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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바쁜 세상이다. 담배도 니코틴 패치로 대신해야 할 지경이다. 부릉부릉, 사람들의 방귀소리가 어쩐지 엔진의 시동 소리처럼 들린다. 자체 엔진을 갖게 되었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다. 감당하지 못할 추진력에 떠밀려, 대기권을 뚫고 나간다면 어디 소유즈호라도 만날 계획인가.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몰라도 사람마다 다 이유가 있겠고, 어떠한 만남이라도 바쁘다라는 핑계라면 다 용서가 되는 요즘이니... 모임이 있어 전화를 하면 너도 바쁘고 나도 바쁘고 그렇다면 도대체 안 바쁜 사람은 누군가? 언젠가 윤도현은 이런 말을 했다. 앨범 한 장 온전히 듣기가 힘든 세상이라고.
그런 얘길 들으면 어쩐지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앨범 한 장 온전히 듣기가 힘든 세상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가보다.
앨범 한 장 듣기 힘든 세상이란 비단 시간의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원더걸스의 2집을 처음부터 다 들어보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나는 '텔미'만 열심히 들었다.
이런 마당에 Mono & World's End Girlfriend의 앨범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쩐지 조큼 미친 짓, 한편으론 쑥스러운 짓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앨범은 다섯 부분으로 잘려져 있지만 그건 연속의 불연속이다. 끊어서 들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영화보듯 죽죽 들어나가야 한다. 자그마치 70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 이건 음반이라기보다 영화다.
제목도 아주 거창하다. palm은 손바닥이란 뜻이다. palmless prayer 는 손바닥 없는 기도다. 손목이 없는데도 두 팔을 모으는 아주 경건한 모습을 생각케 하는데, 음반을 듣고 나면 두 손을 하도 싹싹 비벼서 지문이 닳듯 손바닥도 닳아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mass murder가 나온다. 이때쯤 되면 장난이 아닌 거다. 뭔가 한 번 해보겠다는 거다. 세상에나 2005년에 mass murder를 갖고 뭘하겠다는 거지?
refrain은 '삼가다'란 뜻이 있다. msss murder를 refrain 하란 얘긴데, 여기서 refrain은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가사가 유절형식의 시구(詩句)로 된 성악곡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동일한 시행(詩行)'이란 새로운 단서가 나온다. 뭔가 어려운 말 같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안다. 이 음반은 음의 구절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조금씩 건축이란 걸 해나간다.
나는 포스토록이 어떤 건지를 아직도 감을 못잡겠다. mono 앨범은 몇 장 들어봤는데 대단히 드라마틱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어떤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뭐랄까. 세상은 우리가 구한다, 정도랄까. 솔직히 이런 건 좀 멋진 거다. 아직도 지구는 물심양면으로 전쟁중이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뮤지션이 있다는 건 gorgeous하다 못해 brilliant 한 거다. 그리고 이 앨범도 세상은 우리가 구한다의 연장선으로 들었다.
이 앨범은 모짜르트라기보단 베토벤이다. 음의 위도와 경도를 조율한 음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분히 관념성이 강하다. 관념이라니... 그러니까 사상이다.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사상. 정말 뭔가를 해보겠다는 게 아니면 미친 거라고 보면 된다. 이런 시대에 이런 앨범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나는 하나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mass murder 라는 타이틀을 달지만 적극적으로 슬퍼하고 있지는 않다. 슬픔이라기보다는 애도이고 만류이다. 각 트랙의 네임이 trailer가 되어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trailer는 영화의 예고편을 의미한다. 과거의 것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 이미 지나온 것에 대한 음악적 발언이 아니기에 슬픔보다는 만류이다. 다가올 mass murder를 향하여 제발 그러지마. 이러지 말자. 안 할 거지? 우리 지구를 살려보는 게 어때? 그러지 말고 우리 꿈을 꾸어보지 않으련? 과 같은 기도의 성당을 줄기차게 refrain의 형식으로 건축하고 있다. 그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한편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관념적이라고 나는 말은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 앨범엔 물론 관념이 전제되고 있지만 충분히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핑크 플로이드의 일관된 드라마틱이 떠오르기도 하며, 특히나 초반의 음의 지반 공사는 지겨울 정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촘촘하고 치밀하다. 비유가 맞을런지는 모르지만 마치 타란티노의 지반 공사 같다. 타란티노는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기나긴 대화로 푼다. 그러나 지반 공사의 긴장감이 점진적으로 커지고 확산해가는 걸 보면 캐논의 움직임과도 흡사하다. 어쨌거나 refrain이며, 마지막 희망을 노래하는 부분은 무척 아름답다. 정서의 고양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럴 땐, 존 카메론 미첼의 영화가 생각난다. 희망을 부르는 대단원의 엔딩.
이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나보다 이 앨범을 많이 들은 사람은 없었을 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줄기차게 들었다. 그 와중에는 텝스 시험도 있었는데 독해 문제를 풀면서 음악의 구절을 흥얼거리게 될 정도였다. 그 후로 희한하게도 암울한 기분에 휩싸일 때는 이 앨범의 구절이 떠오르게 된다. 이를테면, 엊그제의 선거 결과라던가. 지금 티벳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와 폭동 그리고 진압이라던가. 북한의 굶주리고 있는 주민이라던가. 한반도 대운하를 기다리고 있는 아직 살아있는 생명들의 울음소릴 생각할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앨범의 장면들을 떠올리고 흥얼거리는 것이다. 나는 이 음반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trailer5, 마지막 트랙을 떠올리고 싶은데 그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헤드폰을 쓰고 마지막 트랙을 홀로 재생해 본다. 현실에서 울리지 않는 음악을 이 음반은 들려주고 있다.
모두가 참 바쁘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바쁜지, 바쁨의 끝에는 향해가는 목적지가 있긴 한 것인지. 부디 46%의 투표율의 끝에는 mass murder 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음 좋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음악도 짧아진다. 5분, 4분. 조만간 30초짜리 음악이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그건 흡사 니코틴 패치와 같은 거다. 이럴 때엔 다른 걸 다 떠나서 아직도 이 지구 상에 70분짜리 음반을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감동이 된다. 다행히도 이 음반의 음악적 직관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 뭐 듣지 않아도 좋다. 그냥 이런 앨범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뒤샹의 변기와 같은 충격을 받을 수 있으리라. |
| 멋지고, 환상적이다. 이렇게 긴 연주를 지루함을 느끼지않고 긴장하며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 준 이 앨범의 작곡가는 많이 유명한 사람들이란다. 나같은 사람이 들어도 그들의 재능이 범상치않음을 알 것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