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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느 한 신문에 이 책을 읽고 인생에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작은 기사를 읽게 되었다.
철학적인 도서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왜인지 '꼭 읽어야지'라는 내 자신을 보게(?)되었다. 그리고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가벼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니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니체는 어느 정도(?)의 교양을 요구하며 책을 써내려간다. 더욱이 니체는 이 책을 읽으라고 쓴 책이 아니라 외우라고 쓴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니체는 아포리즘을 사용한다. 이것도 모자라 관점의 이용이 상당히 자주 일어나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전략아닌 전략으로 집중력을 발휘케한다. 그나마 다행히도 (짜라두짜 자신이기도 하고 니체이기도 한) 짜라두짜의 수련 후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어 짜라두짜만 잘 따라가면 그의 지혜를 읽어내려갈 순 있겠다.^^;
이 책에선 많은 부분들이 상징적이다. (이 책은 리드미컬한 내용의 책이기에 더더욱 그러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옮긴 이 역시 리듬을 맞추기 위해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 대신 독일식 발음인 짜라두짜라고 번역한 것이니까) 그리고 비판적이고 자기 심리적인 부분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때문에 니체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고뇌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던 그는 '신은 죽었다'고 당당히 외친다. 당시 시대적인 배경을 뒤로 하더라도 상당히 비판적이다. 또한 시대, 조국, 문화, 계급을 넘어선 진실을 추구할 때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고 보았다.(책 표지의 내용 중) 즉 그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용 곳곳에 이러한 내용들이 그의 문체로 철저히 무장되어져있다.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는 모습 그리고 다시금 혼자 방랑하며 수련하는 과정과 자기 자신을 과감하게 분석해 써내려한부분까지 전부 다...
나는 아직 이 책의 내용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할 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은 책'이란 부제를 보면 내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란 희미한 희망을 가져보지만 이를 이해하긴엔 니체에 대한 혹은 철학적 마인드에 대한 지적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래서 오히려 니체는 이 책을 읽지 말고 외우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엔 그래도 가장 맘에 와닿는 구절이 많았던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전체적인 틀 속에서 해석(?)되어져야 하지만 그 구절 자체만으로도 생각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 우리는 삶을 사랑하지. 하지만 삶에 익숙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는게 아니야. 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는거지.] 7.읽기와 쓰기 중에..
[그리고 자네들 모두! 끝없이 일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빨리 변하는 것, 새로운 것, 기이한 것을 찾고 있는 자네들! 자네들 역시 자기 자신을 억지로 견디고 있는 것 아니야? 열심히 사는 것은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것, 자네 자신을 잊기 위한 것이 아니야?] 9.죽음을 설교하는 사람 중에..
[깊은 우물의 반응은 천천히 나오지. 깊은 우물은 자신의 바닥으로 무엇이 떨어졌는지 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12. 시장의 파리 중에..
[인생이 견디기 힘들긴, 개뿔! 사람이 견디기 힘든거지. 어깨 위에, 밖에서 들어온 이상하고 낯선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있잖아!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무거운 짐을 잔뜩 싣도록 내버려 두었던 거잖아!] 55. 중령의 영 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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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저서는 처음이다. 하지만 ‘초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낯선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은 니체의 사상을 두고 히틀러의 나치즘을 뒷받침해주었노라 평가하기도 했다. 저서를 직접 읽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평을 들으며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실제로 나치즘에 봉사했던 하이데거와 같은 이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진작에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짜라투스트라(이 책에는 ‘짜라두짜’라고 되어 있는)라는 이름이 낯설었고, 무엇보다도 책의 두께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계속해서 이 책을 손에 잡길 꺼려왔던 것이다.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책’이라는 부제는 이 책을 완벽히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개념의 어려움을 떠나서, 본래 시(詩)는 그 높은 상징성으로 인해 한 가지의 방식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법이다. 암송을 위해 운율을 맞추어가며 써 내려간, 우리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시집을 읽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1844년에 태어나 1900년에 사망한, 니체의 삶은 이후 사회가 겪을 격렬함을 품은 시대에 걸쳐 있다. 식민지를 양산함으로써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확산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움직임이 팽배했으며,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었다. 근대적 의미의 국가가 점차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으로 힘을 발휘해왔던 종교 부분의 반격 역시 만만찮았던… 이런 시기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권력에 아부하며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킴으로써 양심을 지키는 것, 둘 중 하나였다. 니체는 후자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권력에 대해 경계하는 눈빛을 늦추지 않았다. 성직자들의 타락한 모습을 꾸짖었고, 정치가들의 권모술수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가 원한 것은 강력한 국가나 부패하지 않은 종교가 아니었다. “신들은 모두 죽었다.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원한다.” / 이 말을 <위대한 ‘신은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통해 그는 부패한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의 ‘신’은 종교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 것이다. “깨달음을 발견하는 성자가 되지 못한다면 / 최소한 깨달음을 옹호하기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되도록”(p119), “항상 의지하는 바를 행동에 옮겨라. / 하지만 먼저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라”(p395) 등의 문구를 읽으며, 니체로부터 나는 개인주의적인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와 미래에 의해 살아지는 인생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창조해나갈 수 있는 의지를 그는 개개인이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듯하다. 이러한 의지는 절로 획득되는 것이 아닌, 자기 안에서의 부단한 투쟁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니체의 유고를 편집하고 날조했으며, 그로 인해 니체의 사상은 반유대주의, 독일 민족주의, 전체주의 사상으로 둔갑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의 몇몇 문구는 니체의 사상을 잘못 이해한 이들에게 무한한(?) 오해를 살만한 문구들을 포함하고 있다. 자네가 아이를 원하는 것이 / 승리했기 때문이기를, 자유롭기 때문이기를 나는 기원해. / 자네의 승리를 기념하고 자네의 해방을 기념하는 / 살아 있는 기념관을 짓는 기분으로 아이를 원해야 돼. // 자네를 넘어선 아이를 만들어야지. /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먼저, 자네 자신을 만들어야지. / 자네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단단하게 만들어져야 돼. // 앞을 이어갈 후손을 번성시켜야 할 뿐 아니라 / 위를 향해, 초인을 향해 나아갈 후손을 번성시켜야 돼. / 결혼을 통해 그러한 후손을 번성시킬 수 있기를! (p175-176) 다들 잘 알다시피 나치즘은 순수한 게르만 민족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유대인 박해를 일삼았다. 니체의 ‘초인’이 시대, 민족, 국가를 넘어선 존재임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고, 더 나아가 ‘초인’이 위대한 게르만 민족을 상징한다고 생각하고 이 문구를 읽었을 경우 어떠한 결과가 발생케 되는지를 말해주는 역사가 바로 제2 차 세계 대전 도중 벌어진 유대인 박해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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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우선 저자의 지적대로 발음과 운문, 해석에 있어 최대한 원문에 가깝도록 번역하였다는 노력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저자의 주석이나 운문의 배열, 풍부한 참고가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산에서 내려온 짜라두짜가 한 얘기는 결국 니체 자신이 얘기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지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초인"이 되기를 주장하며, 그 너머에서의 무의미한 "신은 죽었다"라는 부르짖음은 자신의 의지를 지닌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주장한 니체 자신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여동생 엘리자베트에 의하여 그의 저작, 사상, 주장이 전혀 다른 글이 되어 버린 내용도 저자의 설명을 통하여 알고 있다. 이는 흔히 전해(!) 들었던 니체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한다. 사실 니체 자체는 특정한 사상을 주장한다고 설파한 적도 없을 뿐, 단지 책을 통하여 그 스스로를 얘기하고자 하였을 뿐인데, 이에 대한 몇몇 구절과 내용을 자신의 사상을 지지하는 것처럼 위조하는 후대의 사상가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