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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세계적으로도 너무나도 유명한 저서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시와 진실>등 문학과 정치뿐 아니라 법학이나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다재다능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아방강역고>, <경세유포>등의 많은 저서를 남긴 대표적인 실학자로 거중기와 수원성 축조로도 유명하다. 임금을 받들고 백성을 생각하는 따뜻하고 바른 성품을 지닌 인물로 붕당정치에 희생되어 말년에는 유배생활을 한 인물로 기억된다. 이렇듯 내가 알고 있는 괴테와 다산은 대부분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정도에 불과하다. 괴테와 다산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해도 연관지어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동시대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괴테(83)와 다산(74)이 13년이라는 차이를 두고 독일과 한국에서의 역동적 삶이 펼쳐진다.
괴테(1749 ~ 1832)와 다산 정약용(1762 ~ 1836) 근대시대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 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괴테와 한국과 동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다산... 괴테와 다산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서양과 동양이라는 차이만큼 그들의 삶도 다른듯 닮아있다. 그럼 그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 보자.
이 책은 괴테와 다산의 삶, 그들의 유산과, 괴테학 다산학 이렇게 크게 3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먼저 그들의 다른듯하면서도 닮아있는 삶을 살펴보자. 둘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그들은 다른 삶을 살게된다. 다산이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유배생활 등으로 가족과의 생이별을 하게되고, 괴테는 어렸을 때 형제들과 아버지를 잃게 된다. 가족사에서 괴테의 아픔이 괴로움이었다면, 다산은 생이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여성관과이나 사랑관에 대해서... 괴테는 여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한 지성적 쾌남형이라면, 다산은 사랑의 감정을 윤리적으로 승화하여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 선비적 군자상이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총애를 받지만 그들의 말년은 다른 삶을 살게된다. 괴테는 아우그스트공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지금의 국무총리급인 재상에까지 오른다. 그로인해 정치력뿐 아니라 재력도 겸비하게 되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지만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당쟁의 희생량이 되어 정치권에서 배제되고 유배생활을 하게되는 불운을 겪는다. 물론 그로인해 그가 방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이들의 인간관을 살펴보자면... 괴테는 과장된 신앙이거나 교조적이 내세관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담담한 인생관의 연속이다. 다산의 인간관에는 근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실학성이 내제해 있다. 이렇듯 괴테와 다산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이론적 혹은 교조적 접근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출발선을 공유하고있다. 그들은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하루하루가 부여한 일을 하는 의무를 강조한 괴테와 다산의 근검한 생활철학은 근본적으로 유사한 인간관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괴테학과 다산학이라는 주제아래 괴테와 다산의 철학과, 학문, 종교, 문학, 법률, 정치, 미술, 음악, 과학기술등을 서로 비교해 놓았다. 그 비교를 통해 그들의 여러사상과 다른듯하면서도 닮은 우주관이나 기타여러 다방면의 다재다능한 매력들이 펼쳐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괴테와 다산은 정말 당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괴테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그의 저서나 그와 관련된 여러 기록들이 방대하고, 생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금도 그의 저서나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많은 저서와 시, 명언들이 세계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낭송되고,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다산은 그의 저서에 대한 연구나 기록들이 적고, 그와 관련된 삶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동시대를 산 한 세기의 획을 그을 만한 두 인물이 한 사람은 세계 최고의 인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19세기 이후 서구적 개념의 근대화 실패에의한 결과이겠지만 저자는 한국의 후학들 책임이 가장 크다고 자책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들어서 다산과 관련된 저서들이 많이 나오고 그의 저서들이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으며 그의 삶의 자취들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몰랐던 그들의 사상이나 삶의 철학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문학, 철학, 정치학, 경제학, 미학 등 어느 한 분야의 대가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들이다. 이렇듯 괴테와 다산 둘 다 어느 하나의 영역으로 묶기 어려운 당시대의 천재들이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적, 지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 생애의 여러 저서와 업적을 비교해보면서 다른듯하면서도 닮아있는 그들 삶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이들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다간 수많은 동서양의 지성인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테와 다산을 비교한 것을 계기로 다른 동서양의 인물들도 살펴보면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까지는 괴테와 다산의 저서를 다 읽어보지도 못했고,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들의 삶의 철학과 인생관이 담긴 그들 저서를 읽어보고 싶다. 이미 읽은 책들도 있지만 다시 읽어보면 왠지 처음 읽는듯한 느낌이 들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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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서 나는 어려운 책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정말 철학이나 고전에 대한 관심이 있지 않으면 선택하기 힘든 책 같다. 하지만 호기심은 동한다. 괴테와 다산이 어찌 통했단 말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둘이 교류라도 있었던 거 아니야 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로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 논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크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거나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은 없었다. 다소 아쉬울 정도로 겉만 핥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살짝 있기는 했지만 나처럼 괴테와 다산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학자를 동시에 알아볼 수 있는 개론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를 살아간 동서양의 위대한 학자들의 인생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과 저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데, 아주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 책을 읽는 내내 이 둘이 대체 무엇때문에 함께 다뤄져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간에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상적인 면에서 공유되는 점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물론 이 부분은 나 스스로의 내공 부족 때문이다) 따로따로 다뤄지는 그들이 살아온 길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대체 무엇이 통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들이 함께 살아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함께 논의될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가 살아왔던 환경적인 차이에 의해 둘의 사상이 차이를 보일지라도 같은 시기 안에서 이루어진 둘의 결과물은 충분히 비교 분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둘의 비교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저 근대성이 있었다 정도의 배움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상의 부분부분을 논할 때도 너무 억지로 둘을 비슷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좀 더 유연하게 둘의 사상을 논의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실린 학자들의 다산과 괴테에 대한 논의를 실어놓은 것이 책의 전반을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다. 그 부분의 이해를 통해 다산과 괴테가 함께 논의되고 다산이 좀 더 세계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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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지성사의 교차로에서... '괴테와 다산, 通하다'
서양 지식인을 꼽아보자. 괴테, 데카르트, 아인슈타인 등 각 과학 철학 문학 각 부문에서 한 명씩만 꼽아도 당장 머리속에 몇명은 떠오른다. 그러면 동양지식인, 아니 한국 역사속 지식인을 떠올려보면 누가 떠오르는가? 어.. 선비들은 지식인이었을텐데 딱히 어떤 분야를 떠올릴 때 손에 꼽히는 인물이 없다. 유명한 지식인인 송시열 박지원 정약용 등을 지식인으로 꼽을수는 있지만.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해봐도 서양지식인과 동양, 한국 지식인은 달라보인다. 그 중점에 있는, 그 지성사에 중점에 있는 괴테와 다산 정약용의 대화, 심상치 않다.
책은 세 파트로 나뉘어 진다.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첫번째 파트. 둘은 분명 다른 삶을 살았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좋은 조건에서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며 살았던 괴테,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으면서 올곧은 삶을 살려고 했던 다산. 이들 삶은 서양과 동양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달랐지만 그들의 유산은 인류의 보물이 되었다. 두번째 파트 '괴테와 다산의 유산'은 그러한 그들의 유산을 소개한다. 유명한 <파우스트>와 <목민심서>에서 그들의 지식과 사상을 총집합했고(안타깝게도 나는 두 권의 책 다 읽어보지 못했다. 양이 워낙 방대하니 손을 대지 못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시의 진실>과 <자찬묘지명>에서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좀 더 나은 지성의 발전을, 후대의 발전을 위한 그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괴테학' '다산학'이란 학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철학, 학문, 종교, 문학, 법률, 정치, 미술, 음악, 국제, 과학기술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나름대로의 사상을 쌓아온 그들. 진정 인류의 '유산'이다.
근래에 들어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 사회과학간의 학문적 '통섭'이 이루어지고 있다. 단순히 각각의 학문이 연계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학문들 사이에 교차점을 통해 한개의 진리를 찾아나간다는 의미에서 반가워할만한 일이다. 근대 이후에 이루어졌던 학문의 분과가 많은 문제점을 나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괴테와 다산, 그들의 학문과 그 교차점을 다시 연구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과 사상은 시대를 앞지른 것이었기에 그들의 통찰력에 감탄을 보낼 뿐이다. 자연과학을 배우는 화학도로 나도 괴테와 다산 같은 폭넓은 지식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남겨준 유산들에 대해 짧게나마 공부해볼 수 있었던 책, 갑자기 공부를 하고 싶은 맘이 솟아오른다. ^^
'동서 문명사의 같은 시기에 괴테와 다산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내려주신 신에게 우리는 감사한다. 그들로부터 인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며 문명인이 되었는가.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들은 끊임없이 온고지신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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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다산.. 이둘이 통했다구? 괴테의 파우스트... 다산 정약용.. 이둘중에서 난 괴테를 좋아했다. 고등학교때 이해하긴 어렵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으며 혼자 연극의 대사를 읊듯이 .. 읽었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이둘이 한시대를 살다갔다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이둘이 한시대를 살다가고 .. 비슷한 점이 많은 이둘은 그래서 통했나? 그렇다.. 괴테와 다산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그 날까지 .. 다른 문화에서 다르게 살아가지만 . 철학적으로 한 시대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큰 획을 같이 한다. 처음에 괴테와 다산을 함께 엮은 것을 보고..정말 획기적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미 다른나라에서는 괴테와 실러, 괴테와 톨스토이 , 괴테와 에멘스존등 자기들의 문명권과 비교하여 연구한 책이 많이 나와있다고 한다.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저자또한 이 괴테와 다산을 엮어 책을 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다산을 모르는 세계 사람들에게 이책이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은 나또한 저자와 같은 마음이다. 괴테와 다산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서로다른 나라(문화)에서 태어나 .. 서로다른환경에서 자란다.. 괴테는 풍요로운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 자신의 재능을 좀더 펼치는것이 쉽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건.. 다산이 살아온 시대는 우리의 역사속에 한 부분이라 더 안타까움이 더 한것이지도 모르겠다. 임금의 총애를 받았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들여다 보면 현명하고 충직한 신하들은 유배지에 갇히게 된다. 간신배들의 질시와 아첨으로. 유배지에서의 오랜 생활속에서도 다산은 학문에 열의를 갖고 끊임없이 글을쓰고 책을엮는다. 죽은후에도 그의 업적은 묻혀있다가..오랜 시간이 지나 조금씩 그의 업적이 알려지지만.. 그의 힘겹던 삶에 비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인으로써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과학에까지 열의를 가진 괴테와 다산을 보면 서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들이 그들이 사는 시대에 공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 그들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더욱 흥미를 돋울수 있었던것 같다. 괴테는 많은 여인을 사랑했지만 다산은 부인 한사람만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다산이 좀더 정갈해 보이는듯 하다 ^^ 괴테와 다산 .. 통하다..이들은 통했다 이 책을 통해 다산을 좀더 알게 되어 기쁘고 그의 시대에 올곧은 이념을 자랑스럽다. 괴테와 다산.. 조금은 어렵고 다가서기 힘든 책이었지만..책을 펼쳐들고 글 중간 중간에 꽤 많은 그림들이 함께 한다.. 이해도 쉬웠고 읽기도 쉬웠던것 같다. 다산 뿐만이 아니라.. 역사속에 업적이 묻힌 우리의 역사인물은 아직도 많은듯하다. 끊임없이.. 책이 새로 편집되고 서양인물들도 좋지만.. 우리 역사 인물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알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밑줄긋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가는것과 같다. 수레를 타고 가는 사람은 기름통 한개를 가지고 기름을 저장하였다가 하루에 두 번씩 수레바퀴에 기름을 발라 수레바퀴가 매끄럽게 구르게 하고 수레가 망가지지 않도록 하여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르러 쉴수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수레를 아름답게만 꾸미고 굴러가는 역할은 잊으려고 하는가? 대체로 수레를 아름답게 꾸밀수 있게 하는 물건은 수레에 실리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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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다산 통하다 ??? 두분이 어떻게? 만난적이 있나? 편지를 주고 받았나? 작가의 상상으로 써진 두 인물의 콜라보인가? 제목을 보고 이런 일차적이고 어리석은? 의심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괴테는 오직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가 아니고 다산은 수원성만 지으신게 아니었다. 괴테와 다산은 문학가와 유학가일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소위 백과사전급의 지식을 후세에 남기신 분들이다. 상상하기도 힘들정도로 다양한 분야ㅡ 문학, 의학, 철학, 생물학, 정치학, 색채학, 과학기술, 법학 등등등, 차마 다 열거하기 힘든 만큼의 분야를 거대학 통찰력으로 바라본 인재들이다.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두 분의 메세지는 정말 놀랄 정도로 비슷하게 일치한다. 혼란기:괴테의 경우-독일의 30년 종교전쟁, 다산의 경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지나오면서 인간사고의 중심으로 실용적인 학문과 발전, 범 인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사고와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두분의 저서를 통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를 정리해본다. *괴테의 파우스트* 이 책은 독일어로 읽는 사람들도 어렵지만 그 외의 언어로 읽었다해도 참의미를 이해하고 깨닫기는 어렵다고 들었다. 책의 저자분이 써 놓은 요약본으로 대충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요새말로 인문학의 총채다. 독일의 저명한 괴테연구가는 만프레드 오스텐 박사는 괴테의 오늘날의 의미는 현대인의 과속에 의한 자기파괴를 경계하는데 있다는 요지였다. 우리가 자연을 관조하고 자연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아다지오 템포가 필요하다. 250년전 이미 속도와 과속 대신에 관조와 명상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바흐의 음악, 성스런 조화, 영원히 여성적인것, 즉,원초적 모성도 결국 참을성, 비속도성, 완만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산의 목민심서* 다산은 유배 생활동안 수 많은 저서를 지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체현했다면 다산은 철옹성같은 성리학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신사고를 주창함으로써 시대를 뛰어넘었다. *목민심서는 공무원에게 훈계하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심서' 로서 마음에 새겨야할 근본적인것을 쓴 것이다. 다산은 이 책을 쓰기 전에 암행어사를 한 적이 있고, 지방관리를 맡아보았기 때문에 백성의 비참한 현실을 알고 있었다. 목민심서순서에 보면 임지에 도착하기, 자기를 다스리기, 공무를 받들기, 백성을 사랑하기,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어려울 때 도와주기, 관직에서 물러나기 순서로 각각 어섯 조목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이념은 한 마디로 민본주의다. 국가도 중요하지만 백성의 행복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민본주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실용적이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방안을 곳곳에서 제시하였고 이용과 후생을 중시하는 실학정신이 표출되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청나라의 고증학적 방법을 이용해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책 전반에 관하여 괴테의 연구, 괴테 학회, 괴테를 사랑하는 모임, 괴테연감, 괴테학문, 영화, 연극, 공연 등 괴테 생전부터 사후 200년이상 이어져 온 전세계 인류 후세들의 활동들과 다르게, 우리나라의 괴테 *다산 정약용*의 연구와 *다산학*이라는 방대하고 가치있는 유물, 아니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의 사상과 저서들이 일차적인 해석도 연구들도 이제 겨우 걸음마 상태이고 미비한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하였다. 전세계 150여곳에 있는 괴테 인스티튜가 있다고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에 다산문화 학술대단이 설립되고 2003년에 다산 연구소가 건립되어 <다산학>이라는 학술지를 내고 국제 심포지엄도 국내외에서 개최하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내 바람으로는 늦게 시작한 만큼 현재의 높은 기술력으로 좀 더 정확하고 정교한 학술 작업과 다양한 의견들을 총체적으로 잘 쌓아나아가길 바란다. 저자는 이러한 활동들을 괴테 연구자들에게만 알려도 전 세계에 큰 파급 효과를 보게 될것이라고 한다. 파랑새는 바로 우리집에 있었다는 생각이든다. 우리선조의 소중함과 가치를 늦게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 마저도 큰 성과일 것이다. 앞으로《다산학》이 한류보다 K-pop보다 인류에 더 큰 희망과 용기와 정도를 제시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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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다산. 서양과 동양 지성의 양대산맥이라 해도 부족한 위인들이다. 잘은 몰라도 중학생들에게도 괴테나 다산 정약용 선생을 아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만큼 깊은 지식을 후손들에게 남긴 인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고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고 있는가. 나 역시도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지은 책 제목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그 이상의 것은 잘 알지 못했다. 이처럼 인문학에 무자한 나에게 이 책은 인문학의 요점들을 알차게 모은 알짜배기 사전 역할을 해주었다.
괴테와 다산은 같은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라고 한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면 일단 거리감부터 느껴졌기 때문에 그들이 살다간 시대는 커녕 공통점, 아니 비교를 하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었다. 그런 시도를 이 책의 저자가 하였고 동시대의 지성인, 괴테와 다산의 삶, 지식 등을 흥미롭게 엮어 놓았다. 괴테와 다산에 대해 사람들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쉽게 읽고 지나칠 수 있는 소설들과는 달리 세상을 바라보는 대문호들의 의견과 이야기들은 거대한 벽이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깊게 들어가지 않고 그들의 삶을 통한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도와주어서 그나마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소양이 부족한 고등, 대학생, 사회인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벽을 허물 수 있는 책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에 진학을 하였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전공과 유흥을 더 좋아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은 갖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이 잘 잡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괴테와 다산의 저서들을 찾아보고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들의 생각, 옳고 그름을 떠나 깊은 그들의 지성을 느끼고 싶었고 그들과 나의 생각의 차이점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내일 도서관에 가서 그들의 저서들을 한번 뒤적여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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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해 지난 뒤 다산선생의 <목민심서>를 읽은 후 그 분의 반듯함과 고매한 인품과 높은 학식, 그 따스한 마음까지 온전히 내 뇌리에 각인되어 이런 남성이라면 정말 존경할만하지 않은가? 하며 혼자 흠모하던 분이었다. 팍팍한 세상사에 한동안 책을 멀리하고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다시금 찾아온 그분과 관련된 많은 서적들은 또다시 나를 설레게하며 옛 연인을 대하는 그런 마음이 이는 요즘,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에서 그 분을 다룬 책이 나왔다. 동서 지성사의 교차로라 하여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우리의 다산 선생을 함께 주인공으로 그들이 서로가 만날 수 없던 폐쇄적 시기의 18,19세기 동시대를 살았고 당대의 서양과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들이라며 그분들의 사상과 정신, 다방면에 걸친 작품들까지 일일이 비교,분석,대조하며 들려주고 있다. 특히 작가인 최종고 선생은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괴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한국인물전기학회를 창립, 우리나라의 인물연구와 전기학에 힘쓰고 계시다 하니 여기에서 다룬 내용과 그 신빙성에 대해 무슨 토를 달겠는가? 하며 반가움에 예의 또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1장에서는 조선과 독일이라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상으로 겪어야 했던 비운의 가족사와 청년기, 사랑, 장년기와 죽음등 그분들의 전 생을 간략하게 비교하며 적고 있다. 2장에서는 그분들이 살아생전 쉴새없이 활동하고 정적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끝없는 사유와 실천으로 남겨진 많은 작품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작품만 알고 있던 내게 괴테가 50여년에 걸쳐 완성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과 <편력시대>등은 또 다른 나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다산(茶山)선생을 다산(多産)이라고 쓰고 싶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정치, 법률,문학, 경제,철학, 음악,지리, 역사,과학, 의학등의 전 분야에 걸쳐 두루 편찬한 것이 잡학적 호사취미가 아닌 위국애민의 마음으로 경학과 경제의 핵심주제를 가지고 편집을 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좀더 세부적으로 <파우스트>와 <목민심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안에 깃든 그분들의 정신을 알려주며 이분들이 인간자체와 그 본연의 모습을 작품에 표현한것은 위대한 인물들이 할 수 있는 일반인들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장에서는 그분들의 삶과 정신과 작품들을 통해 나타난 것을 <괴테학과 다산학>이라는 학문적 입지로 세분화하여 철학,학문,종교,문학,법률,정치,미술,음악,국제,과학기술 분야등에 나누어 적고 있다.
이 두분은 격동의 시기를 살았지만 괴테83세와 다산75세라는 꽤 오랜 삶을 누리며 변하지 않는 자신의 계발과 성찰로 이렇게 많은 업적을 이루어 내시고 현재 우리들에게 전해주시는 것, 이 책은 내가 평소에 알았던 따뜻함을 겸비한 문학자로서의 괴테와 다산을 설명하기 보다는 냉철한 철학자 괴테와 사상가 다산을 좀더 심도있게 그렸기 때문에 조금은 딱딱하고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분들의 그 많은 업적들을 이렇게 한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우리에게 알려준 것, 우리시대의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시 내가 어렴풋이 알았던 것을 깊이 알아가는 즐거움이 이 책엔 있었다. 더불어 모든 국가에서 칭송받는 괴테처럼 우리의 다산선생의 정신과 업적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한시바삐 하여야 할 것이다. 그 시대 그렇게 핍박과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도 후세에게 이런 많은 작품을 남기신 선생의 뜻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몫 아니겠는가.. 이 책을 다 읽은 후 좀더 다산선생을 만나고 싶어 도서관에서 <다산문학선집>이나 <여유당전서>를 찾았는데 아예 비치도 안되어 있어 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위인을 위인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남이 잘되는 것, 남의 훌륭한 점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빗나간 권리의식으로 불평등을 참지못하는 '평등주의'가 우리의 심성을 자해하고 있다. 잘된 사람과 비슷해지려는 욕구로 발전되어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에필로그중 P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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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다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이라고 생각 했다.법률가 이자 정치가 그리고 학자의면 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독알의 괴테,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학자 이자 정치가인 다산 정약용.그런 그들이 동시대인 이라는 유사점 부터, 당시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그들이 모시던 지도자 ,집안 환경,문학,예술,법률,구제적인 면 까지 서로를 비교 하면서 유사점 과 다른점을 찾고 있다.우선은 이러한 시도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는 너무 서양의 인물이나 철학자를 우선기 하고 당대의 우리의 위인들을 조금은 인정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괴테라는 인물과 다산을 여러 가지면에서 비교 하면서 같은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면이 많았던 저자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저자는 책을 들어가는 서문에서 괴테와 실러,괴테와 레싱,괴테와 만델스존,타고르,에머슨,등 각자 나라의 인물들과 괴테를 비교하는 책들이 많아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과 우리에게는 괴테와 비교할만한 인물이 없을까 라는 명제에서 조선 후기에 다양한 저술 활동과 백성들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다산과 비교 하기로 생각 했다고 밝혔다.솔직히 책을 읽고나서 다산과는 많이 통했으나 역시 괴테 하고는 통하지 못하였다.파우스트를 통해서 본 괴테의 철학과 사상을 이해 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았다.그리고 괴테를 신임하고 후원했던 캉 아우구스트 공이 있어서 괴테는 복이 타고 난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괴테가 실천 하고자 하는 정치 철학을 강력히 후원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지금까지도 괴테를 위대한 사상가로 보는 이가 많은 것이다. 그에 반하여 정약용은 백성들을 위한 많은 정책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을 후원해 주던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반대파의 탄압 대상이 되고 만다.정조가 갑자기 죽지 않고 다산을 정치적으로 후원 했더라면 백성들의 삶이 더 풍요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다산 선생의 지식 경영법에 이어서 다시 만난 정약용은 학자의 마음가짐,정치가의 마음 가짐이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좀더 다산에 대한 연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 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다산과는 정말로 많이 통 하였다.
괴테와 다산 이라는 인물이 비교가 될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남긴 많은 저작물 들이 후손에 유산으로 남겨져 있어 그것을 분석 하고 해석 할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연구결과가 나올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작품들이 괴테와 다산 통하다 라는 명제에서 만났기 때문에 저자의 주관에 따라 내용이나 해석이 달라질수 있다 라는 점은 가지고서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괴테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족허가 때문에 좀더 노력을 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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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남부럽지 않았던 책장엔 몇 가지 전집에 꽂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당시 인기 있었던 출판사의 기획물로 가가호호 유행처럼 배치되었던 무리를 기억해보면 <세계위인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전집이 좁은 집의 책장 한쪽을 차지하게 된 연유야 자식의 교육을 생각한 부모님의 식견 혹은 당신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다소 불순한 의도였으리라 마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는 확신이 있다. 그렇다면 난 무엇 때문에 그 대단한 위인들의 자취에 감동하고 즐거워했던가?
이 역시 책이 자리 잡게 된 부모의 기대에 부합한 영악한 자식의 심산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런 잔머리가 없었다면 그 책들을 꺼내보지도 않았을 것이니 그렇게 단언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소년소녀를 위한 위인전은 대단한 업적과 성품, 그리고 교조적인 어투로 가득차있어 나이를 먹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사는 지금에서 추억하면 맥이 풀리다 못해 거부감마저 드니, 사준 부모보다 읽는 자식의 의중이 더 불순하다할 수 있겠다.
이렇게 불순한 의도임에도 위인전이 재미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한 기회로 대단한 업적을 세운 이들도 적지 않고, 이제 와서 평가하지면 대단하다는 칭호가 과분한 이들도 있지만 인생 자체가 출판물로 후대에 읽힌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함을 가진 위인이라 부를만하다. 하지만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그 전집이 세월에 못 이겨 과도한 책 먼지를 날린다는 이유로 분리수거함에 처박히고, 수험서와 전공서적에 파묻혀 그것이 현실이고 똑똑한 행동이라 자위하는 삶에 익숙해졌듯이 어린시절의 그 특별한 감흥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다.
다산과 괴테 역시 마찬가지, 붕어빵 장사로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 강남 어디 초고층 빌딩에 살며 억 소리 나는 차를 굴린다는 이름 모를 사람의 인생역전이 더욱 가치를 발하는 세상에 그들 또한 철지난 유행의 위인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보다는 <Vocabulary>를 봐야하고, 목민심서 정도로만 알았던 다산 정약용은 참고서의 꼭지에서나 만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거친 우리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 <괴테와 다산, 통하다>(추수밭. 2007)를 읽고 이렇게 개인사마저 들먹이며 감상에 빠진 것인가. 그것은 후회 때문이다. 그들의 가치를 한때는 자신의 가치에 투영시켜 보기만 했고, 지나서는 일반적인 기준에 어긋나는 불유쾌한 재능을 가진 존재로 애써 외면했던 것에 대한 후회 말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빠져 읽으며 슬퍼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고, <파우스트>에는 나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산은 어떤가. 그는 인생 자체가 가르침이 될만한 여전히 스승의 모습이다. 그런 그들을 시험문제의 해답의 틀에 가둬버렸으니 후회가 밀려올 수밖에.
다시 찾은 다산은 그가 남긴 엄청난 양의 저서를 통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오랜 귀향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뚫릴 만큼 연구와 저작을 멈추지 않았던 그. 세상의 시선을 받을 길이 요원한 외롭고 고된 삶은 그의 끊임없이 읽고 쓰고 행동하는 인생에 있어 장애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활발한 저술활동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정보와 학자의 자세는 후대의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며, 과연 공부는 왜하는 것이냐는 반복되는 불만에 종지부를 맺는다.
그 다산 정약용과 비극적 사랑의 대명사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누구나 시놉시스 정도로는 알고 있는 <파우스트>를 남긴 괴테가 서로 통했다니, 이것 참 궁금하다. <괴테와 다산 통하다>의 제목이 암시하는 그들의 연관성이 참으로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 외에 확연히 드러나는 둘의 공통점을 책에서 찾기는 무리다. 작가, 최종고는 책의 초반 두 인물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면서 두 인물이 통함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이는 괴테가 적어도 코리아의 존재를 알았다는 정도로 불발탄에 그치고 만다. 오히려 그들의 가족사와 사랑 등의 삶을 궤적을 더욱 면밀히 쫓다보면 그간의 차이점, 즉 서로 관계가 없음이 극명해질 뿐이다. 따라서 괴테에 대한 애정으로 다산을 보고, 반대의 경우로 괴테를 본다면 한쪽에 치우친 실망만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인물을 같은 선상에 놓고 따로 보는 것, 다시 말해 공통점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인생을 비교하며 즐기는 것이라면 둘의 특별한 매력에 충분히 빠질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소개 글에서처럼 학술적 가치가 부각된 연구 성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의 옥석을 가려 가치 있게 만드는 작가의 노력을 학술적 가치로 평가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또한, 두 지성인을 비교하여 효과적으로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은 참신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다만, 괴테와 다산의 통함을 논하는 것에 주제를 맞춘 연구 성과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위인의 삶을 집약 전기. 어린 시절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누군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말했던 꿈의 앞 글자를 차지한 그들의 이름. 더 이상 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외면했던 그들의 인생. 이제 그것을 다시 한번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괴테와 다산이 통하는 장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며, 큰 가르침을 주는 위인전의 의미만으로도 가치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