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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방에 갇혀있다. 하루에 86,400장의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머리 위쪽에 있지만, 그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물건에는 물건을 가르키는 영어 철자가 붙어 있고, 우리는 그가 그 사물을 말할 때 단어를 읽고 있는 것인지 사물을 보고 구별하는 것인지 조차 알수가 없다. 그는 그 자체로 공백 상태이므로 저자는 이를 Mr. Blank.라고 부르기로 한다. 스스로의 삶을 기억할 수 없는 존재란 어떤 것일까. 더구나 그에게는 도저히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한번씩 찾아와 분노를 내비친다. 그에 비해 블랭크 씨는 기억이 희미한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운 노인이다.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에게 끝까지 잘못을 밝혀 내고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노인은 짧아지는 기억력 때문에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기록을 남긴다. 신기한 것은 그 이름을 볼 때 확실하지는 않지만 뭔가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독자인 나는 작가의 평소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이로 인해 더 초조해지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뭔가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안나, 피터 스틸먼 주니어 팬쇼. ..... 존 트로즈, 소피, 대니얼 퀸, 이름을 보니 왠지 좀 익숙한 느낌이 처음부터 있었다. 뭔가 알것 같긴 한데. 미스터 블랭크, 아니면 폴 오스터 이제 깜짝 놀랄 결론을 내란 말이야. 도대체 그 이름들이 뭐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아 맞다. 이 사람들. 폴 오스터 작품 속 주인공들. 아. 그러면 이제야 들어 맞는다. 그가 어려운 임무를 맡기고 위험한 곳에 보냈던 인물들은 죄다 폴 오스터 본인이 만들어 낸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죽을 위기까지 몰아 넣었던 작가에 대해 단체로 반기를 들고 일어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노인 이야기 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의사 새뮤얼 파가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하자 기억이 가물가물한 노인의 머리에서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책을 하나씩 열어서 주인공 이름을 확인해 봤다. 뉴욕3부작을 열자 마자 나오는 이름 스틸먼. 그러면 내내 미안하다고 하면서 노인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겠다는 안나라는 인물은 어디서 나왔을까. 안나 블롬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폐허의 도시'에서 오빠를 찾기 위해 도시로 취재를 떠난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그의 첫 번째 탐정이자 이제는 변호사가 된 남자 '퀸'은 뉴욕3부작 '유리의 도시'에서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 탐정이 되어버린 남자이다. 그리고 그 첫장면에서 온통 하얀 옷을 입은 피터 스틸먼이 등장한다. 뉴욕3부작의 마지막인 '잠겨있는 방'에는 드디어 팬쇼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끔 폴 오스터의 글을 볼때면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커다란 오스터 공화국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곳에서는 작가와 등장인물 간의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유리의 도시'에서도 탐정 놀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퀸이 실제 탐정인 폴 오스터라는 인물을 찾아가기도 한다. 폴 오스터도 등장인물이고 등장인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존이다. 그가 만들어 낸 세계는 '기록실로의 여행'으로 다시 한번 선명해진 느낌이다. 그가 등장인물들에 가졌던 미안한 마음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쓰여진 이 작품은, 그들을 하나의 단독한 존재로서 인정한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오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만큼이나 기묘한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우연의 요소가 모든것을 바꿔 놓기는 하지만 판타지나 있을 수 없는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희박한 확률로 일어날 법한 일을 쓰기 때문에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조금은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믿기 힘든 일이라고 해서 가능성을 0으로 놓는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 할 것인가. 폴 오스터의 글이 흥미를 끄는 것은 있을법 하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폴 오스터는 다시 그 노인을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려 버린다. 그리고 마치 남의 일인양 너스레를 떨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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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난 이 작가의 작품 중 처음 접한 것은 '고독의 발명'인 것 같다.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이상했는데, 뭐 그 이후로 꽤나 많은 작품을 봤다.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이야기꾼으로써의 폴 오스터에 대해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뉴욕3부작, 거대한 괴물, 달의 궁전, 환상의 책, 신탁의 밤... 이런 작품들에 나왔던 인물들이 형식적으로나마 바로 이 작품, 기록실로의 여행에 등장한다는 것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짐작을 못했다. 흠, 이게 외국 작품을 읽는 이들이 가지는 한계인가? 작품을 접하면서 등장 인물의 성격과 같은 특성을 빼고는 잘 기억못하는 나만의 한계인가?
자기 작품속 인물을 이야기속에 넣는다는 것, 작가로서 스스로를 소재로 작품을 쓴다는 것, 그것도 에세이나 세미 픽션 형태가 아닌, 어찌보면 경계문학과 같은 스타일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자신감을 가지는 이가 아니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순환 액자식 구조... 뭐 마지막에 확인이 되는 셈이지만, 그런것도 참신했다. 뭐, 폴 오스터라고 전제하면 뭐 대단한 구조적 특성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약간 비약을 좀 더 해보면... 원죄와 천사, 뭐 그런 알레고리적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원죄의식... 현대인의 번잡한 생활속에 스스로 인식못하는 죄업과 그에 대한 말년 혹은 폐쇠적 징벌, 뭐 그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길지 않지만,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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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로의 여행]의 주인공은 미스터 블랭크(Mr. Blank)다. [어둠 속의 남자]에서 언급된 그 블랭크가 맞다면 저자 폴 오스터의 화신이라는 강한 짐작을 할 수 있다. 폴 오스터로만 국한하면 좀 시시하니깐 큼직한 대문자로 쓰여진 '저자'의 대명사라고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한마디로 미스터 블랭크는 '저자'의 상징적 존재다. 또한 미스터 블랭크는 엄연히 [기록실로의 여행]의 등장인물이다. 고로, 미스터 블랭크는 폴 오스터, 작가, 등장인물 일인삼역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다면, 어차피 텅빈 공백이니 여기에 '폴 오스터', '저자', '윌트 롤리', '벤저민 삭스' 또는 '자하'라고 치환해서 읽어도 상관없다. 참고로, 자하는 폴 오스터의 열혈독자이면서 보잘 것 없는 논문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어둠 속의 남자]를 [기록실로의 여행]보다 먼저 읽은 장점이 조금 효과를 보는 것 같다. 폴 오스터의 작품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이 책의 재미와 맛은 더욱더 풍부해지고 깊어진다.
이 책 43쪽을 보면 미스터 블랭크의 생활 도우미 노릇을 하는 안나 블룸이 데이비드 짐머의 부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짐머의 부인은 1985년 비행기 사고로 죽은 헬렌이라는 이름의 여인인데 이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아시다시피, 안나는 [폐허의 도시]의 여주인공이다. 폴 오스터의 첫 여주인공이니 미스터 블랭크가 안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법도 하다. 더군다나 퀸과 안나는 가난한 작가를 지지해준 오랜 친구가 아닌가. 안나는 왜 짐머의 아내라는 거짓말을 했을까. 폴 오스터가 착각을 했을까. 그런데 3년 전에 남편인 짐머가 죽었다고 한다. 음, 짐머가 나오는 [환상의 책]은 2002년도 작품. 작품과 함께 짐머도 결국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니 기록실에 갇혀 감시되고 있는 미스터 블랭크의 현재 시간은 2005년도다. 이 책 208쪽을 찾아보면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미스터 블랭크의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죄책감이다. 작품을 한편한편 완성해나갈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사망선고도 같이 내려진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제대로 등장인물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자책일까. 안나를 제외하고는 많은 이들이 미스터 블랭크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자신을 창조해낸 작가를 살해하려는 등장인물들에게서 나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애수를 느낀다. 안나, 짐머, 포그, 퀸, 피터 스틸먼, 삭스 같은 이름들이 무척 친숙하다.
폴 오스터의 전형적인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조장하는 사물로는 세 편의 타자 원고, 책상 위에 놓인 사진들 그리고 인명들이다. 이 세 가지 사물은 미스터 블랭크의 과거를 찾는 실마리이자 독자가 미스터 블랭크의 정체와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확인하는 단서도 된다. 타자기로 친 소설 원고의 작가는 두 명이다. 존 트로즈와 팬쇼. 트로즈는 지그문트 그라프와 내전을 다룬 회고록 형식의 소설을 썼다. 팬쇼는 <기록실로의 여행>이라는 짧막한 단편에서 미스터 블랭크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미스터 블랭크에게는 뚜렷한 기억을 촉발시키지 못하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하나씩 이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오, 반가워라. 이들의 이름을 모두 말할 수 있는 그대는 진정한 폴 오스터의 열혈독자이시다. "장님들이 쓰는 검은 색안경을 쓰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참새처럼 야위고 허약한 늙은 남자. 1920년대의 펄럭거리는 드레스 차림에 종 모양의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술잔을,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든 채 싱긋이 웃고 있는 늙은 여자. 머리칼이 하나도 없는 거대한 머리통에 입에다는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엄청나게 뚱뚱한 남자. 소매가 없고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는, 이번에는 중국인인 또 다른 젊은 여자. 검은 머리칼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번들거리는 수염을 기르고서 연미복과 실크해트로 한껏 차려입은 남자. 공원처럼 보이는 곳의 잔디밭에서 잠을 자고 있는 젊은 남자. 소파에 누워 베개로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아마도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좀 더 나이든 남자. 보도에서 한 팔을 커다란 잡종개에 두르고 앉아 있는, 텁수룩한 수염에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노숙자. 1937/1938년판 바르샤바 전화번호부를 들고 있는 60대의 퉁퉁한 흑인 남자. 앞쪽에 한 무더기의 포커 칩을 쌓아놓고 손에는 다섯 장의 카드를 든 채 탁자에 앉아 있는 호리호리한 젊은 남자."(72-3쪽) 또한 잊지 않고 미스터 블랭크의 방을 방문하는 이들이 있다. 미스터 블랭크 본인은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폴 오스터와 내가 모두 잘 아는 인물들이다. 인명들은 유령이나 그림자 같은 형체와는 달리 분명한 기억과 반가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나 블룸, 데이비드 짐머, 마르코 포그, 소피, 대니얼 퀸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대사형'답게 퀸은 등장인물들의 고소로부터 미스터 블랭크를 변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구체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뉴욕3부작](1985), [폐허의 도시](1987), [달의 궁전](1989), [거대한 괴물](1992), [신탁의 밤](2004) 정도는 읽어주셔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진 속의 인물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좀더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럼, 잘 자요, 미스터 블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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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옆 차가 바짝 붙어 지나가면서 내 차 문짝을 '찌익' 긁어 놓고 말았다. 나는 즉시 차를 멈추었다. 상대편의 차를 운전하던 젊은 부인이 허겁지겁 내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많이 놀랐는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요. 변상해 드릴께요.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자기 차 앞바퀴부분이 찌그러진 것을 알게되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산 새차를 이렇게 찌그러뜨려 놓았으니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녀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사고 보고서에는 운전 면허증과 보험관계 서류등에 관한 내용들을 함께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필요한 서류가 담긴 봉투를 꺼내려고 운전석 옆의 사물함을 열었다. 그리고는 봉투속에서 서류를 꺼냈다. 이건 남편이 만약을 위해서 필요한 서류를 담아둔 봉투예요 그녀는 또 한번 울먹였다. 그런데 그 서류를 꺼냈을 때 제일 앞장에 굵은 펜으로 다음과 같은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여보, 만약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기억해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남편이 쓴 글이었다. 내가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너무나 높게 떠있는 이 가을하늘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 . . . . . . ※우리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이 아름답고 고운가을날의 하루가 되시길...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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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영미권 작가 중 폴 오스터를 가장 좋아한다. 그의 상상력, 스토리텔링, 창의적 구조, 위트, 심지어 애로티시즘까지 좋아한다. '기록실로의 여행'도 이 범주 안에 있다. 폴 오스터는 다중 스토리, 액자 속의 액자 등 기존의 방식을 철저히 답습하고 있다. (오죽하면 제목부터 '기록실로의 여행'이다.) 이러한 전개는 아직도 익숙치 않기에 질리지도 않는다. 이 소설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 한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전작들의 재활용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기서부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다만, 폴 오스터의 책을 처음 접하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라면 얼른 바꾸시는 게 좋다.
폴 오스터의 소설이 갖는 힘의 절반은 번역에서 나온다. 그건 폴 오스터의 책들 대부분을 한명의 번역가가 작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자는 황보석을 통해 폴 오스터를 읽는다. 폴 오스터의 상상 속 이야기를 황보석의 문장으로 읽는 것이다. 앞으로도 좋은 번역, 꾸준한 두번째 창작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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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터의 다른 책보다도 유난히 앞부분이 읽히지 않았다. 도대체 미스터 블랭크가 누구인지.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것인지.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안나의 등장에서 미스터 블랭크의 정체를 알수 있었을것이다.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들이 미스터 블랭크를 방문한다. 그들이 미스터 블랭크를 돕는건지, 곤경에 빠지게 만드는건지 알수 없지만 그들의 태도에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스터 블랭크가 곤경에 빠뜨린 인물들은 그중 가장 많은 고통을 겪은 안나까지 모두 그를 사랑한다.
지난 몇년간 매년 오스터의 신작을 하나씩 만나고있다. 젊은 시절보다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는 오스터이고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릴수있어 감사하다.
이 책은 오스터와 그의 팬들에게 유난히도 특별한 책이다. 안나는 폐허의 도시에서 빠져나올수 없을것이라 믿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독자가 그리 생각했을것이다. 적어도, 몇년이나 고민해왔던 폐허의 도시의 결말을 이제서야 오스터가 밝혀준 것 만으로도 소중할 뿐더러 벌써 가물가물한 퀸과 삭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을 사진과 대화로 만날수있어 새로웠다.
한국에 평범한 독자로서 벌써 수십권의 오스터 작품이 책장에 나란히 놓여있고 개성이 넘치는 주인공들과 살아가고있다. 아마 오스터는 배로 많은 인물들과 함께일것이다. 뭔가 지금까지의 소설을 정리하는, 작가로의 막바지의 작품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내년에도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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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우면서도 재밌고, 난해하면서도 정연하다. 이 소설을 평하자면 딱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단순하고, 단면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이 높다. 기승전결 구조로 이 소설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절반도 채 읽기 전에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의 액자방식 소설, 즉 스토리 속의 스토리, 인물 속의 인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교차는 독서를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이런 난제를 오로지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쉽게 말해 말재간으로 풀어낸다. 탁월한 이야기꾼, 폴오스터를 표현하자면 이게 정답인 것 같다.
또한 그는 자기복제에도 능숙하다. 심지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전의 자기 소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과 이전의 소설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 건 아니다. 작가 자신에 대한 일종의 깨우침, 또는 자기를 바라보는 관객들에 대한 위트 정도로 생각된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드는 첫번째 생각은, "처음부터 다시"이다. 첫번째 독서에서 놓친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려면 다시 읽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불만이 아니라 흥미로 다가오는 것 또한 이 작가와 소설의 무서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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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 | 열린책들 | 원제 Travels in the Scriptorium
기록실로의 여행. 말그대로 폴오스터는 독자라는 우리와 기록실로 여행을 떠난다. 폴오스터와 기록실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우리는 폴오스터의 다른 작품들을 눈여겨보고 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안나"를 기억하는가? 이질문에 아니오라고 한다면 당신을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럼 퀸은? 역시 아니오라면 또다시 이 책을 읽어선 않된다.
되세겨볼수록 기록실로의 여행은 참 잼있는 책이다.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고정!독자들을 위해 이런 책을 만들어 내다니. 그의 머리속엔 도대체 모가 들어 있는 것일까?
폐허의 도시의 "안나"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모두들 안나가 절대 돌아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록실로의 여행에서 그 안나가 돌아 오다니. 게다가 퀸도 나오고 그외 등등 그의 작품속 주인공들이 속속 들이 모여든다. 폴오스터의 팬이라면 그와의 지적 유희를 즐겨볼만한 책이다.
그의 글쓰기의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허허~ 놀라움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2007.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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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방에 있다. 그를 감시하는 눈들이 있고 그는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 노인, 미스터 블링크라 이름 지어진 이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와서 기억을 하라고 한다. 그를 보살펴주는 여인도 등장한다. 하지만 미스터 블링크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고 왜 자신이 거기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물어보는 것조차 잊는다. 그는 자신이 그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죄를 지은 첩보원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진을 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라고 하고, 자신이 어떤 책에 등장하는데 왜 그 작가가 자신을 거기 등장시켰는지 기억하라고 하고 의사는 책상 위의 미완성 글을 읽고 그 다음을 생각하라고 하고 변호사는 그가 많은 사건으로 고소된 상태라고 알려준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그런데 변호사가 등장하고서야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를 알게 되었다. 참 늦게도 알았다. 뭐,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작가의 책을 그리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과연 이 작가가 밤마다 어떤 꿈을 꿀 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것을 독자에게 다시 되돌려주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이런 위험부담 속에 쓴 글이니 허투루 읽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경고, 책으로의 협박, 그런 것일까?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읽는다. 작가는 창조를 하고 독자는 창조물을 받아들인다. 물론 작가와 똑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저 기억실로의 여행은 비단 작가의 글쓰기 여행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글 읽기 여행일 수도 있고 다른 존재들의 여행일 수도 있다. 누가 아는 가? 나 같은 독자도 글 잘못 읽었다고 눈을 떠보니 어느 방에 갇혀 할머니가 되어 알약을 먹으며 간호를 받으며 똑바로 기억하라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그런 말들을 들을지... 아무튼 소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작가다. 그건 인정한다. 이런 작품은 낚여도 기분 좋다. 미스터리가 진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만족한다. 작가건 누구건 뭐라 하건 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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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도서관에서 뉴욕3부작을 빌리면서 비교적 얇고 행간이 넓은 이 책을 같이 빌렸다. 실은 달의궁전을 빌리고 싶었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 달의궁전은 포기했다.(두께도 두꺼운주제에 빼곡하게 들어찬 글씨들에 토나올 뻔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