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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경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면 인간을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부활하게 하신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하시고 붙들고 계심을 믿는다. 긴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오래동안 성경을 보고 여러 가지 세계관들을 공부하면서 성경적인 세계관이야 말로 거칠고 투박하고 비루한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인격적인 세계관임을 믿는다. 인간을 이 세상에 버려지고 던져진 존재라고 말하는 사르트르식 실존주의보다, 인간은 유전자를 실어나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도킨스식 과학주의보다, 인간의 영혼과 의식은 단지 신경전달물질에 불과하다는 최근의 뇌과학주의보다 훨씬 더 인간의 존엄성과 위엄을 지킬 수 있는 세계관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 성경적 세계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때 참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오랜세월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때 인격은 순화되고 삶은 옳곧게 세워진다. 이러한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영성'(Spirituality)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영성형성'(Spiritual Formation)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예수님을 닮은 인격과 삶을 갖추기 위해서 영성을 형성하는 과정은 교회에서 실시하는 몇가지 훈련프로그램에 참석해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한방향으로 끊임없이 성경적인 삶의 방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의 방식을 가장 압축적이고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단어인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것은 결코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성경과 기도, 삶과 관계, 세상속 문화와의 적절한 관계맺는 과정을 통해 매우 복합적으로 평생을 걸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영성이라는 것은 현대문화에 편승하는 인스턴트적인 종교결과물이 아니라 오래 숙성되어 지울 수 없는 향기를 내는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유진 피터슨은 부활을 통해서 이러한 참된 영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유진 피터슨은 개신교에서 잘 알려진 영성신학자로 세속화되고 상품화되고 비인격화되어 가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목회자이자 신학자, 그리고 시인이다. 이분의 책은 영성과 신학, 그리고 문학과 상상력이 어우려져 탁월한 이야기로 기독교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성성을 깨우쳐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문화속에서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는것이 무엇인지 매우 사려깊게 고민하고 풀어내는 그는 문화라는 삶의 환경을 무시하지 않고 이 문화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판기처럼 무언인가 누르면 금방 나오는 손쉬운 해답을 주지 않는다. 즉 하나님과 인간과 삶과 영성의 영역은 무언가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비를 인정하는 놀라움이야 말로 영성형성의 절정이고 바로 부활 또한 그러한 경이로움으로부터 시작됨을 말해준다.
1부 부활의 경이에서는 무엇가 손에 잡히지 않는 놀라움, 인간의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것들 인정하는 것이 부활의 핵심이고 이러한 경이로움을 회복하는 것이 영성형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경이로움의 발견은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매순간 실존하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우리 마음속에 참된 경외와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영역에 속하는 전문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된다는 것을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두가 평범한 사람이였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증명하고 있다.
2부 부활의 식사에서는 부활의 경이를 경험하는 것은 가장 평범한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서라고 말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식사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가장 자연스럽게 제자들에게 알리셨다고 말한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행위속에서 부활의 힘은 흘러나오는 것이다.
3부 부활의 친구들에서는 부활의 경이로움을 일상생활 가운데 경험하는 자들은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 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반드시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참된 부활의 영성은 무언인가 초월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더욱 인간관계의 공동체속에 녹아들어가고 진정한 인격적인 관계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잘못된 영성은 자신의 종교적 경험으로 인해 초월을 강조하므로 모든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시킨다. 그러나 부활로 인해 형성되는 영성은 오히려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앎을 가능하게 한다.
유진 피터슨은 이 책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신학적인 글을 쓰지 않는다. 부활의 경이로움과 일상성을 강조하므로 그것은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글쓰기 때문에 부활의 의미가 다소 모호하고 붕 뜬듯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야 말로 인간의 손에 잡혀 획일적으로 사용되는 종교가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신비에 속한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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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유진 피터슨 부활절이 다가온다. 부활절이 다가오면서 부활에 관한 생각이 많아지면서 부활을 주제로 하는 책을 읽어야겠다 하고 있을때 눈에 띈 책이다. 우리시대의 뛰어난 영성가, 목회자들의 목사님이라는 유진 피터슨이 부활에 대해 쓴 책이라면 한번쯤 읽을만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요즘 들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성탄절은 성육신으로써 낮아지심을 몸소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해 보이셨다. 그렇다면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 부활은 낮아지심도 아니고 사랑의 실천도 아닌것 같다. 우리에게 던지는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부활은 우리의 삶 속에서 경이로움을 회복시킨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삶은 매일 새롭게 된다.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은 부활로 인해 지금까지 계속 된다. 우리의 식탁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의 육과 영을 매일 회복시키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부활의 영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문가에게 기대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기초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부활로 일상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익숙했다. 작년에 읽었던 책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확인해보니, 똑같다. "일상, 부활을 살다"라고 번역된, 작년에 읽었던 책과 동일한 내용이다. 심지어 역자도 똑같다. 출판사만 다를 뿐이다. 작년에 읽었던 책은 2016년에 출판되었고, 이번에 읽은 책은 2006년에 출판되었다. 사실 유진 피터슨의 책은 나에겐 쉽지 않다. 그의 영성 가득한 표현은 깊은 묵상을 필요로 하는것 같은데, 나에게 그런 깊은 묵상과 함께 책을 읽는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런 점까지 생각하면 유진 피터슨의 이 책을 두번이나 읽게 된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책을 다시 잘 안읽는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것은 일상 속에서 부활을 살아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독서 #독서감상 #유진피터슨 #부활 #2019년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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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마스를 상업화 한것과느 대조적으로 , 부활절은 돈벌이의 기회가 되지 못했고, 팔아먹을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도 거의 실패하고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우리는 소위 우리가 '어떻게 해보거나 써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금방흥미를 잃어버린다. 과연 부활은 우리가 마음대로 써먹을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그렇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수 있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임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밖에는설명할수 없는 그 무엇이다. 무언가 열심히 만들어 내고 생산해 내는데는 관심이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영혼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몰랐던 어리석은 부자가 바로 오늘 우리들이다. 그런점에서 보면 영성은 분명 하나님에 대한 깨어있는 관심이다. 일생에 걸쳐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형성해 가는 것 그것이 영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신앙생활의 중심에 놓아야한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은 경외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활의 예배가 이뤄지지 않는다. 예수님을 만지고 그분의 발을 붙잡는 친밀함도 그 자체가 부활예배는 아니다 경외감과 친밀함 모두가 있어야 한다. 경외감이 차갑고 느낌없는 감상이 되지 안으려면 친밀함이 깃들어야 한다. 친밀감 또한 끓어오르는 감정에 그치지 않으려면 경외감으로 채워져야 한다.
경외감과 친밀함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하는 것은 균형잡힌 영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 아닐수 없다. 적당하게 대충 타협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면.... 신앙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두렵고 떨리는 상태에서 찾게되는 심리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오히려 신앙은 삶을 관통하여 흐르는 영혼의 심지와도 같다. 부활은 그 영혼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
일터야 말로 영성형성에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이 되어왔다. 우리가 경외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경이감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일터에서는 우리가 유능하게 일을 잘하고 있는지 , 아니면 지루해 하거나 산만해 있든지 둘중의 하나다. 기독교적 조성 곧 영성 형성이 끊임없는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근본적으로 신비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해볼수 없는 부활의 경이를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쩔수 없이 선택하게 된 우리의 일터가 우리 삶의 무대중심을 장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작해야 잘포장된 기독교적 영성의 소비자들로 머물게 아니라 살아 숨쉬는 영성의 소유자들 나아가 메마른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을 흘려보내는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일터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산성과 치열한 경쟁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일터에 거룩한 안식의 의미를 알려야 한다. 일을 처리하는 세상의 방식.. 모든 일을 자기의 손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 우리의 일속에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일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게 하고 일터를 단순히 내 자신의 무대로만 만들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부활영성의 시작은 경이와 친밀함 속에서 우리의 삶 한가운데 일하시는 그분을 향하여 열린태도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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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외면해 온 책임 바로잡기
영성이란 무엇인가? 유진 피터슨에 따르면 영성은 성령의 도움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엡 4:13)"는 삶을 사는 것이다. 즉, 일생에 걸쳐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교회는 이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않았고, 영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부활'이 주변에 맴돌게 만들고 말았다. 우리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라는 중심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것(심지어 예수님의 탄생조차)을 상업화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외면 당한 것이 부활이다. 부활절만큼 돈벌이의 기회가 되지 않은 상품이 없는 것 같다. 부활은 우리가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유진 피터슨의 진술에 100%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래서 세상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진실이자 사실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다.
부활 이야기의 핵심, 그리고 그것의 상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는 경이로움, 충격, 놀라움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경외감과 친밀함이 함께 담겨 있다. 이 두 요소가 합쳐져서 예배가 되었다고 유진 피터슨은 해석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내가 목격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나 역시 세 여인들처럼 경이로움과 놀람, 당혹스러움 가운데 서 있었을 것이리라.
유진 피터슨은 이와 같은 부활의 분위기 속에서 영성 형성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예측가능 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있을 수 없으며, 소외된 인물들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조용하면서도 일상을 벗어나 있는 부활 이야기의 특징들은 경이로움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재료들이다. 이 경이로움이 영성 형성의 중심적 요소 중의 하나이다. 어렸을 적에 우리가 경험했던 경이로움은 우리가 모든 일을 점점 잘하게 되고 스스로 장앙력을 키워가면서 서서히 우리들에게서 빠져나갔다. 결국 일하는 곳에서의 경이감은 사라져 버렸다.
일이라는 것은 자체로 참 멋진 일이다.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활동 속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터가 우리 삶의 무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일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내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존재 정도로 여기게 된다. 유진 피터슨의 이 지적이 마음에 와 꽂힌다. 나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나 이르고자 하는 목표를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새 나는 일의 본질, 부활의 경이가 사라진 채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경이와 경외의 느낌을 앗아가는 일터는 영성 형성에 있어 가장 위협적인 곳이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일터야말로 부활에 의한 영성 형성의 일차적 무대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부활 장면이 일터를 배경으로 벌어 지고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의 근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의 경이감을 회복할 것인가? 저자의 대답은 거룩한 안식의 날을 지키는 것이다. 안식은 일을 처리하는 세상의 방식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처리하려 드는 세상의 강박증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해 준다. 계획적으로 그리고 결연히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자세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보다 자유로운 눈으로 보고 응답할 수 있게 해 준다. 안식은 일손을 멈추고 침묵함으로써 이윽고 깜짝 놀라 열린 눈으로 부활의 경이를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일손을 멈추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의 실천
우리는 매우 자주 하나님과 삶이 단절되는 것을 경험한다. 유진 피터슨은 이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부활이라는 초월적 사건이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인 식사와 하나가 됨을 언급하고 있다. 부활 후 엠마오의 집과 갈리리의 해변에서 함께한 식사는 영성 형성과 일상이 삶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일생 생활에 있어 가장 흔한 곳으로 스며들어 온다. 허탈하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한 것은 유진 피터슨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가 매일 하는 식사를 통해 다가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먹는 행위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한 식사를 떠올리는 것만큼 일상 생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도 없는 듯 하다. 예수님 부활 당시 식사는 부활에의 참여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식사에 깃든 부활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식사에는 희생이라는 체험이 진하게 스며있다. 하나의 생명이 희생되어 다른 이의 생명이 유지되는 체험 말이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우리는 복잡한 희생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린다. 현대사회에서 축소되고 있는 식사의 중요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식사할 때 주의 만찬을 떠올려 보자.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다.
진정한 영성 형성을 위한 길
현대 사회는 극도로 전문화되어가고 있다. 영성 형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인다. 예수를 따라가는 일에서조차 사람들은 전문가들을 개입시키려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조차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나 우리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움직여가기 위해 훈련하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엮어 놓는다. 부활은 친구들 간의 유대를 형성해준다. 부활이 우리를 인도해 가는 곳은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는 공동체다. 예수의 부활을 인식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은 결코 개인적 체험이 아니다.
부활에 있어 혹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에는 전문적 영적 엘리트가 필요하지 않다. 부활에 근거한 영성 형성은 친밀하며 인격적인 경험이다. 우리들 쪽에서는 부활 친구들과의 친밀한 인격적 관계 속에,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속에 우리가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주께서 지금 일하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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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믿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너무나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은데 무엇보다도 나에게 진정한 부활의 신앙이 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기에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부활'을 읽어 보았네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의 확신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정도로 정말 부활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난 과연 주님이 날 위해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완전히 믿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