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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벤더나 그의 친구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이다.
호기심 많고, 장난치기 좋아하고, 잘 웃고..... 평범한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 그러나 제시카가 세인트 캐서린 학교에 전학을 오고 톰이 있는 반에 배정이 되면서 그 평범함 속의 편안함은 지속 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제시카라는 아이가 전학을 오는데 아주 심한 화상을 입었으며 치료 차 뉴헤븐에서 왔고 그 동안 우리와 같이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제시카가 처음에 나타났을 때 제시카의 얼굴은 도저히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피부는 너무나 거칠고 울퉁불퉁했으며 온갖 종류의 분홍색과 흰색과 빨간색으로 얼룩덜룩 물들인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지, 아직도 아픈지 궁금했다. 톰만이 그렇게 느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톰의 반 아이들 전체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두려움과 혐오에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충분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매체를 통하여 알게 되는 것은 직접 대면하는 문제와는 사뭇 다르다. 매체 속에 있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화상을 입은 제시카의 등장은 현실이다. 매체에 보도 되는 것은 외면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외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는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상이군인들이 생필품 몇 가지를 가지고 가가호호 방문판매를 했었다. 지금이야 팔, 다리 없으면 의족, 의수를 하겠지만 30~40년 전에는 잘린 팔 끝에 의수 대신 갈고리를 달았었다. 난 그 사람들이 정말 무서웠다. 좀 더 커서는 재활원 근처에 회사가 있었는데 매일 만나게 되는 사지가 비틀린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난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아마도 나와 다르다는데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막연한 두려움이 날 불편하게 했던 기억이 있기에 제시카의 등장에 톰의 반 아이들이 보였던 반응이 공감이 갔다.
지금 톰에게 있어서의 현실은 제시카가 학교에 오는 한은 나와 달리 장애를 가진 제시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시카를 보는 일이 보통의 다른 급우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지는 않다. 왜 무엇 때문에? 제시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다른 친구들처럼 대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갈등을 한다. 톰만 그랬을까? 제시카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고 노골적으로 제시카의 장애를 거론하는 다른 아이들은 맘이 편했을까? 그들도 톰에 못지않게 제시카를 바라보기가 편치만은 않았음을 커트니의 향동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우리는 잠재적인 장애인"이라는 문구를 떠올린다.
태어 날 때부터 어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후천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장애인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장애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은 하고 있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일이다. 나도 예외일수 없다는 것은 인정을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하지 않았는데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설혹 상상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상상은 지속 할 수 없는 상상 일뿐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가 되었을 때만이 보다 현실성을 띤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그냥 당신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봐 주고 장애 그 차제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로 봐주면 안 되느냐고 말을 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힘들지 자신들이 가진 장애 그 자체는 단지 불편함뿐이라는 말을 한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떤 한 부분으로 규정을 당하기보다는 인간 그 자체로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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