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취화선을 봤다. 취화선을 보면 장승업이 그린 그림을 보고 주위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는 말들을 보며.. 장승업 할아버지는 "일획이 만획이고, 만획이 일획인데 무슨 그리 말이 많아.." 하면서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다. 성애론. 말도 많고 얘기도 많은 책이다. 사회? 이중적 잣대? 등등의 어려운 말은 관심 밖이다. 내 나이 25 대학3 학년인 내 눈에는 이 책이 그저 신기한 책일 뿐이다. 제목 때문일까? 들고 다니며 읽는 것도 눈치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에대해 무지한 내 의식을 일깨워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니 그 재미로 이 책을 놓을 수 없다. 한살이라도 많은 사람 말을 따르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던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성을 쓴 책이고 게다가 내가 생각치 못한 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에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난 기자도 아니고.교수님도 아니고 그저 이 글을 읽고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난 너무나 재밌게 읽었다. 재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
| 마광수란 이름은 나에게 자유라는 이미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자유로움과 솔직함이 나는 좋다. 이런 피상적인 이미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마광수란 저자의 생각을 처음 접한 것이 이 성애론이다. 이 책을 읽은 건 대학 3학년 때다. 스스로도 얼치기였지만 나름대로 자유주의자였던 나로서도 적잖이 놀란 점도 있었고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어차피 마광수는 마광수고 난 나니까.. 어쨌든 인간에게 사랑은 오로지 순수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발현이고 그것이 무엇에든 억압되지 않고 표출되어야 하는데 인간이 만든 제도나 제도를 이끌어 나가는 권력주체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왜곡된 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윤리적인 방식으로- 끌어나가려고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같은 정신과 육체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 구조속에서의 비상식적인 윤리는 우리의 이중적인 잣대가 낳은 부산물이라고 본다. 솔직해지자. 이 책을 읽고 가장 처음 생각났던 말이다. |
| 마광수 교수는 한마디로 '자학적 프로이트의 후계자'이다. 프로이트가 당시 파격적인 성욕의 주창자로서 보수적인 기성사회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지만, 100년이 지난 우리 이 시대의 또 다른 한국의 '프로이트'인 우리의 마광수 교수는 더욱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초를 격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그만큼 맞바람을 견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며, 마 교수가 육체적으로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대에 마교수 같은 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이 책은 비록 '인간의 성애론'을 비과학적으로 문학적 수필형식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성욕'은 인간이 진화의 원동력이지 최고의 선물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옳은 것을 인식하고 깨닫게 될 때 행복해 질 수 있다. '억압된 성욕이 승화되어 인류문명을 낳았다'는 프로이트의 말이나, '성욕은 문명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마 교수의 한층 업그레이드된 언급을 검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때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슴을 비로소 기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가 80~90%정도로 맞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10~20%를 동양의 음양론(김용옥 교수의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어 볼 것)과 칼 융의 '집단 무의식' 등으로 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상당히 많은, 대부분의 진실을 이 한편의 책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