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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를 위해 평생 고민한 '성자' 그리고 최고의 의사
"가난한 자를 위해 평생 고민한 '성자' 그리고 최고의 의사" 내용보기
장기려라는 분을 막연히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책에서도 그저 훌륭한 성자로서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또 한명의 위인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책을 읽어 나가면서 '위인'이나 '훌륭한분'으로만 여기고 대충 생각했던 한사람이 이 세대의 그 누구도 할수 없었던 예수의 삶을 몸으로 실천했다는 사실에 놀라다 못해 경악을 금
"가난한 자를 위해 평생 고민한 '성자' 그리고 최고의 의사" 내용보기

장기려라는 분을 막연히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책에서도 그저 훌륭한 성자로서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또 한명의 위인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책을 읽어 나가면서 '위인'이나 '훌륭한분'으로만 여기고

대충 생각했던 한사람이 이 세대의 그 누구도 할수 없었던

예수의 삶을 몸으로 실천했다는 사실에 놀라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가난한 환자를 위해 자신의 피를 뽑고

월급으로 치료비를 대신내주고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한다고 사정하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을 열어 도주시켜준 이..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 올 걱정없게 하기 위해.. 오직 그 하나의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을 시작하신분

 

또 한가지..

비공식적으로 북에 두고온 가족을 만날수 있었는데도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만나지도 못하는데 혼자 특혜로 상봉할수 없다고

단오히 거절한 분..

 

해외의 의학수준을 체험하기 위해 간 여행에서 경비로 받은

돈은 한푼도 쓰지않고 매일 가장 싼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받은 경비는 전부 돌려주신분..

 

이런 성자의 모습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능력도 그당시 최고였던거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간절제수술과 각종 어려운 수술을 집도하셨고

6.25전 북측 최고의 의사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부분을 보고

진실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큰 영광을 거저 주신다는 걸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해방후 기독교를 심하게 탄압했던 공산치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북측 관료들앞에서 '주일이면 예배드려야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셨다는 합니다.

과연 나와 이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 및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정의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낼수 있었을까..

공산치하에서 가장 악조건인 기독교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당시 최고의 의사대우를 받았다는건 한 종교인의 종교적 승리로만 볼수 없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자'소리를 듣는 분이

학비가 가장 적게 들기때문에 외과를 선택하였고,

그저 그렇게 생겨서 썩 마음에 내키지않던 분(예쁘지않아서)과

남이 등떠밀어서 얼렁뚱땅 결혼했다는 얘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 70이 다 되신분이 당뇨때문에 음식을 절제하는게 힘들다는 얘기와

초콜렛 먹는걸 핀잔주는 아들에게 섭섭해 하시는 모습을보고

'성자'또한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인데 어째서 이 사람과 나는 이렇게 삶이 다를까..

 

하얀거탑 드라마가 이슈가 되면서

이기적이고 권력을 위해 선보다 악을 택하는게

더 인간적이고 똑똑하다는 추앙을 받는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같고 멍청하기 까지한 분이 계셨다니...

그의 존재가 고맙고 나의 존재가 초라하다못해 부끄러울 뿐입니다.

c********g 2007.03.12. 신고 공감 1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고맙고 감사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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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수많은 의사들이 '명의'로 꼽는 인물 장기려 박사. 너무 상투적인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어서였을까요, 실제 교과서 한쪽 분량 정도로 소개되기도 했던 그지만, 그 만큼의 정보 이상은 그닥 관심밖에 두었었습니다. 그러다 사무실 이사 후 우연하게 남의 책꽂이에서 슬쩍(?)한 <장기려, 그 사람 :홍성사>. 하루 노동의 노곤함으로 골아떨어지기 직전에도 머리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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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수많은 의사들이 '명의'로 꼽는 인물 장기려 박사. 너무 상투적인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어서였을까요, 실제 교과서 한쪽 분량 정도로 소개되기도 했던 그지만, 그 만큼의 정보 이상은 그닥 관심밖에 두었었습니다. 그러다 사무실 이사 후 우연하게 남의 책꽂이에서 슬쩍(?)한 <장기려, 그 사람 :홍성사>. 하루 노동의 노곤함으로 골아떨어지기 직전에도 머리맡에 둔 이 책은 장시간의 졸음도 쫓고 읽게할 만큼 뭔가 저력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신뢰 이유. 바로 장기려 박사에 대한 여타 도서들에 비해 정보에 대한 정확도가 가장 탁월합니다. 많은 근거와 함께 그 동안의 그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이 책에서 교정보듯 재정리되고 있는 거죠.

 

책을 쓴 저자는 시종 장기려 박사를 '선생'이라 칭하지만, 그가 그 존칭에 드러내고자 하는 존경과는 별개로 이 책에서 장기려 박사는 적당히 평범하게, 또 적당히 겸손하게, 또 적당히 촌스럽게 서술됩니다. 물론 그의 탁월함과 함께 훌륭함이 가장 비중있게 배치되어 있기는 하죠.

어떠하든 그러한 객관적이고자 노력한 문체의 흔적이 많은 부분 책을 신뢰하게 한다는 거....

 

그래설까요, 장기려 박사, '그 사람'을 마치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생생한 만큼 인간미로 인한 감동과 탁월한 경건미, 진지함과 도덕적 고결함이 내내 마음을 파고듭니다.

 

평생을 기독교인들과 함께 호흡한 그. 그가 하늘나라에 간 1995년에 나는 ... 비그리스도인이어서 그를 몰랐습니다. 사회과학을  더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시기라, 장기려 박사가 공인이고 많이 알려진 사회적 인사였다 해도 별반 관심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고인이 된 그의 전기를 읽어 가노니,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신앙 안에서의 고뇌와 실천을 책을 통해 보자니 매우 적당하게 위로와 마음에 파장이 옵니다.

 

인상적인 고백과 일화들이 참 많은데, 일부만 소개하자면...."사랑의 동기가 아니고서는 언행을 삼가하라" (그는 많은 부분 말을 참 아껴 했던 것 같습니다)

 

분단 후 수십년 동안 생이별 속에 살다가 그가 이북의 아내에게 쓴 편지는 단 넉줄이었다고 하네요.

" 난 잘지네요... 나 당뇨병이라네..." (그가 이북의 아내에게 쓴 연서가 모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 사실은 단 넉줄의 글을 보고 아연해진 신문사 기자가 대필한 내용이라는군요. 왜곡도 참...)

 

무엇보다 소외되고 가난한 병자들에게 그가 행한 선행과 그 배려는 대단히 모범적이며 눈물이 납니다. 그의 소천 소식이 알려지고 가장 부지런하게 수집된 공동체도 다름 아닌 장미회, 즉 간질환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전쟁때 무료진료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워진 복음병원. 이후 재정적인 문제로 부산에 가장 교세가 컸던 고신교단이 복음병원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장기려 박사의 고뇌가 많은 부분 공감이 되어 돌아옵니다. 제도권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겠지요. 결국 장기려 박사는 환자들만 배려하고 병원의 재정에 대해 무능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헌신한 복음병원에서 정년보다 일찍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아내와 관련해, 인상 깊었던 사실, 또 하나. 그는 신앙인으로서 그의 아내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했습니다. 당초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신앙 속에서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성숙시킨 것이 그 어떤 신앙 위인들보다 모범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내가 가르쳐 준 낙조를 부르는 여든의 의학자는 그래서 더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그의 평생에 아내를 향한 의리적 사랑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말씀이 육이 되어'를 실천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신앙의 세월 속에서 성경을 육화한 삶의 과정을 밟아간 것입니다. 아내를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전한 메시지가 전율이 되어 오는 건 당연한 거겠죠... ^^ 

 

성산의 신앙관을 알아가는 데 자주 거론이 되는 후지이 다케시, 부산모임에서 성산이 번역을 통해 자주 소개했다는, 일본에서는 손꼽히는 신앙인이라고 합니다. 무교회주의자라 소개했지만, 공동체 의식이 강한 한국교회에서와 달리 일본은 신앙적으로 교회라는 울타리 기능이 한국교회만큼 영향력이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의 집 숟가락 갯수도 궁금한 것이 한국의 촌문화라면, 일본 사람들은 타인에 지나친 관심과 부담은 무례함이라 생각하니까요. 아무튼 성산 장기려 박사를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후지이 다케시, 필요하다면 그에 대한 문서적 조명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꼼꼼하게 정리한 책 뒷편의 참고문헌을 보며, 장기려 작사가 <부산 모임>에서 연재한 글들에 많이 집착이 간 것도 사실입니다. 섬기던 교회와 별도로  매 주일 오후에 복음병원 등에서 가졌다던 부산모임. 그 모임에서 발행한 회지 <부산 모임>에 장기려 박사는 엄청난 글들을 실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들 글들을 번역해 소개한 건들도 제법 된다고 합니다.(그는 제도권화된 교회에 많은 환멸을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탐욕과 이기심 등...)

 

저는 장기려 박사의 헌신적 삶의 비밀을 그의 글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헌신은 그의 인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입은 은혜로부터 왔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것은 그의 삶과 그의 활동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평생에 이 세상에 배푼 그 선행의 저력을 보기위해서는 그 실천의 모토가 될 그의 신앙관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가 저술한 신앙고백적 글들을 통해서 말이죠....

 

 

 

k***c 2009.05.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장기려, 그 사람 - 지강유철
"장기려, 그 사람 - 지강유철" 내용보기
원문 : http://blog.naver.com/ianstream/80109792719     생전의 성산 장기려 박사 - 인제대 강의실에서   며칠 전은 우리 역사에 분단의 아픔을 남긴 6.25 였습니다. 세대에 따라서는 이 날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겠네요.개인적으로는 6.25 를 우리 사회에 이데올로기로 인한 분열이라는 큰 아픔을 남긴 사건으로 바라봅니다.아직까지도 툭하면 나오는 "좌빨"
"장기려, 그 사람 - 지강유철" 내용보기

 

 

원문 : http://blog.naver.com/ianstream/80109792719

 

 

생전의 성산 장기려 박사 - 인제대 강의실에서
 

며칠 전은 우리 역사에 분단의 아픔을 남긴 6.25 였습니다.
세대에 따라서는 이 날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6.25 를 우리 사회에 이데올로기로 인한 분열이라는 큰 아픔을 남긴 사건으로 바라봅니다.
아직까지도 툭하면 나오는 "좌빨" , "보수꼴통" 과 같은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용어들이 분단의 아픔과 함께 이 사회 곳곳에 너무도 뚜렷하게 남아있는게 사실이죠.

게다가, 교회 안에서조차 복음적 시각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묻힌 생각이나 시각들이 많은 것이 전반적인 현실이기도 합니다.
(관련 내용은 정치교회 참고)


개인적으로 북한은 "공산주의" 라기 보다는 "파시즘"으로 봐야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이만 줄입니다.


아무튼,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도 이견의 차이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또, 쉽사리 분열을 만들 수 있는 문제인 것도 사실이구요.


이념에 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좀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열망과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 이라면 세상에 나가 있는 동안에 많은 고민을 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 시대의 영적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지,
시대의 유행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옳은 일인지 아닌지,
학과의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을 선택할 때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직장에서의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섬기며 살아야 하는지,
영적으로 건강한 개인과 가정, 교회를 위해서는 나의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등등


이런 부분은 신앙의 지식을 쌓음으로써 해결되기도 하지만, 훌륭하고 본이 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간 믿음의 선배를 통해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오 늘 책의 중인공인 장기려 장로님은 이 시대에 분단의 아픔을 남겨준 전쟁의 소용돌이, 한국교회에 발생한 교단 분열의 아픔, 군사정권 이라는 암흑의 시기 그리고 근현대화와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이 시대를 살다간 신앙의 대선배 입니다.

1911년 8월 14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 그리고 199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소천하셨으니 말 그대로 격변의 시대라 불릴 시대 모두를 살았다 할 것입니다.


위에 소개된 EBS 지식채널의 영상에는 많은 부분 누락되어 있지만, 장기려 장로님은 신앙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살다 간 분입니다.

그렇기에 제도권 교회에만 속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행동도 서스럼없이 하셨고, 제도권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던 사람들과의 어울림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선생의 신앙적 행보에 대해서 선생의 주변인물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현재 서초동 소재 산정현교회 김관선 담임목사의 인터뷰를 발췌해 봅니다.

"장기려 장로님은 그 시대의 자유인이었습니다. 어디에도 걸릴 게 없는 분이었지요.
 
왜냐하면 정치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 사는 겁니다. 장로의 자리를 지켜야 하면 그렇게 못 사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는 거죠. 교회에서의 위치? 역시 마찬가지죠.

성 산 장기려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모여서 논문 발표를 하였을 때 이런 부분에 논란이 있었는데, 저는 그래요. 우선은 논문을 발표하는 분들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서술이 제대로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려에게 문제가 안된 것이 왜 글 쓰는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분 속에서 읽어 내면 하나도 문제될 게 없거든요.

해석이 잘못된 것이지 장기려 장로님이 잘못된 것이 아니거든요. 과연 지극히 정치적이지 않고 지극히 욕심이 없는 무소유의 삶을 산 사람을 다분히 정치적이고,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저는 장기려 장로님은 신앙생활 자체가 현실이었고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껍데기가 필요 없었지요.

그래서 무교회주의도 가능하였고요. 그러나 장기려 장로님은 무교회주의도 이념이나 사상으로 보았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분의 스타일 때문에 밀어내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한 마디로 신앙이 삶이었던 것이죠. 그 맥락으로 간 겁니다. 옛날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시 교회 왔던 사람들은 동네에 가서 착하게 살았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 아닙니까. 저는 그 흐름에 장기려 장로님이 서 있었다고 보는 것 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저 역시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대선배를 닮아가기 위함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살다 가신 모습이 그 분의 삶에 투영된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유대민족으로 나셨지만 그 당시 율법으로 정죄 받던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식사하시고 어울리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술꾼으로까지 오해 받으셨던 그 분의 중심에서 추구하신 삶의 모습과, 제도권 교회 안에서 길러지는 신앙의 모습 사이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인가?"

그렇게 나는 장로님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만납니다.


장로님에 대해서는 소개하고 싶은 글이나 인용하고 싶은 본문의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 언급하다간 어디서 끝을 내야 할지 모르겠기에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성산 장기려 선생 10주기에" 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할 때 결론으로 대신 읽힌 칼럼을 소개함으로 두서 없는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성인 한 분을 잃었다. 그분에게 위대하다거나 성인이니 하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셨고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받기를 원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그 어른을 생각하는 것은 그분이야말로 이 민족의 분단의 상처를 가장 진지하게 지고 가신 분이셨고, 민족통일 문제와 함께 꼭 떠올려야 할 분은 바로 장기려 박사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젊었을 때부터 그는 의료를 통해 예수를 닮아 가려고 노력하였다. 일제 치하에서나 해방 후 북한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어떻게 의료세계에 구현할 수 있겠는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했던 분이었다.

...

피란 내려온 많은 사람들이 분단의 장기화에 대비하면서 피란지에 정착하려는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꾸미기 시작했다. 배우자와 자식을 북에 두고 가정을 새로 꾸민 분들도 있었다. 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우리는 이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분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이해하려고 한다. 두고 온 식구들과 새로 정착한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아파하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이것은 우리 시대가 겪는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느꼈다. 이런 와중에서도 장기려 박사는 북에 두고 온 부인과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그 외로움을 달래고 참았다.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일시적인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었다. 남북에 있는 동포들이 서로를 위해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통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i*******m 2010.09.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