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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
철학은 관념을 다룬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그 관념을 만든 존재가 사물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미술은 잘 모른다. 간혹 모네나 르느와르가 좋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도 수첩에서 잡지에서 엽서에서 조금 접한 그림에 대한 내 느낌일 뿐 미학 책을 봐도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왠지 사람들의 느낌을 조작하려는 듯한 기분만 들었을 뿐 별로 공감이 가는 말은 없었다. 물론 보는 눈이 없으니 내 느낌은 그들과 달라 라고 해 봐야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책 한 권을 읽었으니 책에 대한 느낌이 남아야 할 터인데, 이 책은 책에 담긴 내용보다는 미술을 보는 내 마음에 조금 파문을 일으켰다고 해야 하나, 미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강하게 품게 한 책이다.
사물이라, 내가 좋아하는 사물은 종이와 펜이다. 얇고 낭창낭창한 종이에 플라스틱이 아닌 셀룰로오스로 만든 미끈한 펜으로 써 나가는 과정이 나는 참 좋다. 사물 위에 사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미술가들도 그렇지 않을까, 사물 위에 사물로 사물을 그려 나간다. 사물은 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느낌을 주고 내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주며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준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화가들의 이야기보다 1장 사물은 요물이다 편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정말 좋았던 것은 사물로서의 바로 이 책이었다. 단아하고 매끈하게 마무리되어 있는 외장과 얇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사물로서의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 책인 듯도 하고 수첩인 듯도 하고 일기장 인 듯도 한 이 책. 들고 있는 촉감이 너무 좋아, 보고 있는 시각이 너무 좋아 사물의 존재 의미를 강하게 느끼게 해 준 책. 미술을 잘 몰라 어려운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왠지 평생 내 곁에 함께 할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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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감각에 의존해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을 보고…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인식된 사물이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정직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는 회의적인 답변을 듣게 된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감각의 불완전성에 대해 경고를 해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눈에 보이는 게 사물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이론 중 하나이다. 특히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감각과 본질을 다루고 있는 이론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개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듯한 문화의 기계적인 생산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대 사회의 특성이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도 어렵지만 미술은 더더욱 어렵다. 미적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먼 나에게 현대 미술은 난해함의 덩어리와도 같이 느껴진다. 특히 딱 보았을 때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작품들이 오늘날에는 너무도 많다. 상징의 범람이라고 해도 좋을까?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화가들이 행한 작업은 마치 심오한 철학이 대중들과 유리되는 과정과도 같아 보인다. 작가의 미술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나의 해석을 뒤엎는 것이었다. 오히려 추상적으로 보였던 각 화가들의 작품은 감각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왜곡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그림은 상징이 아닌 진실이었다. 폴 세잔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 원근감에 있어서의 왜곡은 자신의 부조리한 감각을 바로잡기 위한 시도였다. 다만, 모든 이들이 같은 소재가 주어졌을 때 그와 같은 관점을 취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감각보다는 조금 더 정확하다(?) 판단할 수 있는 의미에 의존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각을 떠나서는 사물을 인식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감각의 노예였다. 하지만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는 감각을 떨쳐버림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데 성공한다. “선들이 여기저기 죄수들처럼 색조들을 가두고 있지. 나는 이들을 해방시키고 싶어. (…) 그곳에서 풍경화는 날카로운 지성의 미소로 떠다닐 거야.”(p51 중에서)라는 말은 그가 그림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바를 여실히 드러내는 게 아닐지 싶다. 작가는 폴 세잔뿐만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칼 안드레 그리고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앤디 워홀까지 언급한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계승,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피카소가 세잔으로부터 사물이 갖고 있는 선과 면을 해체해 재구성하는 법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고 본다면, 뒤샹이나 안드레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사물 자체에 몰입함으로써 미술계에 획기적인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앤디 워홀의, 묘한 매력을 풍기는 반복 패턴 역시 (얼핏 보았을 때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분명) 세상이 지닌 본질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이해하기 힘들었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나는 미술과 철학이라는 두 개의 화두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양자는 서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감각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투사마냥 본질을 부르짖던 철학자의 모습을 독창적인 것이라기 보단 이 시대의 사조마냥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현대 미술로부터 메를로-퐁티나 후설, 푸코, 장 보드리야르 등의 목소리를 발견한 저자의 작업의 결정체다. -천재들의 작어은 항상 근원적인 곳을 향해 수진으로 파 들어가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럴 때 묘하게도 작업 방식의 구도가 흡사한 경우가 많다. 이를 지켜 보게 되면, 말을 하는 철학으로 하여금 말을 하지 않는 미술 작품을 대신해 말하도록 하고 싶은 욕망이 있게 마련이다.(p86) 미술이 곧 철학이요, 철학과 미술은 도구의 차이일 뿐. 같은 것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의 철학과 미술을 인식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도 세분화, 전문화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선 분화된 시각만이 능통은 아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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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지식이 약한 독자로서 인문분야에 대한 가장 좋은 책은 쉽고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대중서라고 하여 인문철학적인 지식을 쉽고 평이하게 표현한 책은 처음에 집어 읽기에는 쉽지만, 사실 끝까지 읽기는 더 어렵다. 오히려 읽고 나서도 머리 속에 잘 정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인문서적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에는 읽기 어렵더라도 책의 전문 지식과 사유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면 한숨에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 속'은 숨가쁘게 전개되는 저자의 사유의 흐름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철학서이기에 내용은 난해하고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10분, 20분 후에는 책의 마지막까지 달려읽을 준비를 끝마치게 한다. 저자의 전문적인 사유가 쉽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잘 정리되어 이해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인물은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상, 칼 안드레, 앤디 워홀과 들뤼즈, 메를로-퐁티 이다. 우선, 이름을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들이 굉장히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만만치 않은 사유와 내용을 가지고 있는 대가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저자는 '미술 속'에서 이들의 작업이 가진 철학적 지점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분명히 사유와 내용을 그려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머리 속에서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생생한 사물을 통해 미술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을 찾겠다는 책의 의도는 그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도전이 매우 의미있고 지속가능한 사유로 다가올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책의 사유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일상에 반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사유 혹은 감각하는 것은 매번의 일상에서 모든 사람이 겪게 되는 일이다. 결국 미술과 철학을 연결하는 철학적 시도가 일상에서 적용되는 것에 '미술 속'은 일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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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철학 그리고 사물의 사유까지. 이 세개를 통찰력 있게 다루는 것이 지은이로도서도 꽤 힘든 작업이지만 읽는 독자도 쉬운 주제는 아니다. 보통수준의 상식을 가진 사람에겐 미술에 관련된 책이거나 혹은 철학에 관한 책등 한가지 분야의 책도 종종 읽기가 버겨운 경우가 있는데 말이다. 나또한 미술이 전공이 아닌지라 말그대로 유명한 화가의 이름 몇명과 그들이 그린 그림 몇개를 봤을 뿐이다. 이런 나에게 "미술속 발기하는 사물들"은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미술에 관해 철학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의미를 찾아내는 책이라니.
그러나 책은 내가 우려했던 만큼 복잡하고 머리 지끈한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근조근 이야기 하는 듯한 지은이의 말투는 미술이 어려운게 아니야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책은 폴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칼 안드레, 앤디워홀로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5명 모두 현대미술에 속하는 인물로서 과거 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지은이는 이 인물들의 각자의 활동과 영향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쓴게 아니라 각 인물들이 서로 어떠한 영향을 받고 발전해왔으며 이것은 현재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하나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용이 좀더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책은 200P지가 안되는데 목차는 인물별로 5명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다보니 이 화가에 대해서 조금 알듯하면 목차가 끝나서 조금 아쉽다. 조금 더 많고 다양한 재미를 줄수 있는 주제였기에 독자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책 안에서 소개한 화가들의 작품을 볼수있는 사진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든다. 옛말에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이러한 아쉬움이 보이는 책이지만 아쉬움보다는 읽고나서 뿌듯함이 더큰 책이다. 지은이의 업그레이드 된 다음 책이 나온다면 서점에서 책을 들어 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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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것과 소통했을 때 그것이 지닌 메시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드라마나 수학적언어는 그러한 메시지를 찾아내기 쉬운 분야이다. 때문에 드라마나 수학적언어에서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보고, 그자리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반면에 철학이나 미술은 그것이 담고 있는 은유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작가가 그것을 하면서 가졌을 의도는 찾기 힘들며, 설령 답을 찾았다고 느낄지라도 그 답은 제각각이다. 그 때문에 미술을 배울때 초보자는 감상의 방법을 배우며, 철학을 배울때는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운다. <세잔의 정물화를 본 후 본문의 글> 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그림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색으로 넘쳐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림 전체의 공간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세잔의 정물화는 그저 "썩 잘그린 정물화"에 불과하지만 그림 속 사물들 하나하나를 관찰하다보면 세잔이 이 그림을 그리면서 의도한 것과 사유한 것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볼 때 그 그림은 철저한 사유를 거친 "감각의 결정체"이다. 물론 사실 세잔의 정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답은 존재한다. 답이 비록 작가가 말한 것과 다르더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미술과 철학을 이해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매뉴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왜일까? 그것은 이 책이 미술과 사물의 공통먹이인 사물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사물에 대한 완벽한 인식론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고로 매뉴얼은 매뉴얼이되, 초보자용이라기 보다는 중급자용 심화이해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아직 철학적, 미술적 소양이 부족하신 분들은 좀 더 몸을 푸신 후에 이 책을 읽는 것을 권장한다. 더이상 설명해 무엇하겠는가? 뒤샹의 <샘>이란 작품을 아는가? 바로 뉴욕의 독립협회에 뒤샹이 제출한 남자소변기이다. 아마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모두들 잘 알 고 있는 작품이라고 믿는다.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책을 읽기 전의 답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 답은 이 책의 답과는 다른 것이며, 책을 읽은 후의 답과는 또 다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