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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평론가나 비평가라 부른다.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작품에 대한 식견을 키우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보니 비평가의 한 마디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비평가도 사람이다보니 자신의 주관에 따라 억지소리를 할 때도 있고, 흔들리는 줏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비평가의 이야기는 아예 듣지 않고 자기나름의 소견에 만족하기도 한다. 보통은 한참동안 비평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 정도 그 소리가 귀에 쌓이게 되면 그 소리가 그 소리니까 패스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내가 요즘 비평가의 소리에 무텨진 이유다.
22년전에 문학잡지에 실린 평론을 묶은 책이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의 덮개를 벗겼을 때 잘 발효된 것을 보는 것은 모든 이의 기쁨이 분명한데 이 책은 무텨진 나를 뒤흔들 수 있을까.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당시에 발표된 시들을 해석한 것인데, 그보다는 시인론에 가깝다고 읽었다.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데 시인을 이렇게 고귀하게 대해준다면 누가 시인을 홀해할 것인가부터 이런 대접을 받는 시인들이라면 누구도 시 한줄을 탄식과 함께 내쏟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인들의 면면을 다시 한 번 그려보는 시간이 되었다. 시인은 이토록 그리운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해준 1부의 글을 읽을 때는 이렇게 행복한 감회가 솟구쳤다.
2부는 문학, 특히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시도 여타 문학처럼 서사의 일종이라고 일갈하며 시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은닉하면서 독자에게 해답을 찾아보게 하는 가가 관건이라는 내용을 읽을 때는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늘 시가 무엇인가라는 추상에 매달려 목말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말하는 시에 대한 정의를 통해 나와 같은 해갈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는 생략함으로써 유혹한다"는 말이 시의 흔한 간결성일 뿐이라고 심상하게 읽으면 그만이겠지만 나름의 목마른 상태에서 읽은 탓인지 이 보통의 말조차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읽을 때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시란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모태명제의 끝없는 변형이 아닐 것인가? 시에는 결국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라는 단 하나의 이야기만이 감추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적 변환은 이 하나의 이야기를 감추기 위한 은유적˙환유적 위장의 술수이고 포장의 책략이며, 시 읽기란 그 위장된 그리움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발견의 해석학일 것이다. -에로스의 독법과 포용의 시학, 중에서
하나만 더 인용하자면,
<시인이 왜 현실을 알아야 하는 가>라고 묻는 시인에 대해서는 그 질문의 용감성을 인정하되 그의 시적 비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날개를 얼어붙게 하는 현실의 냉기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이 없으므로 조만간 지상으로 추락할 수 있고, 그 자신이 억압된 존재라는 의식이 없으므로 공작정치의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망각의 시학, 기억의 시학, 중에서
어떤 이들은 문학과 현실은 어차피 다른 공간의 것이라고 말하고, 소설은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문학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유와 문학이 현실과 함께 해야할 당위성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저자가 문학의 가치에 대해 '인간의 품위와 자유'를 이야기할 때는 그동안 내 안에서 우물쭈물 모양 없게 만들어놓은 것을 반듯하고도 이상적인 말로 빚어낸 듯 보였다.
3부는 소설에 대해, 4부는 본격적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솔직히 4부는 비평의 전문적 내용으로 인해 읽기가 어려웠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주는 감동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문학도 결국 우리 인간의 공동체적 가치를 함양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저자의 음성이 마음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글들을 지켜보며 마음 뭉클해지는 것은 행복이다.오랜 시간이 지나도 손상되지 않는 가치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