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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이 당신 인생의 좌표를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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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처음 읽었던 어린 나에서, 이제 세월이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었고, 은희경도 나이를 먹었고, 세상도 많이 변했다. 그런 시공간의 변화를 반영하듯, 은희경의 소설도 ‘진화’했다(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소설가 은희경에게는 여러 가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누구는 ‘장르’라고 하고 누구는 ‘브랜드’라고 한다. 등단과 거의 동시에 일약 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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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처음 읽었던 어린 나에서, 이제 세월이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었고, 은희경도 나이를 먹었고, 세상도 많이 변했다.

그런 시공간의 변화를 반영하듯, 은희경의 소설도 ‘진화’했다(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소설가 은희경에게는 여러 가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누구는 ‘장르’라고 하고 누구는 ‘브랜드’라고 한다. 등단과 거의 동시에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에게, 그리고 그의 작품에게 그런 평가가 모든 것은 아니다.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솔직해져야 하고,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이번 소설집에 나는 기꺼이 최고의 평가를 주고 싶다.

나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발전하고 진화하는 작가에게, 그의 작품에게.


문학도 작가도 잘은 모르지만, 한 작가가 등단해서 10년이라면 자기가 가진 기본 재산을 송두리째 울궈먹고도 남을 세월일 듯싶다. 무슨 일을 해도 그러지 않겠나. 이런 세월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이고 밑천만 믿고 태만하게 지낸다면 그후 10년, 20년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다. 맨 먼저는 독자들이 알아볼 것이다. 은희경은 이번 소설집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세계로 진입하여 환골탈태하고 일신우일신한 것 같다. 그런 그녀의 시도와 실험에 박수를 보내며, 기꺼이 환영해마지 않는다.


이번 소설집은 은희경의 인간 탐구, 인생 탐구의 장(場)이다. 수록된 6편이 정말 제각각이다. 소설집이 일정하게 맥을 같이하면, 그건 연작소설일 게다. 소설집이라면 단편의 묘미를 흠뻑 다양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도대체 소설가가 생각해낼 수 있는 인간이랑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흥미진진할 수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YES 채널에 올라온 은희경 인터뷰를 보면 이제 리얼리티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던데, 이런 게 리얼리티가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거대하고 막강한 현실 앞에서 초라하고 비루한 인생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야말로 진정한 그것이 아닐까?


덧붙여, 은희경 소설은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인생의 좌표가 될 만한 문장들이다.


세상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굴러가요. 더러움과 증오와 한심함으로 가득차 있어요. 솔직히,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 세상이 모두 정밀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나는 아마 각본대로 뛰지 않는 토끼일 거예요. (<의심을 찬양함>)


인생은 얼마나 많은 암호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일까. (<날씨와 생활>)


상투적인 말이긴 해도 어쨌든 인생이란 길 찾기이니까요.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지도 중독>)


두려움도 없지만 설렘 또한 없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이런 생각, 어디 작가만의 것이겠는가. 누구나의 마음을 어쩌면 저렇게 꼭 집어줄 수 있는지, 감동의 물결이다.



P.S. 어떤 리뷰에서 은희경 소설 주인공들이 이니셜로 쓴 것에 대해 못마땅하다고 하셨는데, 은희경 소설에서는 거의 그렇다. 특히 ‘K’라는 인물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름을 짓지 못해서가 아니라 작가가 특정한 의도로 쓴 듯한데, 좀 과한 폄훼라고 생각한다. 은희경 소설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인데...

d******l 2007.04.20. 신고 공감 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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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표기법도 지키지 않은 무성의한 편집에 실망!
"기본적인 표기법도 지키지 않은 무성의한 편집에 실망!" 내용보기
조금이나마 우리 독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요즘 들어 더욱 극성을 부리는 실용서, 처세서들의 범람과 함께, 순수 문학서의 침체가 도드라진 독서계를 개탄한다. 또한 그런 개탄과 함께 늘 따라 붙는 말은 독서력이 떨어진 독자들의 낮은 수준에 대한 토로, 배금주의에 젖은 천박한 풍조를 탓하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책을 읽으며 느끼는 문제점은 그런 선입견과는 정
"기본적인 표기법도 지키지 않은 무성의한 편집에 실망!" 내용보기

조금이나마 우리 독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요즘 들어 더욱 극성을 부리는 실용서, 처세서들의 범람과 함께, 순수 문학서의 침체가 도드라진 독서계를 개탄한다. 또한 그런 개탄과 함께 늘 따라 붙는 말은 독서력이 떨어진 독자들의 낮은 수준에 대한 토로, 배금주의에 젖은 천박한 풍조를 탓하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책을 읽으며 느끼는 문제점은 그런 선입견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문학서의 졸속 편집이 독자를 멀어지게 하는 요인은 아닐까... 

이 책,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우리 시대의 몇 명 안되는 명망 있는 소설가의 작품집이라는 것과 창비라는 권위 있는 출판사가 낸 신작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그런데...이게 뭔가...

외래어 표기법에 분명히 된소리 표기를 쓰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것쯤은 출판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도 알만한 것인데 이 책은 마치 일부러 된소리를 쓴 것처럼 엉터리로 적어 놓았다. 콘써트, 까페, 씨스템...등등..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도대체 문학이 언어를 표현 형식으로 하는 예술이라는 기초적인 지식마저 상실했다는 것인가...편집자는 뭐하라고 있는 사람일까..처음엔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는가 싶었는데 어떤 것은 제대로 표기를 해 놓은 걸 보면 나의 선의의 해석은 가련한 짝사랑이었을 뿐이다.

다음, 등장인물을 일부러 영문자 이니셜로 적은 작가의 의도다. 이 소설집은 각각 발표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도 맨 앞에 실린 '의심을 찬향함'을 빼고는 대체로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R이니, J이니, K이니 하는 영문 이니셜을 천편일률적으로 쓰고 있다. 만약 작가가 현대 사회의 익명성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의도나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으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무 안일한 짓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전례의 답습이 아니라 새로움의 발견이고 낯설게 하기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 글을 쓰는 것인지..이름짓기부터 고심해 오던 앞선 우리 작가들이 보여 준 최소한의 성실성마저 은희경은 지키지 않고 있다. 그래야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면 기꺼이 그 형식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아니다...이다. 영문 이니셜을 고집할 만한 최소한의 의도가 작품 속에 들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이런 식의 겉멋 부리는 짓이 캐릭터를 모호하게 하고, 그러므로 우리 소설 독자를 서구 소설이나 일본 소설에 눈을 돌리게 한다는 것을 작가는 전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진정성이 없는 문장...그건 지적 사기다.

...은희경이 보여준 삶의 비밀스러움과 참신한 감각을 잊지 못했던 애독자의 한 사람이기에 이번 작품집은 더욱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더구나 그의 글의 진성정보다도 표기나 번역투의 문장이 주는 조악함 때문에 실망하다니...어처구니가 없다.

끝으로 책 뒤에 붙은 신형철이라는 평론가의 글은 더욱 가관이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 '냉소와 위악은 정주하는 정신의 속편한 포즈가 아니라 끊임없이 약동하는 정신의 어떤 태세다'(213쪽 해설)..이런 비문을 읽고 이 소설집을 더 잘 이해하고 처음 대하는 독자가 읽고 싶은 생각이 날까..위의 문장은 현학을 앞세운 비문의 전형이다. 묻고 싶다. 포즈와 태세가 어떻게 우리 글에서 상대적인 어휘로 선택될 수 있는가...이런 식의 평론이 우리 소설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라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어느날 우린 끼리끼리만 읽고 떠드는 자위적인 집단을 '문학한다'라고 떠들게 되지 않을까...국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는 사람으로 너무 한심스런 행태에 화가 나서 적는다. 이런 책을 '은희경'이라는 이름만으로 포장하여 던져 놓는 건  독자를 지나치게 깔보는 짓이다.

YES마니아 : 로얄 m*****8 2007.04.19. 신고 공감 2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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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면도날." 내용보기
은희경의 소설은 보통 저런 수식어를 붙이고 세상에 나왔더랬다.시린 빛을 반사할 듯한 문장과 그녀의 시선을 나는 참 좋아었했다.    하지만 시나브로 변모해 가는 그녀의 글.노골적인 불평을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었지만익숙하지 않았기에 조금은 어리둥절했고 미처 다 씹어 넘기지 못한 채로 구석에 남아 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제목에서부터 서걱이는 얼음의 기운이
"면도날." 내용보기

은희경의 소설은
보통 저런 수식어를 붙이고 세상에 나왔더랬다.
시린 빛을 반사할 듯한 문장과 그녀의 시선을
나는 참 좋아었했다. 

 

하지만 시나브로 변모해 가는 그녀의 글.
노골적인 불평을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익숙하지 않았기에 조금은 어리둥절했고
미처 다 씹어 넘기지 못한 채로 구석에 남아 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제목에서부터 서걱이는 얼음의 기운이 퍼진다.
우리를 각성시키던 예전의 알싸한 맛,
그리고 새 양념들이 조금씩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

 

같은 풍경을 통과해온 사람들끼리
별다른 어려움 없이도 길어올릴 수 있는
기억이란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다.

 

소설 속 1991년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해.
난 고작 9살이었다.

그렇게 날 선 감성을 갖지 못했음을
이제사 아쉬워한대도 나는 결국 그 다음 세대.
무익한 질시이며 하릴없는 동경인 것을.

 

우리 세대가 문단에, 음악계 일선에 나설 시기에는
과연 서랍 속 어떤 색인이 골라져 나올지.

 

황량한 시절을 음악과 글로 지탱해준,
그랬던 나의 구원들이 어느날 설게 느껴지면
나는 가슴아프게 반문한다.
과연 변한 것은 그들인가 아니면 나인가.

 

어쩌면 그저 세월이 흐른 것이리라.
비누방울처럼 잠시 부유하다 사라질 추억으로
치부하기에는 아직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리부는 이적의 신보는 반갑고
윤상의 노래는 무던한 채로도 그토록 절실하며
김윤아의 글은 짐짓 가벼운 척 나를 위무한다.

 

그리고 은희경의 새로운 소설집은
늪 밑바닥의 무거운 물처럼 정체된 당신의 하루에
새로운 공기를 갈아넣어줄 터.
떠나라, 낯선 곳으로.

YES마니아 : 플래티넘 s*****y 2007.04.07. 신고 공감 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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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의 우리, 내면으로의 침잠
"사회 안의 우리, 내면으로의 침잠" 내용보기
어딘가 모르게 시니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세상을 비뚤게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껏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랬었다. 한 번 정도 비틀어놓은 그녀의 세상은 현실과는 또 다른 멋을 풍겼다. 가벼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 가벼움도 매력이라면 매력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로부터 그녀의 이전 모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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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모르게 시니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세상을 비뚤게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껏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랬었다. 한 번 정도 비틀어놓은 그녀의 세상은 현실과는 또 다른 멋을 풍겼다. 가벼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 가벼움도 매력이라면 매력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로부터 그녀의 이전 모습을 찾아보는 게 쉽진 않았다. 갑자기 그녀가 변한 것은 아닐 게다. 많은 작품들이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상징을 말하려 드는 요즘 분위기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볼 순 없을 듯하다. 내면의 고민은, 남들이 고민과는 100% 일치할 순 없는 법이다. 남들이 고민한다 하여 내 고민이 가치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들이라고 말해도 될까? 한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글들을 읽으며 나는 라는 인간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등잔 밑은 어두운 법이다.

 

사회엔 수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그 문제를 접하면 그 문제는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개인의 문제로 변화한다. 사회라는 큰 틀을 고려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다소 도움이 될 수도 있긴 하나, 당장 자신의 발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회를 바라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런 면에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와 닮았다. 그 혹은 그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분명 사회 안에서 일어났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틀을 떼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의 무심한 듯한 문체는 이를 거드는 데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 제시되는 문제들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개개인의 숱한 감정과 융화되어 문제가 무언지 파악하기 힘들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유진이라는 동일한 이름, 쌍둥이에 대한 관심. 잘못 배송된 우편물로 인해 얽힌 두 인물은 서로에 대해 호감이라곤 전혀 없는 듯한 말투로 대화에 임한다. 적어도 독자로서 내가 엿볼 수 있는 유진()의 감정은 상대에 대한 반감에 가깝다. 작가는 이를 의심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글의 끄트머리에 가서 작가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지금껏 등장인물이 상대 인물에 대해 보여준 태도에 반전을 기한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은 변이의 정도가 너무도 커 읽는 이로서는 등장인물의 급변을 100%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목에 쓰인 단어 찬양이란 단어를 곱씹으면서 나는 자신의 감정조차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느끼는 것이 진정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유진()는 그래도, 끝까지 나를 부인하는 나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묘한 작품을 책의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끝까지 묘할 터였다.

이어지는 작품고독의 발견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고시생이 되어 꼬박 10년을 시험에 매달린 주인공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인정치 못했던 건 자신이 보잘것없는 인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꿈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을 창조해 내고, 어쩌면 그 곳에서 재기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구의 세상은 그 자신의 볼품없음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난 쓸모 없는 놈이야 라는 한 마디를 통해 마침내 그는 무너진다. 떠나버린 건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는 꿈을 잃었고 이를 확인함으로써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등 책에 수록된 글의 주인공들은 분명 사회라는 거대한 틀 안에 속해있다. 날씬해지길, 특별해지길 바라는 주인공의 욕망은 자신의 것이기 이전에 사회가 그들에게 주입한 것이다. 그들은 욕망을 현실로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리 날씬해졌다 할지라도 뚱뚱했던 시절을 자신의 일부로 간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결코 세상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자각일 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주인공은 영원히 뚱뚱한 모습으로만 기억될 것이고, 자신에게 일어난 특별함이 눈물로써도 벗어날 수 없는 불쾌함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눈을 떴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은 성장하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 우리 역시 그렇게 세상을 알아갔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사회와는 유리된 듯 사회 안에서 숨쉬면서

우린 끊임없이 고민한다. 사회라는 큰 틀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게 숙명일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제각각 다르지만 결국에는 세상의 온갖 고민을 혼자 떠안은 듯 괴로워하며

이달의 사락 q*****2 2007.04.09. 신고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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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름다움을 멸시하겠다
"나도 아름다움을 멸시하겠다 " 내용보기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오면 나는 겁부터 난다. 혹시나 재미 없을까봐서. 혹시나 일말의 실망감이 들까봐서. 은희경의 새 책도 내게 그런 두려움을 준 책이었다. <상속>으로 그녀와 200% 공감을 한 나로서는 그녀의 다른 책을 읽는 것도 겁이 나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 이후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새의 선물>을 읽었다. 이 작품들은 그녀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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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오면 나는 겁부터 난다. 혹시나 재미 없을까봐서. 혹시나 일말의 실망감이 들까봐서. 은희경의 새 책도 내게 그런 두려움을 준 책이었다. <상속>으로 그녀와 200% 공감을 한 나로서는 그녀의 다른 책을 읽는 것도 겁이 나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 이후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새의 선물>을 읽었다. 이 작품들은 그녀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작품들이었다. 친구가 실망스러웠다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그런 의미에서 제일 뒤로 밀려있다. 나머지 작품들도 다락 한 구석에 숨겨두었던 곳감을 조금씩 꺼내 아껴먹는 것처럼 아끼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그런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끌어안고 ‘역시 당신은 최고야... 은희경...’ 이런 감사함의 말이 저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사실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도 어느 정도는 궁합이 있다고 본다. 좋은 작품인데도 유난히 나와 안 맞는 경우도 있고, 좋아하려고 맘먹고 작품을 집어 들어도 하필이면 그 작가의 제일 별로인 작품을 집어 들고... 그런 면에서 나와 은희경은 궁합이 정말 잘 맞는 경우이다. 어느 일요일 <상속>을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보통 부모 자식 관계는 애(愛)이던 증(憎)이던 강렬한 관계를 그리기 마련인데, 은희경이 그린 관계는 그 둘 다 아니었다. 한 발자국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본 관계였다. 그걸 읽으면서 난 우리 부모님을 생각했고,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진 것이었다. 무덤덤하게 그린 듯 보인 그 관계가 나로 하여금 오히려 더 강렬한 어떤 애정과 증오를 보게 했던 것이다. 누구나 이런 강렬한 느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은희경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 것이다.

 

각설하고, 이 작품집에는 <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등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날씨와 생활>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은... 다 듣긴 들었지만 뭐가 좋은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읽는 사람은 힘들었겠지만 내가 눈으로 읽는 것보다 느려서 책하고 함께 보다 결국은 책을 내려놓고 끝까지 들었는데, 참 느렸다. 물론 다 듣고 난 다음에는 그 작품의 내용이 제일 머릿속에 속속들이 남긴 했다. 차라리 은희경의 목소리를 담은, 은희경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노래들을 좀 넣어주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글을 읽을 수 없는 분들에겐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집은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여기저기 계간지 등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 느낌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어떤 연계성이 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즉 작품집 전체에 연결되는 어떤 맛이 들어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기존에 읽었던 작품들보다 더 잔재미도 있고, 어둡고 강렬한 스토리보다는 평범하지만 밝고 환한 어떤 빛이 퍼져 나오는듯한 작품들이었다. 우리 일상에 더 가깝고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그래도 내겐 누구보다 소중한!) 나와 더 비슷한 인물들을 그렸다. 꾸질꾸질한 현실 대신 멋진 상상을 하지만 내게는 절대 일어날 일 없는 그런 일들을 너무 편협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려 냈다. 어떤 작품 하나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이 없었다. 비슷하면서도 각각 독특한 맛을 전해주는 작품집, 전체가 정말 ‘맛있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은희경의 대단한 문학적인 힘은 그녀가 여성작가라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데도 있다. 너무 여성성이 강조된 작품은 여성인 내가 읽어도 부담감이 느껴질 때도 있고, 남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작품에도 (남성작가의 여성에 대한 이해에도 마찬가지이다.) 짜증이 날 때가 있는데, 은희경의 중성적인 힘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우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주인공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성격이나 심리 모두 이쪽 경계 안쪽도 아닌, 저쪽 경계도 아닌 그 중심선에 서 있다. 그 중성적인 힘에 매력을 느낀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일상과 사람들, 요즘 세상과 현실을 다양하고 멋지게 그린 이 작품집, 추천한다. 은희경을 이미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은희경을 사랑할까 말까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은희경에게 어떤 이유로든 실망했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은희경, 당신을 사랑한다”고... 

 

제목으로 잡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은희경이 아닌 릴케의 문장이라는데는 조금 아쉬움도 남지만, 완벽한 작가가 아닌 은희경이 그래서 좋다. 돈, 권력, 애정, 건강을 가져다준다는 네 가지의 물줄기가 흐르는 약수 앞에서 하나를 택하라는 말에 급히 돈 쪽으로 가서 줄을 섰다는 은희경. 물을 마신 뒤에는 애정 쪽 줄로 그리고 그 다음엔 건강 쪽으로 갔다는 은희경. 그런 당신을 더 사랑한다...

 

<- 리뷰는 요기까지. ^^*

 

정말 즐겁게 읽은 작품집의 스토리를 전달해주는 건 의미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냥 내게 와 닿았던 대목만 뽑았다. 나를 위해서...

 

<의심을 찬양함>에 나오는 대목이다. ‘세상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굴러가요. 더러움과 증오와 한심함으로 가득차 있어요. 솔직히.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 세상이 모두 정밀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나는 아마 각본대로 뛰지 않는 토끼일 거예요.’

 

<고독의 발견>에 나오는 대목이다. ‘마치 어른이란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공들여 화장을 했지만 여자의 얼굴은 인형에 짙은 화장을 해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붉게 물든 두 뺨이 도드라져서인지 눈은 깊이 들어가 있었고 또 놀랄 만큼 반짝였다. 어린애처럼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을 구부려 생맥주가 가득 든 잔을 거뜬히 드는 품이 뜻밖에도 힘은 센 모양이었다.’ 또 한 대목이 있다. ‘횡단보도를 찾다가 여자친구가 늘 나한테 하던 말이 떠올랐어요. 나는 나 혼자 옳다는 것 한가지만을 밑천삼아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이라고, 세상을 너무 모른다구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다수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들이다.’ 또 한 대목이다. ‘나는 무엇을 간절히 원하기 이전에 내가 그것을 원해도 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하는 조건에서 살아왔을 뿐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이지는 않았다.’ 또 한 대목. ‘어머니가 혼잣말로 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늙으면 먹는 모습이 추해진다는 말이 있어. 어느 누가 추한 걸 자꾸 보려고 하겠니. 먹을 것을 뺏어야 할 때가 온 거지. 죽을 때가 된 거야. 사람이 정을 뗄 때고 그런다더라. 정이 식으면 먹는 모습이 제일 보기 싫어진단다. 먹을 것을 뺏고 싶은 심정, 그거 죽으라는 소리 아니겠냐. 먹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어. 좋아지는 마음도 다 먹을 때에 생겨나고 살가운 정도 한밥상에서 나오는 거란다. 먹는 게 이쁘면 곧 돼지가 되겠네. 내가 비아냥댔다.’아름다움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주인공은 말한다. ‘비너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날씨와 생활>의 한 대목이다. ‘아, 그렇게 많은 인생의 암호를 해독했음에도 이 세상에 놀랄 일이란 전혀 없는 걸까.’

 

<지도 중독>의 한 대목이다.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내가 이번 여행에서 기대하는 유일한 기쁨이었다.’ 또 한 대목. ‘먹고 이동하고 걷고 다시 먹고 잠자는 단순함 속에 깃든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위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한 대목.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또 한 대목. ‘야외 테이블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앉아 있는 편의점 앞을 혼자 지나가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 이런 밤은, 친구들은 모두 잠들어있고 텅 빈 거리를 혼자 걷는 이런 밤, 별이 보이고 바람이 선선한 가을밤은, 곰하고 한잔하고 싶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의 한 대목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익숙해지기까지의 절차가 갈수록 귀찮아지는 데 비한다면 거기에서 얻게 되는 신선함이나 정보는 점점 적어졌다. (...) 소음에 예민해지고 아예 남의 목소리 자체가 싫어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게 느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 세상이 그다지 놀랍지 않게 생각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여겨진다. 뉴스도 그렇고 주변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 그런 식이다. (...)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놀랍지 않게 생각되면서 동시에 어느정도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이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은 이미 결정돼버렸다. 회사든 가정이든 이제 내 인생에 변수는 거의 없다. 파산이나 이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겨도 나라는 사람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사람들은 자기연민이 많고 따라서 점점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무척 현실적인 사람이다.’

g******i 2007.04.16. 신고 공감 1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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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한 상상에 대한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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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어야 겠다..ㅎ 이름만 쭉 들었던 작가였던 이상문학상집 이런데서 종종 보았던 글들이 은희경을 접한 다였던 듯 하다.   나도 나대로 너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닌게 다시 한번 생각을 했다. 여자 작가의 책이다 보니 읽으면서 쭉 시점을 여자로 생각을해서 읽는 바람에 다시 읽고 하는 것을 여러번 했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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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어야 겠다..ㅎ 이름만 쭉 들었던 작가였던 이상문학상집 이런데서 종종 보았던 글들이 은희경을 접한 다였던 듯 하다.

 

나도 나대로 너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닌게 다시 한번 생각을 했다.

여자 작가의 책이다 보니 읽으면서 쭉 시점을 여자로 생각을해서 읽는 바람에 다시 읽고 하는 것을 여러번 했다..

 

전혀 다른 설정의 사소한 에피소드여서 지루하지도 않고 자잘한 군더더기 없이 빠른 진전으로 금새 금새 읽혀서 좋았다.

 

다소 깊지 않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으나 쉽게 스믈스믈 읽기에는 매우 좋았던 책인 듯 하다.

s*******y 2007.04.09.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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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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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문학동네 여름호 좌담에서, 은희경이 박민규와 이기호를 좋아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요즘 작가들답지 않게 재기발랄해서 좋다던가, 작가라고 하면 조용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선입견을 깨주는 재밌는 사람들이라서 좋다 했던가... 그 좌담을 읽으면서 이 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논리 구조로 그런 추론에 이르렀는지는 모르지만, 지극히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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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 문학동네 여름호 좌담에서, 은희경이 박민규와 이기호를 좋아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요즘 작가들답지 않게 재기발랄해서 좋다던가, 작가라고 하면 조용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선입견을 깨주는 재밌는 사람들이라서 좋다 했던가... 그 좌담을 읽으면서 이 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논리 구조로 그런 추론에 이르렀는지는 모르지만, 지극히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틀에 구애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출간되었을 때, 어색하게 코디된 옷을 온 몸에 걸치고 걸맞지 않은 바람머리를 하고는 신문,잡지 광고를 찍은 이 작가를 기억한다. 이런 것이 박민규가 홍대에서 공연을 하거나 특유의 패션으로 광고지에 얼굴을 들이미는, 즉 '요즘 작가답지 않은 재기발랄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거야말로 상투적이고도 우습지 않은 농담을 저 혼자 우스운 줄 알고 몇번이나 반복하는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처럼 시시한 것 아닌가. 

 

 이 작가의 글은 언젠가 읽었으나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진짜가 아닌 것들은 머릿 속에서 이리도 쉬이 잊혀지고 만다. 가짜에 대한 어떤 모난 감정도 이제는 둥글어진 지혜로운 노인처럼, 혹은 사춘기의 조숙한 소녀처럼 짜내려면 얼마든지 진짜인 것들과 연관시킬 수도 있는 감상문을 쓸 수 있을 따름이다. 단지 그 뿐이다. 냉정히 말해 이 작가의 글에는 별 비전이 없다. 나는 이 작가에게 입혀진 부당한 인상을 지우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드는 최소한의 노력을 시도했지만, 맛본 것이라고는 인터뷰나 신간 광고와도 별 다를 것 없는 '상투적 소설에 대한 갑갑증' 뿐이었다. 아포리즘을 쓰는 일은 대중들의 입에 싸구려 사탕을 물리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는 것만을 깨닫는다.  

 

       

p*******i 2009.05.1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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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여유로와진 문체의 아직,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살짝 여유로와진 문체의 아직,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내용보기
작품집 속에서 작가는 (의식적인 것인지) 소설 속 주인공들과 거리를 두는 것만 같다. 그렇게 작품 안의 등장인물들이 이니셜로 지칭되는 것처럼 문장들에서는 그만큼 기름기가 빠져 있다. 잘려진 단층처럼 날카롭고 자극적이었던 작가의 문체는 조금씩 조금씩 나이를 먹어, 이제 잘려진 고목의 밑둥처럼 밋밋해 보이지만 살짝 여유롭다. 그렇게 독자도 작가도 작품도 나이를 먹어가는
"살짝 여유로와진 문체의 아직,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내용보기

  작품집 속에서 작가는 (의식적인 것인지) 소설 속 주인공들과 거리를 두는 것만 같다. 그렇게 작품 안의 등장인물들이 이니셜로 지칭되는 것처럼 문장들에서는 그만큼 기름기가 빠져 있다. 잘려진 단층처럼 날카롭고 자극적이었던 작가의 문체는 조금씩 조금씩 나이를 먹어, 이제 잘려진 고목의 밑둥처럼 밋밋해 보이지만 살짝 여유롭다. 그렇게 독자도 작가도 작품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터...

 

  「의심을 찬양함」.
  잘못 배달된 사과상자를 통해 가까워진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나간 자리에서 유진은 그 남자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누군가를 만난다. 친구 S와 만난 대형 서점에서 시작되고 사과상자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주인공 이유진과 남자 이유진의 관계는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 유진은 생각했다. S는 내일 신부가 된다.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건 확실하지만 그 사람이 진짜로 운명적 상대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해하다가 스키장의 우연한사고를 운명적인 싸인으로 받아들였다. 일월에 운명적 상대를 만난다는 사수자리의 점괘가 S에게는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유진의 오피스텔로 찾아왔던 남자 역시 사수자리였다. 그 남자도 일월에 운명적 상대를 만났을까.”

 

  「고독의 발견」.
  “... 횡단보도를 찾다가 여자친구가 늘 나한테 하던 말이 떠올랐어요. 나는 나 혼자 옳다는 것 한가지만을 밑천삼아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이라고, 세상을 너무 모른다구요.” 고시원에서 시험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여전히 혼자이고 여전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여자친구 S와도 헤어졌다. 고독하게 홀로 생일을 보내던 나는 오래전 함께 기숙하던 고시원의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나인 듯도 하고 내가 아닌 듯도 한 K라는 인물로 지칭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 J 대신 산속 여관에서 묵기 위해 지방도시를 찾고, 그곳에서 난쟁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는 사랑에 대한 탐구만큼이나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이다. 물론 아름다움은 사랑에 비하여 환절기 변덕스런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여 보편성에 좌우되기 보다는 당대의 시류에 편승한다는 사실이 다르다면 다를까... “나는 내 몸속 타자(他者)를 원시인이라고 이름붙였다. 살아남으려는 동물적인 본능과 거기에 집착하는 내 몸의 씨스템에 점점 적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은 더 이상 종족보존을 위해 쎅스하지 않는다. 나의 태어남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 몸의 씨스템은 내가 아직도 빙하기 인간과 다를 게 없는 동물적 존재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러니 비만하고 풍족해 보이는 몸을 삽십년 넘게 간직해온 나는 A박사의 조언에 따라 몸 속의 원시인을 몰아내기 위해 애쓴다. 여기에 자신의 잉태에 일조했지만 간간히 마주치기만 했을뿐인 아버지와의 관계, 자신의 살빼기를 방해하는 엄마와의 생활이 끼어든다. 몸의 아름다움을 복구한다고 해도 회복될 수 없는 많은 관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은유...

 

  「날씨와 생활」.
  소녀 B의 어린 시절...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소녀 B의 가족들에게서 언뜻 발견되는 어두움의 그림자는 소녀 B의 학교로 찾아온 서적 외판원을 통해 극대화된다. 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 그저 아직도 읽는 사람의 심정을 향해 직진하는 듯한 은희경의 문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이 뚜렷하다. “... 건너편에서 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B는 어둑어둑한 세계를 뚫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커다란 두 개의 불빛을 본다. 악령의 눈빛 같은 사악한 명멸, 파국에 대한 찰나적 예감과 숨막힐 듯 짧은 흐느낌, 무언가가 타들어가는 뜨겁고도 위험한 냄새,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프게 머리를 때린다. 자신의 전생애를 다한 힘으로 B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지도 중독」.
  “야생동물한테 먹이를 주면 안돼. 스스로 먹이를 찾지 않고 점점 남의 것을 뺏으려 하거든. 아니면 구걸을 하거나. 훈련된 곰을 야생에 풀어놔봐. 적응을 못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서 등산객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놈이 반드시 나오지. 인간이든 곰이든 마찬가지야. 친구가 되려고 하면 안돼. 타인으로 대하는 게 서로 살아남는 길이야... 모두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서로 다른 존재들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야...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학원 강사인 나 M은 친구 B의 블로그를 통해 드러나듯 소심하기 그지없고 굉장히 좁은 울타리 안의 관계망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나는 친구 Y의 독촉으로 미국의 로키 산맥에 여행을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매일 지도를 들여다보는 P선배와 함께 길도 없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정말 곰이었을까...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나이를 먹어가면서 호기심을 잃어가는 것만 같다. 똑같은 자극이라고 해도 그 자극의 세기는 점차 힘을 잃어간다. 세상사에 심드렁해지는 것과 세상사는 데에 여유로운 것은 다른데도 말이다. “세상이 그다지 놀랍지 않게 생각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여겨진다. 뉴스도 그렇고 주변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 그런 식이다...” 자리를 잡은 출판사의 사장인 나는 어느 날 후배이자 사업파트너였던 J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간 뒤, 그제야 지나온 세월의 어느 한 켠을 떠올리게 된다. “...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사람이다. 그것은 우주로 떠났던 사람들 중 지구로 귀환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는 유리 가가린이지만 유리 가가린 이전에도 사람들은 우주로 떠났고,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 지구로 귀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서 잊혀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이제 우리들이 잊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현재를 가능케한 그것들을 향해 조심스레 촉수를 뻗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7.04.2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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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나를 멸시한다.
"나는 가끔 나를 멸시한다." 내용보기
이 소설집에 나오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 좋다. 딱 나 같은 사람, 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나만큼 이기적이고 나만큼 잔머리 굴리고 나만큼 세상 사람들 눈치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소설 속에서는 참 보기 드물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냉소적이며 적당히 무관심하고 적당히 사랑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이 세상에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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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 나오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 좋다. 딱 나 같은 사람, 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나만큼 이기적이고 나만큼 잔머리 굴리고 나만큼 세상 사람들 눈치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소설 속에서는 참 보기 드물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냉소적이며 적당히 무관심하고 적당히 사랑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이 세상에는 제법 있는 것일까.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까닭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그러한, 남에게 당당히 내놓을 수 없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부분을 톡 꼬집어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좀 미안하기도 하고 좀 쑥스럽기도 하고 좀 부끄럽기도 해서 애써 숨기며 아닌 척, 내숭 떨면서 살아가는 한 부분을 건드려 내어 ‘이봐, 너도 그렇지? 나도 그런 면이 있으니까 너무 숨기려고 애쓰며 살려고 하지 마, 그렇게 아닌 척 하면서 살아가는 게 도리어 스트레스가 된다니까.’ 라고 말 건네주는 듯한 소설이다.


언제부터 내가 나에게 솔직해지지 못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솔직해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들 보기에 착한 척, 성실한 척, 아량 많은 척, 너그러운 척, 하다못해 똑똑해 보이는 척 하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애쓰며 살아왔는가. 오랜 세월 그러한 척 하며 살아오다 보니 나도 가끔은 내가 무지 착하고 성실하고 너그럽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 것 같다. 조금만 진지하게 내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도 말이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책을 읽는 나와 내숭 떨고 살았던 내가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를 조금씩 알겠다.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 따위 그다지 갖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남들 앞에서 말을 할 때나 남들에게 보이는 글을 쓸 때면 사랑이 넘치는 척, 관심이 많은 척 위선을 떨어왔으니. 이 소설집 속의 인물들의 냉소적인 태도가 그래서 더 마음에 닿았던 것이리라. 나 같은 사람들, 나처럼 좀 못된 사람들, 다른 소설들의 주인공들만큼 절대적인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범하면서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는 사람들.


잘 읽었다. 다 읽고 그동안 내가 이 작가의 다른 책 무엇을 읽었나 하고 찾아보았다. ‘상속’ 한 권에 대한 독후감밖에 없다. 어째서 그랬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이 책으로 인해 이미 나온 이 작가의 책을 다시 구해 읽어봐야겠다. 독후감을 남기지 않았을 뿐, 분명히 더 읽었던  것 같은데.

YES마니아 : 로얄 j***6 2007.05.2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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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반가운 이유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반가운 이유" 내용보기
작가는 부지런하게 책을 펴내고, 나는 열심히 그의 책을 사 모은지 벌써 10년을 넘어섰다. 이런 열혈독자가 물론 나만은 아니겠지만, 은희경이란 작가는 참 행복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5년만에 펴낸 단편소설집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예전에 읽었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의 재미가 다시 기대되었기 때문이었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반가운 이유" 내용보기
 

작가는 부지런하게 책을 펴내고, 나는 열심히 그의 책을 사 모은지 벌써 10년을 넘어섰다. 이런 열혈독자가 물론 나만은 아니겠지만, 은희경이란 작가는 참 행복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5년만에 펴낸 단편소설집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예전에 읽었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의 재미가 다시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게으른 나로서는 단편소설이란 그때그때 바로 찾아 읽기보다는 한 권으로 모아졌을 때 한 방에 읽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선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희경이 많이 변했다. 물론 최근 5년간의 작품들이니 그의 변화는 진작 시작되었는데 게으른 나는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가볍게 읽히던 그의 소설이 진지하게 읽히기 시작했고, 유쾌발랄 상큼하던 그의 문체가 좀더 진중하고 무거워졌다. 그 속에서 만나는 인간들의 삶의 무게가 아프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만큼 나도 작가도 나이를 먹은 거겠지. 그런데 그게 내마음에 와닿는다. 삶의 비애가 멀지않음을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통해 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절망하거나 밑바닥을 헤매지않게 하는 작가의 배려.

표지의 화사한 봄분위와는 다르게 조금은 더 깊고 진지해진 그의 변화가 반갑다. 앞으로 은희경이란 작가는 얼마나 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지 기대가 커지는 순간이다. 덕분에 소설책 한 권을 하룻밤에 독파한 피로를 덮고도 남을 큰 소득이 생겼다.

h****9 2007.04.24. 신고 공감 3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