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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빛깔만큼, 문학에 있어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그 층위가 너무나 다양하다. 플라토닉 러브에 혹하다가도, 치명적 유혹의 불륜 이야기가 넘쳐나는 걸 보면 사랑에 관한한 독자는 늘 뭔가 새로운 것, 강한 것을 원하나보다. 내가 알고 있는, 경험한 사랑은 정말 무미건조하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을 하게 되면 '낭만적 편집주의자'가 된다고 했던가? 글쎄다. 내겐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상황이다. 사랑의 결핍을 늘 아쉬워하던 내게, 한 권의 책이 찾아 들었다.
이젠 어느 정도 식상한 문구가 되어 버린 이 말.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죄로 당신을 고소합니다. 사랑을 그대로 지나치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등한시한 죄, 핑계와 편법 그리고 체념으로 삶을 영위한 죄로 망자(亡者)의 이름을 빌려 당신을 고소합니다. 극형을 받아 마땅하나 피고를 평생 고독형에 처하는 바입니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등장하는 이 말은 낭만적 편집증에 걸린 한 남자(시몽)가 연상의 여인(폴르)에게 바치는 치기어린 사랑 고백이다. 39살의 폴르에겐 바람기 가득한 애인 로제가 있었다. 그런 그에게 분명 실망을 하면서도 이것이 나름의 사랑법이라 믿는 그녀. 폴르에게 어느날 25살의 멋진 청년 시몽이 눈에 들어온다. 배신을 생각할 수 없던 그녀에게 시몽은 에두르지 않고 마음을 파고든다. 젊은 남자의 사랑 고백에 끝없이 흔들리는 그녀. 결국 위험한 사랑을 피해 로제에게 돌아가고 마는 폴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시몽의 말 한마디가 폴르에겐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사랑에 대한 관념을 뒤바꿔 놓는다. 이 대목에서 절대 공감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어느 순간 기약없이 찾아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치 최승자 시인이 서른살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죽을 수도 없고, 이렇게 살 수도 없을 때 그렇게 서른이 찾아온다고 했던 것처럼.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유년시절부터 지독하게 외로웠다. 누가 보더라도 화목한 가정이었지만,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폭력(특히 술에 취한 후)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매일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지 여부가 일과의 가장 중요한 확인 사항이 될 정도로. 지금에도 치유되지 못한 상흔으로 남았지만, 그 당시 누구에게도 말못할 고통에 늘 고개를 숙이며 다녔다. 한없이 움츠러들며, 친구 관계는 물론 나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 소통의 문을 닫았었다. 그러면서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하소연하고 싶은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초등학생 이래로 현재까지 내 곁에 여자란 존재가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다. 혹자는 바람둥이라 할 지 모르겠지만, 그 존재가 친구이든, 애인이든, 현재의 아내이든 내겐 나를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사랑은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존재와의 만남 정도로 인식했던 터. TV 드라마나 주위 친구들의 불같은 사랑을 접할 때면 머리를 갸웃거리기 일쑤였다. 대체 사랑이 무엇이며, 어떤 감정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미성숙한 성인으로 자랐던 것이다.
결혼 전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직장생활 초창기라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났고, 모든 일상은 붕괴됐다.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게 과연 사랑이었을까?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미안함이었는지, 아니면 오갈 데 없는 연민이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당시의 감정. 슬프긴 했지만, 그 슬픔의 정체를 이해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냥 내 몸의 일부라 여겼던 존재의 죽음. 미안하게도, 정말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찾아드는 대답은, '이건 사랑이 아니었어'였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시기도 갑작스러운 여자친구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해 술로 일상을 허비하던 때였다. 직장 동료였다. 영혼의 촉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위로받고 싶다며 고개를 처들었고, 그런 나를 아내는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7년을 넘게 만나고 있는 애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아내의 위로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매일 업무를 마치고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면, 말없이 앉아 술잔을 채워주는 것. 밤새도록 그렇게 가만히 있어 주는 것.
그렇게 새로운 직장에서 3달 정도를 보냈을 즈음이었다. 그날도 술을 마시고 흠뻑 취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아내가 차창을 열고 고개를 가만이 내밀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읊조리는 말, '바람맛이 참 좋다'. 글쎄다. 왜 이 말이 온 영혼을 뒤흔들 정도로 내게 충격을 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취기가 오른 그 상황에서 나는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나 정말 이 여자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물론 아내에겐 정말 아내를 사랑하는 훌륭한 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아내는 그 애인과 헤어지고, 나를 택했다. 몇년 후 당연스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린 결혼을 했고, 지금은 4살 난 딸아이가 안방 침대에서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작은 볼륨의 책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추억은 몇 권의 장편소설을 읽는 듯 끊임없이 반추됐다. 물론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폴르는 결국 14살이란 나이 차이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내 주위만 살피더라도, 많은 연상 연하 커플을 볼 수 있다. 결혼에 성공한 커플도 있지만, 중도에 헤어진 커플도 상당하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연하보다는 연상 쪽에서 더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자격지심, 죄책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별을 먼저 택하는 것이 연상쪽이란 얘기다.
얼마 전 개봉한 캐서린 제타 존스와 저스틴 바사 주연의'사랑은 언제나 진행중'에서도 이런 양상이 등장한다. 마흔살 여성이 25살 남성과의 사랑에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현실을 직시하고 이별을 택한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수줍게 두 손을 맞잡는다. 여기서도 도망가는 쪽은 연상 족이었다.
국경과 나이, 심지어 성별까지 초월하는 것이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마음이 관건이라 하겠다. 절실함의 문제라 생각했다. 당장 죽을 듯한 고통이 찾아오는데 어찌 그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나도 그랬다. 새벽 시간, 도로를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바람맛을 얘기하는 지금의 아내를 바라보며, 이것이 운명이다란 분명한 암시를 스스로 내렸다. 적어도 아내가 아니라면,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고.
누구에게도 사랑은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것이다. 다만 장영희 선생은 소설은 남의 인생을 대신 한번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시몽은 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그녀에게 물었을까? 여기에 대한 실마리는 역자 길해옥 님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브람스는 자신의 은사이자 후견인이었던 슈만, 그의 아내 클라라를 보며 사랑에 빠졌다. 이룰 수 없는 사랑, 14살 연상인데다 은사의 아내인 그녀를 보며 브람스는 평생 지고지순한 사랑을 음악에 담는다. 결국 클라라가 77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할 때까지 브람스의 사랑은 계속 된다. 심지어 클라라가 사망한 후 일년만에 브람스 역시 세상을 떠난다.
결국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안타까운 결말로 끝을 맺는다. 사강 또한 시몽을 통해 브람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불가해한 사랑의 미로 속에서 시몽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폴르의 입장은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역자의 이야기가 재밌게 펼쳐진다. 사강의 개인사부터 이 작품에 투영된 다양한 의미를 알기 쉽게 짚어낸다. 사강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 20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슬픔이여 안녕>에서부터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년 후> 등 인간 사강이 직시한 사랑의 다양한 빛깔들을 맛보고 싶다. 더불어 사랑은 뜻하지 않은, 우연한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무미건조했던 내게 '바람맛이 참좋아'라고 했던 지금의 아내가 찾아왔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겐 어떤 말로, 어떤 계기로 사랑이 찾아오게 될지 궁금하다. 역시 사랑은 불가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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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함께 찾았던 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을 만났다. 저자와 제목만 알고 있던 이 책을 우리 둘 다 큰 고민없이 선택했다. 브람스, '가을'이란 계절에 나에게 찾아왔던 그 신선한 감동. 제목 때문에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골라들게 되었던 책이다. 더불어 어릴 적부터 막연히 동경해 온 프랑스란 나라, 그 속에서 자란 한 작가의 감수성을 대리만족 하고픈 욕구도..
폴르, 로제, 시몽 이 소설의 축을 이루는 인물이다. 책을 읽는 내내 폴르(여)와 로제(남)는 그 성별이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는 남녀가 바뀐 느낌이 들기도 해서.
그저 평범한 연인인 폴르와 로제의 일상에 들어온 미남의 젊은 청년인 시몽은 폴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만 14살이라는 나이차의 연하남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란 움직인다고 했던가. 적극적인 젊은 청년에게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폴르의 연인인 로제는 어쩐지 이 애송이 청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설마 자신의 여자가 이 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러는 자신은 다른 여자와 마음껏 즐기고 있었으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 여자는 모르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가진 이 남자. 하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나약한 한 남자일 뿐이었다.
다른 파트너를 만나게 되면서 자연히 멀어진 두 사람, 그러면서 이들이 깨닫는 진정한 가치는 둘은 서로를 잊지 못한다는 것,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서로라는 것.
과연 사강은 자신의 책에 이런 제목을 왜 붙였을까? 많은 음악가들 중에 브람스를 택한 이유는?
역자의 후기를 읽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브람스, 클라라 슈만, 로베르트 슈만. 브람스는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를 그가 눈감을 때까지 사랑한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폴르와 시몽처럼 나이차가 있었지만 시몽이 폴르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잠시지만 사랑을 나누었으나 브람스를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안고 자신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클라라 슈만에 대한 브람스의 독백을 보면 그의 마음을 다 가져간 그녀에 대한 가슴시린 사랑이 전해진다.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처구니없이...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외로운 것입니다
이런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작가가 이 책에 투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역자의 조심스런 생각을 통해서 엿보게 되었다.
얼마든 변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랑, 그러나 그렇게 쉬운 만큼 또한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나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사강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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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15살 연하와 사랑에 빠진 여자와 그녀와 사랑에 빠진 청년 시몽의 이야기를 아주 담백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당시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고 하는 사강의 속마음이 표현되어 있다고 해야할까? 불안해하고 어쩔 줄 모르는,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가는 여인의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