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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출판사에서 조선상고사에 이어 조선상고문화사를 출간했다. 단재 신채호의 유작들을 모은것으로 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 사론에 참고용으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수록하었다. 이번 출간 역시 기대했던것처럼 단재의 해박한 지식과 치열한 고증의 역작임이 분명하다. 한국 고대사에 대해 이 보다 명쾌한 논의가 있었던가?
내 나름대로 단재의 탁월함을 분석해본다.
첫째, 저자는 국내 문헌기록의 부족에 따라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문구를 참조할때도 철저하게 그 기록의 시기, 저자, 시대적 상황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오류 가능성과 의심가는 대목을 지적하고 타 저술 내용과의 상호비교를 통해 수용여부와 검증을 통해 재해석의 의견을 제시했다.
둘째, 역사의 기록과 전수는 결국 언어와 문자를 통해 이루어지기때문에 고대 이두문의 언어적, 문자적 해독에 기반한 단재의 견해는 그 어떤 역사가의 고대사 연구보다 독보적이고 합리적이다. 특히 우리역사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본, 중국의 역사학자들의 단순 문자해독의 오류와 해악을 제거하고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역사를 제시했다고 본다.
셋째, 본 문건의 출간을 앞두고도 벽초 홍명희에게 출판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처럼 자신의 오랜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결벽에 가까운 철저함을 유지하는 사가로써의 태도이다. 무릇 오늘의 역사가들이 우러르고 따를 일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원고삭제 흔적과 추가 연구를 하지못하고 미완으로 남게된 흔적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부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부족함을 고치고 새로움을 덧붙쳐 그 분의 정신과 함께 후대에 남겨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해진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짓밟히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덧씌워지는 우리 민족의 역사!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 이병도 등에 의해 씌어진채로 아직까지 패망한 일제의 잔재가 이어지는 국사 교과서의 개정을 희망한다. 민족의 흥망성쇠가 필연의 과정이라면 조선의 망국으로부터 전란과 분단의 잔토위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웅대한 비상은 올바로 선 역사인식에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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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성쇠는 항상 그 사상의 추향(추세)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으며 사상의 추향이 혹좌혹우로 되는 것은 언제나 어떤 사건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아마도 김부식과 묘청사이의 긴장관계와 이후의 전개된 역사를 조선역사상 1천년이래 최대의 사건으로 표현으로 함으로써 단편적인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내용이다.
유가의 김부식의 독무대가 됨에 따라 삼국사기를 배포하며 전해오던 선도사상(화랑포함)과 불가서적 몰수해 버림으로써 역사의 왜곡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로인해 우리의 역사는 정통을 잊어버리고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조선은 숭유억불과 사대교린 사상으로 더더욱 전통사상과는 결별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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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했지만 부끄럽게도 단재의 초기 저작인 <<독사신론>>과 <<조선상고문화사>>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었다. 이만열교수가 주석한 저서를 공부할때 대충 읽어보았지만 절판된 책이라 구입할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근대역사학의 일인이라는 단재 신채호의 이름과 그의 저서는 누구나 들어보았겠지만 막상 그 연구를 직접 읽어본 사람은 드믄 것 같다. 단재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는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 적이 있지만 그 밖에 다른 저작들은 쉽게 구해보기 어려웠던게 사실이고 그나마 나온 책들도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딱딱하고 어려운 문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박기봉씨가 단재의 저작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현대식 문체로 풀어옮겼으니 역사학계도 해내지 못했던 괘거라 할것이다. 이 책은 단재 신채호선생의 저서중 앞서 나온 <<조선상고사>>를 제외한 다른 저서들을 한권으로 묶은것이다. 바로 <<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와 여러 사론을 모은 것으로 이 책으로 단재 선생의 논문을 대부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책의 구성을 저작의 발표순으로 했더라면 단재의 역사학이 조금씩 변화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더 잘 살펴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단재가 활동한 시기는 안으로는 근대역사학을 새롭게 정립해야하고 밖으로는 일본의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중국의 식민정권으로 부각하고 삼국의 역사를 낮추어 한국고대사의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도전에 직면해 있던때였다. 바로 이러한때에 단재는 기존의 한국고대사의 체계와 연구방법을 새롭게 새워 특유의 시원시원한 문체로 우리 상고사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물론 신채호의 연구들은 지금보면 오류도 있고 지나쳐 보이는 부분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저작들이 지금으로부터 70~100년전의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 친일사학자가 아닌 독립운동도 하는 민족사학자로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없었던 불운한 시대적 배경탓이기도 했다. 일제시대때만해도 신채호가 한국사학계에 차지한 위치는 너무도 특별한 것이었으나 해방이후 신채호의 학풍을 이은 민족주의 학자들은 단 한명도 남기지 않고 타계하거나 6 25때 납북되어 단재의 학풍이 끊어진 것은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후 친일계열의 학자들만 남은 학계에서는 일본의 식민사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이어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터졌지만 아직도 한국고대사의 체계가 제대로 잡혀 않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점이 잘 보여주고 있다. 신채호의 연구가 현재 사학계에 계승되어 발전시켜왔다면 결코 지금 중국의 동국공정을 우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21세기에 다시 신채호의 저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쪼록 단재의 이 귀중한 연구들이 많이 읽혀지고 제2의, 제3의 단재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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