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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3년 2 개월동안 감옥 생활을 한 황대권씨가 옥중에서 일본어 사전을 통째로 읽으며 추려낸 일본어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들려주는 옥중서간 모음이다. 책의 첫 표지를 열면 저자가 초등학교 삼학년 때 쓴 일기를 만나게 되는데 그 일기를 읽고 나서 나의 느낌은 '격세지감' 바로 그것 이였다. 일본어가 한 문장에 2~3개씩은 들어 있었는데 저자가 55년생임을 감안하면 60년대 초등학생의 일기는 '국어 순화 운동'을 거친 나의 초등학교 시설과는 다행스런 차이가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아는 일본어 보다는 생소하고 낯선 일본말이 더 많았다. 이 또한 다행스러웠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일제 지배를 거친 치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 우리 말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일본어의 잔재가 존재한다. 우리의 말과 자랑스런 우리의 글이 있음에도 언어를 사용 하는데 있어서 외래어 사용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그동안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빠꾸와 오라이를 읽으면서 저자 한 개인의 감옥에서의 지적인 활동 이상의 의미를 두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책에서 만나게 되는 저자의 여는 글 대신 쌩뚱하게 자리잡고 있는 '편집자의 노트'에서 말하고 있는'도무지 전달할 길이 없는 그 시절의 물건들'이 많아 저자가 새로 그림을 그려야 했을 정도로 40~50년대 출생한 독자들을 제외하고는 젊은 세대들에겐 낯설고 생소한 일본어를 책에서 만났을 뿐이다. 물론 일본어인지 모르고 썼던 일본말을 만나기도 했지만 책 한 권을 읽고난 수확치곤 별 볼일 없는 숫자였다.
우리 언어에 있어서 외래어 오남용은 훈민정음 창제이후 가장 심각한 지경인데 현재는 일본어 보다는 영어의 폐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 언젠가 새터민(탈북자)를 만나 얘기를 했는데 처음 남한에 왔을 땐 대화 중엔 영어가 하도 많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북한의 경우엔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 하고 외래어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때문에 말과 글이 외래어에 대해 침식받지 않고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지며 우리의 언어생활과 견주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언어만을 국한해서 책을 내어 조금 아쉽다. 좀 더 심각한 왜곡이 진행되는 영어에 대한 언급을 했더라면 하는 독자로서의 욕심 때문이다. 또한 일본어 오남용 뿐만이 아닌 우리의 국어 문법에 없는 '일본식 어순'에 의해 작문되어지고 있는 현실도 한번쯤 집고 넘어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만약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에 대해,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갖는 세계적인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면 국적불명의 외래어로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킬 수 있을까. 외국 유학을 했다거나 영어 좀 잘 한다고 하면 어깨에 힘 부터 들어가는 시대, 외래어를 섞어서 섞어찌개로 말하면 유식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시대, 여기서 부터 우리 것 보다 외국의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대주의적인 생각이 탄생되는 거은 아닐까. 언어 만큼 습관적인 것도 없다. 잘못된 언어 습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말, 우리의 글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때 5천년 유구한 우리의 역사는 찬란히 꽃피게 되리라 믿는다.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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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샤쓰, 쓰메끼리, 오뎅, 고리, 난닝구, 다마, 단도리, 입빠이, 엥꼬, 돈까스 등 우리가 일본말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또 여기에 나온 단어중에는 예전에는 많이 썼지만 지금은 잊혀지거나 사라진 단어들도 있고, 요즘세대들에게는 낯선단어들도 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하지만, 지금도 일본말을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더군다나 인터넷의 발달로 무분별한 인터넷 용어 남발로 인해 순수한 우리말이 왜곡되고 국적불명의 말들이 되버린 경우도 많다. 그런면에서 보면 북한의 우리말 사랑은 배울만하다. 경기에서 쓰는 용어까지 한글로 해서 약간 어색한 단어들도 있지만 그들의 모국어 사랑에는 박수를 쳐줄만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한글의 현실은 어떨까?!
무분별한 외국어나 인터넷 용어 남용도 문제지만, 우리가 외국어나 바른말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어라고 생각지도 못하고 우리나라 말이나 은어, 사투리라고 생각했던 많은 단어들이 일본말이거나 일본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변한 말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알고 쓰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모르고 은연중에 쓰는 말들이 많다는 것이 더 문제다. 그러고 보니 일본말들이 많이 쓰이는 곳이, 공사장이나 옷을 만드는 공장, 건설현장 등 일상의 다양한 공간에서 많이 사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그들만의 은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대부분이 다 일본말들이다.
언어는 그 나라의 정신을 지배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일제시대 아니 정복자들이 제일 먼저 한것이 자기나라 언어를 지배국들에게 사용하게 한 것이다. 현재는 많이 순화되고 많이 정화됐다고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일본어의 잔재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 책의 출간 배경에는 저자의 그런 염려가 들어 있는듯하다. 일본어 잔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또 국제화 시대와 인터넷 시대로 인해 무분별한 외국어와 인터넷 용어 남발로 인해 세대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언어란 것은 어차피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인접한 다른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간섭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간섭을 받더라도 주체가 올바로 서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서 모국어만 고집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주체가 올바로 서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가 올바로 서 있느냐하는 게 문제인데... 과연 다국적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들의 주체가 올바로 서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앞에 서문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저자가 감옥에 있었을 때 보낸 편지를 엮어서 만든 책이로 서간문형식으로 되어 있다. 일본사전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글을 쓴 저자의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게 쓰는 일본말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당혹스러웠다. 예전에는 많이 쓰였던 오뎅, 아루바씨, 변또, 빠꾸, 오라이, 나시, 바리깡 등의 단어들이 요즘에는 우리말로 고쳐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말뿐만 아니라 모르고 썼던 일본말에서부터, 무분별한 외국어 남발이나 인터넷 용어, 단어를 줄여쓰는 것 등 무심결에 했던 것들을 조금씩 고쳐봐야겠다. 물론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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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건씨의 외모만 보고 아주 옛날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니까 일제시대를 살았었던... 그런데 읽다보니 그리 많지 않은 연세인 것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찌 저렇게 일본말을 잘 알고 있을까 싶어 신기해 했는데. 그것이 학습에 의한 성과인걸 보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야생초 편지를 쓰신 분인 것도 나중에 알았다. 어찌나 작가 약력 보기를 목차 보기만큼이나 싫어하던 나인지라...
우리나라에서 쓰는 일본말과 신조어를 써놓은 사전같다. 그렇다고 딱딱하게 쓰여진 글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던 말들을 예로 들어서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를 속속 접목시켜서 쓴 책이기도 하거니와, 6, 70년대 서울 행당동에서의 생활은 나의 어린 시절 8, 9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좀더 일본말을 썼고, 생활이 옛스럽다고나 할까... 시골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똥퍼'와 '엿장수'(?) 이것도 있었을까... 어쨌든 나의 유년시절도 이랬던것같다. 생각없이 쓰던 일본말에 대한 반성, 서양어라고 불리우는 언어들의 잘못된 발음들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하지만 가슴 아팠다. 작가는 버릴 건 버리자 말하면서도 굳이 박힌 말을 빼내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도 그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언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한 시기에 고착된 의미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와리바시, 다꾸앙, 다마네기, 요비링, 벤또, 에리, 우와기, 쓰레빠, 깡기리... 어릴적 쓰던 일본말들인데, 책을 읽어서 생각난 것이지 평소에는 우리말로 쓰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우동, 짬뽕, 오뎅, 몸빼, 가마솥, 조끼같은 말들을 다른 말로 억지로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나는 아직도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좋다... 새롭게 생각나는 깡끼리 같은 물건의 이름을 보며 '맞아맞아, 이런것도 있었다'싶어 추억에 젖어보는 시간이 되어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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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편지의 작가이신, 황대권님께서 쓰신 책이다. 처음부터 그 분께서 쓰신 책인걸 알고 읽었던 건 아니고 펼쳐서 읽게 되었는데 그 분의 책이란 걸 알게되었다.
책 무게 자체가 가볍고, 또 내용도 쉽게 써주셔서 편하게 잠깐 잠깐 틈 날때마다 읽었었다.
단어를 보면 이게 뭘까, 상상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는데 친절하게 직접 그림까지 그려주셔서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많이 쓰이는 일어들... 역사교육은, 언어교육부터 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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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플러스’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출연자들이 정답이라고 내놓은 국적 불명, 의미 불명, 발음 불명의 어이없는 너스레를 들을 때는 진행자가 그들의 머리에 깔때기를 내리치며, ‘OOO씨 공부하세요!’라는 꾸지람 섞인 일침을 가하는 타이밍에 맞춰 폭소가 터지고는 한다. 이들의 바보스러운 오답 행진에 언제까지 웃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깔때기를 맞아야할 사람은 그들만이 아닌, 나 자신 역시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부끄러워진다.
지금의 우리는 가히 우리말 멸종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외계어와 비속어, 그리고 잘못된 외래어가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근간에 눈에 띄기 시작한 현상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꽤나 오래전에 우리말을 빼앗길 위기를 겪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자는 이색적인 문화체험에 제일 먼저 희생된 것 역시 우리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한편에서는 잘못 변용된 외래어를 우리말로 교체하거나 잊혀져가는 옛 단어의 쓰임을 활성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일본말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에는 반일감정의 발로에서인지 국민적 찬성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뀐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명칭이 일왕의 칙령에서 비롯되었다며 정부와 국회가 합심하여 꽤나 소란스럽게 변화의 진통을 겪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교체를 달가워하지 않기도 하니, 일왕이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뜻으로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시작했다고 해도 대부분의 국민이 그와는 별개로 ‘우리국민의 학교’로 인식하는데 구태여 바꿀 필요가 있냐는 것이 그들의 변이다.
이제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어색하지는 않지만 국민학교 시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때때로 그 변화를 잊고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자신의 추억을 되새길 때 더욱 자주 나타나는데, 명칭이 바뀐 후에 초등교육을 받은 세대를 이야기할 때는 초등학교라는 단어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지만 자신의 그 시절을 회상할 때는 국민학교라는 예전의 명칭에 친근감을 느낀다. 요컨대, 이들이 다닌 곳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는 뜻이다. 이제 더 이상 국민학교라는 단어는 표준어가 아님에도 말이다.
<빠꾸와 오라이>(도솔오두막. 2007)의 작가 황대권이 회상하는 왜곡된 한국말, 즉 외국말을 잘못 차용한 일본말에 영향을 받거나 그대로 따온 우리말(그렇게 착각했던) 역시 그러한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좋은 우리말을 두고 일본말을, 그것도 대상국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로 잘못 차용한 말을 그대로 두는 것은 일반적인 우리의 정서나 우리말을 가졌다는 자존심에 크게 어긋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습고 국적 불명인 단어에도 추억이 어려 있다.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후, 그 시절 추억이 훼손된 것 같은 묘한 씁쓸함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이유로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과 그 시절 풍경을 한껏 즐기게 되는 이 책에 실린 일본말 240여개. 이 중 대부분의 어원을 살펴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당연하게 써왔던 말이 일본말이었다는 놀라움이야 비단 이 책이 아닌 여러 곳에서 갖게 되기에 차지물론하고 외국의 문물이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온 것과 같은 경로로 유입된 단어들이 어떤 상황과 이유로 탄생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단순함과 엉뚱함에 웃음부터 나오는 것이다. 반면, 선뜻 인정하기 힘들지만 이국의 단어를 적절히 자신들의 것으로 차용한 몇 일본말에 더 크게 놀라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작가가 정리한 일본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흑묘백묘의 재판을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적절한 표현이라고 해도 그것은 본래 외국말의 불필요한 재해석을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 적절하지도 않다. 그러면 지칭하는 대상 자체가 외국의 것인 경우 그 나라의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된다. 더구나 일본말보다는 우리말이 외국말을 발음하는데 훨씬 유리하지 않은가.
다만 원천봉쇄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 모두를 우리말로 바꾸려는 것은 굴절된 애국심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잘못 차용된 외래어를 차지하는 일본말에 대한 수정이 그들의 문화와 함께 건너온 고유의 단어까지 죄다 흔들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자주 범하고 있다.
또한, 많은 단어들이 언어순화를 통해 적확하게 우리말로 복원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작가의 어린시절에 포함된 일본말이 낯설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사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이것은 고유의 문화를 잃어가며 자연스럽게 우리말이 멸종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나타낸다.
그와 더불어 정체불명의 외계어들. 우리말이라 생각했으리만치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일본말이 우리의 정서를 지배하고 해친다는 우려는 이제 위치도 알 수 없는 외계로 대상을 바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작가 황대권은 이 책을 통해 일본말의 어원을 찾아 우리에게 선택의 열쇠를 주었는데, 외계어에 대해서 역시 그 누군가 책을 내어 후대에게 설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삼과 즐>같은 제목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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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결에 책 제목을 봤을때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웃음이 살짝 나온다. 사용은 거의 안하지만 어떤 뜻인지 알수는 있었다. 부모님들 세대에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봐왔기때문이다. 호탕하면서도 인자해보이는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는 야생초 편지를 읽지 못함이 아쉬워졌다.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 위시리스트에 추가 하였다. 책 커버를 열면 적혀 있는 저자의 초등학교 삼학년때의 일기에서 표시 해놓은 총 19개 일본어 중에 내가 뜻을 확실히 아는 것이 13개에 이르렀다. 특히 내 모국어임에 추어도 의심하지 않았던 말이 2개나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생활에 베어있는, 그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일본어가 이렇게나 많다니. 충격반 호기심반으로 저자와 함께 우리말과 일본어 탐험에 들어갔다.
총 4장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께끼와 케이크, 보루바꼬 장인, 내 일기장 속 일본말, 행당동 우리 집.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우리말 속 일본말 찾아보기 까지. 사실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 강제성이 전혀없음에도 혼자서 공부하는 내가 일본어 사전을 통째로 읽어내는 작가 앞에서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단어들은 작가의 귀여운 그림과 함께 이해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께는 예전 그 시절의 향수를, 어린 세대에게는 호기심과 새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고 어른들도 어려움 없이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음식부분과 에리와 칼라와 동정을 그림으로 정확히 그려놓은 것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음식부분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음식이 대부분 이였지만 맛보고 싶은 욕구만은 강렬했다.
문득 명절에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종종 할머니의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 갸우뚱하던 기억이 떠올라 흐뭇하기도 하였고 한편 일본어가 우리가 외래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할정도로 우리 생활에 많이 물들어 있음에 안타깝기도 하였다. 역시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많은 상처를 남긴 것 같다. 실제 겪지 못한 나도 이런 생각이 들기만 해도 마음이 이리 좋지 못한데 실제로 겪은 이들은 말로 다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또 한번 놀란 것은 이런 책을 옥중에 써내시다니 정말 작가는 보통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들었다. 아마 야생초 편지로 더 빨리 접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았다.
이 책을 누구나 한번쯤은 접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히 내비쳐 본다. 일본어와 우리나라말을 한번쯤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고 쓰는 것과 전혀 모르고 쓰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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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생각해보자. 어떤 이는 모 개그 프로그램의 빠꾸? 라는 사람이 나온다고 하고, 또 어떤이는 '빽(Back)'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의 빠꾸는 후자에 해당하겠지. 실제 생활에서도
"야! 뒤로 빠꾸해."
라는 말로 운전자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한다. 또, 그대로 가라는 뜻으로
"오라이~"
라고 말하는 버스 안내양을 옛 개그 프로그램이나 옛날을 배경으로 하여 나오는 드라마에서 종종 보았다. 여기 이 말들 빠꾸와 오라이는 우리말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이 말들. 이 말들은 일본어에서 왔다.
이 책은 저자가 '선아'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접했던 몇몇가지 일본어 - 원래 우리말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들 - 때문에 충격을 받고, 일본어 사전을 처음부터 뒤지기 시작한다. 그 사전을 읽어내려가면서 우리 말 속에 일본어가 더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편지를 써서 알려주고자 한다. 이런 언어에 대한 글을 예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지만, 그냥 목록으로 죽 나열하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면, 이 책이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치 논문을 읽는 것처럼, 우리 말과 일본어 비교표 라든가 순화시킬 수 있는 우리말 등 그런 표와 함께 설명을 덧붙인 책들도 많이 있지만, (물론, 그런 것이 한 눈에 보긴 더 쉽고, 편리할 수도 있다. 학문적으로는 그렇게 쓰여진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 이 책은 자신의 어렸을 적의 이야기와 함께, 그와 관련된 그림도 실어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특히, 달걀 아이스께끼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글로도 표현은 되지만, 더 정확하게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로서는 -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의 정감있는 그림과 함께 그 옆에 쓰여져 있는 간단간단한 덧말들로 이해를 돕고 있다.
책의 내용은 계속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말 속에 들어와 있는 일본어의 잔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가장 충격을 많이 받았던 단어는 어렸을 때부터 죽 들어왔고, 지금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이 말 '맘마'다. 어린아이에게 밥을 줄 때에,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자~ 맘마먹자~ 맘. 마~ 어구, 잘먹네~ 다시~ 아~ 맘. 마~ "
맘마는 일본어이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일본어를 듣고 있는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다. 할머니께 '벤또'니, '바께쓰'니 '와루바시'니 하는 말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맘마'조차도 일본어였다니... 우리말 순화 노력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나의 머리를 때린 단어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에 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 이야기하면 읽을 때에 재미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언어를 나눌 때에는 세 가지로 나눈다. 우리말, 외래어, 외국어. 우리말은 말 그대로 순 우리말이다. '미르'라던가 '입' 등.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 중 우리말로 굳혀서 쓰이는 말들이다. '택시' 등으로 우리말로 고쳐 쓸 수 없는 것이다. 외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어. "How are you?" 등. ㅡ.ㅡ; 이 책에 나온 '빠꾸', '오라이', '맘마' 등은 어디에 속할까? 국어 사전에서 '빠꾸'를 찾아보면,
1 차량 같은 것을 뒤로 물러가게 함. ‘뒤로’, ‘후진’으로 순화. 2 물건을 받지 않고 되돌려 보냄. ‘퇴짜’로 순화.
이렇게 나온다. 다른 말로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외래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겠지? 이젠 그런 것들을 찾아 우리말로 순화하여 이야기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야, 뒤로 뒤로, 후진해." "자~ 우리 아기 밥 먹자~ 아~ 어구, 잘 먹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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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빠꾸와 오라이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말인줄 알면서도 우리에게 습관이 베어 온 터라 쉽게 고치지 못하고 흔히 쓰는 말 이다.
우선은 빠꾸와 오라이라는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황대권님이 쓰신 책이기에 무지 읽어 보고 싶었다. 예전에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황대권님의 편지와 그림이 너무 이쁘고 가슴에 와 닿아서 내심 좋아라 했던 책이 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아서 더욱 좋았던 책이 었다.]
이 책은 황대권님이 감옥 생활을 하면서 동생 선아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듯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 중에 일본말인 240여개를 일본어 사전 통채를 읽어가며 추려서 모아놓은 옥중서간 이다.
또한 황대권님의 어린시절을 배경으로 해서 어린시절부터 해서 지금끼지 써오고 있는 일본말들을 예로 들어 어린시절의 추억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시간까지 가질 수 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일본말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전부터 습관적으로 어렸을적부터 부모님이나 어른들인 써온 말들이기에 그대로 습관적으로 써온 말들이기에 우리말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일본말들을 쉽게 떨쳐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부터라도 이런책들을 어린학생들부터 교육을 시킨다면 순수한 우리말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 싶은 바램이다.
나또한 일본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습관적으로 내 뱉는 말들을 주어 담을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우리말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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