적인 상황으로 보일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침의 나라에서도 유럽인의 삶은 분명히 광적인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삶을 영위하는 데 이런 양극단적인 현상이 인간과 인성 교육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해보면,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끊임없이 돈만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금욕생활을 하는 은둔자에게서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더 많은 매력을 느낄 것이다.8)라고 하여 문화상대주의적 자세를 드러냈다.

 

이처럼 그는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여행기를 연재하여, 서구인에게 잘못 알려진 조선(朝鮮)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려고 노력했다.

 

 

옥의 티

 

p. 9

그나마 다구[大活]에서 즈푸[]구간은 언제라도 배가 운행되고 있고, ~ ⇒ 그나마 다구[大沽]에서 즈푸[]구간은 언제라도 배가 운행되고 있고, ~

 

p. 84

조석식 명칭인 제물포가 많이 통용되어서 그런지, ~ 조선식 명칭인 제물포가 많이 통용되어서 그런지, ~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지그프리트 겐테,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권영경 옮김, (책과 함께, 2007), p. 10

2)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 22

3)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 70

4)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70~71

5)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107~108

6)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 166

7)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166~167

8) 지그프리트 겐테, 앞의 책, pp. 151~153

w******f 2016.03.27.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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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내용보기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격동의 19세기에 제국주의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인지 '영토'나 '확장성' '호전성'을 기준에 두고 지난 역사를 평가하려는 인식이 강하다. 즉, 영토나 인구 구성 면에서 대한민국의 실질적 바탕이 되는 조선은 '당쟁으로 말아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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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격동의 19세기에 제국주의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인지 '영토'나 '확장성' '호전성'을 기준에 두고 지난 역사를 평가하려는 인식이 강하다. 즉, 영토나 인구 구성 면에서 대한민국의 실질적 바탕이 되는 조선은 '당쟁으로 말아먹은 나약한 나라'로 인식되는 반면 삼국시대엔 우리 나라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민족 개념은 19세기 이후 도입되엇다.) 고구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지금도 고구려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2편 방영중이고, 조만간 욘사마도 고구려 드라마를 찍는다고 하니 과히 고구려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괄시받는 조선사 중에서도 가장 무시받는 영역이 바로 대한제국이 될 것이다. '허례허식'과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에도 '세종대왕' '이순신'이라는 슈퍼스타들과 '조광조' '정약용' '정조' '허준' 등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었고 '임진왜란' '훈민정음'과 같은 빅 이벤트가 있었다.  국권을 잃었던 일제 강점기도 나름 인기 있는 영역이다. '김좌진' 처럼 우리 역사에 보기 드문 군사적 히어로도 있었고 김구와 같은 철학적 히어로도 있었다.  3.1운동이라는 빅 이벤트도 있었고 의열단 같이 로망에 가득찬 테러리스트들도 있었고 '김두한' '시라소니' 같이 포장하기 따라선 민족 영웅으로 부각될 수도 있던 싸움꾼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영웅도 없고 뚜렷한 빅 이벤트도 남아있지 않다. 이러다보니 딱히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20세기 초반의 지식인들이 당시의 대유행이었던 사회진화론에 입각해서 조선과 대한제국을 무자비할 정도로 까내려 간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대한제국은 우리 역사의 오점 혹은 블랙홀과 같이 취급되는 것이 지금의 추세이다.

 사실 본인도 이런 시각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푸른 역사에서 간행된 '대한제국 역사 청문회'를 통해 대한제국에 대해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찾았고 여기에 흥미를 느껴 '고종시대의 재조명',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 등을 거치면서 점점 대한제국기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책들이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각자가 지닌 사관의 영향 아래에서 쓰여진 책들이라 당시의 사정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책이 없을까 하는 갈증이 항상 머리를 멤돌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것이 바로 이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나라 조선, 1901'이 되겠다.

우선은 제목 그대로 저자 부터가 우리 역사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는 외국인이고, 책 자체도 1901년 당시에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기자라는 점 또한 중요하다. 비슷한 유형의 책들이 대부분 작성자들의 출신 성분에 따라 종교적인 편견이나 인종적인 편견, 오리엔탈리즘 등으로 오히려 지금의 책들보다 객관성이 떨어지는 반면 겐테가 쓴 한국 여행기는 굉장히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자신이 바라본 조선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것이다.

겐 테의 이러한 시각은 제목에서 언급한 '신선한 나라' 라는 표현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겐테는 이미 조선으로 가는 여정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부터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는 번역은 잘못되 것이며 실제로 '조선'은 '신선한 아침'을 뜻한다고 지적하고 나선것이다. 금강산의 산사에 가서는 이들을 우상숭배라고 지탄하는 대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리 절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며 승려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제주도에서는 산신령에 대한 토속 신앙 때문에 한라산 등반이 어려워지자 그걸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계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목사를 설득하고 자신의 한라산 등반이 제주도의 산신령 신앙에 영향을 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등 매우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겐테가 자신이 알고 있던 오류투성이의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생각해보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고 해외 특파원으로 파견될 정도면 겐테는 당대의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겐테에게까지 조선은 단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다는 정보 외엔 다른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가 지닌 정보라는 것들이 이상하게 섞여있는 것들이 많다. 한글을 1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유 문자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아마도 이두 문자와 헷갈린 듯 하다) 우리 역사에서 불교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궁예 라는 위대한 불교 사상가가 10세기 범민족 통일운동에 불을 붙였으며 부하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소개한다.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 자체는 참으로 용한데 그걸 조선이 승려들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을 보면 참 기발한 착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겐테는 자신의 기자적 소양을 발휘해서 조선인들의 생활에 대해 잘못 알려진 오류들은 적극적으로 수정해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조선의 정보를 유럽에 알려준 것은 선교사들이나 뒤늦게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편입하려던 일본인 들이라 이들의 이야기에는 편견이 난무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사람은 씻지 않아서 지저분하다든지 느리고 게으르다는 것 등 말이다. 겐테는 여행 중 직접 조선사람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서 이런 편견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나 둘 입증해나간다. 이를테면 저렇게 흰 옷을 입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저분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자신이 아침에 강가에 나가봤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고 있더라 라고 말하기도 한다. 느리고 게으른 조선인에 대해서도 직접 겪어본 결과 전체적으로 시간관념에 대해서 느긋한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일을 할 때엔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여러 국가를 여행한 기자로서의 특기를 살려 많은 부분에서 조선과 일본, 중국 등을 비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우선 조선인이 일본인들보다 체구가 크고 건장하다는 언급은 매우 자주 등장하며 온돌을 이야기할 때엔 동아시아 3국의 난방 장치를 모두 언급하며 비교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외국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 처럼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의 모습에는 똑같은 초가집으로 보였을 텐데 제주도에 가서는 지붕위에 돌을 올려놓는 특이한 풍습에까지 시선을 할애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거기다가 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조선의 말들은 풀을 뜯어먹지 않고 주인이 쑤어준 콩 죽만 먹는 사치를 부린다고 놀라워하면서도 여행을 하면서는 조선 말들의 지구력에 놀라 과연 이정도로 일을 잘하는 말들이라면 그정도 사치를 부릴만 하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이런건 지금의 우리도 몰랐던 부분이 아닐까?

여행기를 읽다 보면 겐테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조선을 즐기다가도 어느새 겐테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게 된다. 여행 중 조선 사람들이 달려드는 통에 봉변을 겪었다며 조선에 대해 좋지 않은 글을 쓴 비숍 여사와 달리 겐테는 조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길가다가 만나는 조선 사람들에겐 기꺼이 마음을 열고 담배 등을 선물하고 통조림을 함께 까먹기도 한다. 장안사 주지나 제주 목사가 배푸는 호의에 대해서는 감사히 받아들이고 최대한 예를 갖추어 자신이 지닌 것들 중 일부를 선물하기도 한다. 특히 한라산 등반 중 벌목꾼들의 동굴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벌목꾼들이 자신의 물건들에 호기심을 비쳤을 때이다. 보통의 외국 여행자라면 자신을 해하고 물건을 훔쳐갈까 겁먹었을 법도 한데 겐테는 기꺼이 자신이 지닌 각종 물건들을 꺼내놓고 보여주고 설명하고 심지어 만져보게도 한다. 처음엔 외국인을 경계하던 벌목꾼들도 겐테의 호의에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나자 모두 그 물건들에 대해 '좋소!' 라고 감탄하고 겐테가 나누어준 독한술을 마시며 아주 기분 좋은 하루밤을 보내게 된다. 물론 제주도의 절대권력자인 목사가 딸려보낸 관료가 함께한 영향이 없진 않았겠지만, 백인이 다른 세계의 원주민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만큼 원주민들도 백인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며 조선 사람의 경우는 그 호기심이 매우 강하게 보이는데 이것이 순수한 호의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화나게 하거나 봉변을 주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겐테의 개방적인 태도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0년전 이 땅을 방문했던 겐테에게 조선은 분명 신선한 나라였을 것이다. 동양 어느 나라 보다도 가장 늦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음에도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발전한 서울의 모습이라든지 자정이 되어서도 늦게까지 정사를 보는 궁궐의 관습,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다른 특유한 문화와 습속, 외견상으로나 성품으로나 유럽 어디에 갖다놔도 찬사를 받을만한 조선의 토종 소 등이 그에게 매력적으로 비쳤음은 책 구석구석에서 애정어린 글귀들로 잘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조선 혹은 대한제국의 모습이 낯선 것은 겐테 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선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나름대로 역사에 자신 있는 아마추어들이 응시한 한국사 능력 시험에서도 조선 후기 이후의 문항들은 정답률이 50%에 머물렀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우리 역사의 블랙홀인 것이다. 물론 이 책을 본다고 해서 한국사 시험 성적이 오르진 않겠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잊혀진 우리의 대한제국을 알아 간다는 차원에서, 적어도 조금이라도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YES마니아 : 로얄 t****t 2007.04.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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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仙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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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仙의 道 相識이 滿天下되 知心이 能幾人고 如善人若이면 君子之交는 淡如水하고 小人之交는 甘若醴니 路謠知馬力이요 日如入芝蘭之室하여 久而不聞基香이라도久見人心이니라. 不結子花는 休要種이요 無義之朋은 不可交며 若要人重我면 無過我重人이니라 天下不測風雨하고 人有朝夕禍福있으니 欲知未來커든 先察已然지니. 一日淸閑이면 一日仙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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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仙의 道


相識이 滿天下되 知心이 能幾人고

如善人若이면

君子之交는 淡如水하고

小人之交는 甘若醴니

路謠知馬力이요 日如入芝蘭之室하여

久而不聞基香이라도久見人心이니라.

不結子花는 休要種이요

無義之朋은 不可交며

若要人重我면 無過我重人이니라

天下不測風雨하고 人有朝夕禍福있으니

欲知未來커든 先察已然지니.

一日淸閑이면 一日仙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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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 속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마는


착한 사람과 더불어 있으면 향기로운

지란이 있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랫동안 그 향을 맡지 않으리라도

곧 향기에 동화되며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단술과 같으니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것이요

날이 오래되어야만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또한 열매 맺지 않은 꽃은 심지 말 것이요

의리가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지니

만일 남이 나를 중하게 여김을 바라다면

내가 먼저 남을 중히 여기는 것에

더 할 것이 없으니라


하늘에는 헤아리지 못할 비바람이 있고

사람은 아침 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으니

아직 이르지 아니한 일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지나간 일을 살필지니라...


하루가 즐겁다면 그날은 신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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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을 새겨 읽어보며....

문제속에 해답을 찾아가 보니 제 나름대로의 답이 나오는군요

내 마음 알아주는 이.. 헤아려줄 수 있는 이..

단 한사람이라해도 허락해주심을 감사해야할 것 같네요..


겨울에는 바보가 되라, 총명한 머리를 버리고.

텅빈 가슴으로 나목이 되어 기다려려 보렵니다

오늘은 그래도 볕이 드는 날이네요.. ^^

h*****k 2007.11.24.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