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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물론 <인생수업>을 읽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적잖이 '인생수업보다 못하다'는 말도 들려오곤 하다. 그러나 나는 단언하건데, 무엇이 더 낫다 못하다를 거론하기 이전에 이 책은 <인생수업>을 한층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인생수업>이 일종의 개론서라면, 이 <상실수업>은 좀더 심화된 실전편이라고 보면 된다. 고통과 이별을 직접 겪은 많은 이들의 예화가 담겨 있고, 각기 다른 형태의 고통을 겪을 때마다 어떤 감정, 어떤 태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 나는 이 책 <상실수업>이 죽음과 상실에 대한 최고의 책이라고 감히 칭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잔잔한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인생수업>에 비해 좀더 구체화되어 설명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삶에 대한 고통을 어떻게 적절히 대처할 것인지, 마음 하나하나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초연한 조언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상실 수업>을 내 가까운 이들, 특히나 육체적 고통 및 정신적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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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해를 살아오며 지금껏 여섯 번의 상실을 겪었다. 첫 상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난히도 다정했던, 그해 여름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에서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있던 외삼춘의 죽음이었다. 두 번째 상실은 다른 손주들보다 손에 사탕이며, 예쁜 핀을 쥐어주시던 할아버지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TV 뉴스를 통해 접해야 했던 상실이었다. 익사 사고와 교통 사고로 외사촌 오빠와 고모가 세상을 떠났다. 나와 상관없다며 흘겨보던 뉴스 속에서 내 가족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뜬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상실이었다. 사춘기 시절 처음으로 상실이 나를 찾아왔을 때나 성인이 되어 찾아왔을 때나 상실을 받아들이는 내 모습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갑작스런 사고사였든 병마로 인한 예고된 죽음이었든 말이다. 그때마다 장례가 끝나는 순간 무언가 일거리를 만들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캠프에 참가하고 친구들을 선동해 야유회를 가고 뭔가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접해야 할 빈자리를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함께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하루가 아닌 적어도 2박 3일짜리 캠프는 떠났던 것 같다. 이 책 <상실 수업>을 읽는 내내 내가 겪었던 여섯 번의 상실을 돌아봤다. 나는 그때마다 어떻게 상실을 받아들였고 이겨 내려 했던가? 울음을 삼키지는 않았나. 할아버지가 선물한 핀을 머리에 꽂을 엄두가 나질 않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던가. 늘 회피하려고 했다. 밖에 나가 며칠 있다 오면 가족들이 알아서 떠난 사람의 흔적을 치워 주겠지, 빈자리를 알아서 채워 났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상실이 지금 내 앞에 온다면 지난 과거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행동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실을 그렇게밖에 받아들여보지 않았으므로. <상실 수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상실이 얼마나 큰 가르침이고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중요한 수업임을 알고 의연히 상실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젊으니 '상실' 같은 건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이 책을 손에 들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한다. '상실'은 내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난 그저 그걸 피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상실을 이제 의연히 받아들여보라고. 그 받아들임의 자세를 <상실 수업> 이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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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붙이기보다는, '인생 수업 두 번째 가르침'이라는 부제가 곧 제일 정확한 표현이 되겠네요.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전작인 <인생 수업>을 먼저 읽은 독자라면, 이보다 한층 더 심화되고, 더더욱 세밀한 부분까지 다뤄주는 이 책 <상실 수업>을 필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저자는 진정한 슬픔을 겪은 자만이 쓸 수 있는 이 분야에 너무나 정통해 있는 것 같습니다. 겪어보지도 않은 채, 머릿속 지식에만 의존하여 책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저자 자신이 9년간 병상에서 죽음과 싸워가면서 이러한 책을 완성하였기에, 더더욱 그 존재감과 현실감이 배가되는 것 같아요. 슬프지만, 슬플 수만은 없게 만드는 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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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호스피스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 해온 작가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유고작이라는 이유 만으로 가치있는 책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게 되겠고, 우리 중 몇몇은 배우자나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 때 우리가 느낄 심정을 우리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겠다. 불행한 일이지만, 가슴 속이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차 신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고, 끝내는 영화 <밀양>의 신애(전도연 분)처럼 미쳐버릴 수도 있다.
그 때, 이 책 <상실 수업>은 훌륭한 처방전이 될 것이다. 저자는 더 늦기 전에,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풍부한 실제 사례를 예로 들며 절실하게 말하기에 호소력이 짙다.
특히, 저자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내보내기 위해서 힘겹지만 지난한 과정을 모두 견디어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는 분노를 느끼는 법보다 억제하는 법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상담자에게 말해보라. 베개에 대고 크게 소리 질러보라. 당신과 다른 누군가가 다치지 않으면서 분노를 밖으로 꺼낼 방법을 모색하라.”
“상실의 고통은 너무나 강렬해서 가슴이 터질 듯하다. 왜냐하면 사랑하므로 인간은 다른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고, 슬픔은 잃어버린 그 연결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슬픔을 회피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회피하길 원하는 건 상실의 고통이다. 슬픔은 궁극적으로 고통 속에 있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치유의 과정이다.”
책에는 첫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사고로 잃은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아이의 장례식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이에 그녀의 어머니가 괜한 소란을 피우지 말라며 꾸짖자, 그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답하며 목 놓아 오열한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대신 무엇이 망쳐질지 알고 계시나요?”
그렇다. 슬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미친 듯이 절규하며 오열해야 한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올 수 없을 때까지 울고 또 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영원히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을 덮을 때 쯤에는,“자신이 허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용은 죽음이 일어났고, 그 죽음과 살아갈 방법을 배우는 일 뿐이다”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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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수업>은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같이 쓴 두 번째 책입니다. 인간의 죽음을 생각해보면 죽는 사람이 있으면 남겨진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은 많기 때문에 남겨진 자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같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느끼는 감정 역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겠다 싶습니다. <인생수업>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 할 것인가를 공부를 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상실수업>은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블로그 안에서도 이와 같은 아픔을 안고 계시는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만, 그분들의 블로그를 방문했을 때 어떤 말도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어쭙지않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운명을 전해 들었을 때 느끼는 다섯 단계는 상실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도 적용이 된다고 합니다.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다섯 단계가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건너뛰는 단계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죽음과 관련한 사람들의 심리변화에 맞는 적절한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우리사회 역시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수용가능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초의 선친께서 세상을 뜨신 다음해 생신되는 날 어머니께 위로의 전화를 드렸더니 돌아가신 분의 생신을 챙기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상실수업>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생일에 주변사람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열고 그 사람의 생전의 추억을 나눈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제사를 통하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들은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을 억누르려 하지 말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왜 애도해야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잘 애도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슬픔은 마음과 영혼 그리고 정신의 치유과정이다. 그것이 완전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이다. 애도할지 말아야 할지가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언제’ 애도할 것이냐인다. 충분히 애도하기 전까지는, 그 마무리되지 않은 일의 여파로 인해 고통당한다.” 죽음의 형태에 따라서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형태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사고 혹은 심혈관질환 등에 의해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맞게 되는 경우, 암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예고된 죽음을 맞는 경우, 치매와 같이 환자의 존엄한 모습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또한 떠나는 분이 조부모, 부모, 형제, 자식, 배우자 등의 남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서 감정의 변화가 다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느끼는 감정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느낌으로 남아 있는 상대의 감정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맞은 상실은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던지는 모르겠지만 발인하는 날까지 할머님을 모셔둔 곳의 향불을 꺼뜨리지 않고 피우는 일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같이 지내시던 증조할머님께서 우리 집에서 지내시게 되었는데 먼저 떠난 며느리에 대한 원망이 담긴 사설조를 입에 자주 올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당신이 ‘남겨졌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잃었는가? 당신이 왜 굳이 남겨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은가? 신과 우주만이 그 정답을 얘기해주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만은 있다. 당신들은 모두 ‘살기 위해’ 남겨졌다는 사실이다.”라고 책갈피에 적혀 있습니다만, 남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로의 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상투적인 것처럼 들립니다만, 옳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아있는 사람이 잘 살아야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 세상에 오래오래 남아 있게 되는 것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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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그 길고긴 고통을 걸어 나오는 과정을 정말 완벽하게 묘사하고 그고통속에서 주져앉지 말고 생으로 돌아와야만하는 이유를 잘 알려주고 있다. 나만 겪었을것 같은 고통을 책속의 많은 사례들도 겪었음을 보면서 위로 받고 공감한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지만 남겨진 가족의 슬픔에대해서는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도 배려되지도 않았었다. 그들이 겪은 상실감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그 깊이를 알수 없을것이다. 그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이책만큼 생생하게 전달해준 것은 없었다. 누군가를 잃고 새로운 위치에서 새롭게 세상을 볼수 있기까지가장 좋은 지침서가 될수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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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죽은 사람으로부터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라고 물어 본다면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편지를 쓸 수는 있겠지만 정작 그 편지를 받아 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상실 수업』을 읽는 도중에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내용이 눈에 들어 왔다.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해 모두가 부정적인데도 이 책은 놀랍게도 답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알고 보면 그 방법이라는 것이 어렵지 않다. 즉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다른 손으로 그에 대한 답장을 써보는 것이다. 이렇듯 매우 의미심장한 제안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인생 수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였다. 사람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물어본『인생 수업』을 통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녀가 이번에는『상실 수업』을 통해서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지 호스피스 시선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 마주하기 싫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상처로 전염되고 더 나아가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신(神)을 원망하기도 하고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으로 ‘만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든다.어쩌면 이러한 아픔이 상실을 경험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실의 깊은 수렁으로 발을 들여다보고는 되돌아 나오면서 신을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는 것,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라는 것,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는 것,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놓으라는 것, 슬픔에 종결은 없다는 것을 가슴 따뜻하게 말하면서 실천해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그녀가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의 작은 습관들을 무심코 지나쳐 왔다. 가령, 그녀는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안에 그치지 말라고 한다. 눈물이 100% 빠져 나오게 하라고 한다. 그러면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흘리고 나면 비로소 기분이 홀가분해짐을 느낄 수 있다고 격려해준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마음이 후련해진다면 미안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그것은 곧 우리가 제대로 상실의 슬픔에 적응했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실수업을 통해서 아무런 마음의 움직임이 없다면 그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슬픔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결코 사랑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혹, 사랑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우리가 그녀에게 상실수업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그녀 말대로 삶이란 갈색 낙엽뿐만 아니라 푸른 낙엽도 어쩔 수 없을 때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은 슬픔의 선물이요 기적이다. 인생에 있어 상실은 특별한 간이역이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의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에 있어 행복한 만남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배우게 된다. 즉 삶은 상실로 인해 더욱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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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너무나 많은 종류의 상실을 경험합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나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가르쳐 줄 책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책을 읽고 난 후 실망하지는 않을까 오히려 걱정스런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고 난 후에 하고 싶은 말은 딱 한마디. 강추입니다. 모든 분들께 필요한 책이고 저도 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살아오는 동안 내가 얼마나 슬퍼하기를 두려워 했는지 절절히 느껴졌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삶이 더욱 힘들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도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지는 않겠지만 분명 이 책을 만나기 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마음을 잘 돌볼 수 있는 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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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울면 다시는 멈출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때문에 우는 것을 피하려한다." <상실수업>중에서,
얼굴이 발개졌다. 내가 바로 이런 겁쟁이였다는 걸 왜 지금에서야 알았는지...
무언가를 잃고는 힘들어하며 원망만 했던 나였다. 옆을 돌아보며 위안을 삼으려 하거나 주변에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더 나은 계기가 될거야'라며 위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책하며 보냈던 세월이 너무나 아깝게만 느껴졌다.
잃는것에 이토록 여유있고 관대해 질수만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생기있어 질까?? 괜히 신바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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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가짐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사가 뜻대로 되겠는가....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 저런 상황 변명의 여지만 있으면...
분명 어느것이 좋고 바른 길인지 알면서도 우회하며, 잘못된 길로 들어가
막힌 벽을 타고 넘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닐련지...
인생수업이란 책을 읽으며,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이들은 책한권의 글귀가 큰 영향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맘가짐의 문제가 아닐련지.
나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의
감사함을....
내가 느낀 좋은 감정의 책이 그 후편을 내 놓았다니~~
잃어버린다는것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을 하였는지...
책이 내게 도착하면...
흐믓한 기대와 설램으로 그 첫장을 넘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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