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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7. 03 구매) 역시 로빈슨 크루소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로빈슨이 막 무인도에 도착해서 정착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아닌가 싶다. 정착할 곳을 찾고, 동굴과 집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염소를 키우게되기까지의 여정을 자세하게 읽을 수 있는 게 좋다. 뒷부분은 좀 설렁설렁 보게되는데, 로빈슨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여럿 나오면서 결국 배경이었던 섬을 떠나는 게 조금 아쉽게 느껴져서 그런가보다. |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랬듯이 아들도 평안한 중산층의 삶을 살기 바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집을 나선다. 결국 그는 모험을 온전히 해낸다. 나는 그가 터키 해적에게 잡혀도 탈출했고, 조난 당한 배에서도 살아 남고, 브라질에서 농장을 불려나갈 수 있었고, 의식주를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던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18살이 된 아들에게 안전한 삶을 살길 바라던 그의 아버지의 말이 공감이 가면서도 어쩌면 그것은 삶의 옳은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이 아비의 조언을 무시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거다. 로빈슨 크루소도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아버지의 말을 상기시키며 후회도 한다. 늘 모험을 떠나는 사람인데 젊었을 때 집을 나서지 않았다면 죽기 전에 땅을 치고 후회했을 사람이다. 그의 모험이 모험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중산층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을 잘 받고 컸다. 자식이 받을 수 있는 기본 교육 특히 생존에 필요한 교육은 필수라고 생각된다. (독서, 수영, 언어, 체육, 수학) 오늘날에는 로빈슨 크로스가 살던 시절만큼 위험요소는 많이 줄었다. 그렇기에 그처럼 도전을 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매우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의 도전정신을 키우고 세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자립적인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의 최종 목적은 독립이라고 한다. 집을 나섰다는 것은 자신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가 세상이라는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도전으로 경험을 쌓아나간다. 나는 그의 모험에서 자본주의에 맞는 성공적인 교육 모델이 로빈슨 크루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우수한 명문대 합격 사례보다도 더 깊게 와닿았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하는 그의 자세는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까라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혼자 있는 무인도에서도 아픈 날을 제외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노동을 한다. 작가 대니얼 디포는 청교도였다. 청교도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승으로부터 스스로를 깨끗이 지키려는 신앙운동을 벌여 엄격한 생활의 윤리를 나았다. 그래서 금욕주의적 삶의 방식인 청교도 정신을 가져왔다. 작가의 사상이 로빈슨 크루소의 삶의 방식에도 그대로 묻어나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표현한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자본주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규칙이 존재하는 듯했다. 로빈슨 크루소가 브라질 농장에서 노예 매매를 위해 아프리카로 항해할 때, 배에 탄 사람은 로빈슨 크루소를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로빈슨 크루소는 죽음 대신 무인도에서 28년간 지낼 운명에 처한다. 한마디로 죽음 대신 고독을 택했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전 몇 년간 식인종에게 잡아먹힐 뻔한 인질 프라이데이를 구해주거나, 부하들의 손에 버려진 선장을 구해주는 등 생명의 은인을 자처하다가 자신이 바라던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자신의 후견인과 무어인의 노예로 살다가 몰래 탈출에 성공해 구조될 때 도와주었던 포르투갈 선장에게 감사하고 보답하니 다시 그에게 막대한 부가 은혜처럼 돌아온다. 한마디로 고전 다운 결론 즉, 불순한 의도엔 그에 따른 벌을 받고, 선행과 사랑이 들어간 의도엔 복을 얻게 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소설의 한계점도 존재한다. 작가가 소설을 쓴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인 문화에 대해서는 미개인, 끔찍하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내비치면서도 자신이 자처했던 노예 매매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하늘을 원망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이것은 당시 제국주의 사회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시기는 1719년이다. 당시 영국이 뒤늦게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시기였다. 이 책이 단순히 모험만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이유는 그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p463 숫자와 계산을 중요시한 18세기 유럽의 시대상을, 보다 넓게 말하면 자본주의와 중상주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로빈슨 크루소가 하는 여러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개인주의, 프로테스탄티즘, 제국주의 등과 같은 18세기를 특징짓는 시대정신을 볼 수 있다. 그의 시각은 서구 문화와 기독교를 중시한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배를 타고 항해를 했고, 노예를 잡아 노동력을 증강시키는 것과 로빈슨 크루소 개인이 한 행동이 별반 다를 게 없다. 당시 터키라는 강력한 나라가 아시아로 가는 길목을 막아서 망정이지 아시아 국가에게까지 노예를 조달하기 위해 침략했다면 우리가 이 책을 보고서 경탄하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스페인인과 프라이데이 아버지가 협상하고 데려올 16명을 두고 떠나는 것도 아쉬웠다. 로빈슨 크루소도 늘어난 인원에 적절한 대비가 되지 않아 6개월간 경작량을 늘리고 가축수를 늘려 생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가 16명이나 늘었다면 섬에 두고 온 인질 3명도 있기에 미래가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이 부분에서 인간적인 면모는 부족해 보였다. 다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갔다면 더 멋진 귀국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꽤 많다. 무인도에서의 로빈슨 크루소 일상은 오늘날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내용들과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 일기 쓰기, 고독하며 나 자신을 돌이켜보기, 감사한 일 떠올리기, 성경(책) 읽기 등이다. 이 활동들은 우울했던 정신을 극복해 주는 중요한 단서였던 것 같다.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무인도에 떨어지면 어떤 책을 가져가고 싶냐는 질문에 '안나 카레니나'라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나는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로빈슨 크루소'를 들고 가고 싶다. 무인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자세한 방법들도 많이 적혀있다. 그 방법들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감사함을 실천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로빈슨 크루소가 처한 상황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 있지만 지금 누리는 것에 감사하지 않고 불평만 하고 있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명절 지나고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책에 나온 구절 을 읽다가 숙연해진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그 앞에서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식사 때면 자주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고, 넓은 들에 식탁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밝은 면을 더 많이 보고 어두운 면을 덜 보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내게 없는 것들보다 내가 누리는 것들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위안을 얻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편안하게 즐길 줄 모르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탐하는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없는 것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
| 네버랜드 클래식을 하나씩 사서 모르고 있는데, 이번에 아이가 고른책이 로빈슨 크루소네요. 저학년용으로 엄청 간추린 책만 읽었었는데 제대로 된 책(?)을 읽으니 훨씬 재미있다고.. 며칠만에 금방 읽었어요. 남자아이라그런지 이런 모험/탐험 이야기를 엄청 좋아라 하더라구요. 저도 어렸을때 읽긴 읽었던거 같은데 내용이 통 기억이 나질 않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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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는 유명한 이야기다. 무인도에서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살아남은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은 대부분 알 것이다. 하지만 직접 읽어본 사람은 적을 거라 생각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뭐하러 시간을 들여 읽겠는가. 내가 이 책을 읽어보자고 생각한 것은 그냥 한 남자의 무인도 탈출기가 도대체 왜 고전 문학이 되었는지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러는지 궁금해서다.
읽어보니 무인도 생활과 탈출기는 이야기의 가운데 부분이고 그 전과 그 후에도 노예 생활 탈출기나 늑대 물리치기 등 다른 모험담이 있었다는 게 의외였다. 게다가 무인도에서 이런 식으로 생활하면서 28년이나 혼자 사는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단순히 작가의 상상일 뿐 아닐까? 내가 똑같은 상황에 빠졌다면 도저히 28년은 못 버틸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일을, 이야기일 뿐이라 하더라도, 해냈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그 와중에도 좋은 면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나씩 아무리 느린 속도여도 꾸준히 해나갔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생활을 개선시켜 나갔다. 그러면서도 항상 조심성을 잃지 않고 만약의 사태를 미리미리 대비해둔 덕에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섬에서 나올 수 있었다. 초반에 부모님이나 주위의 조언을 무시하고, 심사숙고의 과정도 없이 자신의 욕망과 이끌림만 따라서 배에 올랐던 철없는 젊은이의 모습과는 달랐다. 역시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나 보다.
젊은 날을 섬에서 다 보내고 50대가 되어 돌아왔지만,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돈도 아주 많이 가지게 된 해피엔딩이다. 농장을 대신 운영해주고 재산을 관리해주었던 주위 사람들이 다들 비현실적으로 성실하고 착한 듯하다. 실제로는 분명 재산을 중간에 가로채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텐데.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려서 비현실적이다. 또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비난하는 것이나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노예나 하인으로 부리는걸 당연하게 여기는 등 그 때 당시의 가치관은 아이들이 읽을 때에는 잘 설명해주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겠다. 식인종에 관한 묘사도 사실에 바탕을 둔게 아니라 작가가 잔뜩 부풀려 상상해서 묘사했을 것 같다. 1700년대에 쓰여진 이야기니까 감안하고 읽어야하겠다.
하지만 무인도에서 생활을 꾸려나갔던 주인공의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좋은 면을 찾고, 감사의 태도를 가지고,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 과거의 실수나 행동은 반성하고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늘 미리 조심하고 대비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말로만 들었던 책을 직접 읽고 진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어 기뻤고 주인공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 수 있었던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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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는 마냥 아이들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책이고 원작은 훨씬 더 깊은 묘사와 감정선이 들어가있으며 훨씬 더 잔인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그저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행복하게 살고 이런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 읽어줄 내용이었는데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겁고 양이 매우 많다보니 다른 아이들 도서를 찾게 되었다. 이건 성인들이 읽어야할 로빈슨 크루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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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한 권씩 사서 모으고 있는데 남자 아이라서 그런가 로빈슨 크루소 같은 모험이야기를 좋아해요. 책이 두꺼워서 처음에는 질색팔색하고 글씨가 너무 작아서 싫다고 했었는데 한 번 읽어보더니 재미있다고 이런 종류의 책들을 사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두꺼운 책도 잘 읽습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사주면 책의 두께와 상관없이 잘 읽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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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책을 읽을 때 비현실적인 상황들이라고 믿었다. 어찌 이리도 태연히 지낼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표류가 된 주인공의 입장이라면, 나는 인간의 최후의 밑바닥을 보았을 것이다. 도전과 모험심이 평소에 강한 주인공의 성격 덕분인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희망은 꺼지지 않는 불씨와도 같다. 우리는 그 불씨를 지켜나감으로써 인간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