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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을 때좋은 구상이 필요하듯이 글도 또한 구상이 필요하다. 진시황이 아방궁 하나에만 만족한게 아니라 수많은 궁궐을 원했음에도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였다. 재물과 힘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는 구상의 영역또한 폭넓을 것이다. 그러나 옛중국의 명성있는 문장가들도 다 채우지는 못했다고 한다.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요즘 글쓰기를 해야할 곳은 이외로 많다. 지금 세상과 꼭 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옛조선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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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의 글은 참 정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글을 두고 한 말은 아닐까? 몇 백년이 지났어도 옛 선비들의 좋은 글은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맑게 한다. 한해 전에 <숭늉>이란 책을 구해서 아침마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마다 좋은 구절을 읽다보면 아침의 싱그러운 기운이 내 몸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옛 성현들이 들려주는 글은 왜이리 군더더기도 없고 짧게 쓴 글이라도 심장을 바로 관통하는 힘이 있는걸까? 따로 글쓰기 훈련을 받는 것일까? 마음을 울리고 머리를 깨우치는 글쓰기 훈련을. 그 비밀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는 조선 지식인들(편하게 선비라고 해야겠다)이 생각하는 좋은 글쓰기 방법과 글쓰기의 깨달음에 관한 글을 담아놓은 책이다. 박지원, 이덕무, 정약용, 이익, 허균등 이름만으로 대단한 문장가임을 의심할 수 없는 선비들의 깨달음을 주는 글로 채워진 책은 읽는 동안 메모하던 메모지를 몇장이나 넘겨버렸다. 결국 메모지를 접고 한해 전에 그랬듯 책 속의 글을 하루에 한번씩 만나야 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피고서 이 책은 쉬이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것만 봄바람이 선선하고 좋아 밖에 앉아 다 읽고 말았다. 같은 말의 되풀이 같은 글들은 신기하리만치 각각의 빛을 내며 빛을 발하고 그 빛은 하나로 모아져 책 속으로 들어간다.
멋진 글쓰기, 다른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글쓰기, 빛을 발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봐야 한다. 이 책 속에는 그런 글쓰기를 한 성현들의 가르침이 들어있으니까.
얕은 글쓰기를 하는 나는 이 책을 읽을당시 멋진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황금열쇠가 들어있을 줄 알았다. 이 무슨 도둑심보인가? 글이 그렇게 나올수도 있다고 생각하다니 책 속 선비들의 따끔한 일침에 부끄러워 주위의 붉은 철쭉만큼이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최한기의 말처럼 글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었으며 정성을 다하지 않는 글, 기교를 부리는 글은 티가 난다는 것을 어찌 몰랐을까!
책 속의 좋은 글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를 내내 고민했지만 쉽지 않다. 좋은 글은 스스로 깨닫고 느껴야 하는 것이기에 이 책의 보석같은 문장들을 옮겨 적을 수가 없다. 오늘 하루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 하나는 이와 같다.
<글은 내 얼굴이다>
글은 글쓴이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 그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글을 썼는지, 정성을 드렸는지, 독서량이 얼마나 되는지, 현실의식은 있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지, 진부한 말만을 사용하고 옛 성현이 말만 따라 쓰지는 않는지, 성급하게 쓴 것은 아닌지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글에 나타난다고 한다.
얼굴은 매일 세수하고 화장품을 바르고 어떤 날은 마사지도 해주고 정성을 다한다. 얼굴에 드리는 정성보다 더 한 정성이 글쓰기에 필요하다. 글쓰기에는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볼 수 있기에. 올바른 글쓰기를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배경을 위해 독서량을 늘려야 하고 논리적인 문장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글에 대한 평가를에 귀를 기울이며 퇴고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재능, 기백, 힘이 합쳐져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한다. 내게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적어도 마음을 담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고 싶다. 군더더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조선 지식인의 글을 읽으며 그들이 강조했던 하나에 감동하고 만다. 그들은 글을 쓰면서도 항상 백성구제를 중심에 두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역사와 사회문제에 밝아야 한다고 했던 것은 백성을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글쓰기에 매진했다. 나를 위한 글만이 아닌 백성과 나아가 나라를 위한 글을 써야했기에. 역사, 사회, 경제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침마다, 혹은 글을 잘 쓰지 못해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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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업으로 전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이는 타고난 기질 역시 자연스럽게 문학에 가깝다. 또한 문학에 대해 보고 듣는 것도 많고, 문장을 항상 익히고 배우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애들한테"공부해라","책 읽어라"....항상 잔소리로 해왔다. 입으로만 되는 것은 없다. 직접 보여줘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애들앞에서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글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겠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잔소리가 아닌 정성으로 키워야겠다.
"부모는 자식의 몸만 낳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낳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몸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기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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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매력에 빠져들어 책을 점점 좋아하게 되고 책읽기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리뷰를 통해 한편 한편 내 생각을 정리하며 책 욕심뿐만아니라 글쓰기 욕심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치우쳐 독서하는 습관을 고치려고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른 장르의 책들도 읽으려고 노력하고 읽은 책 리뷰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부끄럽고 부족한 글 한참을 고민고민하며 써내려가기도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낯설거나 두렵지는 않지만 부족함을 더 느끼고 점점 더 글쓰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멋진 리뷰들을 읽으며 부러움에 찬 눈길도 주며 그 분들의 글 속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이렇게 글쓰기에 욕심이 하늘로 하늘로 치솟는 요즘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보자 마자 마음이 동하게 된것은 어쩔수 없었다. 옛 우리 말과 글, 고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조금씩 알아가며 이 책 속에선 어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정약용, 홍석주, 이덕무, 박지원, 허균 등 한번 쯤은 스쳐지나가거나 여러 번 들어보았던 조선 시대 문장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후인들을 위한 조언들로 엮여져 있었다. 그 분들이 남기신 글들 속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가르침을 고전연구회에서 고심해 선정해 소개해 주며 좋은 글쓰기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소감과 함께 짧은 글 모음집 형식으로 묶여져 있다.
평생에 걸친 글공부로 얻은 깨달음의 정수가 녹아있는 옛 문인들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보는 시간이었다. 엣 문인들의 말씀은 하나의 공통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글쓰기는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을 필요로하며 이는 독서와 글공부 그리고 견문을 통한 깊은 사색을 바탕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글쓰기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밖으로 나가 견문을 넓히고 끊임없이 독서하며 생각하고 글쓰기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끝으로 글쓰기에 관한 다산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와 소개해 드린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중략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p 255-256 정약용, 다산시문집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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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한정주.엄윤슥 쓰고 엮음 / 포럼 펴냄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단 공부라는 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세상의 모든일이 다 그럴 것이니, 어떠한 일에도 요행만을 바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글 쓰기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란 것이 사실이었고, 다 읽은 지금에는 역시나 하는 나 자신의 요행수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무협지의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전설속에 전해오는 비급의 무예지를 얻어 무림의 절대고수로 환골탈태하는 일은 정말 무협지에서나 나올수 있는 이야기다. 이 책은 분명히 글쓰기의 고수가 되는 방법을 아주 친절히 가르쳐 주고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오래전 부터 그 방법을 아주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실행으로 옮기는 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고,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그 방법이라는 것이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선조들의 글에대한 애착과 속내를 넌지시 살펴보니 , 나는 여태컷 감나무 아래에 누워서 잘 익은 홍시가 내 입에 떨어져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글을 잘쓰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천부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타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붓만 들면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천재다. 그리고,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다.그러기에, 그런 천재가 돋보일수 있는거다. 그렇다면, 천재가 아닌 대부분의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까? 그 비법을 이 책은 선조들의 글을 빌려 이야기 하고 있다. 정약용, 최한기, 허균, 홍석주, 이수광, 김종직등 이름만 들어도 글좀 썼을것 같은 분들의 습작(習作) 좌우명을 훔쳐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우리는 수능시험 같은 곳에서 만점을 받아 전체 수석을 차지한 학생의 인터뷰를 볼때가 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무슨 대단한 공부의 비법이 있을걸로 알지만, 실제로 그들이 전수하는 비법은 보통사람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위주의 철저한 예습, 복습 이것이 전부 다이다. (물론 요즘은 이 말을 믿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책에서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마음속에 깨달음이 넘치면 글쓰기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글을 지을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글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좇아 글을 짓지 말아라. -출세를 위해 글쓰기 공부를 하지 말라. -글을 쓸 때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된다. -말과 행동과 글은 하나이다. -시대에 맞춰 글을 쓰되 반드시 고전을 익혀야 한다. -글을 쓸때는 진부한 말을 경계해야 한다. -세상 견문을 넓히지 않고 배우기만 해서는 글을 쓸수없다. -마음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고 쉽게 글을 써야 한다. -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 -글 고치는 것을 싫어하지 말라.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이상은 책에 실려있는 글들의 일부 제목만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하나같이 무슨 대단한 비법들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엇하나 쉽게 할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도 있다. 이 책에 서 말하고 있는 글쓰기의 방법들은 하나같이 기본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만큼 기본이 중요하고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 기본에 충실하다면, 아름다운 글을 한편 보는 것과 같이 이 세상 또한 무척이나 살기좋은 아름다운 낙원이 될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
나는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릴 만큼 뛰어난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다. 비록 내 자신이 만족하는 데에서 그칠지는 모르나 조금은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어떠한 글을 읽었을 때 이 글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싶은 욕심은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니 틈틈히 그것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읽고 쓴 만큼 아니 그것의 반에 반만이라도 실천할수 있는 사람이 되고픈 욕심이 가장 크다. 한 편의 글을 쓰는데에 이렇게 험난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러한 고통 속에서 탄생한 글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 또한 다시 한번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이 글을 쓰지 않는 내가 그 들에게 해줄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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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전에 겁부터 먹고,쓰고 나면 부끄러운 것이 글쓰기다. 그런 나, 지금 겁 제데로 먹었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며 뇌(-_-;)란 말이 꽤 충격이었나보다. 이 책은 처음 굉장히 빨리 읽었던 책이었다. 그냥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책 말이다. 처음엔 여백이 많은 것도 싫었고. 그런 그 책을 구석에 박아두다 영 찜찜해 글을 쓰기 전 다시 읽어보았다. ㅋ ㅑ.... 이 책을 읽을 땐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씩 나눠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독서와 사색과 글쓰기는 하나다. 독서 많이 하기. 가능하면 고전으로 많이 읽기.생각하고 깨달음 얻기. 꾸준히 글쓰기. 여러 번 다듬고 고치기. 비평을 두려워 말기. 그리고 마음가짐 바로하기. 앞으로 글을 잘 쓰기 위해 할 것들이다.책이 가르쳐 준 비법아닌 비법이라 할까? 대부분이 마음을 잡아주는 글이라 이렇게밖에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깝다. 깨달아 얻는 게 넘치면 문장 스스로 춤을 출 날이 내게도 오겠지. 잘 읽히고, 잘 이해되고, 마음을 울리는 글은 쉽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니.
그리고 생각을 해봤는 데, 이 책 오디오북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문체에 어울리게 중간에 피리소리도 조금 넣고 말이다. 그러고나서 글쓰기 전에 한 번씩 들으면 좋겠다는 혼자 생각. 아주 어린친구들은 문체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아래 짤막한 코멘트 말이다. 그냥 몰아서 긴 글로 뒤에 붙여 두었으면 어땟을까? 글의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아래는 발취문인데, 좋은 문장이 많아 고르느라 땀 좀 뺏다.;;맛만 보시라. * 조자건은 자신의 글에서 "사람이 쓴 글에 병폐가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이 내글을 비평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비평을 듣고 글이 좋지 않으면, 반드시 고쳐서 바로잡곤 한다."고 했다. 매우 훌륭한 말이다. 이규보는 "다른 사람의 시에 드러난 결점을 말해 주는 일은 부모가 자식의 흠을 지적해 주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지만, 병을 감추고 치료받기를 꺼리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훨씬 나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글에 대한 평가를 고깝게 듣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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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 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부지런히 실천하고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 선생이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중 일부분이다. 글쓰기를 나무에 피는 꽃에 비유했다. 무척이나 멋지고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우연히 본 이 책의 소개 문구를 읽고 이 책을 빨리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그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는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전에 글쓰기 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문장강화>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장강화>를 나는 그 당시 어떤 의무감 같은 걸로 읽었던 거 같다. 그리고 <문장강화>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문장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이 예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나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는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글쓰기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사유가 담긴 기록이다. '사유'라는 말에 나는 꽂혔던 거 같다. 조선 지식인은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글을 썼을까, 글쓰기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담긴 행위였을까 하는 궁금증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내 손에 쥐어졌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당대 유명했던 문장가들(예를 들면 정약용, 홍석주, 허균, 박지원, 이덕무 등등)의 저술이나 문집 중 글쓰기에 관한 부분들만 옮겨다 실었다. 그리고 그다지 길지 않은 그 글(짧으면 한 쪽, 길어야 서너 쪽을 넘지 않는)들 아래에 꼭 한번 생각해 보고 넘어갈 만한 것들을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해 놓았다. 생각날 때마다 책을 막 뒤적이다가 아무데다 펴서 몇 쪽만 읽어도 전혀 부담없을 책이다.
주옥 같다는 식상한 표현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글들이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산 선생의 글들이 마음에 참 많이 와 닿았다. '좋구나'를 연발하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어 내려간 글들 중에는 다산 선생의 글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한결같이 과거 시험이라는 격식에 몰아넣고 마구 짓이겨 놓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시란 뜻을 표현한 것이다. 본래 뜻이 저속하면 일부러 맑고 고상한 말을 늘어놓아도 이치에 닿지 못한다. 또 본래 뜻이 편협하고 누추하면 일부러 넓고 통달한 말을 늘어놓아도 일이 이루어지는 형편이나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중략) 이것은 타고난 자질에 가까워서 배운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문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특히 뜻을 표현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룻밤새 장문의 글을 쓰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는 일화를 읽고는 그것이 얼마만한 고통이 수반되는 일일지 선뜻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글은 있어도 쉽게 쓰는 글은 없는 법이구나 생각했다. 조금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쁘네, 별로네 그런 평가를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글에 대한 마음가짐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다시 다듬고 고치라는 권면이 있었는데 심지어 어떤 이는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고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옛날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견문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많이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지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글만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문득 신영복 선생이 생각났다. 삶과 글이 일치하는 혹은 말과 행위가 한결같은 또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고 좋은 독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겉만 화려한 글과 웅숭깊은 글을 분별할 줄 아는 그런 독자가 되고 싶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울렁거리게 하는 책들에 대해서 아낌없는 찬탄을 해주고 싶다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일렁거리는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으니 이 책 역시 좋은 책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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