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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이 누나? 표지나 제목만으로는 그다지 흡입력이 있는 책은 아니었다.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궁금해하기 보다는 일련의 책들에서 보았듯이 상투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은 아닐까 반신반의 하면서 대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온 누나 ,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머니의 병환으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큰 누나 둥글이는 이미 여러 소설 속에서 많이 보아왔던 캐릭터이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둥글이 누나라는 캐릭터가 내게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순종적이고 무조건적인 자신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둥글이 누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병으로 집안을 꾸려 나가면서 자신이 서야 할 위치와 해야 할 일을 강한 어조와 야무진 행동으로 헤쳐나가는 여인이었다. 배우지 못했거나 혹은 집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남자 형제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닌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악역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으면서 둥글이네 가족에 빌붙어 논밭을 팔아주거나 병원의 다리를 놓아주면서 술값을 뜯는 바가지 아저씨, 이외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둥글이 누나의 동생인 상구, 이 책의 화자로써 이 집안의 마지막 희망같은 의미로 여겨지는 인물 상해가 소설을 이끄는 주된 인물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상해가 '가족'이라는 글로 상을 받고 어린 호두나무를 받아서 키우면서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장면은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이 책이 둥글이네 가족의 온갖 역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에도 마직막에는 내일을 향한 희망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다가도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는 매 순간이 안타깝고 아쉬웠기에 마지막의 희망을 품은 둥글이네 가족에게 더 기운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의 삶이 고되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고 내일이 있기에 삶의 순간순간을 절망적으로 살아가지 않아야 함을 이들 가족을 통해서 엿보게 된다. 우리에게 그런 삶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역경의 세월을 고스란히 거쳐온 우리의 둥글이 누나 ,바로 우리 부모님의 세대임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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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같은 성을 가지신 나의 친정엄마도 강원도 홍천이 고향이시다. 작가 권영상님은 친정엄마의 아저씨뻘이 되겠다. 엄마가 안동권씨 35대손이니까.. 혹 권씨성을 가진 분들을 뵐 때면 머리가 백발이시던 외할아버지가 가끔씩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때 강원도 홍천 외가댁에서 지내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여름 아침의 이슬 묻은 초록 풀들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신해가 방가 후 집으로 오던 길에 누나를 만났다. 누나이름이 둥글이가 아니고 신자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누나에게 업히어 집으로 간다. 며칠 후 엄마가 쓰러지시고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된다. 아버지 생의 소원이 형 신구의 눈을 뜨게 하는 것 이였다. 형은 어려서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 누나는 쓰러져 입원한 엄마와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비가 오면 논의 물꼬를 내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다니고 집안일을 모두 하는 누나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형 신구의 눈 수술을 위하여 땅을 팔게 된다. 봄이 되어 하숙을 하게 된 경섭이 아저씨는 포토나무를 가꾸게 된다. 형 신구는 경섭이 아저씨로부터 라디오를 선물 받는다. 집에서 동생 신해에게 글을 배우던 형은 라디오와 친구가 되었고 라디오로 인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경섭이 아저씨와 함께 서울로 눈 수술을 받으러 떠난 날 차사고로 형과 경섭이 아저씨가 다치게 되고 겁을 먹은 형은 수술 받으러 가길 싫어한다. 수술 예약으로 미리 친척 고모할머니 집에 보낸 황소 한 마리 값을 결국 모두 날리게 된다. 고모할머니집이 망했다고 한다. 슬퍼하는 둥글이와 신해, 신구가 불쌍했다. 집 뜰의 오동나무를 팔게 되었다. 예부터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길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서 그 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 시집보낼 때 같이 보낸다고 한다. 노래에서만 듣던 오동나무를 난 8년 전 동네 길가에서 보았다. 나무의 잎이 커다랗고 비오면 우산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나무였다. 둥글이 누나는 오동나무를 판돈으로 병아리를 120마리 사서 기르게 된다. 엄마는 다시 다른 병원으로 입원을 하고 막내 신해는 중학생이 된다. 신해의 새 교복을 입어본 신구가 벽에 기대어 들먹거릴 때 가슴이 아팠다. 신해와 신구 , 둥글이누나의 엄마가 가슴을 치던 것처럼 난 심장병도 없는데도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중학생이 되는 신해가 졸업을 한다.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은 또 다른 상으로 신해에게 호두나무 묘목을 주셨다. 해수욕장이 지역발전에 힘입어 생겨났다. 기차역도 생기고 전기도 들어왔다.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또 걱정을 하는 둥글이 누나였다. 엄마가 곧 퇴원을 한다고 한다. 봄이 왔다. 호두나무에서 푸른빛을 보았다. 가족은 흩어지지 않고 그렇게 아빠가 없어도 둥글이누나처럼 둥글게 뭉쳐졌다. 책의 마지막의 그림을 보면서 안심이 되었다. 걱정은 더 이상은 없을 듯 다 사라진 듯하다. 참 잘 되었다. 가족을 주제로한 영화가 많다. ‘가족’, ‘가족의 탄생’ .. 난 실제의 이야기를 영화화 했던 ‘안녕, 형아’가 생각난다. 동생이 형아가 불쌍해서 우는 모습에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었다. 그렇게 영화나 책속에서나 주위에 들리는 가족이야기 등에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다. 왜! 즐거운 가족이야기는 잘 없는 것일까.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 고구마로 대신하던 60년대의 이야기에는 가족을 부양하기위하여 공부를 포기하는 둥굴이 누나들이 많았을 듯하다. 신해는 작가가 되었을까? 신구는 시인이 되었을까? 둥글이 누나는 아마도 행복농장을 가꾸는 엄마가 되어 있을 듯하다. 엄마는 신해와 신구 그리고 둥글이 누나의 사랑으로 건강히 잘 지낼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과 가족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이 둥글이누나에겐 많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힘들었고 그런 둥글이 누나를 보는 나도 슬펐다. 형제가 많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욕심이 많은 요즘의 가족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아마 앞으로는 우리가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길 것이다. 그런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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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습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내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앞표지를 보고 뒤표지를 보고 작가 소개를 보고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모두 읽는다. 그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괜히 책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괜한 강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말을 읽으면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나의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한 줄 때문에 읽는 내내 착각을 했다. 이건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것이구나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래도 이건 소설이잖아'하며 사실적인 사건을 뼈대로 허구적 요소를 집어 넣은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왜 다른 자전적 소설과는 다르게 이 책은 자꾸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일까. 이유를 모르겠다.
책에서는 시대를 구체적 숫자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한국전쟁이 난 지 10년이 넘었다는 것에서 60년대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 당시의 농촌 생활이야 뻔하다. 모두 힘들고 신산하게 사는 삶. 그렇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인간적이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철 없는 소리한다고 한심해 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이라고 그때의 문제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니까. 단지 나아진 것이 있다면 먹고 지내는 것에서 확실한 발전을 한 점이라고나할까... 나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이 보다는 훨씬 뒤에 자랐으니 책 속의 상황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도 하나씩 떠올라서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했다.
지금은 여름에 너도나도 달려가는 경포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무슨 안 좋은 일만 생겼다 하면 머리 식히러 도피하는 단골 명소가 바로 강릉이나 속초다. 그런 경포대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동경의 장소이며 관광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도 처음에는 그저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마을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 책이 상기시켜 준다. 처음으로 경포대를 관광지로 만들면서 기차를 놓던 시절이 바로 주인공이 자란 시절이란다. 이렇게 또 나는 내 위주로 상황을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지금은 대관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다니지만(오히려 한계령이나 미시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 고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다.) 이 때만 해도 대관령은 교류를 막는 거대한 고개였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넘을 수 없는, 문명과 가까이 갈 수 없는 벽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문명과 거리가 먼 시골에서 그래도 끼니 걱정 없이 그럭저럭 초등학교를 다니는 주인공은 이제 5학년이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마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한다. 게다가 주인공의 형은 어려서 시력을 잃어 학교도 못 다니고 있다. 결국 중학교에 다니던 맏이인 누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 일을 도맡는다. 열 다섯, 열 여섯 살의 나이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하긴 닥치면 어떻게든 되게 마련이긴 하겠지만 지금의 그 또래 아이들을 보면 둥글이 누나가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떠안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주인공인 신해는 누나의 보살핌으로 천진하고 나름대로 즐거운 시절을 보낸다. 누나가 업어 줄 때는 도대체 몇 살이길래 업어줄까 궁금했다. 나중에 보니 5학년이란다. 그런데도 누나에게 업히다니... 누나인 내 입장에서 보니 왜 그리 얄미운지 모르겠다. 누나는 입원한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는데도 도와주지는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도 너무 얄미웠다. 그래도 둥글이 누나는 일 시키지 않고 정말 어른인 양 동생들을 돌본다. 그 시절에는 이런 일이 흔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개 딸은 동생들 뒷바라지 하고 장남은 공부시키는 모습.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장남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 역할을 주인공인 신해가 하게 된 것이다.
둥글이 누나는 집안일 뿐만 아니라 논일과 밭일까지 모두 하고 나중에는 양계장까지 한다. 물론 그 양계장은 돈을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첫째 동생인 시구의 희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겠지. 무언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고자... 그래서 병아리 돌보고 모이 주는 것도 신구에게 일임을 한 것일 터다. 주인공 신해는 서울에서 포도농사를 짓기 위해 온 경섭이 아저씨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왜 항상 시골에 서울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의 역할은 모두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고... 하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시대였으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모두 같은 시간 속에서 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물리적 시간은 같았어도 논리적 시간은 같지 않았겠지.
뒤에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데도 병아리 키우는 일이 잘못되었다느니 엄마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마도 작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결말에 연연했을 것이다.(그래도 이건 소설인데...) 비록 둥글이 누나는 이상적인 방향인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엄마도 퇴원하고 졸업식에서 선생님께 받은 희망나무인 호두나무도 잘 자라고 형도 삶의 빛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덮을 수 있었다. 과연 그 후에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무척 궁금하다.
성장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의 변화를 겪는 아이들의 심리나 상황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가족애를 다룬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가족이 같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회상하며 형과 누나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난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이해도 안 가고 공감도 안 되겠지만 그것도 지금과 연결선 상에 있는 생활 모습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늘의 아이들도 반드시 알고 지나야 할 생활모습인 것이다. 어찌보면 어른들이 더 좋아할 책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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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에 나무를 키우려무나 " -첫머리에 나오는 인상깊은 한 마디 입니다.
이 글을 읽고 앞으로 저 보다는 남은 날이 많은우리 아이들에게 해 주고 픈 말이 되었습니다. 힘든 날, 가슴이 아픈 날에 마음속에 심어진 나무를 생각 한다면 힘든 일도 헤쳐 나가지 않을까요?
주인공 둥글이 누나-바로 하늘나라에 계시는 우리들의 부모님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누가 시키지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당당함을 보여 주는 캐릭터를 통해 엄마를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해주는것이 없었고, 엄마는 우리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시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셨다.
지금은 부족함 없고 가진것이 너무나 많은 우리 아이들-둥글이 누나 처럼 아버지 돌아 가시고 , 눈이 멀고 삶의 희망마저 없는 상구, 형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상해, 병약한 어머니를 둔 가족 구성원을 책임져할 둥글이 누나가 된다면 이어려움을 헤쳐 나갈수 있을까?
졸업식장에서 마음속의 나무가 될 호두나무를 받으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상해를 보며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속의 나무를 심어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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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경험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다소 고루하고 진부하게 생각되는 우리세대인데, 앞으로의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이 들지...... 당연히 격동의 시대상에서 이런 둥글이 누나같은 이들의 존재가 많았을 것이다. 순간 누나된 입장에서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이럴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철없는 열여섯의 아이가 감당하기엔 힘든 상황인데도 너무 당찬 모습에 기가 꺽이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강인한 어머니가 아닌 병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 가야하고, 더불어 세상의 빛을 열망하는 동생을 보듬어야하는 아량까지도......, 살아 가면서 이별의 아픔을 느끼고 배우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도 힘든때에 너무 큰 상황들과 맞부딪쳐야 한다니. 단순 신파식의 "누나의 희생으로 일구어진 가족애" 같은 느낌이 약간 풍기기는 하지만, 가장 어린 신해가 보는 누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 시대에 있을 법한 빈부의 격차, 사고관념의 틀들을 보면 궁색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니 살아가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팍팍했을까. 하지만 누나된 입장에서는 탓하기보다는 개척하려는 의지가 더 강해 대견한 마음이다. 물론 아무 도움이 안되는 바가지 아저씨와 같은 이도 있었고 정감있는 돈만이도, 경섭이 아저씨가 계심으로 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마당가 오동나무를 베어 판 돈으로 노란 병아리를 가족들의 희망으로 삼는 모습은 힘겹던 시절의 학구열, 그러지 못하는 이의 아픔과 좌절......등,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탈출구와 같은 것이었다. 세월의 장난과도 같은 일을 겪은 빛을 얻지 못한 신구나, 어리숙한 소년에서 속 깊이 성장하는 신해가 후에 어떻게 회고할지 궁금하다.
동글이누나는 분명 그 스스로의 인생은 뒤로 하였지만, 아픔은 삭힌채로 밝은 내일을 위해 몸부림을 치지 않았을까? 신해의 졸업식에서 받은 " 가장 훌륭한 상"의 의미처럼 호두나무가 자라날 것이다. 다가올 다른 만남을 위해 넉넉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모두 같을 것이다.
세대는 달라졌다해도 둥글이누나와 같은 이들이 지금도 존재할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희망의 나무를 안겨야 할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세대나 아이세대에게는 어른들 시대의 삶이 소설이나 각본이 아닌 다큐멘터리와도 같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