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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크기가 기후의 변화무쌍함에 대응해서 커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에 로빈 던바 교수는 뇌의 크기와 사회집단의 크기(복잡성)과 유관하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우리 뇌의 크기는 인류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존속해오면서 적응의 산물이 아니겠읍니까?
1.약700만년전 유인원(human-ape)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출현해서 현재까지의 주요한 변화의 10단계다 ○ 생존(먹고 번식)하는 뇌에서 사회(상상,상징)의 뇌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2.로빈 던바 교수의 주장은 사회성(크기,복잡함)이 뇌의 크기와 유관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사회(개체수의 증가, 복잡한 사회활동)의 팽창에 대한 대응의 결과물이 인간 뇌 용량의 크기가 확대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3.뇌의 크기에 다양한 요소가 관련이 있다 700만년 동안에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와 발전에 누적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 뇌의 크기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4.던바의 수(150명)를 제한하는 다양한 요소들 아마도 에너지를 획득하는데 무리가 없는 최대의 숫자일 것입니다
5.사회적 무리의 숫자와 뇌 용량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사회적 뇌 가설이다.
6.수렵집단의 밴드(20~30명)에서 농업혁명의 마을의 구성인원수가 던바의 수(150명)으로 제한된다. ○산기슭의 오목조목한 마을의 모습은 인간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표현형이다
7.유인원의 도구도 사회생활에서 탄생했다
8.우리가 먹고 살기위한 공동체에서 사회활동(상징,행복,동질감)을 위한 공동체가 비중이 높아지고 더 중요해지는 것이 뇌의 크기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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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인 클라이브 갬블과 존 가울렛,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2002년 영국의 인문, 사회과학에 관한 국가기구인
영국학술원이 창립 100주년을 기념한 연구프로젝트대회에 공동으로 제안서를 내고 8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채택된다. 그들의 프로젝트 이름은 <루시에서 언어까지: 사회적 뇌의 고고학 Lucy to Language: The
Archaeology of the Social Brain>이었고, 간단히 <루시 프로젝트>라 불렀다. 루시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요한슨과 동료들이 발견한 인류의
고화석에 붙인 이름이다(워낙 유명한 화석이라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
말하자면 인간의 뇌 발달에 대한 연구인 셈이다. 연구는
2003년부터 7년간 수행되었고, 이 책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아마 논문 형태로도 발표했을 것이고, 보고서도
작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이런 대중적 책이 아닐까 싶다). 그들 연구의 바탕은 ‘사회적 뇌 가설’이다. 사회적 뇌 가설이란, 인간의
뇌가 발달한 이유는 사회적인 압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접촉하고, 공감해야 하는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뇌의 용량도 커지고, 기능도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로빈 던바의 연구와 그 연구의 보급판인 책에서 주장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유명해진 ‘던바의 수’도
여기서 나온다.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가 약 150명이라는
수적 한계가 있다는 것인데, 이 숫자는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형성된 이후에 아주 일관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연구는 바로 이런 가설에 기초한 것이고, 그 가설을 입증하고자 여러 증거들을 모으고, 발굴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책의 원제는 <Thinking Big>, 즉
‘크게 생각하기’다. 이
말만 봐서는 의미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데, ‘크게 생각한다’는
표현은 책의 말미에 가서야 등장한다. 진화 심리학과 고고학의 전문가로서 조금 뒤로 물러서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진화를 바라 본다는 의미로 쓰였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변화한 어느 한 가지 기관이나
기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의미이리라. 그리고 그게 바로 ‘사회성(Sociality)’인 셈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뇌가 지금같이 커지게 된 것은 인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더 세련된 사회성이 요구됨에 따라’). 그리고 그 한계가 지금은 150명이라는 것이고, 그 결과가
5단계 이상의 인지 단계라는 것이다. ‘사회’가
지금의 인간(Homo sapiens)을
만들었다. 사실 내용은 기존의 로빈 던바의 저서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용이 단순 반복만은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그 증거가 풍부해지고, 또 정교해졌다. 그리고 훨씬 그림과 사진이 볼 만해졌다. 몇 가지만 다시 음미하게 되는 것을 얘기하자면, 우선 인상 깊은
것은, ‘인류의 핵심 역량이 직립 이족 보행의 결과로 자유로워진 ‘손’이라거나 신석기 혁명이 일어난 마을과 도시가 아니라, ‘상상의 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현재의 언어로 이어진 흐름도 재미있다. 바로 털 고르기라고 할 수 있는 그루밍에서 웃음으로, 음악으로, 그리고 언어로 이어졌다고 본다. 바로 상대방과의 감정적 공유의 방법들인데, 그 방법들은 일 대 일에서
일 대 다로, 그리고 결국엔 집단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런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번역과 검토다. 우선
오자가 너무 많다. 책에 오자가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이런
정도는 성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래도 오자야 오자인 줄 알고 읽지만,
책을 읽으면서 종종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번역문을 만나야 했다. 학자들의
언어는 선명한 편인데, 원래 문장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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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체가 태어나면서부터 꽤 독립적인 모습을 보인다. 태어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서고, 심지어 껑충껑충 뛰기까지 한다. 그들의 유전자엔 무엇이 생존에 필수적인지가 각인돼 있는 것 같을 때가 많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여느 동물과 달리 부모의 절대적인 돌봄을 필요로 한다. 거의 24시간을 안고, 어르는 부모의 수고는 사회가 성인이 되었다 선언하는 스무 살 이후에도 이어진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인류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는 게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한 개인의 신체에 깃든 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긴 시간동안 인류가 상상 이상의 것들을 성취해 왔다는 점이다. 그것이 신이 부여한 능력에 의한 것이건, 학자들이 진화라 부르는 것 덕분이건. 확인할 길은 없다. 그래도 일반적인 시선과 부족하나마 존재하는 몇몇 증거들을 통해 우리는 추측한다. 충분히 길다 말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시간을 건너뛰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모습은 분명 우리와 달랐다. 두 발로 걷고 손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인류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크기는 400cc를 초과한다.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최초의 호미닌으로 분류하게끔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뇌 크기를 통해 인류의 진화를 논했다. 이른바 사회적 뇌 가설이다. 오늘날 인류의 뇌 크기가 150명의 인간관계를 허락하는 수준의 용량을 보유한데 반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450~570cc)는 60~80명 가량의 인원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뇌의 크기와 사회적 무리의 크기 사이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저자는 주목했다. 현생 인류 이전의 종들이 무조건 작은 크기의 뇌를 지녔던 건 아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사피엔스 모두 1200~1500cc 에 달하는 큰 뇌를 지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현생 인류 또한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놓고 본다면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한 그들은 돌을 쪼개어 도구를 만드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진화에 의존하는 듯했던 가설은 다른 방향을 모색한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사회적 존재인 인류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상호작용 속에서 뇌의 진화 정도를 뛰어넘는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협업 과정을 거쳐 탄생했음을 고려하면, 사회성이야말로 인류를 인류 아닌 것들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혼자였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많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사회 구조는 인류가 홀로 생활했더라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탄생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고도의 의식 또한 집단생활의 결과물이다. 나를 뛰어넘어 ‘우리’ 차원으로 사고를 확장시키며 인간은 혼자 일 땐 고려조차 않았을 수많은 것들을 만들고 발달시켰다. 많은 이들이 발명을 창의력을 타고난 개개인의 성과물로 치부하지만 모든 건 인간이 사회 안에 속했기에 가능했다. 다시금 현생 인류 이전의 시기로 돌아간다. 충분하다 일컬을 크기의 뇌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는 달랐던 종들은 우리보다 큰 소뇌와 후두를 지녔다. 뇌의 많은 영역이 몸의 균형을 잡고 생존을 위한 소화나 체온 유지 등을 위해 사용됐다. 오늘날에도 소뇌는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부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크기를 놓아 보았을 때 소뇌보단 대뇌가 훨씬 더 큰 면적을 자랑한다. 대뇌를 키움으로써 인류는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대신 줄어든 뇌의 다른 부위가 인류로 하여금 음식을 조리해 먹도록 만드는 등의 또 다른 진화를 낳았다. 무엇이 생존에 더 필수적인지, 인류의 뇌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영국학술원 창립 100주년 기념 연구 ‘루시에서 언어까지:사회적 뇌의 고고학’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다. 자연스레 많은 이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질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은근히 오타가 많다.(초판 1쇄 기준) 한낱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집중력을 발휘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된 것 같아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