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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방송에서 연예인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지인이 한 마디 한다. ‘저 부부 돈 필요한가보다. 실제는 다정하지 않으면서 텔레비전에서 쇼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설마 그렇겠냐고 그러기엔 너무 다정해 보인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그 부부는 얼마 후 이혼했다. 부부에게 결혼은 무엇이었을까? 결혼은 무엇이고 다정한 부부의 범위는 또 무엇일까? 미치도록 사랑해서 결혼해도 결혼 생활은.. 미혼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겨운 기 싸움의 연속이다. 서로 다른 환경의 두 남녀가 만나 사는 것도 신통한데, 그에 딸린 가족들까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더라도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로 싸우게 되는 것 또한 부부이지 않은가? 결혼 생활 16년. 아직까지는 큰 무리 없이 크고 작은 산을 넘어왔다. 그 동안 우리에게 위기가 없었을까? 여전히 크고 작은 감정들이 서로를 할퀴기도 하지만 시간이란 나를, 남편을 조금은 무디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부부의 사랑과는 또 다른 감정인 의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가 있다. 남편은 화가이고 아내는 남편의 뮤즈이자 모델이다. 이 부부는 아이 셋을 키우며 행복하게 산다. 아니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부는 오래 전부터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이들은 벽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애써 그 벽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아내를 소유하려는 남편과 그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여자. 그래서 여자는 두 개의 일기를 쓴다. 하나는 남편이 찾아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레드 일기장이고 하나는 자신의 속마음을 써 넣은 블루 노트북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사람. 이들의 사랑은 과연 진정한 사랑인 것일까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의 종착역은 결혼이고, 결혼은 사랑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젠 안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적당한 마음과 함께, 적당한 타이밍만 있다면 결혼은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 사랑해서 결혼해도 그 결혼이 불행할 수 있고, 사랑하지 않고 타이밍에 맞게 결혼해도 잘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젠 안다. 사랑이 모든 결혼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결혼이란 제도가 나는 신기하다. 누군가는 결혼의 맞춤형 인간이라도 되는 듯 잘 살지만, 누군가는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니까. 어느 것도 정답일 수 없다. 자신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맞게 살아가는 게 맞지만 나는 이 책의 주인공 ‘길’과 ‘아이린’ 모두 이해가 안 된다. 아니.. 내 스타일의 사람들은 아니다.
누구보다 견고하게 자신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길과 아이린은 그래서 그 틀을 깨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것 또한 두 사람과 아이들이겠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결혼할 용기로 다른 것을 했다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몇 겹으로 다짐해도 결혼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나 나처럼 홀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면. 이젠 결혼 생활이, 어머님과의 관계가, 시댁식구들과의 대면이 일상이 되어 버려 크게 상처 받을 일도 없는 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기까지 내 스스로 얼마나 나 자신을 다스렸을까 싶어 내가 새삼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사랑은 그런 것 같다. 자꾸만 확인하고 의문을 품게 되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지 모른다고.
사랑은 가두면 가둘수록 달아나게 된다. 그림자를 가둘 수 없는 것처럼. 보이되 가질 수 없는 허상과 같은 것. 사랑 역시 그런 것 같다. 확인하고 가두려 할수록 사라지려는 아지랑이 같은 거라고. 오늘 나는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하는지.. 한 번쯤은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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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참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화목하게 보여도 속으로는 알수가 없는게 부부인것도 같다. 타인들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만, 집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숨기고 싶었던 일들이 낱낱이 공개가 된다. 부부는 부부대로 밖에서는 웃지만, 안에서는 상처가 터질듯 곪아갈 것이고, 그런 부부를 바라보는 아이들 또한 상처 받고 그 상처때문에 아파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내 가정만 보고는 다른 이들의 가정도 별문제 없을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대로 바라보니까. 둘러보니 이혼한 친구도 있고, 이혼은 아니지만 서로 소 닭 보듯 보는 부부들도 있고, 서로 다른 생각, 행동들을 하는 부부들도 꽤 많이 보인다. 부부라는게 나 혼자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노력해야 살아지는 것이 부부라고 보는데,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나는 그대로고 상대방이 변화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힘든 게 아닐까 싶다. 타인들이 만나서 서로 맞춰 나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아가는게 부부관계를 지혜롭게 유지하는 비결인가도 싶다.
요즘엔 가족에 대한 화두를 말하는 책이 꽤 나온다. 그만큼 가족이 중요해졌다는 이야기겠지.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라는 루이스 어드리크는 『그림자 밟기』에서 자전적 내용을 다루었다.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는 말에서 우리는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행복하지 않았던 부부, 뿔뿔이 흩어져 버렸을 가족 구성원, 그들의 속사정이 못내 아팠을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우리가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아픔이었다. 그토록 남편과 헤어지고 싶었던 아이린과, 아내의 비밀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남편 길, 남편이 자신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일기, 은행의 보관 금고에 가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쓰는 아이린의 마음은 참 아이러니다. 미국 보통의 가정이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의 핏줄을 물려받은 가정으로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일까.
그녀가 남편에게 보이기 위한 레드 다이어리와 자신을 위해 썼던 블루 노트의 두 권의 일기 속에서 우리는 아이린의 다른 모습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자신과 아이를 때리는 남편 길에게 다른 모습을 기대한다며 부부가 상담사를 찾아 갔을 때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누구하나 진심으로 상담사를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 노력없이, 그저, 그에게서 떠나고 싶어하는 이들 부부의 속내들이 못내 마음아팠다.
이따금 갈등에 지칠때, 언젠가 한겨울에 변압기가 무너져 정전이 되었을때, 모든 가족들이 초를 가져와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할때의 이 가정은 가장 평화로웠다. 온 가족이 서로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어렸을때 했던 그림자 밟기 놀이가 생각날 만큼 이 가족의 그림자 밟기 놀이는 가장 평화롭게 보여졌다.
살아갈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끼고 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견딜수 있는 것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지 않는가. 가족에게서부터 버림을 받고, 서로 피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깨지고 말 불안한 유리잔 같을지도 모른다. 또는 높은 산 위의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서 있는 삶의 벼랑에서 그만 내려왔으면 싶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위해 해결을 보았어야 했다고 보았다.
길과 아이린, 이들은 사랑한다고 여겼지만, 끝내 그 사랑은 집착으로 이어져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이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 부부처럼 느끼는 가정도 있을 것이기에, 무거운 바윗돌을 얹어 놓은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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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오랫동안 잉꼬부부로 알고 있던 개그맨 부부의 이혼소송이 TV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일명 쇼윈도 부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부부 생활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부부들... 솔직히 이런 부부들 중에는 유달리 연예인이 많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고 생활에 치여 살다보면 사랑이 엷어지고 점점 변화한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따지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으로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으면 사랑보다는 정, 의리로 그냥저냥 부부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아니 나도 이런 부분이 아주 없지 않다.
'그림자밟기'는 저자 루이스 어드리크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이란 이름을 갖고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같은 여자라서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길과 아이린은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로서 세 아이를 키우는 부부다. 길은 이름이 알려진 화가이고 그가 화폭에 담는 모델은 아내 아이린이다.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길은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자체부터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린은 사랑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고 남편이 자신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는 이유로 인해 남편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나기 시작했기에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거짓 일기장을 만들어 따로 쓰게 된다. 하나의 일기장이 아닌 두 개의 일기장... 블루 일기장은 온전히 아이린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레드 일기장은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인 거짓 일기이기에 자신의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길은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들기에 아내에게...
예술가들은 일반인보다 좀 더 섬세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길의 경우만 보아도 그 자신이 너무나 아내를 사랑하지만 좀 더 멋진 그림을 그리기위해서는 아내와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의 완벽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아내에게 느끼는 거리감, 질투, 분노와 같은 격한 감정들 속에 탄생한다니... 이런 그의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을 원하는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 것이고 여기에 아내가 가진 생각들로 인해 상처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가정이란 커다란 울타리에 남편, 아내를 넘어 아빠, 엄마의 존재는 자식들에게는 커다란 기둥이다. 원만하지 않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세 아이들... 특히나 밑의 두 자식들보다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수학 천재로 똑똑한 첫째 아들 플로리언이 받았을 상처는 크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부부의 이야기는 말하기 쉽다. 사람관계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많은 것처럼 실제를 알게 되면 놀라는 경우가 꽤 많다. 특히나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의 경우 남들이 알지 못하는 속사정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사랑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함은 맞다. 남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사라지면서 매일매일 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느끼며 사는 여자와 너무나 사랑하기에 소유하고 싶고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고 싶은 남편과의 대립... 사랑이 집착으로 치달으면서 두 사람의 미래는 끝이 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명 화가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애인이나 아내를 그림에 담는 일은 흔하다. 길 역시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을 때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화폭에 담겨진 그림을 통해서 사랑이 들어나는 길과 아이린... 이 두 사람의 사랑과 아픔, 마지막이 아프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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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 부부’라는 게 있다. 화려하고 깔끔하게 상품을 진열해 놓은 백화점이나 상점의 쇼윈도처럼 실제로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마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부부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남남, 밖에선 잉꼬부부인 셈이다. TV 등에 등장해 잉꼬부부임을 과시하다 갑자기 이혼을 하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쇼윈도 부부가 최근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는 별거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여 남들 앞에서 행복한 부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대화나 부부관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전혀 없는 부부도 과연 부부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쇼윈도 부부'라는 개념 자체가 무서운 것 같다.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 구매욕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화려하고 깔끔하게 상품을 진열해 놓은 백화점이나 상점의 쇼윈도처럼 꾸미는 것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거짓말인 셈이니 말이다. 가끔 오랜 결혼생활을 한 부부를 보면 마치 남 같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부부 둘 사이에서 보여지는 특별한 신선함이나 부러울 정도의 행복감이나 설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없어지는 걸까. 누구나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난 우리 애들을 낳아 당신 손에 안겨줬어. 도대체 당신이 알아야 할 게 뭐가 더 있는 걸까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배운 것은, 삶이란 필연적으로 어떤 형성기에서 시작되어 나아간다는 것과, 그 방향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야. 만약 사랑도 그러하다면, 우리의 결혼생활에는 시작부터 불길한 징조들이 있었지. 결혼식 전날 밤 나는 들개 떼의 끔찍한 공격을 받고 갈가리 찢기는 꿈을 꾸었어. 당신은 당신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당신 어머니는 몸 왼쪽 전체에 이상한 병이 걸려서 불길하게 당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곤 했지. 당신은 재수 없게 나보다 열세 살이 많아.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거야. 당신은 나를 소유하려고 해. 그리고 내 실수는 이거야.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당신이 진짜로 나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
남편은 저명한 화가, 그의 뮤즈이자 모델인 아내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아이 셋을 키우며 사는 그들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였고, 둘 사이에 이렇다 할 문제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쇼윈도 부부이다. 그들도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 일까. 아이린에게는 일기장이 두 권 있다. ‘레드 다이어리’ 속 아이린은 은밀히 남편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는 척하지만, 은행 금고 속 ‘블루 노트북’의 아이린은 두려움과 자기 부정으로 괴로워한다. 남편 ‘길’이 찾아내기를 바라며 쓴 가짜 일기장을 캐비닛에 감춰두고, 진짜 일기를 쓰러 은행 금고로 향하는 아내. 아이린이 바람을 피우는지 알아내려고 꽤 오랜 수색 끝에 빨간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줄곧 그것을 읽어온 길. 남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려 거짓 일기를 쓰는 그녀는 진짜 자신의 속마음은 다른 일기에 기재한다. 어쩌면 아내의 숨겨진 진실이었을지도 모르는 가짜 일기들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가공할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 사랑함으로 사람까지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와 그의 믿음을 깰 용기도, 도망칠 용기도 내지 못해 거짓 일기를 쓰며 두 사람의 관계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여자. 집착하는 남편과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는 아내의 이야기는 두 개의 일기가 쓰여지면서, 서로를 속이고, 속는 독특한 관계로 진행된다. 가짜 일기와 진짜 일기, 진실을 위장한 거짓 혹은 거짓인 것처럼 보이는 진실. 스토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게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그러나 담담하게 펼쳐진다. 거짓말 위에 쌓여진 위태로운 성이 언제 무너질까 걱정이 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이제는 서로 가면을 벗어버리고 무너뜨려버리고 싶은 욕망도 들게 만든다.
한 번의 실수로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린은 그냥 그 사실을 외면해버렸다. 어차피 역사는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역사가 의미를 가지려면 사건과 내러티브가 모두 있어야 한다.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그가 말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내러티브는 없다. 그러면 과거에 일어난 그 일은 의미가 없어진다. 간통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아닌 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가 열세 번째로 발표한 이 작품이 실제 자전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어드리크는 대학 시절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남편과 결혼했다. 그들 또한 소설 속 ‘아이린’과 ‘길’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커플이었고, 16년의 결혼생활 끝에 아이린과 길처럼 헤어지고 만다. 불안과 절망에 짓눌리는 어린 아내의 모습에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며, 그녀에게 집착하다 못해 알코올 의존 증에 빠지고 자살 기도까지 한 그녀의 남편은 물론 소설 속 남편 ‘길’의 원형이 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핏줄을 물려받은 그녀의 개인 사와 가족사를 소재로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라 어쩐지 처연함마저 느껴진다. 이 책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결혼과 가족이라는, 언뜻 견고해 보이는 사회적 테두리는 때로 아무리 밟아도 밟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연약하고 허무하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나 연약한 그림자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점을 죄다 가진 사람과 운명처럼 마주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점을 그나마 덜 가진 사람을 힘겹게 골라내는 일이다."라고. 세상에 완벽한 나만의 이상형은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들이 한 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미워지는 게 부부라고는 하지만, 조금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본다면 그 반대의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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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소유하려고 해. 그리고 내 실수는 이거야.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진짜로 나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 권의 일기를 씁니다. 한 권은 자신의 내면을 가감 없이 토로한 진짜 일기, 다른 한 권은 어린 아내에 대한 집착과 의심으로 불타고 있는 남편에게 읽히기 위한 가짜 일기. 진짜 일기는 은행의 비밀금고 옆 작은 선반 위에서 파란 노트에, 가짜 일기는 자신의 박사논문 작업실에 놓아두는 빨간 노트에 씁니다. 아내의 일기를 훔쳐보는 남편과 남편이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내의 심리전. 도발적 도입부에서부터 반전의 비극으로 끝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강렬하고도 처연한 느낌의 무덤덤한 소설입니다.
미국 여성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그림자밟기’는 화려한 쇼윈도 부부의 균열과 파탄을 잔인하리만치 섬세하고 대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사랑과 소유, 감춤과 드러냄의 관계를 묻는 일종의 심리소설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핏줄을 물려받은 혼혈 작가로 인디언의 역사와 정체성 문제를 주로 다뤄온 어드리크는 이 소설에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견지하지만, 소설은 작가 자신의 실패한 결혼생활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점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어드리크는 다트머스 대학에 다니던 1981년 이 학교 교수였던 작가 마이클 도리스와 결혼해 16년 만에 이혼했으며, 남편 도리스는 이후 알코올의존증에 걸려 자살을 기도한 전례가 있는 남자입니다. 이들은 소설 속 ‘아이린’과 ‘길’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커플이었고, 16년의 결혼생활 끝에 아이린과 길처럼 헤어지고 말죠. 불안과 절망에 짓눌리는 어린 아내의 모습에는 어드리크 자신이 투영되어 있으며, 어드리크에게 집착하다 못해 알코올 의존증에 빠지고 자살 기도까지 한 마이클 도리스는 물론 소설 속 남편 ‘길’의 원형이죠. 작가는 2010년 이 소설을 내면서 “이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무척 두려웠다”며 “한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한편 고집스럽게 집필을 이어감으로써 이야기를 객관화했다”고 고백했다고 하죠. 소설의 주인공인 길과 아이린 부부는 모두 인디언 혈통으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부의 삶을 일굽니다. 아메리카의 초상화를 통해 ‘아메리카 연작’을 그려낸 길은 이제 비천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남 보란 듯 성공한 화가가 되었고, 15년간 세 아이를 키우느라 뒤늦게 역사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아내 아이린은 남편의 뮤즈로서 ‘고통 받는 한 민족의 상징’이 되는데, 겁탈당한 모습이나 팔다리가 잘리고, 천연두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 심지어 벌거벗긴 채 엉덩이 사이에 성조기가 끼워진 모습까지, 모델 아이린에게 신화적 이미지가 들씌워진 것 같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있었죠. “나는 캔버스에 비친 모습만 살아 있는, 죽은 여자다. …구경거리가 되는 고통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남자의 “절망적인 헌신”과 폭력의 반복은 팽팽한 긴장을 고조시키며 받고 싶은 선물을 묻는 남편에게 “당신이 떠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내와 “아내와의 관계가 나빠질수록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편의 인연은 질기고도 끈질기게 지속되며, 남편은 아내의 부재와 고통스러운 갈망으로부터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아내의 부정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아내가 시키면 심리상담도 받고, 정신과 의사도 만납니다. “길은 다른 남자의 욕망 속에서 나를 원했어. 길은 경쟁하고 있었어. 다른 남자들이 바라는 것을 소유하고 싶었던 거야.” 길과 아이린 사이의 팽팽한 감정싸움은 거짓 일기를 통한 아이린의 계략이 성공하면서 끝내 길의 패배로 까지 가게되지만 애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길이 파멸의 구렁텅이를 헤맬 때, 아이린의 절규로 목을 메게 됩니다. “제발 자살하지 말아요. 계속 살아요. 견뎌내요.” 소설의 극적인 반전과 함께 서사의 화자가 둘째 딸 리엘이었음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은 꽤 오랜 여운과 깊은 통증을 남깁니다.
결혼과 가족이라는, 언뜻 견고해 보이는 사회적 테두리는 때론 아무리 밟아도 밟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연약하고 허무하다. 자신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매개로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문제를 깊이 파고든 작가의 진지한 용기에서 유럽 문학과 뚜렷이 구별되는 미국 문학만의 차별성과 개성을 느낄 수 있었던 색다르면서도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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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잔 데다 바람이 거세 창문이 소란스럽게 덜컹거리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이 뻑뻑해서 책읽기도 싫어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고정한 프로는 <사랑과 전쟁>. 좋지 않은 이야기들은 유독 머릿속에 쉽게 남는다. 영향을 받기도 쉽다. 그래서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프로였지만 시간은 밤을 넘고 새벽을 건너 아침을 향해가던 때라 취침예약을 해놓고 멍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 날의 주제는 <못생긴 남편>. 앞부분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신부대기실에서 신부가 울상을 짓고 있는 데다 찾아오는 친구들은 신부를 불쌍해하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기에 신랑이 정말 못생겼구나 짐작은 했다. 결혼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변호사인 신랑의 선물공세와 주위사정에 의해 쫓기듯 결혼하게 됐다는 신부의 넋두리 뒤에 등장한 그의 얼굴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못생겼었다. 물론 분장을 과도하게 한 탓도 있겠지만 코주부 코에 툭 튀어나와 다물어지지 않는 입, 고르지 않다는 표현도 과분할 정도로 뒤틀린 치열. 아내는 아이를 임신한 뒤로 남편이 자기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자기 할 도리는 다 했다며 육아를 남편에게 맡긴 채 다른 남자를 만나며 밖으로 겉돌기 시작한다. 예전 알랭 드 보통의 [너를 사랑한다는 건] 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문장들을 보면서 결국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가장 부끄럽고 창피한 부분을 공유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사랑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는 결혼은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부끄러운 부분들을 공유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해도 헤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선물공세와 남편의 경제력에 떠밀려 결혼한 신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쳐다보기만 해도 싫고 밥 먹는 모습도 꼴 보기 싫어지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 약속을 한 그녀의 어리석음을 탓할 일이지만 그것이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그런 때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가 밥 먹는 모습, 걸음걸이, 말투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사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그 모든 것들에 진저리를 치게 되는 날이. 발톱을 깎는 그의 모습이 싫어지게 되는 날이. 루이스 어드리크의 [그림자밟기]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아내 아이린과 그런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남편 길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그녀가 쓰는 일기를 훔쳐보는 길. 그리고 그런 길의 행동을 알아채고 블루 노트북과 레드 다이어리, 두 권의 일기장을 만드는 아이린. 아이린은 블루 노트북에는 진실을, 레드 다이어리에는 길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용을 적으며 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화가와 모델로 만나 한 때는 깊은 친밀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애정을 쏟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고, 비뚤어진 욕망만이 그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아내를 모델로 그녀의 속살까지 화폭에 옮겨담으며 그녀의 이미지를 통해 예술가의 혼을 불태우려했던 길. 그런 남편 옆에서 타인에게 소모되는 이미지가 더 이상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주체성을 되찾고 싶어하는 아이린은 이혼을 요구한다.
그들의 관계는 기괴하다. 사랑이라기보다 이제는 집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길의 언행과 그를 감싸안는 듯 내치는 아이린의 모습. 특히 마지막에서 보여지는 아이린의 선택-그것이 정말 그녀의 선택일까 싶기도 하다-을 보면 그녀의 길에 대한 감정도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린은 멈추지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부부사이에서의 소유라는 개념과 애증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작가는 대학시절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마이클 도리스와 결혼했지만 16년의 결혼생활 끝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이린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길에게는 남편 마이클의 모습을 투영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한 바 있다고 고백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이 작품을 어렵게 느꼈던 이유는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엮이지 않는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을 것이므로. 지금의 나는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다. 손에 잡힐 것처럼 잡히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 보내게 된다면 이 작품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지독하게 길을 밀어내고 싶어했지만 그의 심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빛을 봤을지도 모를 아이린의 선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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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아... [그림자밟기]
그림자는 혼자서 움직이지 못한다. "몸"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따라다닐 뿐이다. 몸이 불분명한 제스처를 취하면 그대로 흐리멍덩한 모습을 재생산한다. 확고한 의지로 뿌리치거나 단호하게 떨쳐내버리는 행동을 한다면 그림자 또한 칼같이 그 대상을 뿌리치고야 말 텐데. 제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뱀의 형상을 한 그림처럼 서로의 끝을 잡고 뱅뱅 맴을 도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애처롭기 그지없다.
'레드 다이어리'와 '블루 노트북' 의 비밀을 품은 채 남편 길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주인공 아이린의 삶의 궤적을 따라다니기가 힘겨웠다.
당신이 내 작업실로 내려와 오래된 서류 뒤에서 내 일기를 꺼내는 광경을 상상하면 참기 어려운 분노가 치민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반칙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이 일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 본다. -70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설명을 보면서, 읽어내기가 쉽지 않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쉬엄쉬엄 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유사성과 대칭성을 사랑한 탓에 젊은 시절, 서로에게 속수무책 빠져들수 밖에 없었던 길과 아이린. 둘 다 홀어머니 손에 자랐고 둘 다 아버지를 알지 못했으며, 둘 다 혼혈 원주민이고 심지어 크리족과 치피와족의 피가 섞였다. 둘 다 논쟁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고... 또 둘 다 친밀감을 금기시하고 살아왔지만 취하지 않은 채로 처음 섹스를 했을 때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이고 친밀해서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아, 어쩔 수 없는 감정의 홍수여! 뒤틀릴 대로 뒤틀린 것을 알게 되었지만 또다시 여행과 출산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통해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벌써 셋이나 된다. 길은 화가로, 아내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아메리카"연작 시리즈로 꽤나 잘 팔리는 작가의 대열에 끼게 되지만 주류로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아내의 나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그리지만 대중의 눈에 발가벗겨진 채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모델인 아내의 내면을 살피지 못한다.
난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길이 문손잡이를 잡고 대꾸했다. 서글프고 위엄이 서린 목소리였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걸 가졌는지 모르고 있어. -129
급기야 남편은 아내의 모든 것을 구속하고 집착하면서 일기장을 훔쳐 보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폭력을 쓰기도 한다. 이미 이 가정은 평범함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심하게 기울어져 있고 삐걱거리기 시작하며 누군가 조금만 풀썩이면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기도 하다. 아내는 어떻게든 남편과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지만 도무지 둘 사이엔 상담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 벽과 벽은 도무지 서로 맞선 채 깨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 둘 사이에 무슨 앞날이 남아 있을까.
남편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레드 다이어리'에 써내려간 조작된 그녀의 현실을 남편은 금방 간파해내고 둘은 언제 그렇게 대립했냐는 듯 폭소를 터뜨리고 사랑을 나눈다. 이혼 서류를 내미는 아내를 보고 남편은 울면서 그녀를 강간한다. 신고하라는 혈육의 조언에도 온 가족이 함께 불꽃놀이 구경을 간다. 알코올에 의존해야만 하는 아이린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아이들을 보며 이제는 이혼을 결심하겠지. 했는데... 이미 파국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와 있음에도 아이들을 위해서 남편 길을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아이린 때문에...소설은 예상치 못했던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오빠 플로리언보다, 남동생 스토니보다 내면이 단단했던 딸, 리엘은 인디언 조상들의 역사를 읽으며 깊이있고 강인하고 영민하고 참된 여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리엘의 목적은 아빠의 힘을 빼앗는 것이었다. 리엘은 과연 그렇게 자란 것 같다. 이 소설은 엄마인 아이린이 남긴 레드 다이어리와 블루 노트북에 자신의 기억을 더하고 이모 루이즈의 증언을 덧붙여 리엘이 완성한 형식을 띠고 있다. 그래서인지 절절하고 슬프지만 함부로 욕할 수 없는 고귀함을 품고 있다. 나의 부모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하는 듯,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리엘의 어조는 담담하고 당당하기조차 하다.
깊은 어둠에 푹 잠긴 이야기라 며칠을 어두운 표정으로 있었다. 마침내 한 손 사이로 흘려보낼 재만 남긴 채 타오른 불꽃을 보며 희미하게 웃어본다. 이렇게 끝이 났구나!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둘은 비무장지대를 들먹이며 비유를 통해 본질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다.
저는 아이린과 제가 비무장지대의 양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갈라선 채 날카로운 철조망을 세우고 살벌하게 감시하면서 첩보전을 펼치고 있죠. 우리 사이에는 저와 제 아내의 그리움과 사랑의 띠가 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채로요. -193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가 품은 천혜의 아름다움 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지만 속은 뻥뻥 터지는 지뢰밭임을 알고 있는지. 길과 아이린. 비무장지대를 걷지 말고 날아다니며 화해하고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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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란과 길은 남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성공적인 화가로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린 연작, '아메리카' 시리즈를 그리면 한 장당 수십만달러는 벌어들이는 남편, 아름답고 남편과 자신의 부계의 뿌리인 인디언출신의 19세기화가 조지 캐틀린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지적인 아내, 천재소년으로 대학수학강의 까지 듣고있는 14살소년 플로리안, 예민하고 다정한 내면의 딸 리엘, 그리고 막내 스토니, 기니피그와 개.
듣기능력향상 차원으로 일본채널을 무조건 틀어놓는데 그중 하나 정말 마음에 안드는 드라마지만 이런 대사 만큼은 매우 좋았다. '사랑이란 새와 같아서 잡아놓으면 달아나고 싶지만, 풀어놓으면 오히려 주변을 맴돈다고.' 수도없이 아내를 아름답고, 추하게, 감동적으로 그리는 길과, 그림속에 사라져버린 루크레치아를 그리는 렘브란트, 아니 순서를 고쳐말해야 겠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서 자살하는 루크레치아, 그리고 일부러 의도적으로 캐틀란의 이야기를 바꾼, 닮은 그림을 가져갔더니 그림과 닮은 인디언처자가 결국 죽었다는 그 이야기는 서로가 연결이 되며, 거리를 두지않고, 바로 곁에 서서 그림자를 밟는, 또는 영혼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그림자를 억누르는 모습으로 바뀐다.난 이 부분에서의 복선을 눈치채지 못하며,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읽고있었다.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로, 마치 힘들게 토해내듯 썼다는 이 작품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난 큰 감흥을 갖을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어가며, 사랑에 집착을 하고, 사랑에 상처를 받는지..너무나도 많이 다뤄지고 있기에. 난 사랑을 되돌려주지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의 사랑을 착각하며 사랑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더 비극일까..하는 생각을 줄곳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마주친 부분에서 난 갑자기 울컥했다. 물론, 내가 좀 자주 울컥하며 울기는 하지만, 이제껏 거리를 두면서 머리로만 읽고있던 소설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맨 위 리뷰를 쓰기 시작하며 줄거리를 정리하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을 나도 이해못하고 있었는데...그건 아마도, 너무나 많은, 비슷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걸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어떨지라도 작가가 진심으로 썼기에 그게 전달이 되서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순간 과연 아이린은 심장에서 나오는 빛을 본 걸까. 목을 물린 기니피그의 긴 비명뒤의 침묵처럼이 아닌, 스스로 뛰어든 것일까. 어떻게든 믿으려는 라엘이지만, 아마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리도 마음과 사랑이 해석, 분석가능한 것이었다면, 이 세상엔 그토록 수없이 많은 책, 노래, 그림, 춤, 연애강사, 결혼전문회사, 결혼상담가, 이혼전문가 등이 나올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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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연이라는 것은 천년의 그리움이 쌓여 백년해로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 소중한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눈높이에 맞춰 배려하고 격려하며, 차이를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분명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었겠지만. 아메리칸 인디언 혼혈인 엄마와 독일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유명 여성작가가 자신의 결혼생활이 실패했던 쓰라림을 고스란히 담아낸 자전적 소설을 내놓았다는 건 결코 담담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다.
누군가의 가정은 외부에서 봤을 때 결코 그 속사정을 알길 없다. 나 보다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을 것만 같고 아이들은 무탈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키우는 재미에 하루하루가 즐거운 나날이지 아닐까 라는 근거 없는 공상은 이 소설로 나, 그리고 당신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 아니 누가 더 고통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나 라는 냉혹한 진실을 직시하도록 만든다.
남편 “길”은 유명화가가 아니다. 단지 부인인 “아이린”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서(작품번호도 매기면서) 완성작을 내다 팔 곤 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그녀 “아이린”은 점차 남편에게 구속받고 있는 것만 같다. 항상 사랑한단 말에 현혹되지 말자. 이것은 “그림자밟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림자를 통해 영혼을 빼앗을 수 있다는 그 행위 앞에서 아무리 기를 써도 한 번 짓밟힌 그림자를 그의 발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림 속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보여준다.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의심한다. 당신을 떠날 수 없노라고 한다. 모두가 그림만으로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도록 남편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부부의 대화는 겉돌기만 하니 부부갈등은 자녀와 남편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한쪽은 다가서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어떡하든 무조건 벼랑으로 밀어 추락시키고 싶어 한다. 밀어내고 또 밀어내고.
이래서야 답이 없다고 판단한 “아이린”은 두 권의 일기를 의도적으로 준비한다.
레드와 블루 다이어리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시 감시하고 싶어 하기에 일기를 몰래 몰래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레드 다이어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허술하게 두면서 일부러 읽어도 상관없이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블루 다이어리는 진짜 속마음을 폭탄처럼 써내려간다. 그마저도 은행 비밀금고에 보관하고 있어서 남편은 진짜를 가려낼 수 있지가 않다.
당신은 꽤 오랜 수색 끝에 내 빨간 일기장을 발견했을 거야. 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알아내려고 줄곧 그걸 읽어왔을 테고. 그리고 두 번째 일기장, 당신이 내 진짜 일기장이라고 부를 일기장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일기장이야. -P.16-
또한 가족이란 구성원들은 상대를 탐색한다. 자세히 관찰해서 강인하고 영민하게 자라서 능가하고 아빠보다 힘의 우위에 서겠다는 아이들의 다짐은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러온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맞서는 자의 대립 속에 가족의 화목이란 뜬구름 잡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상의 힘이 아닌 자신의 진솔한 감정으로 인해 평정심을 잃고 두 다이어리를 통할 때 남편을 자신의 의중대로 유도하지만 원하는 결말대신 모순으로 부부관계가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소유욕에 집착하는 남편과 이혼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이던 그녀도 마지막에는 결단 대신 잠시 주저했던 것일까 밀어내다보면 추락만이 있을 것 같던 그 길의 끝에서 그녀가 선택했던 방식은 뜻밖이었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내내 고통스럽게 읽다가 한방에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그 행동이 부부관계는 보이는 것 이외에 설명이 안 되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느 지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앎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사랑은 우리가 상대의 특성을 대부분 사랑하고, 상대의 변하지 않을 흠을 참아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 P.47 -
확실히 끝은 반전이다. 작가가 던지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 상처가 보여도 그것을 가지고 제3자는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은 그들이 할 몫이다. 우리에게 판단할 권리도 멋대로 오인할 이유도 없음이다. 다들 그렇게 비슷하게, 심하면 극단적으로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듯 했다. 과거엔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아 불행하다고 투덜대는 이들에게 “아이린”과 “길”의 부부관계가 많은 것을 시시하고 있다면 어떻게 부부로 살아야 하는지도 여전히 과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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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책을 접할 때면, 특히 문학이란 장르를 접할 때,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감정이 노출되어 드러나 보일 때가 있다. 아무리 평정심을 가지고 글을 쓴다하여도 독자들의 눈에 익은 그들의 작품세계는 어떤 형상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전적이라고 소개되는 책들을 접할 때는 타의 작품들보다는 주의 깊게 관찰이 되고 나도 모르게 그와 동일시 되는 감정의 선을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미국의 인디언 혼혈로서 문단에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여류작가가 자신의 결혼생활의 체험과 그 실패를 함에 있어서 부부간의 사랑과 그 해체를 겪기까지의 심정을 담아냈기에 일단은 타인의 생활을, 그것도 부부라는 긴 끈으로 엮인 관점에서 보는 관음증 비슷한 흥분을 느끼게까지 한다.
부부은 전생에 억겹의 인연을 스치듯 수 없이 만나서 이루어진 관계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전생의 보은의 의미로 맺어졌고, 어떤 이는 원수지간으로 서로 으르렁 거리다 못해 그 한(恨)을 이승에서 풀기 위해 맺어졌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만큼 남.녀 사이의 긴 인생에서 부부의 연은 그 만큼 각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보편적인 의미에서 저자의 결혼 생활도 사랑으로 이루어졌다. 남편은 유명하진 않지만 부인인 자신을 모델로 삼아 '아메리카 1.2.3....이런 식의 화폭의 이름을 붙이면서 작품이 팔리기도 하는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에 부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런 남편 앞에서 결코 타인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통해 보여지는 자신들의 겉 모습 부부생활과 그 속에서 결코 그림 속에 있는 모습 만이 내 전부가 아니란 그 어떤 부정적인 말 조차도 속으로 삼키며 살아가는 아일린은 남편으로 부터 해방되길 원한다.
그래서 두 권의 일기를 준비한다.
한 권은 레드 , 다른 한 권은 블루-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고자 들쳐본다는 것을 알고 눈 앞에 쉽게, 그렇지만 결코 드러내보이지 않는 장소에 남편으로 하여금 읽어내게 하려는 의도의 거짓 레드 일기장, 은행의 비밀 사적 금고를 통해 보관하면서 그 곳에서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쏟아붓는 블루 일기장, 이렇게 거짓과 진실이란 두 갈래의 길을 통해 그녀는 남편에게 벗어나고자 남편이 생각하는 의도대로 글쓰기를 통해 이혼을 원하지만 남편을 그럴 때마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가끔 부부싸움을 통해 그녀가 휘두르는 주먹다짐을 맞아가면서도 그녀의 무릎을 잡고 애원하고 , 그러면서 때론 부부관계를 지속하는 상반된 행동을 보인다.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려한 나머지 지독한 사랑의 집착을 보이면서 때론 그녀와 아이들에게까지 그릇된 행동을 보이는 남편을 통해 그녀는 수 없이 벗어나고자 하나, 선뜻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또한 망설임을 보인다.
흔히들 유명한 사람들의 이혼 소식을 접할 때면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화려하고 부러웠던 생활을 생각하며 누구의 잘못이 크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부부간의 이야기는 당사자인 부부 외에는 결코 알 수없는 쌓이고 쌓인 만리장성이 있기에 선뜻 우리는 심판을 내릴 자격이 없다.
열렬한 사랑이란 감정을 통해 부부란 이름으로 시작하였으나 부부로서의 서로에 대한 존중, 배려, 이 책에서 말하는 길의 감상적인 면과 그녀의 비극적인 세계관을 통해 맞물린 키치(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사이비 예술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한다.)는 때론 격한 언동과 행동을 ,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헤어나올 수없는 부부간의 욕망인 성관계, 그럴 수록 부인을 대상으로 한 그림그리기에 몰입하는 행동, 상담심리를 받기 시작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올바른 심정을 토로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통해 지독하고도 쓸쓸한 부부간의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한겨울에 변압기가 무너져 정전이 되었을때, 모든 가족들이 초를 가져와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하는 가정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지만 어렸을때 했던 그림자 밟기 놀이가 이들 부부에게 있어서는 길이 아이린의 그림자를 밟음으로써 광적인 사랑, 억압된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그대를 사랑한다고 믿는다.(p7)는 아일린의 블루 노트에 적힌 문구는 그래서 더욱 사랑에 열병을 앓았고 부부가 됬지만 결국은 사랑의 끝마침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뭐라 표현 할 수없는 망망대해를 접했단 기분이 들었다.
끝 반전 부분이 작가 나름대로 최선의 끝마침이었음을 , 그래서 더는 지난 날의 아픈 상처를 들여다 볼 때 이젠 내 스스로 그림자를 밟히지 않겠다는,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었던 한 때는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메타포적인 희망사항이자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위안이 아닌가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