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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접하기 힘든 아이슬랜드의 추리소설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다. <무덤의 침묵>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사실 이 작품 시리즈는 한 시리즈로 출판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어권 아니면 일본으로 심하게 편향된 우리 출판계에서 그런 바람은 출판사에게 무척 부담이 되는 일이라 생각되어 이렇게라도 출판된 것에 만족한다. 물론 기왕이면 이 작품이 먼저 나왔더라면 좋았겠지만 출판사 시리즈의 특성상 이 작품의 출판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고마운 마음만 가지련다.
한 노인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에를렌두르 반장은 조사에 나서지만 올리 형사는 조사할 필요도 없는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좀도둑에 의한 살인일거라는. 그렇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미국식의 거창한 연쇄살인사건을 바랄 수 없다. 또한 일본식의 풀리지 않는 트릭을 풀어야 하는 사건도 없다.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저 사라졌나 생각하면 그만이고 사람이 살해되면 뻔히 알만한 수사하기 쉬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를렌두르는 그 노인의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현재에 답이 없으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여기에 에를렌두르 반장의 사생활이 더해진다. 마약중독자 딸이 아이를 임신한 채 또 나타난 것이다. 일찍 이혼한 그는 전처와는 원수가 되었고 딸과 아들에게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 더 자세한 것은 <무덤의 침묵>에서 보시기 바란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피해자인 노인은 그야말로 짐승 그 자체인 인물이었다. 상습적인 강간범이었지만 잡힌 적은 없고 어렵게 신고한 여성은 경찰에게 모욕만 당하고 임신까지 했지만 그 아이는 어려서 병으로 죽고 여성도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이 작품 속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거는 하나의 역사다. 그것은 분명 자취를 남기고 추하던 아름답던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거나 남아 있게 마련이다. 죄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건 그 죄가 언젠가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내가 있었다>라는 작품이 있다. 사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그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제목이 기억에 남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가 있었다>로 착각하고 이 작품에 딱 어울리는 부제라는 생각한 것이다. 과거가, 인물이, 증거가 절대 잊지 않고 기억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말이다.
미국식, 혹은 일본식 추리소설을 보다 이 작품을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지금까지 인기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아주 많이 닮았으면서도 아이슬란드식의 추리소설의 독특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면 다른 작품에서 우리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화려함, 반전, 트릭 그런 것들이 장식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떤 때는 도시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에 매료되다가도 어떤 때는 한적한 시골길에 핀 들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바로 그런 잔잔하면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 잘못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는 스쳐 지나가면 잘 모를 수 있지만 한번보고 두 번 보면 오랜 세월 기억하게 되는 그런 추리적, 인간적, 정서적 안정감을 간직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화려하지 않다고 외면하지 마시길... 추리소설이 너무 스릴과 섬뜩한 잔인함만을 강조한다고 여기는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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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드로 인드리다손 ...
해외문학을 나누라면 그저..영미권 일본,,그러던 때가 있었는데.. 아날드로 인드리다손 ... 도서관에서 처음 발견하곤 목소리,무덤의 침묵 까지.. 북유럽의 공기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이작가.. 저주받은피.. 물론..읽은 책인데. 갖고싶어서.^^ 목소리도, 무덤의 침묵도, 욕심부릴 걸..그랬다고..후회하는 중.. 책은 다시 읽어도..좋다. 책표지도 다시보니..역시.. 내것이된거라..그런가..좋다. 헤닝 만켈과 스티그 라르손 만큼이나 저력있는 작가라고 나는 감히 생각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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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렌두르 시리즈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범죄소설이 시작된 영국과 미국의 작품들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범죄소설의 변방으로 알려졌던 북유럽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의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주(<브로큰 쇼어>), 프랑스(<트라이던트>), 스웨덴(<밀레니엄>), 아일랜드(<양치기 살해사건>), 노르웨이(<스노우맨>) 등이다.
왠지 평화로워 보일 것 같은 북유럽에서도 잔인한 살인사건들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이슬란드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 30만에 면적은 한반도의 절반 수준인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한반도 절반 크기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30만 명에 불과하니 이걸 불행이라고 봐야할까 다행이라고 봐야할까.
북유럽 섬나라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출신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1961 ~ )은 ‘에를렌두르 시리즈’를 통해서 아이슬란드가 배경인 범죄소설을 1997년부터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인드리다손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이후에는 언론사에서 근무했다.
인드리다손은 처음부터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하긴 자신이 아이슬란드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범죄소설을 쓰려면 자신이 잘 아는 곳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 그런 만큼 아이슬란드는 작가가 묘사하기에 적절한 곳이었던 셈이다.
반면에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이 과연 범죄소설의 소재가 되기에 적당할지,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이 외국의 유명 형사나 탐정들과 비교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고민한 후에 아이슬란드 역시 범죄소설의 배경이 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LA에서처럼 갱단이 총을 들고 거리를 휩쓸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어찌되었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만큼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할 것이다. 절도부터 시작해서 마약과 살인까지.
아이슬란드는 문학적 전통이 깊은 나라지만, 범죄소설에 관해서라면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이런 곳에서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아이슬란드의 범죄소설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 셈이다. 인드리다손은 ‘에를렌두르 시리즈’를 통해서 영국 추리작가협회 황금단도상,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 유리열쇠상, 프랑스 추리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혼자 살며 사건을 추적하는 50대 형사
시리즈의 주인공은 ‘에를렌두르’라는 인물이다. 그는 레이캬비크 경찰청에서 수사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50대에 접어들었고 아내와는 이혼했다. 아들과 딸이 있지만 아들과는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다. 20대의 딸 에바는 마약중독 상태로 걸핏하면 집으로 쳐들어와서 에를렌두르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아빠 때문이야!’라고 소리친다. 에를렌두르는 사건수사도 감당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딸에게도 관심을 갖고 돌보아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에를렌두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1997년에 발표된 <Synir duftsins>(국내 미발표)이지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인 <저주 받은 피>(2000)다. 한 지하방에서 변사체가 발견되고 그의 몸 위에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알 수 없는 쪽지가 놓여 있다.
시리즈의 네 번째 편인 <무덤의 침묵>(2001)에서는 레이캬비크 외곽에서 어느날 땅속에 묻힌 유골이 발견된다. 다섯 번째 편인 <목소리>(2002)에서는 한 호텔의 지하방에서 혼자 살던 남자가 빨간 산타 옷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된다.
가족문제로 골치가 아픈 에를렌두르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장으로 출동하고 끈질긴 추적 끝에 사건을 해결하지만 그 진상은 마음 아픈 것이다. 아이슬란드가 가지고 있는 슬픈 역사를 포함해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그 사건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인드리다손은 자신이 에를렌두르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말한다. 에를렌두르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는 작품이 좀더 나올 것이란다. 사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작가 자신도 잘 모를 가능성이 많다.
독자들도 에를렌두르의 미래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다. 에를렌두르와 딸 에바의 사이가 어떻게 좋아질지, 아니면 더 나빠질지 (더 나빠지기도 힘들겠지만). 에바는 과연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는 또 어떤 사건들이 발생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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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노인이 죽었다. 홀베르그는 자기 집 거실에서 처참하게 재떨이에 맞아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남겨진 쪽지에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평생 어긋난 욕망으로 여자들을 성폭행해왔던 그의 말로는 인과응보였을까.
2. 형사반장 에들렌두르는 이 사건을 파헤치며 자주 자신의 딸 에바를 생각한다. 약물중독에 빠져 임신한 상태인 자신의 딸은 본인의 말과는 다르게 아버지에게 도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외면할 수 없다. 딸이 어릴 때 집을 나온 그에게 자식들과 아내는 죄책감의 원인이었다. 그는 어쩌면 가족을 갖는 데 커다란 죄의식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자신의 친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이 평생 그를 짓누르고 있다.
3. 콜브룬과 아우두르
성폭행을 당한 후 아우두르를 임신하게 된 콜브룬은 자신의 딸을 신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살았다. 하지만 아이는 겨우 네 살을 끝으로 악성 뇌종양으로 숨을 거둔다. 그리고 3년 후 콜브룬은 자살했다.
4. 카트린
아이가 둘 있는 그녀가 홀베르그에게 성폭행 당한 후 낳은 막내아들은 형제들과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아들 에이나르는 딸을 잃은 슬픔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을 한다.
5. 에이나르
3년 전 신경섬유종으로 어린 딸을 잃었다. 자신이 유전인자 보균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친아버지를 추적하게 된다. 진실을 직면하게 된 그가 택한 건 살인이었다. 그의 몸속에 흐르는 저주받은 피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도 자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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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Tainted Blood 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영림카디널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것을 파헤쳐야 하는 수사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다룬 추리소설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을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으로, 2000년 발표되어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1997년 『대지의 아들들』을 시작으로 한 형사 에를렌두르 시리즈는 1998년에 『조용한 살인』, 2000년에 이 책, 『저주받은 피』. 2001년에 『무덤의 침묵』, 2003년에 『목소리』, 2004년에 『말라가는 호수』, 2005년에 『겨울 도시』의 순서로 출간되었고, 이 중에서 영림카디널에서 블랙 캣 11권 『무덤의 침묵』을 블랙 캣 13권인 이 책, 『저주받은 피』, 그리고 블랙 캣 17권인 『목소리』가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엘릭시르에서 표기법을 달리하여 작가 이름도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으로 지난 2017년에 『저체온증』을 그리고 올해 『무덤의 침묵』을 새롭게 출간하였다. 최근에는 형사 이름도 '에를렌두르'가 아닌 '에를렌뒤르'라고 표기하고 있다. 에를렌두르 형사반장. 그는 아내와는 오래전에 이혼했고, 딸 에바는 마약에 빠져 돈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며, 아들 쉰다르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50줄의 홀아비다. 어느 날 수도 레이캬비크의 지하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현장에 도착한 에를렌두르는 피해자의 몸 위에서 한 장의 종이를 발견한다. 종이에는 'I an HIM(내가 바로 그다)'라는 알 수 없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피해자의 신상을 확인하던 에를렌두르와 수사팀은 그가 40여 년 전에 강간혐의로 고소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수사는 혼돈으로 빠져든다. 살해된 홀베르그와는 아무 관련도 없어보이는 사실을 쫓아다니는 것 같은 에를렌두르는 종국에는 40여년을 잇는 엄청난 진실을 파헤치기에 이른다. 엘릭시르에서 『저체온증』과 『무덤의 침묵』을 잇는 에르렌뒤르 형사의 다음 이야기를 계속 출간해주기를 기대해 보며, 이미 출간된 영림가디널의 『목소리』도 찾아 읽어보리라 마음 먹는다. 중복에 닭볶음탕을 준비하여 진땀을 쏟아내고 모처럼 주부 흉내를 내보는 중이다. 이 책은 2000년에 『Myri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2004년 출간된 영국어 판 제목은 『유리병 도시 Jar City』이며, 이후 『Tainted Blood』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021.7.21.(수) 두뽀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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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덮은 시간...밖에는 장맛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인데도 불구하고 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책상앞에 앉아 있자니, 왠지 아이슬란드에 있는 레이캬비크나 노르드미르, 후사비크 같은 지명이 떠오르며, 내가 그곳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곤 합니다. 저주받은 피... 이 작품의 제목이자 스토리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한 이 말처럼, 이 작품은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은퇴한 노인이 살해된 단순한 살인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마지막 종착역에서는 눈물이 핑돌정도로 가슴아픈 이야기의 결말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인생에서는 실패자이지만 뚝심의 형사반장 에를렌두르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일군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른 바 경찰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총과 살인이 난무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작품과 그의 작품은 마치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인이고 그의 작품에 나오는 사건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유럽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외딴 섬나라...인구는 30만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의 사건이라 해봤자 고작 단순 살인이나 마약범죄...작품에서도 아이슬란드식 사건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올 정도로 고요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작가 아날루드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경찰 소설을 써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저는 그가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주받은 피>에서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범인이 누구이냐가 아닙니다.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범인이 범죄를 일으키게 된 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해 나갈 뿐, 하지만 독자는 왠지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맙니다. 주인공인 에를렌두르는 형사지만 무슨 명탐정도 아니고, 이혼남에 딸은 마약쟁이인 인생 자체가 별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눈치재지 못한 인간적인 정의감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주력합니다. 그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범인이 아닌, 바로 '진실'자체인 것입니다. 진실에 다가갈 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고 싶은 충동과 넘기고 싶지 않은 충동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다 읽은 순간,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스토리라고... 나의 가슴 속에는 안타까움이 마구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생소한 나라를 배경으로한 명작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내용을 떠나서도 색다른 문화를 접하는 설레임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읽어봐야 할 명작이 아닌가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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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추리 소설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영미 소설과는 다른 독특한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앞으로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앞부분은 평범하게 진행되어 그저 그런 결말로 이어지지 않나 생각했다. 주인공의 딸 이야기도 맥락없이 끼어들었나 의심했다. 뒷부분의 사건 해결이 극적이다. 고도의 추리를 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글자 그대로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커다란 아픔이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그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사건 해결의 쾌감을 넘어 소설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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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인간적인 추리소설!
아이슬란드.
도입부의 살인사건으로 밝혀진 피해자에 의한 더 심한 희생자들...
범인을 쫓는 것이 아닌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방식이다. 조금은 나약한 그래서 더 친근한 평범한 아버지이자 한 인간이다.
"죽은 것들은 우리 세계에서는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사회의 외면하고 싶던 어두운 면도 마주하게 한다.
마지막의 시원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작가가 결말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사건 해결을 모호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것 처럼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 오기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무거운 마음을 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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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을씨년스럽고 상투적인 제목의 이 소설은 아이슬란드 추리소설가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흔히 접하기 힘든 아이슬란드의 소설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한국 독자인 내게 있어서 그렇게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란 것에 놀라게 된다. 물론 아이슬란드식 인명과 지명은 지금도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 작가의 작품을 <저체온증>, <무덤의 침묵>에 이어 세 번째로 접하는데 본의 아니게 시리즈를 정반대의 순서로 접하게 됐다. 원래대로라면 이 작품을 제일 먼저 접했어야 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를렌뒤르 형사의 개인사가 사건 자체와는 연관은 없지만 비중은 어마어마하기에 가급적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가 된다. 하긴 처음 <저체온증>의 책장을 펼치면서 설마 이 시리즈를 이렇게까지 찾아가며 읽을 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나. 일부 아이슬란드식 문화는 낯설지만 저자의 각주가 있어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가령 아이슬란드의 국토 면적이며 인구나 인구 밀도라든지, 아니면 그들이 이름을 짓는 문화 등을 딱히 선행 학습하지 않아도 됐던 건 다행이었다. 개중 에를렌뒤르 형사와 그의 동료들이 초반에 주기적으로 언급했던 '아이슬란드식 범죄'란 게 내 눈길을 끌어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에서 과연 추리소설적인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기도 해 적잖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런 질문은 아이슬란드 추리소설은 물론 다른 북유럽 추리소설, 흔히 '노르딕 누아르'라 불리는 추리소설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질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 문화권은 워낙에 인구 밀도도 낮고 범죄율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어떻고 범죄율이 어떻고 하는 건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목하는 요소일 뿐이다. 아무리 인구가 적고 복지 제도로 인해 범죄율이 현저히 적어도 극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하나도 다르지 않으므로. 어떻게 보면 이번에 읽은 <저주받은 피>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이었는데, 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어딘가 아이슬란드스런 맛은 떨어졌지만 이것이야말로 아이슬란드처럼 외따로 떨어진 섬나라도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정서를 가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를렌뒤르 형사를 두고 '마치 아이슬란드의 가가 형사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두 캐릭터와 시리즈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아닌 사건 관계자 모두의 심리를 살펴보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 특히 닮았는데 차이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의 천재성과 더불어 인격도 묘사하며 이상적인 경찰의 모습을 그린 반면에 인드리다손은 에를렌뒤르를 천재적으로 묘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결점이 많은 인물로 그려 그의 행보에 진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소설과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국제 무대에서 적잖이 낯서리라고 여긴 것일까? 낮은 인구 밀도와 느슨한 수사 조직 덕분인지 조작이나 은폐처럼 뒷일따윈 생각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보는 게 '아이슬란드식 살인'이라는 에를렌뒤르와 동료 형사들의 발언은 작중 사건을 통해 철저히 부정당한다. 사건 현장엔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요상한 글귀가 남겨졌고 사망한 피해자의 과거는 역겹기 짝이 없어 형사들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가 과거에 일으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혹은 그의 자녀들 중 한 명이 범인으로 의심되는데 당연히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할수록 과거의 피해자들의 아픔까지 들춰내게 되므로 작중에선 여러모로 형사들의 '도덕적 역경'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식의 역전된 발상, 이른바 '죄 많은 피해자와 동정할 수밖에 없는 범인'은 '김전일'을 통해 이미 익숙한 테마였는데 작품의 무대가 아이슬란드라서 그런지 묘한 울림을 줬다. 좋게 말하면 세계적으로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론 제목이 주는 인상대로 평범한 추리소설에 불과했다. 물론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그를 묘사하는 방식은 훌륭했다. 아까 히가시노 게이고와 잠시 비교했는데 그 작가와 비교하면 문체의 가독성은 떨어져도 깊이와 통찰은 그에 견줄 만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사실 이 깊이 있는 분위기 때문에 너무 무겁게 읽히는 감도 있지만 단순히 흥미 위주로 성폭행이란 범죄를 다루지 않는다는 건 작가로서 좋은 자세였다. 성폭행이 낳을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을 상상해낸 것도 마찬가지로 주목할 부분이다. 범인의 동기는 설득력이 있었고 그렇기에 작품의 씁쓸함은 더욱 배가됐다. 비슷한 소재로는 의외로 가까운 나라인 노르웨이의 추리소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떠오르는데 이런 걸 보면 북유럽이라고 그들의 정서를 우리가 이해 못하리란 건 그저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북유럽의 추리소설은 그들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 집필됐다는 해석이 있다. 복지 제도가 있음에도 범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점을 두고 제도에 무슨 빈틈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간과했던 부분이 있는지 반성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저주받은 피>도 그런 경향하고 아주 동떨어진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엔 나는 아이슬란드엔 성범죄가 없으리라 여겼던 것 같은데 그 막연한 편견엔 분명 선구적인 복지 제도를 가진 북유럽 국가들의 이미지가 분명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인구가 그렇게 적은데 범죄가 일어나봤자 얼마나 일어나겠느냐고 여긴 탓도 클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인구가 적다고 해서, 또 복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사람 본성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아무래도 아아이슬란드를 너무 우리나라와 별개의 정서를 가진 나라이리란 편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이미 작가의 작품을 세 번째로 접하는 내가 이런 편견을 아직도 갖고 있다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가장 크게 어필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편견과 관련이 있을 터다. 아이슬란드라는 배경과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세계 여러 독자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고 그 기저엔 인간이 본질적으로 국적과는 상관없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깔렸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단의 호평과 유리열쇠상 수상, 영화화된 걸 보면 작가의 생각은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평범한 추리소설이란 생각은 여전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에를렌뒤르 형사가 내뿜는 분위기나 범인의 기구한 사연, 그리고 피해자가 생전에 남긴 천인공노할 비극은 제법 강렬하단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작품의 준수한 만듦새에도 자꾸 평범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데엔 이러한 보편성을 의식했기 때문인데, 반대로 이런 요소 덕에 달리 말하면 작가의 작품이나 아이슬란드 소설에 입문하기엔 꽤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엔 <저체온증>으로 입문하긴 했지만...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그토록 흥행하고 국내에도 가장 먼저 소개된 '해리 홀레' 시리즈 작품이란 걸 생각하면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도 <저주받은 피>부터 읽는 게 가장 좋을 듯하다. 더욱이 순서상 국내 출간된 시리즈 작품들 중 시간 순서상 가장 앞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제 내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목소리> 한 작품밖에 없다. 그 작품은 <무덤의 침묵>과 <저체온증> 사이에 나온 작품으로 알고 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지 않나 싶은데 내가 그 작품을 읽을 즈음엔 작품이 몇 권 더 소개됐으면 좋겠다. 국내에서의 아이슬란드 추리소설의 입지를 생각하면 너무 큰 바람이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