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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경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이동을 싫어하는 나는 여행이 별로지만 아이들이 어디 다닐 나이가 되자 어쩔 수 없이 여행이란 것을 한다. "아이들 여행의 시작은 경주다"라는 생각에 경주로 행선지를 정한다. 중학교때인가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20년만에 가는 경주여행이다. 경주가 거기서 거기지 뭐 별다를게 있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주 지도를 들여다 보니 내가 생각하던 그런 경주가 아니었다. 경주에 가볼 때가 이렇게 많았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불국사,석굴암, 능, 첨성대 정도만 보고 오려 했는데 경주가 그리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천년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고 이백년은 우리나라의 중심이었다고 지도가 내게 말했다. 이 책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은 경주 여행전부터 추천 받은 책인데 역시 경주가 별거 있냐라는 생각에 잊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 책부터 생각이 났다. 부랴 부랴 구입후 읽게 되었다. 읽고 경주여행을 떠났어야 했는데 ......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지리역사학자인지 역사지리학자인지 정체가 모호한 이기봉이란 학자의 책이다. 경주를 지리와 역사의 흐름에서 파악한다. 좌도우사(左圖右史)라고 왼쪽에는 지도책을 오른쪽에는 역사책을 펴고 공부했다는데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좌도우사의 모범을 보여준다. 저자는 고고학 발굴결과, 지도, 그리고 역사문헌등을 종합 분석해서 4가지 주제를다룬다. 첫번째는 경주의 크기와 인구수를 둘러싼 논쟁이다. 기존 주류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에 기록된 "왕경"의 호수를 오류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반박 경주의 크기를 거대도시로 살려낸다. 두번째 6부설화를 고증함으로써 삼국사기의 진실성을 입증한다. 세번째, 네번째 땅에 기록된 사실을 지도로 보여줌으로써 정복국가로서의 신라와 왕경 경주의 발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지리학적인 고증을 통해서 골품제도의 특징과 신라인의 생활 모습, 불교의 수용과 관련된 경주의 변화까지 다양한 모습들을 설명한다. 땅에 남아있지 않은 사실은 없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뿐이다. 역사의 흔적은 문장이나 문자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무덤이나 건물에도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문화와 언어 가운데서도 역사의 흔적은 발견된다. ~~~수도는 국가 최고의 중심지이며, 국가의 핵심적 특징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 바로 수도이다. 수도의 형성,번영,쇠퇴도 국가의 건국,번영,멸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수도에 대한 이해는 국가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국가의 흥망성쇠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발굴 결과를 지도에 대입한다. 그리고 그 지도를 가지고 역사를 들여다 본다. 지도에서 역사가 일어나 움직인다. 마치 3D영화를 보는 것처럼 역사가 글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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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경주 여행기> 부류의 책은 수없이 많아도 경주라 불리는 도시가 생겨나서 발전하는 과정을 큰 그림으로 그려 낸 책은 시중에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 도시의 발전도 유기적인 생물체와 같음을 알 수 있게 만들어 경주의 또 다른 면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기존 경주에 대한 상식을 새로운 주장을 통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과거 신라 시대의 경주 분위기를 복원한다. 왕경의 호수에 대한 추측, 6촌의 설화, 정복국가의 흔적, 절이 만들어진 지대의 비밀 등을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기에 나름 흥미있게 책을 넘길 수 있다. 다만 책 자체가 논문을 바탕으로 옮겨 그린 것이라 딱딱한 문체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다. 나야 본래 논문 읽는 것을 즐겨하니 큰 상관은 없지만.. 대중들이 읽기에는 솔직히 쉽지가 않다. 이 책을 기본으로 하여 흥미로운 소설체 문체로 그려본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6부 촌들의 발전 단계를 넘어 박씨와 김씨들의 대립, 경주가 김씨 왕조 독점으로 이어지며 변모하는 모습, 다음으로 절이 만들어 지면서 불국토로 이루어지는 과정, 통일 이후의 경주의 위세, 최전성기를 달리던 경주의 모습, 마지막으로 견훤의 습격과 함께 무너지는 1000년의 도시.. 이런 식으로 말이지. 한국 도시 중에서 탄생과 무너지는 과정을 흥미있게 끌고 갈 수 있는 주제로는 단연 경주, 평양 정도가 아닐까? 평양은 그런데 지금 북한의 수도이니 넘기고.. 사실상 경주만한 주제가 없다. 이처럼 왠지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는 책이었다. 내가 느낀 아쉬움은 결국 누군가의 손으로 그려지리라 생각한다. 그게 나라면 더 좋은 일일테고... 다른 작가여도 만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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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리학자에 의한 신라의 수도와 역사 연구서이다. 기존의 해석과 다른 참신한 의견들이 많다. 저자는 "단편적인 사료일수록 여러 지식이 결합된 복합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91쪽)고 말한다.
고대도시 경주는 신라가 주변국들을 정복하면서 왕경이 되었다. 왕경은 왕도(왕성)와 6부 지역으로 구분된다. 신라 수도 경주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까? 삼국유사에 17만여 호가 살았다고 하는데 17만 명의 착각이라고 해석하여 왔다. 1호당 대략 5명씩 사는데 고대에 100만이 넘는 인구가 한 도시에 살 수 없다는 근거에 의해서다. 이 책에서는 한반도의 규모가 작다는데 지나치게 이끌리지 않는다면 고대도시 경주인구 100만은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헌강왕 때 신라사람들이 기와집짓고 숯으로 밥을 해먹었다는 기사와 함께 태평성대가 다 왕이 잘 다스려서 그렇다는 기사가 있는데 그 후 불과 십여 년 지나 진성여왕 때 신라는 폭동과 반란으로 전국이 혼란스러워 통치영역이 경주 일대로 쪼그라드는 사태를 맞게 된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했었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도시는 관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체제가 붕괴되어 가는 것과 무관하게 잘 굴러가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신라는 정치적 전성기 이후에 경주의 전성기가 펼쳐졌다고 설명한다. 전성기 때 경주는 온돌을 사용하지 않아서 취사 도구로 숯을 사용하였을 뿐 땔감으로 나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숯은 가벼워서 경주 외곽지역에서 충분히 공급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6부에 관한 해석도 많이 다르다. 신라 6부는 주변국을 정복해가는 주체였으므로 왕과 함께 지배자집단이었으며 법흥왕때 왕권이 비약적으로 신장될 무렵 이전까지 신라왕은 한 부의 대표에 불과했다. 또한 건국신화 속에 보이는 6촌 이야기는 후대에 조작되었으니 6촌과 6부는 관련성이 없다고 본다. 이책에서 6부는 6촌이 그 뿌리였으며 6부로 개편될 적에 왕 지배하에 들어갔다고 해석하였다. 왕실은 이주민집단을 받아들여 지배체제를 굳혀갔고 6촌은 6부로 바뀌면서 6두품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왕은 신라역사의 초반기부터 6부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신라왕은 언제쯤 강력한 지배자가 되었을까?
이 책은 신라 왕경이 형성되고 변화해가는 모습도 설명하고 있으며 지리학자의 예리한 안목으로 6부의 위치를 재현해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신라왕경이었던 고대도시 경주의 실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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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리학자로서, 전통적으로 역사학의 분야로만 여겨지던 신라의 수도 경주를 연구했다. 과거 신라왕조 시대의 경주라는 공간을 지리적 상상력을 통해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시되는 경주, 그리고 신라의 모습은 우리가 학교 국사시간에 배운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통설인 "인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점진적으로 증가해 왔다"는 것을 비판한다. 여러 요인에 따라 증가하기도 했다가 감소하기도 하면서 장기적인 평균을 유지했다고 본다. 따라서 신라후기의 오랜 기간의 왕조 안정기에는 인구가 조선시대보다 반드시 적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 전체의 인구수나 호수를 납득할 만한 근거 없이 과소평가하여 신라의 왕경에 17만 8936호가 살았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일소에 부쳐서는 안된다.(p.35) 그리고 기존의 왕경의 범위와 6부의 위치 설정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비판한다. 6부의 위치와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점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6부의 지리적 위치를 문헌연구와 현지답사를 통해 비정한다. 여섯 개의 촌은 기본적으로 산줄기로 나누어졌으며 경주 시내 부근에서는 물줄기에 의해 경계가 보완되었다.(p.204) 그리고 각 촌락이 만나는 저지에 왕경으로서의 경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장소성의 형성과 그 변화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신라왕조의 불교 수용과 사찰 입지, 왕릉 입지 및 규모 변화를 추정하기도 한다. 또, 자연지리학에서 배후습지의 개념을 동원하여, 숲과 분황사의 입지를 추론하기도 한다.(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과도한 해석이 개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의 정복국가적 측면에 주목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왕경과 지방의 차별을 사회적(골품제) 측면에서, 그리고 왕관과 무덤 양식의 차별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저자의 주장들은 기존의 신라사 연구와 상반되거나, 주목하지 않던 부분을 부각한다. 한편으로, 저자는 기존의 학설에 비판적인 성찰을 제기하였지만, 저자의 학설이 반드시 진리라는 시각을 보이지는 않는다. 지리적 관점도 신라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리학과 출신으로서, 신라사 연구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지리적 배경에 많은 관심을 두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지리적 배경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는 없기 때문에 그것의 복원을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고 밝힌다.(p.12) 물질이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은 역사적 관점에서의 특정 시점이고, 공간은 지리적 관점에서의 위치, 장소, 공간 등이다. 기존의 역사학계에서의 경주에 대한 해석은 역사적 관점만 견지한 것이기에, 공간이 결여되어 있다. 이 책에서의 지리적 관점을 보완적으로 두고 신라사를 바라본다면, 조금 더 실제와 비슷하게 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고대사라는 부분은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국내 문헌자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두권밖이고 그마저도 후대에 쓰여졌다. 그 외에 금석문 몇 개가 사료의 전부이다. 그렇다 보니 과거를 복원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러한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주는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존의 역사학계에서도 이 책에서의 관점이 적극 수용되어, 과거사의 구체적인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