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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전시회에 가면 도대체 이런 게 예술이야?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아름다움을 포기해야 예술이 되는 건가?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때 그린 그림도 멋진 액자에 넣으면 저런 작품이 되고도 남겠네 이런 생각들을 해본 기억이 생생하다.
잭슨 폴락의 드립 기법 작품이나. 또 어떤 멍청하게 생긴 인물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는 걸 작품이랍시고 전시하고, 물감으로 떡칠되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나, 그저 몇 가지. 때론 단 한 가지 색상이 넓은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 등등. 실러와 괴테를 사랑하고, 루벤스,미켈란젤로를 좋아하는 한 교양인이 현대미술을 관람하고나서'너는 예술을 알지못하는 속물인가?'라고 한탄한다.
구상작품만으로 전시회를 했던 어떤 화가의 이야기에서 단 한편의 비평도 실리지 않고 아무의 관심도 받지못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전시회를 알리고자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는데, 청소하는 아줌마가 하는 충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보세요.
피카소가 1952년 조반니 파피니의 책 <Libro Nero>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고한다."나는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땐, 나 스스로를 진정한 예술가로 생각하지않는다.위대한 화가는 조토, 티치안, 렘브란트, 고야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인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현대미술 최대죄악은 관객을 무시하고 경멸하여, 예술에 대한 사랑을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한 점이라고.자신의 작품이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않는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아무렴, 그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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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회가 열리면 의도적으로라도 가려고 한다. 그건 아마도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미술에 대한 열등감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픈 마음에서 일 것이다. 르네상스 그림을 관찰할 때면 어느 정도는 '아! 그래 멋있다'라는 나름의 이해에서 나온 탄성이 있는데, 현대 미술 전시회를 가는 경우는 많은 작품들에서 '뭔가 표현을 하고 있긴 한데,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함인지 알 수가 없네.....' 란 불편함을 자주 토로해 낸다. 그럴 때마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미술을 알고자 하는 일반인으로서 그러한 관람은 정말로 난감하다. 더구나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라면 더욱더 그러한 불편함이 묻어난다. 나만 모른다는 자괴감과 열등감에서 그저 도슨트의 설명을 듣거나 쭉~~ 훑어 보는 관람을 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색하기 싫어서 침묵을 지킨다. 그러한 경우는 나름의 교양쌓기에 대한 내 행보에 스트레스만 가득 안고 오는 결과가 되고만다.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그런 내게 아주 호의적인 책이다. 현대 미술에 갖고 있는 그러한 생각이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동질감을 갖게 하는 작은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현대 미술작에 대해 미술 평론가들의 열광적인 평론을 에프라임 키숀은 풍자의 대가답게 날카롭고 다소 도발적 표현에 통쾌함마저 느꼈다. 물론,이 책의 많은 부분이 현대 미술이 갖고 있는 난해한 표현들과 그러한 미술품에 같이 호응하는 비평가, 미술 중개인, 미술 아카데미에 소속된 미술 전공자들에 의해 오늘날 미술 시장을 채우고 있는 부분에 대해 비평을 하지만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도 제시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현대 미술가라고 모두 다 난해한 작품을 만든다거나 지나치게 부풀려져서 스타가 된 작가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아래와 같이 저자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피카소와 앤디 워홀 역시 모더니즘의 거장들이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래도 그림을 그릴 줄 알았고, 앤디 워홀도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했다." (p131)
또한, 저자는 분명하게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오늘날 관객들을 외면해 버리는 현대 미술은 진정한 예술품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통해 어느 특정인이 값비싸게 지불하고 소장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품이 아니라 많은 관객이 그 작품을 보고 저마다 평을 하고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진정한 예술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예술 작품을 작가가 의도한 대로 작품을 만들지만,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저마다의 바라보기가 진정한 미술에 대한 평가가 아닌지 생각되어 진다. 거기에 전문가들의 바람직한 길잡이가 따라준다면 더욱더 진정한 예술에 대한 자세를 갖게 될 것으로 본다.
비디오 아트의 대가인 故백남준 선생은 "현대예술은 사기다" 라는 다소 도발적인 표현이 현대 미술의 전부를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들어 맞다는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더욱 들게 되었다. 이제는 전문가들만이 향유하고 이해하는 예술 작품의 세계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 진다. 대중들이 현대 미술품이 갖고 있는 난해함에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해 버린다면 그 작품이 갖게 될 영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가 갖고 있는 의미가 더욱 클 것이다.
예술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의 수준이나, 시선을 의식해서 작품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져서도 안 될 것이지만, 관객이 전시회를 갔다와서 예술품에 대해 소외감이나 지나친 당혹감을 갖게 하는 것 또한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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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방법은 삼천포로 빠지기다.
그때그때 관심을 자극하는 것을 쫒아
끝장을 볼때까지 가고 본다.
그러다보면 시작은 동경 135 북위 37, 독도에서
끝은 각각 16, 22의 위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맞는다.
이렇게 독서하면
당연히 지식의 밴드가 브로드로 확장된다.
다만, 시간이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들고 품이 많이 든다.
시간에 돈에 품에...
더 기막힌것은
들이는 노력이 아까워 마구잡이로 소화하려든다면
그야말로 시간들여 돈들여 고생하고 설사만 죽어라 한다.
득 될 게 없다는 이치.
<피카소의 아름다운 식탁>에서
촉발된 피카소에 대한 관심은
90년대 집중적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된
그에 대한 혹은 그가 쓴 여러 책을 읽게 만들었다.
(공공도서관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심지어는 정작 피카소와는 그리 관련없는 책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라는 제목에 속아 읽었다.
며칠간의 피카소탐험에서
마침내 하나의 메시지를 건졌다.
아마 '그분'은 이 말씀을 하시려고
피카소투어를 다녀오게하셨나보다. "모든 인간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열두어가지 사소한 일에 그 힘을 낭비한다.
나는 그것을 단 한가지의 일, 미술에 낭비한다"
열두어가지, 다 잘하는 것을 보여주려
내 잠재력은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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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선택한 책은 현대 미술에 대한 날카롭고 강력한 비판을 날리는 책, '피타소의 달콤한 복수'이다. 아마 1년 전쯤에 어느 신문의 서평에서 추천한 것을 보고 골라두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대학 시절 자주 불렀던 민중가요 중에 가사가 대충 '아리송하게 어렵게, 못알아듣게 짧게, 앞뒤로 연결 안되게, 나혼자만 알게. 누구나 한번 더 보게, 더봐도 알 수 없게, 시집 뒤에는 문학 평론가가 그럴 듯 하게'로 되는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랫말과 비슷하게 예전에 자주 하고 다녔던 이야기 중 하나가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최소한 그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그려서, 어렵게 써서, 어렵게 만들어서 '이걸 이해 못하면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자칭 예술가들의 자만이자, 그들 내부에서의 자위 행위일 뿐 아니겠는가. 기본적으로 예술 작품은 바깥 세계로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므로, 제대로 이해시켜줄 수 있을 정도의 친절함을 가지지 못한 것은 예술로서의 자격 조차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들에 완전히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영역을 '현대 미술'로 제한하고, 어떻게 소위 '현대 미술가'들이 그런 식의 작품을 만들어서 높은 값을 받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강력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저 위에 쓴 노랫말에 등장하는 시와 문학 평론가의 관계가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미술가와 미술평론가의 관계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에 서명만 해서 발표해도, 변기 몇 개를 가져다 놓고 작품이라고 해도, 선 몇개 찍찍 그어놓아도,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알아서 의미를 현란하게 붙여주고는 이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교양이 없어서라고 낙인 찍어버린다. 미술가가 대충 만들고 평론가가 의미를 부여해준 소위 '작품'은 이제 높은 가격이 매겨져서 화랑이나 경매장 주인의 호주머니에 돈을 가져다주고, 그것을 산 돈 많은 교양층에게는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는 나는 소유했다'라는 뿌듯함을 안겨주게 된다. 이 모든 사람들은 저자는 '예술 마피아'라고 부른다. 결국 지금의 미술은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이름 붙이고 적당히 가격 붙여서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의견에 100% 동의한다. 예전 광주 비엔날레에서 다 낡은 돛단배 하나 가져다두고는 예술이라고 우기던 장면을 보던 때가 스쳐 지나가고, 화랑에서 쭉 그은 선과 자 대고 만든 듯한 사각형만 난무하던 그림에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도 떠올려진다. 정말 내가 예술적 소양이 0에 수렴하여 그랬던 것일까, 아니라면 과연 얼마나 않은 사람이 그 돛단배와 기하학 무늬를 보고 아름다움의 감동을 느꼈을까.
이 책의 제목은 피카소가 생전에 남겼다는 '예술적 유언'에서 따온 말이다.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두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자신은 사람들에게 익살과 유머를 던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환호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훗날 이 예술적 유언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었지만, 피카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피카소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인정받은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자신의 아무 의미 없는 끄적거림을 두고 갖가지 현란한 찬사를 붙이는 평론가를 보며 비웃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냉소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예술 마피아'라는 현상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는, 단순한 주장을 담은 서적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약간의 실험이라도 직접 해서 책에 담았으면 좀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두번째는 이 저자가 오지랖이 너무 넓어, 미술 이야기 뿐만 아니라 가끔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레닌, 마르크스 이야기 까지 하면서 오간다는 점이다. 언급하는 것이야 상관없는데 미술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심각한 몰이해가 보인다는 점이 많이 안타까웠다. 차라리 말 조차 하지 않았으면 중간은 가지 않았겠나.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 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산책, Ephraim Kishon 지음, 반성완 옮김, 201 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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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미술에 대해 아주 전문적인 지식은 없다...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아무래도 고전 미술에 비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인지 가끔 현대 미술 관련 전시를 찾았을 때 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도 많이 해보았다... 설명을 읽으면 그럴 듯 하지만 작품 자체에서는 아무 감동도 느낄 수 없는 작품도 있었으니까...
이 책의 저자 또한 이런 기분을 공유 하는 듯... 현대 미술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비판하지 않은 것으 불만이긴 하지만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신선했던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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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그림은 그 나라의 문화, 그사람의 정신세계 등 심리치료등에 많이 이용된다 예전에 M방송사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6명의 정신을 감정받는 소재 프로그램을 한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전세계에서도 피카소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학교 수업시간에 자주나오는 인물이다. 이러한 피카소가 현대예술에 대해 풍자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책을 소개하자면 책의 목차부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침묵 혹은 열광, 위대한 어릿광대 피카소, 예술은 죽었다, 예술 마피아의 횡포, 난센스의 거장 요셉보이스... 등 현대예술에 대해 상당히 좋지 않는 시선을 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저자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해 예술은 죽었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 말인즉 현대미술 작품은 전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들 즉 미술 비평가와 미술 장사꾼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현대예술은 대부분의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사유재산처럼 애지중지하는 이른바 진보적 엘리트에게 주는 일종의 특권이라고 보았다.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윱 린센의 무제 등이 대표적이다. 예술작품은 본래 다수의 인간을 위해 창조되는 것인데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알 수없는 작품들은 예술작품이라고 볼수 없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작품이 주는 의미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피 카소는 이를 예술계의 큰손에 의해 엄격히 지배되며 이 큰손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테러를 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진보적인 미술계의 기득권층에 반기를 들면서까지 도덕적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점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예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올바르게 잡고자하는 모습은 상당히 보기 좋지 않나 싶다. 실제 보지는 못했지만 방송프로그램이나 인터넷에 미술관의 미술작품을 가끔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이 종종있다. 그 작품에 대한 해설도 없는 경우가 많아. 따로 찾아봐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는만큼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나타내어주는 것이 어떨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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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대의 예술가들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그들은 정신병원의 뜰안에서 장대높이뛰기 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대도, 바도 그리고 어떤 희망도 없이. -39쪽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 자신의 피아노 조율사를 위해 교향곡을 지었다는 작곡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오직 자신의 이발사 한 사람만을 위해 자서전을 썼다는 작가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현대미술 작품은 전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들, 즉 미술 비평가와 미술 장사꾼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72쪽
예술이기에 비싼 것인지, 비싸기 때문에 예술이 되는 것인지.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지지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린 그림만이 예술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와 작품의 사이.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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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임 키숀'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행운아 54>를 통해서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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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 자신들이 아니라, 좌절한 지식인들로 구성된 작은 마피아 조직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유명하게 된 화가들은 엉터리 궁정 광대가 되거나 아니면 기성 미술 화단의 엉터리 어릿광대가 된다. " (p89) ![]() ![]() 좀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쓰레기더미와 같은 작품들은 일반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의 괴리감을 차츰 더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관심있게 볼 대목은 세계적인 미술가 피카소가 남긴 놀라운 유언이다. ![]() "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뒤부터, 예술가들은 자기 재능을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의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지적 야바위꾼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니까.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쫒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누렸다. 나는 내게 떠오르는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 (p40) 우린 피카소의 예술혼을 다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화법에 의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현대예술에 대해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난해하면 난해할수록 더 가치있게 보는 현대 예술작품. 그 예술 작품에 대해서 작가의 설명은 장황하고, 철학적이지만, 사실은 허무맹랑한 말장난이기만 한. 평론가들의 작품평는 그럴듯하고, 아니 극찬을 한다. 거대한 미술시장은 이런 작품을 선호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속임수의 고리가 오늘날의 현대 예술을 탄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에프라임 키숀'은 풍자 소설가라는 이름답게 이런 이야기를 그만의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나는 그들에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소규모의 저항 그룹이 한때 존재했었고, 또 그들을 대표해서 그 시대의 뻔뻔스럽고 교활한 자들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풍자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아마추어 이론가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p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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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술은 모르겠는데, 현대미술은 호불호가 갈렸다. 호불호가 갈렸다는 뜻은 정확히 말하면..어떤 건 좋았는데, 어떤건...'이게 뭐뉘??' 하는 마음?
이 책을 보면, 내가 종종 현대미술을 접하면서의 당황스러웠던 점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느끼지 못하겠는데,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고 저렇고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대는 것이 참 거슬린다. 이건 비단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독서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작품이면 같은 방향은 아니더라도,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을텐데... 어디 쓰레기 주워놓은 것 같은 것을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면...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뭐, 어쨌거나... 지난 1월 개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나는 어떤 작품은 좋았지만...어떤 작품은 눈길조차주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들었었다. 뭐 그렇다고 부끄럽거나 한 마음은 없었다. 내가 보는 눈이 없으면..그걸 채우면 되는거고...아니면, 이 작품들이 쓰레기거나..뭐 그런거지 않을까,하는 당돌한 마음.
여하튼, 이 책을 보면 마음이 후련하다. 내가..굳이 기가막힌 쓰레기를 보고, 그걸 예술이랍시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싸잡아 쓰레기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 와중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냥 나는 원래대로...작품을 많이 보러 다니면서...나름대로 미술작품을 즐겨보겠다. 공부도 조금씩 조금씩 해보고...뭐 그러면 되는거지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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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박수! 짝짝짝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