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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문화 예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기름 냄새가 가지지 않은 조간 신문 문화면에서 디지털 관련 용어들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그 용어에 대한 정의나 합의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생략된 채이다. 이러한 이유로 디지털 언저리의 이야기는 구체적 현상들을 나열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역사와 철학에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는 시점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문화와 예술을 과학과 기술의 대척점에 두고 이해하려는 태도고, 다른 하나는 이 둘의 관계를 보다 유기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전자는 새로운 매체의 탄생이 예술의 위기를 부추긴다는 비관론의 시작이며, 후자는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다.
'디지털'은 일시적 유행의 수준을 넘어선 구조적 대세로 보인다. 이제 근거없는 비관론과 막연한 낙관론 모두를 유보할 때이다. 단지 그러한 양편의 논리와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디지털이 문화 지형에 가져온 변화에 대한 보다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정보화 혁명'을 산업혁명 이후 가장 중대한, 아니 아마도 그를 능가하는 혁명적 사회 변화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pp. 56-57) KAIST 교수 10명의 글을 엔솔로지 형식으로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새로운 문화 예술 지형에서 변화의 의미와 한계를 명징한 언어로 개관하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정보의 양과 질의 변화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균형잡힌 시선으로 예견하고 있다(서문 ix)는 점에서 그 어떤 디지털 관련서보다 내실있는 입문서로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근본적인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웨어, 즉 이 모든 것 뒤에 숨어있는 무형의 논리적 변화가 바로 이 책의 주제인 디지털화이다.(p.50) 산업혁명 이후 가장 중대한, 아니 아마도 그를 능가하는 혁명적 사회 변화는 바로 우리가 오늘 목격하는 바 정보화 혁명이라는 데에 인식이 일치하고 있다.(pp.56-57) 기술은 삶의 필요에 의해 출현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그렇게 출현한 기술이 제공하 새로운 가능성은 다시 새 유형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기술적 환경의 미래는 기술 자체에 의해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삶과 유리되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다. 비록 디지털과 컴퓨터에 의해 정보화가 급진전하고 있지만 그 항해 방향은 기술 개발의 방향성이 아니라 그것을 요구하는 인류 문명의 방향에 관련되어 있으며, 정보화 혁명은 우연히 촉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불러온 것이라고 해야 한다.(p.59) 우리가 낙관이나 비관 중 하나의 태도를 확신 있게 취할 방법도 이유도 없어 보인다. 단지 그러한 양편의 논리와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이 혁명의 진전을 지켜보는 것이 도움이 될 뿐이다.(p.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