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던 내게 그리스 로마신화는 우상숭배일 뿐이었다. 타락한 천사들의 미화된 이야기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도 즐겨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책은 의식적으로 멀리했으나 텔레비전에서 '올림푸스 가디언'이라는 만화영화가 인기리에 방영될 때는 무척 재미있게 보곤 했다. 신과 사람과의 애타는 사랑에 가슴 졸이기도 하고 안타까운 죽음에 슬퍼하기도 했다. 만화영화니까 많이 과장되게 이야기를 엮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그때 보았던 내용들과 딱 맞아떨어져 신기했다. 책 속에서 인물들이 빠져나와 내 앞에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연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기억 덕분에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럭저럭 전반부까지는 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를 서서히 잃어버렸다.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셀 수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도 헷갈리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사건 위주로만 건조하게 엮어놓아서 감칠맛이 떨어졌다. 텍스트의 한계계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신들의 이야기'라고 옮긴 이는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타락적인, 너무도 이기적인 신들의 이야기'같아서 읽는 내내 속이 메스꺼웠다. 자기 맘에 든다고 인간을 납치하기도 하고, 신에게 실수로 잘못을 범하거나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끔찍한 댓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신과 인간과의 사랑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부도덕한 느낌마저 들었다. 신이든 사람이든 배 다른 형제들을 대책없이 만들어내는 제우스의 바람벽은 정당화될 수 없고, 헤라를 질투의 화신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불공평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제우스와 헤라 가문의 열두 신이 주인공이다. 그 신들을 그리스와 로마에서 각기 다르게 부른다는 점이 내 관심을 끌었다. 제우스를 로마에서는 '주피터'로 부르며 신들의 우두머리다. 헤라는 제우스의 본처로 로마에서는 '주노'라 부르며 가정의 수호신이다. 아테나이는 로마에서 '미네로바'로 부른다. 제우스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며 그리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 수렵과 산야의 여신으로 로마에서는 '다이아나'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로마에서 '비너스'로 부른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디오니소스는 로마에서 '바카스'라고 부르며 포도와 포도주의 신이면서 연극의 신이다.
이 책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남녀간의 슬픈 이야기가 더 많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에 얽힌 전설, 피라모스(Pyramos)와 티스베(Thisbe)의 사랑이야기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듯하다. 바람의 꽃 아네모네에 얽힌 전설, 아프로디테(Aphrodite)와 아도니스(Adonis)의 슬픈 사랑의 결말도 안타까웠다. 에로스(Eros)와 프시케(Psyche)처럼 힘들어보이는 사랑도 없다. 시어머니 아프로디테의 시샘과 노여움을 받은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위해 여러 힘든 과정을 거친다. 다행히 제우스의 도움으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플레저(기쁨)라고 한다. 에코(Echo)와 나르키소스(Narkissos)의 메아리와 수선화에 얽힌 전설도 애잔하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 여기서 다 나열하기는 힘들 것 같다.
여성 독자라면 슬픈 사랑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겠지만, 남성 독자라면 트로이 전쟁이나 낭만적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더 관심이 갈 것 같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야에서 본국 아타카로 돌아오는 길에 겪은 모험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3할 정도의 분량이긴 하지만 제법 가볍게 다루고 있는데 좀더 자세히 관심있게 알고자 한다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다 보면 많은 번역본에 놀라게 된다. 여러 출판사에서 만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출간되었다. 부담없이 들고 다니며 여러번 반복해서 읽으려고 포켓판으로 주문했는데 흥미롭게 읽은 부분도 여럿 있으나 여러모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이야기가 하나의 비유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페르세포네는 씨앗을 의미하며, 그것을 땅 속에 심으면 그곳에 숨어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하의 신에게 끌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나타나는데, 곧 페르세포네가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봄'이 그녀를 햇빛 속으로 다시 데려오는 것이다. (100쪽)
에로스와 프시케의 전설은 보통 우화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스 말로 나비라는 말은 프시케이다. 이 말은 영혼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벌레는 우울하고 비천한 생활을 거친 다음 어두운 무덤으로부터 화려한 날개를 펼치며 뛰쳐나온다. 따스한 햇빛 속에서 봄의 향기롭고 신선한 생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나비의 생애보다 아름다운 영혼 불멸을 설명하는 것은 또다시 없을 것이다. 프시케란 고통과 불운을 통해 깨끗이 변해야만 참되고 순수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이다. (144쪽)
여신들은 파리스 앞에 나타났다. 헤라는 그에게 권력과 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테네는 전쟁에서 영광과 명성을 얻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여신들은 서로 자신이 이기도록 파리스가 판정해 주기 바랐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 편에 들기로 하고,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었다. 헤라와 아테네는 그의 적이 돼버렸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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