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반가운 마음으로 펼쳤다. 책 표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여인의 발을 휘감아 위로 자라나는 검은 줄기의 식물....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으로 작가 오카와 요코의 책을 내 손에 든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읽기 전에 설마 제목처럼 약지 하나를 표본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추억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닐런지 조금 걱정도 앞서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고 싶은 것, 잊고 싶지 않은 것, 지극히 대비되는 그 두 가지를 위하여 사람들은 표본실을 찾는다. 한 소녀는 부모를 잃은 화재 현장의 버섯을 따 와서 봉인을 원하고, 이어 화상 자국을 봉인한다. 아마 기억과 함께 떨쳐나가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손에 들자마자 추리소설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일본 소설 특유의....라고 표현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 덤덤함과 서늘함과 더불어 작가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유지하는 서체....절정의 긴장은 없지만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을 편하게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랑, 이라는 것과 결부시켜 몇가지 상징이 나온다. 약지... 그 남자를 영원히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과 떼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표본으로 부탁'하게 된다. 약지는 약속의 상징인 손가락이다. 구두... 발에 너무도 꼭 맞아 발이 구두를 먹게 된다, 간혹 보게 되는 어떤 사랑처럼... 아예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결단을 내리라고 구두쟁이는 충고하지만 여인은 그 구두를 벗지 않는다. 나의 표본을 맡김으로써 그 여인은 영원히 사랑을 간직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겠지....그것은 잊기 위함도 잊지 않기 위함도 아닌 잊혀지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육각형의 작은 방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던 책.... |
|
약지의 표본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부터 10여년 전
[약지의 표본]은 기억과 봉인,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듯 했고, [약지의 표본]에 함께 실린 '육각형의 방'은 '약지의 표본'에 이어 그 수상스러움에 머뭇거리지만 얼마 후 이야기 방에서 그녀는 그녀를 묶고 있던 '약지의 표본'에서는 그녀의 약지, 그녀의 삶이 표본되어 지고, 박제되는 방식으로
무엇이 바르고 틀리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가 자신 만의 방법으로 우리가 |
|
약지의 표본
봉인... 지나간 사건의 봉인. 지나간 나날들의 지나간 사랑에 잊고싶은 혹은 잊지않고 기억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무엇인가를 들고 표본실을 찾는 사람들.. 그들의 기억 속에서 표본된 그것들은 슬며시 사라지고말까?
표본실에 일하게 된 그녀. 표본실의 주인과 사랑에 빠지다.. 사이다를 복숭아빛으로 물들이며 하늘하늘 움직이는 살점.. 약지의 표본을 만드려는 그녀는 그 표본으로 인해 지나간 과거를 묻고 표본실주인과 영원한 사랑의 봉인을 이룰 수 있었을까?
육각형의 작은 방
그 방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속의 자기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낸다. 주인공 역시 지나간 연인에 대한 그녀의 사정을 풀어놓게 되는데.. 육각형의 작은방 속에서 꺼내놓은 이갸기는 봉인되어 기억의 저 무의식 너머로 사라져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두 이야기는 닮아있다. 기억의 봉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놈은 신기하게도 모든 것을 끝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덮어버리려는 자기방어기제.. 그것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면 아마 모두 다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무엇으로부터 끝없이 봉인이 필요한 존재일지 모른다. 표본을 통해서 혹은 이야기방을 통해서.. 그 외의 자신만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서.. 봉인하고 싶은 무엇이 잊고 싶은 것이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그 무엇이든 당신이라면 무엇을 봉인하고 싶으신가요? |
|
|
3년 전쯤 본 영화 <약지의 표본>.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로 오가와 요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매우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며칠 전 아들 책 대여하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가져와 읽었다. 이 책은 <약지의 표본>과 <육각형의 작은방>이라는 두 단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약지의 표본>을 영화로 접하지 않았거나 줄거리를 모르고 읽는다면 두 작품이 하나라고 착각하며 읽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두 작품이 전혀 연결고리가 없지는 않았다고 본다. 출판사에서 일부러 두 작품은 한 권에 함께 실은건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약지의 표본>은 사이다 공장에서 일하다 사이다를 채워 놓은 탱크와 벨트 컨베이어 접속 부분에 약지가 끼여 끝 살점이 떨어져 나간 여주인공이 공장을 그만두고 도회지의 어느 표본실에 취직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본'을 한다는 것은 학창 시절 과학실이나 때때로 곤충 박람회 같은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인데, 소설 속 '표본'은 매우 추상적인 것들 마저 표본이 가능하다.
"여기 오시는 분들 모두가 처음에는 자신의 물품에 불안을 품고 계세요. 그러게 마련이죠. 그런 불안을 봉인하기 위해 표본이 있는 거니까요."
주인공은 표본실의 경영자인 데시마루 씨의 말을 되뇐다. 표본의 사전적 의미는 살아있는 것의 일부분을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불안을 봉인하다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표본'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이렇듯 매우 추상적이다. 자신의 물품- 가족을 화재로 잃어버리고 재만 남은 집터에서 발견한 버섯, 악보에 담겨있는 소리의 표본이나 화상의 흉터 -들은 터무니없긴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그런 물품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봉인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그는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라고 했다. 책을 덮을 쯤에 주인공 '나'와 '데시마루'씨의 행위와 선택들이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마치 참인 명제로 만들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의뢰인들이 부탁한 표본을 마치 수집품인 양 보관까지 해 주고, 주인공 '나'에게 꼭 맞는 구두를 사 주며 매일 신어달라는 데시마루씨에게서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채워가는 모습이 보여졌다. 구두닦이 할아버지의 조언을 무시한 채 구두가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표본실의 데시마루씨에게 봉인되고 싶어 하는 '나'는 불안을 극복하기 보다는 데시마루에게 예속되기를 바랬다. 읽으면서도 계속 뿌연 안개 속을 손으로 허우적거리며 걷는 기분이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걷히겠지라는 기대가 한낱 바램으로 마무리 되는 작품이었다. 여전히 안개속에 갇혀 있는듯 하다. 그래서 다들 몽환적이라 이르나보다. 영화는 책보다 좀 더 친절하다는 것.
<육각형의 작은방>은 미치오라는 남자와 헤어진 주인공이 등 통증으로 인해 의사의 처방대로 수영장에 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된 미도리 씨에게 집착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육각형의 작은방을 방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육각형의 작은방은 개인적인 문제들만 이야기할 수 있는 방으로 홀로 들어가 다 쏟아 내고 봉인해 버리는 장소였다. 주인공인 '나'는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을 법한 들키고 싶지 않은, 때로는 들키면 안 되는 비밀스러운 추억을 육각형의 작은방에 쏟아붓는다. 이 방의 존재는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수시로 이 동네, 저 동네를 옮겨 다닌다.
인간의 마음 같은 거 밑도 끝도 없고 막다른 지점이란 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 입구 근처에서 순진하게 오락가락했던 것뿐이지요.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든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따위를 주장하려는 게 아닙니다. 내 발로 내 마음속 밑바닥까지 내려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느낀 것뿐이에요.
<육각형의 작은방>이라는 제목이 왜 붙혀졌을까? 육각형의 건축물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정적인 구조이다. 또한 힘도 고루 분산을 시켜주기 때문에 다양한 건축물이나 물건을 만들 때 육각 구조를 사용하기도 한다. 작가는 육각형이라는 방을 통해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안정적인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작품 속 인물 '미도리'의 뜻은 '초록'을 뜻하는 것으로 자연을 상징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작품은 앞선 작품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육각형의 방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는......
두 작품의 공통점은 '표본실'과 '육각형의 작은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가진 의미가 '봉인'이라는 목적을 가진 데 있다. 하지만 <약지의 표본>에서 표본의 봉인으로 인해 내면의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 버렸다면, <육각형의 작은방>에서는 개인적인 문제를 다 쏟아내 버린 입술마저 봉인함으로써 새로운 나날을 살아가라는 치유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
|
오늘도 역시 처음보는 작가 오가와 요코의 책, 약지의 표본. 처음보는 작가가 많은 건 내 견문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뭘 의미하는진 몰라도 의미심장한 제목과, 뻘건 책 표지에 반해 일단 집어들었던 책. 거기다 의외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여성성 넘치는 문체에 어딘가 판타지적이며, 내 안에 숨어있던 외로움을 꺼내어 보는 듯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상당히 만족을했다. 재미가 있다. 라고 하기 보단 느낌이 있다. 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책일 것이다. '봉인하는 것. 분리하는 것. 완결시키는 것이 이곳 표본의 의의이기 때문이에요.' - 27p 주인공은 독특한 표본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 원랜 사이다 공장에서 일하다, 새끼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부상을 입고, 그 뒤론 사이다만 봐도 구역질이 나는 바람에 공장을 관두게 된다. 그리고 찾은 것이 이 표본실. 그곳은 무기물, 예를 들어 악보나, 뼛조각, 버섯따위를 표본으로 만드는 독특한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 데시마루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표본실에 대해 저렇게 설명한다. 표본에 대한 이야기는 독특했다. 데시마루와 '나'의 사랑이야기 인듯도 했고, 지울수 없는 과거를 묻기 위해 표본실을 찾는 인간들을 보여주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중요한 건 표본을 만듦으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계속해서 만드는 인물이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떤 길을 더듬건 우리는 그저 미리 정해진 장소로 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 -189p 두번째 단편 육각형의 작은 방의 주인공이 육각형의 방에 들어가 말하는 것의 일부다. 그 방은 아무것도 없이 작은 전등만 있는 방으로, 누구한테도 들릴 걱정 없이 자신의 속앓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주인공은 우연히 그곳에 방문하여 사용하지만, 곧 그곳이 마음에 들어 혼잣말을 잔뜩 하고는 나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저 말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앞서 읽은 <다다미 넉 장 반의 세계일주>에서 읽었던 운명은 왠지 거스를 수가 없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이다. 싱크로나이즈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어떤 정보에 대해 알게 되면 그 정보가 계속해서 나와 접점이 생겨 내눈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몽환화>라는 책에서 읽었던 것인데, 그것이 지금 내 앞에 벌어지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선택들이 모두 운명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면 조금 허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울하고 음울하다. 밝고 명쾌하고 희희낙락한 느낌은 전혀 없지만, 작가 특유의 분위기와 문체가 가득 녹아있어, 다른의미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었으며, 프랑스에서 영화화 되었다고 하니, 한 번 쯤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출처] <약지의 표본> - 가두고 싶은 추억|작성자 이천공 |
|
이책을 다 읽고 나니 한순간 멍해졌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었다. 약지의 표본과 육각형의 작은방에 헤어나오지 못한 채. 오가와 요코가 들려주는 몽환적인 이야기에 빠져나오지 못한 채.
중편소설이다. 표지가 강렬한만큼 다 읽고나니 강렬한 느낌이 남아있다. 진한 강렬함이 아닌, 옅으면서도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들어갈것같은 느낌의 강렬함.
오가와 요코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몽환적이고 신비하면서 흐릿흐릿한 기억속을 다듬으면서 만들어가는 그런 이야기를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읽는동안 소설에 매료되어 빠져나오기 힘들었고 기분은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 '홀릭'되어 가는 기분. 그런 기분.
우연히 보게 되는 표본제작실 여사원 모집을 통해 접하는 표본실. 그렇게 표본실에 여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주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약지의 표본'이다. 표본제작실은 그녀에게 특별했다. 내가 그 공간을 읽어가면서 느낀 색은 회색빛이였다. 회색빛, 흐릿한 기억속. 부식될것만 같은 공간속에 있는 기분을 받았지만 그 공간은 선명할것이다. 특별한 순간, 기억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봉인하는 곳이니까. 표본을 제작을 의뢰하는 이곳의 존재 가능성과 표본실의 주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미스터리같은 그 남자. 표본제작실은 그 남자에게 어떤의미일까? 여자는 남자의 그런 알수없는 묘함에 빠져나오지 못한 체 봉인되고 만다. '봉인'의 의미가 무엇이며 구속되어가는 그 여자는 알고있었을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구속시켜가며 사랑을 하고 있다는것을.. 그렇게 의문과 물음, 끊임없는 생각을 남긴 채 끝나버린다. 구속, 봉인을 당하고 싶어하는 존재. 내가 그런 존재이고 인간은 누구나 봉인하고 구속당하고 싶어하는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만의 생각속에 갖혀서... 알지못하게 구속하고 봉인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한 여자를 통해서 읽을수있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끌림'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한 여자를 따라가게 되는 여자. 초대받지 않은 초대의 이야기방속에서 내면의 의식을 펼쳐드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육각형의 작은 방'이다. 왠지 모르는듯한 '끌림'을 받은적이 있는가?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나오는 소설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의식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녀가 느꼈던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이 왜 한순간 바뀌게 되었는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자신도 모른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바닥속 깊은 곳까지의 내면속으로 내려가고 싶어한다. 속앓이를 하게된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병도 찾아오기 마련. 허리 통증을 느낀다. 그런 혼란속에 진짜 자신을 만나는곳, 이야기방. 이야기방은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진다. 현실의 공간속에 있지만 상상속의 공간에 있다는 '착각'이 드는 그런 느낌의 이야기방. 자신과의 의미없는 대화를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방. 그러나 지속적으로 함께 할수 없는 이야기방. 이야기방을 운영하지만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모자지간의 아줌마와 아들. 모자지간이 돌아다니며 육각형의 작은방을 만들어가는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내면의식속은 어느순간 혼란이 오기 마련인데 그 순간을 잠깐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야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운명이 어떻든 자신을 만들고 찾아가야 할 것이다.
두가지의 중편소설을 읽었는데, 수십가지의 질문을 돌려받은것 같다. 충분히 몽환적이며 끊임없는 생각과 기억의 끝자락속에 머물러있는듯한 그런 강한 느낌을 받았다. 끊임없는 생각속에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만나볼수 있었던 소설이였다. |
|
약지의 표본 / 육각형의 작은 방이라는 제목의 두 이야기의 책... 무덤덤하게 읽기 시작하여...신비감...동질감.....희망...때로는 공포감까지... 느낄 수 있는 신비스러운 책이라고 말 하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두 주인공이 때론 우리네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특히 두번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나와 많이 닮아 있는 듯 느껴져.... 현실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두 소설은...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지만...같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봉인하다"이다.... 그들의 상처와 아픔...남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 때론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봉인하는...그런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약지의 표본에선 표본이라는....육각형의 작은 방에선 육각형이라는 방에서의 혼잣말이란 방법을 택하고 있다.... 두가지 방법 모두 현실감이 없긴하지만... 정말 그런 방법들이 있다면...이 세상엔 푸르름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봉인하는 과정 속에서 저자는... 어떤 길을 가던지 우리는 그저 미리 정해진 장소로 향하는 수 밖에 없다고... 인생은 작은 우연의 결과로도 강력한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선택하고 판단하고 걸어나가는 것은 늘 자신의 몫이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다른 행로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며... 해결점도 혼자만의 몫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다른 운명을 원한다면 자신만의 봉인하는 방법을 찾아야할지도 모른다... 아니....봉인하는 것은....다른 운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그렇게 된다면...우리 또한 주인공들처럼... 또 다른 세계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다 읽은 나는... 지금....나에게 있어서 봉인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생각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
|
두 개의 중편소설이 이어진, 별개의 내용이 맞물려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약지의 표본>입니다. 이 책 속에는 다른 이야기 <육각형의 방>이 있습니다. 약지의 표본이 쉽게, 이해하기 쉬운 상징으로 서술되어 있듯이 <육각형의 방>도 역시 그러합니다만은 육각형'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육각형의 그것은 뭐지? 처음에는 정육면체, 즉 일반적인 방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각'이네요. 육각형, 그러면... 생각하다 생각하다가, 그래서 저의 결론은 벌집,입니다. 아닐 수도 있겠죠. 어쨌든 지금부터 <약지의 표본>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약지의 표본
1. 소유욕이 심각한 사람은 불안으로 불행한 사람이라고도 하죠. 한 손에 물건을 쥐고도 또 다른 것을 넘봅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으네, 가지려고 못가지면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러한 소유욕의 불안에서 생기는 질병, 질병이죠. 현대사회에 만연화 되어 있고, 종종 비난받는 질병. 비만. 지나친 과소비도 그렇고, 약물중독, 흡연도 그렇고 알코올 중독도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가장 흔한, 그리고 비난도 심한, 비만을 통해서 <약지의 표본>을 읽습니다. 저는 약지의 표본에서 표본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형상화해서 읽게 되더군요. 물론 신체가 비만화되어 있을 수도, 그 반대인 거식증으로 왜소화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숫자로 매김이 되어 있는 각 편을 읽을수록 더욱 확신이 들더군요. 그들은 불안한 사람이다. 그래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 표본 의뢰를 하는구나. 그렇구나. 나는 그러면, 시간을 표본해 달라고 해야겠다. 저는 살찐 두꺼운 손으로 데시마루 씨에게 부탁합니다.
"제 시간을 표본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러면 데시마루는 곰곰이 생각할 것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겁니다. "지하실로 같이 가시죠." 그러면 <약지> 여자는 지하실 가는 사람이 또 있구나, 놀라워 할 것이고, 관리실 문조 할아버지는 왜 제가 표본실에서 나오지 않나, 잠깐 궁금해하며 지는 해를 볼 겁니다. 이제 저의 시간은 표본실에서 단단하게, 차돌같이 멈춥니다. 저의 이야기는, 하소연, 푸념은 굳어서 들리지 않을 겁니다. <육각형의 방>에서도 침묵만 가득할 겁니다.
2. <약지의 표본> 나는 사이다 공장에서 약지의 일부분, 살점을 잃어버렸습니다. 일 그만뒀죠. 일년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한 일자리가 데시마루 씨의 표본실입니다. 데시마루 씨와는 가까워져서 욕실을 침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준 구두가 마음에 듭니다. 저도 데시마루씨에게 표본 의뢰할 것이 생겼네요. 그것은 저의 약지입니다.
3. <육각형의 방> 죄다 속엣말을 털어냈을 때 <육각형의 방>은 사라져버렸다. 이유없던 미움, 불만이 사라져버렸다. 수영장에서 홀린 듯 미도리를 따라 나는 <육각형의 방>으로 갔었다. 나는, 자신이 과연 <육각형의 방>이 실재하는지, 허상이었는지 혼란스럽다. 어떻게 된 걸까, 하지만 속엣말을 다 덜어내고 나는 편안해졌다. 그것만은 사실이다. 이토록 후련할 수가. 털어놓고 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푸념의 방이었을까. 자위의 방이었을까.
4. 중편인데 단편처럼 읽혔습니다. 두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유사해서 한 편으로 읽혔습니다 .<약지의 표본>은 상처 받은 사람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이해하기 힘든, 위태한 사람들의 애절한 울림이죠.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메아리는 약자 자신들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외칠 때보다 삭일 때 더 울림이 큰 법입니다. 사무칩니다.
5. 일본소설은 처음 읽습니다. 일본문학에 거의 문외한이지만, 벌써 유입된 영화, 음악 그리고 어릴 적부터 해적판으로 가까이 대해온 만화 등으로 소설이 친숙하게, 낯설지 않게 읽히더군요.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돌출된 내용 없이 주된 내용이 주욱 이어져서 읽기에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문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이기 때문에 세세한 줄거리는 삼갔습니다.
붉은 표지 위로, 시간이 뚜뚝 터져 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