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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서른을 넘긴 그녀가 만나고 있는 남자는 그녀가 꿈꾸어왔던 그가 아니다.그녀가 꿈꾸어왔던 환상이 깨어지면서 현실에 적응해간다.-#드라마 거리.
둘...어릴적부터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고, 가족들의 귀여움을 받던 그녀가 모델일로써 성공하지 못하면서 그녀를 따라다녔던 남자들이 떨어져나가고,그녀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이젠 변변찮은 남자를 만나고 있다.-#자아의 거리
셋,내가 좋아하고 있던 남자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내가 아닌 다른여자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했다. 나는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봤다.이상하게 여럿이 같이 만나면 나는 이상하게 혼자다.-#통과의 거리
넷,어릴적 단짝친구...그녀는 연애를 밥먹듯하고 결혼도 했다.잠시 그와 떨어져 지내며 내 집에 신세를 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유인즉슨 이제는 아무 남자도 자기를 여자로 안 본단다..-#목표의 거리
다섯,내 남편이 바람피고 있다. 내 남자의 외도를 알면서도 나는 그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중이다.또,그 여자를 뒷밟으면서 어느새 그녀와 비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아이의 거리
여섯,내가 만나고 있는 남자는 유부남이다. 사귄지는 7년 되었고 그에게는 병든 아내를 보살펴야할 의무와 자녀들이 있다..조금만 기달려달라는 그의 말을 믿고 연애초반 나를 치장하는 데 공을 들였으나,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는 데다가 무엇이든지 열정이 사그라들고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고 그의 집을 찾아갔으나, 그의 집 문패에 그의 이름과 문패하나가 더 걸려있다 '퀼트 수강생 모집'-#의욕의 거리
일곱,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탓에....그런 내게 엄마의 존재를 대신해줄 시어머니가 생겼으나,독한 시어머니이다.. 남편과 시동생 모두들 그녀를 외면하고 있고, 사실 나도 그 여자가 죽어줬으면 좋겠다...근데 그녀가 이젠 알츠하이머에 걸려버렸다. 부양하기 싫어하는 그녀의 자녀들은 그녀를 요양원에 보내버렸다.그녀와 함께 우연히 간 찻집, 그곳에서 그림을 보며 온화한 표정을 짓는 그녀,,후에 그녀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집에 오면서 남편과 다시 들렀을 때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남편을 보며....나도 그런 추억을 기억해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이젠 나도 엄마가 되고 싶다.-#이별의 거리
여덟,,남편과 결혼하면서 두 번의 유산, 그리고 멀어져가는 그와의 스킨십, 이젠 욕구불만을 주체할 수 없다. 가벼운 일탈을 꿈꾸고 알바집 종업원을 유혹해..욕구해소와 함께 승화해버리고 싶다.그러나 나보다 열살 어린 청년은 이런 내가 부담스러워 도망가버린다.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답장이 온다..'기다릴께..'-#승화의 거리
웃을 수도 없고,공감이 가기도 하고,슬프기도하고,,때론 처량하게도 보이는 삶의 드라마를 꿈꾸는...서른살 넘은 그녀들이 꿈꾸었던 사랑이야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모든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총 8편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여자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일과 감정을 적나라하고 뽑아내고 진솔하게 엮은 책인 것 같다. 내 가까운 친구가, 이모가, 엄마가,이웃이 겪을 수 있는 일들....그러나 가슴 속 깊숙히 꽁꽁 숨겨놓고 감추려고만 했던 그네들의 속사정.
막상 서른을 넘기고 이 책을 펼쳐보니 내용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었나부다..삶은 드라마이지만,내게 좋은 드라마 소재거리가 넘쳐날수도 있고, 안 좋은 드라마 소재가 넘쳐날 수 있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잊지 말고, 또한 드라마를 감독하고 있는 사람도 나이며, 관람하는 것도 나임을 분명히 알고, 보다 자신있게,,,,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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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ラママチ :: 角田 光代 전업 주부로 사는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아이를 각각 회사와 유치원에 보내고,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마치고, 책이나 영화 등을 좀 보다가 시간이 되면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간다. 돌아와서 함께 놀아주고, 슬슬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한시간 가량 운동을 하러 나갔다 돌아와서 다시 TV나 책을 보다가 느지막히 잠이 든다. 거의 매일, 이 패턴이 바뀌질 않는다. 누군가 어떻게 지내냐고 묻기라도 하면 있는 그대로 설명해도 이렇게 대략적인 것이 되버리고 만다. 우스개로 나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니라 월월월월월일일 이라고 말하면서도 더 얘기할 거리가 없어 매번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된다. 이것이 또 사람을 잘 안만나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만남이라도 있으면 변화라도 있을텐데 얘기거리가 없다고 몸을 사리다보니 갈수록 악순환이 되면서 더더욱 일상은 단조로워지고 지루해져 가는 것이다. 일상에 변화가 없으면 스스로도 정체 되어있다는 생각에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넘쳐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다들 분주하게 어딘가로 달려가는데 나만 멍하니 서있는 기분이 들어 의기소침해진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왔다 하면 사야될 것 같고, 봐야될 것 같고, 해야될 것 같은데 몸도 의욕도 안따라주니 마음만 조급해진다. 그 조급함에 여러 차례 시달리다보면 공연히 화가 난다. 분노가 쌓이고 쌓여 엉뚱한 데에 짜증을 내거나 화풀이를 하고 지나치게 연민적이 되거나 지나치게 냉소적이 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내 정체성이 뭔지, 내 성격이나 성향이 뭔지도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지금 하는 걸 좋아서 하는 걸까? 그저 타성적으로 어딘가에 이끌려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도대체 뭐가 이렇게 조급할까? 뭐가 이렇게 안타깝고 화가 날까? 무엇을 바라고 있기에. 얼마나 대단한 행복을 바라고 있기에. 남보다 나은 자신? 아니면 스스로를 사랑하고 만족할줄 아는 자신? 굶고 쪼들렸던 시절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소유하고 소유하면 그것만으로 마음이 채워질줄 알았다. 그러나 그저 가진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 아닌 누군가가 [너 그것을 가졌구나] 하고 찬탄하고 부러워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소유 목록이 늘어나면 타인에게 내보여 반드시 검증 받으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마약과도 같은 덫이었다. 한번 타인의 부러움을 산다는 것에 도취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소유 목록을 늘릴 수 밖에 없는, 결국 스스로 원해서 구하기보다 남에게 내보이기 위해서 구하는 모양새로 역전되었다. 타인의 소유 목록을 카탈로그 삼아 그가 소유하면 나도 소유하려 들고 심지어 소유물에 자아를 덧씌우기 위해서 마치 신종 마약을 찾듯 새로운 아이템을 남보다 먼저 찾아 내가 제일 처음 정복했노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새로운 물품이 되었든 대상이 되었든 방식이 되었든 '내가 먼저 했다' 는 걸 마치 나만의 특별한 능력인 마냥 착각했던 것이다. 그 중독이 깊어지자, [무언가가 없으면 내 자아도 없다] 는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만큼 갖고도 항상 남이 가진 것이 새로웠으므로 끝없는 박탈감과 결핍감, 자아 상실로 괴로워했다. 저 이가 가진 무엇이 없는 것만으로도 나는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게 없어서 재능을 발달시킬 기회마저 놓치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하나하나 비판하고 비관하기에 이르렀다. 날 때부터의 조건이 안좋아서, 운이 없어서, 재능이 없어서, 게다가 그걸 개선해보겠다는 의욕조차 없으니 완전 구제불능이 아닌가. 노력했다고 노력했지만 안되는 걸 어쩌나. 그래도 나보다 운좋은 사람, 능력있는 사람, 더 잘되는 사람, 마음가짐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더 노력해봤자 뱁새 가랑이가 과연 원하는 만큼의 만족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의욕상실을 합리화 하고 그저 잘되는 남만을 바라보며 내 처지와 나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했다. 그것이 그저 자기연민에서 발현된 안일한 도피 심리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 자신이 아니라 남만 보고 있다는 것] 이 문제였다. 하루 중에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도 빠듯한데 나는 그동안 그 시간을 남을 보느라 허비했던 것이다. 왜 남이 소유한 것을, 성취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안타까워할까? 왜 남의 모자란 점을 깎아 내리며 비난하고 독설함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찾으려 할까?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나 아닌 타인이 반드시 필요하다지만 혹시 [과잉 타인 의존증] 은 아닐까? 누군가를 보고 부러워서 의기소침해지든 심기에 거슬려서 화가 나든 스스로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면 아예 안보는 편이 낫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해도 가진 것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가졌든, 얼마나 해왔든 그것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나 자신은 이미 이전과 틀리다. 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타인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일단 그 기준까지 열심히 가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에 앞서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목표 지점에 도달해도 도달한 것이 아니게 된다는 거다. 사실 타인의 인정이란 한정이 없다. 이만큼 인정 받았다 해도 그 이상의 인정을 요구 받게 된다는 것을 어느 지점에 가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오로지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달려나가는 건 밑빠진 독에 물붓는 마냥 맥빠지는 일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든, 어느 위치라고 매겨주든, 스스로 원하는 것만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자아의 거리) 남보다 뒤쳐질 수도 있다. 조금 늦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이 가는 길은 한도가 있는 법,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나이에 굴하지만 않는다면(※ 목표의 거리) 결국은 도달하기 마련이다. (※ 통과의 거리) 남이 저만큼 가 있다고 한탄할 필요없다. (※ 아이의 거리) 탄식하며 멍청히 서있을 바에야 차라리 땅을 보고 묵묵히 걷는 편이 낫다. 의욕 없는 스스로에 대한 화를 풀 길 없어 대신 타인의 흠집을 찾는 데에나 골몰하고 있는 건 아닌지. (※ 의욕의 거리) 그렇게 싫어하는, 비난하고픈 타인이 어쩌다 그런 길을 걸어왔는지 가늠이나 해보았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상대라도 그 이의 장점 한가지를 찾아볼 때, 뜻밖에 자신의 문제가 풀린다. 그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의욕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 이별의 거리) 그토록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삶이라도 막상 그것이 또 자신의 것이 되면 단조로운 일상이 된다. (※ 승화의 거리) 일상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것. 사람은 사실 누구나 이 평화를 추구하며 산다. 그러니 일상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고마운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 선물의 크기가 너무 시시하다고 내용물마저 시시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 드라마 거리) 맛은 비슷비슷할지언정 모양도 크기도 다른, 가끔은 초콜렛이나 럼주 같은 달콤한 속도 들어있는 과자 상자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매일 다른 과자를 먹고 있으면서도 감각이 무뎌져 그 맛이 다름을, 즐거움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게 아니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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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읽어보라며 추천해준 책인데요
책을 읽다가 눈을 뗄수 없을만큼, 책내용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일본을 가본적은 없지만 생생한 일본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그려낸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특히, 일본 음식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묘사해놨는데요, 일본음식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하더구요..
첨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내 가슴속에 따뜻한 뭔가가 흐르는듯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봄기운이 드는 나른한 계절 더 드라마 한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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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요소는 전혀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지만 제목은 <더 드라마>다. 하긴 드라마적이라는 건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 걸까. 지구 상 어디에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막장 드라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이웃 또는 바로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은 드라마, 평범함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그린 드라마, 그렇게 드라마도 실로 여러 가지 장르와 스토리가 있는데 말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에서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능력을 지닌 작가 가쿠타 미츠요의 단편집 <더 드라마>는 어쩌면 드라마일수도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로맨틱한 행복을 꿈꾸는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모든 이야기에 찻집이 등장한다는 것. 한창 친구들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는 맛있는 커피와 차, 좋은 음악이 흐르는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듯, 찻집은 여성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드라마라는 것 별 거 아니지 않은가. 내 인생의 행복을 향해 살아가는 그 자체가 각자의 드라마인 것을.
“세상 어디든 마찬가지야. 프랑스도, 중국도, 사람이 지치고 피곤하면 찻집에 와서 마시고 이야기하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어디든 그러하다면 이곳도 외국이라 이 말이지.”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한 게 아니라 왕자가 두꺼비처럼 변해버린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피곤함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여자. 상의도 없이 이사할 집을 알아 본 남자친구에게 약간 화는 나지만 집주인 노파에게 이끌려 간 베이커리를 겸한 카페에서 일상의 행복을 맛보게 된다. (# 1. 드라마 거리)
어려서부터 예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세월을 흘려보낸 여자. 주위엔 자신을 찬양하는 남자도 많지만 진정한 사랑도,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일도, 찾지 못했다.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가던 고풍스런 찻집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인생이 한심해 더 나은 빛을 향해 카메라 파인더를 바라본다. (# 2. 자아의 거리)
남자친구 없이 지내온 역사를 오늘도 여전히 쓰고 있는 여자. 남자들은 여자들이 도가 지나쳐도 두려워하고 너무 무관심해도 두려워한다. 친구 부부가 소개해준 남자와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찻집에서 애프터 데이트를 하지만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 3. 통과의 거리)
집에도 있는 커피를 일부러 마시러 가는 곳. 클래식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몇 시간이고 의자에 파묻혀 있을 수 있는 곳. 그런 찻집을 동경해 찻집 주인이 된 여자.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 주인공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이 변하지 않았다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갈 길을 가면 되는 거다. (# 4. 목표의 거리)
아이를 갖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임신을 기다리는 여자.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걸 직감하지만 그저 그 여자를 뒤쫓는 나날을 지낼 뿐이다. 그러다 처음 혼자 들어간 찻집. 생각보다 혼자 찻집을 찾는 사람이 많음을 알고 매일 찻집에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질투인지 집착인지 몰라도 언젠가는 아이를 갖게 되고 가족이란 그런 거겠지. (# 5. 아이의 거리)
누군가를 헐뜯고 싶어지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여자. 밥은 아무거나 먹으면 되고 외모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어느 새 뚱뚱한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8년 동안 만나온 소시지 몸매의 유부남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을 수나 있을까. 몇 년 전 은밀한 연애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줬던 찻집에 들렀으나 이미 다른 가게로 바뀌어 버렸다. 그들의 관계처럼. 이젠 새로이 의욕을 찾을 때다. (# 6. 의욕의 거리)
히스테릭하고 깐깐하며 잔소리 심한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자. 죽어주기를 바라던 시어머니지만 막상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식들에게까지 외면 받는 모습을 보자 생각이 많아진다. 노인요양시설에 시어머니를 입원 시키던 날, 남편과 함께 간 찻집은 전에 시어머니를 따라 갔던 곳. 벽에 걸려 있는 두 여인의 그림을 보며 삶은 또 다른 이별을 맞이하는 것이라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 7. 이별의 거리)
결혼 5년차에 접어든 여자. 남편과는 비밀도 없고 친구처럼 사이도 좋다. 단지 부부관계를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불만이 있을 뿐. 두 번의 유산 때문일까. 그러나 성욕에 대한 갈증은 자꾸 커져만 간다. 파트타임 일로, 운동으로 욕구를 승화시켜보려 하지만 잘 해결되질 않는다. 아르바이트생의 개인전을 보러 갔다 들른 고풍스런 찻집에서 문득 깨닫는다. 남편과 그녀는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이 달랐던 거라는 걸. (# 8. 승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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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소설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가끔 아주 가끔 읽는 것이 전부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예전에는 꽤 읽었는데... 특히 아이들 키우고 정신없는 삶을 살면서부터 한가하게 앉아서 소설이나 읽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해본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오전이면 적어도 내 시간이 나건만 여전히 소설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 책을 읽는다. 그 재미에 빠져 지낸 게 얼마인지 모르겠다. 물론 간간이 소설이라는 것을 읽었지만 이제는 책 속에서 두근대는 어떤 것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고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오랜만에 읽게 된 소설.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을 읽는 것이 얼마만일까. 처음에는 무심코 읽었기에 잘 몰랐는데 조금 읽다보니 각 단편들 제목이 바로 그 이야기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부제에 나와 있듯이 여자가 꿈꾸는 사랑의 모든 것이 각 이야기별로 펼쳐진다. 20대의 이야기도 있고 30대와 40대의 이야기도 있다. 가만... 내가 20대 때는 과연 어떤 사랑을 꿈꾸었더라... 적어도 지금처럼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무덤덤하게 느끼지는 않았겠지. 각 이야기에 몰입해서 때론 화도 내고 때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8개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지 않는다. 물론 모두 공감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다.
왜 여자의 행복을 남자에게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하긴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잣대로 보기도 했겠지만... 여하튼 현재 내 주의의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왜 모두 불륜이라는 것을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물론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말이다. 여자의 인생이란 자신으로 인한 삶보다는 아이나 남편으로 대변되는 삶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생활을 되돌아보자. 나 역시 아이들과 남편으로 이루어진 삶이긴 하구나. 그래도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고 자존감이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이 책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는 여자들의 삶이 전혀 활기차거나 생동감있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표지에서 '내 나이 서른,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꿔도 될까'라는 문구가 나온다. 항상 그 안에 있을 때는 못 느끼는 법이리라. 만약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제 막 결혼하기로 한 사람이, 이제 막 아기를 임신한 사람이 읽는다면 나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겠지. 내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것일까. 책에 있는 내용이 모두 흘러가면 그만이고 그처럼 허겁지겁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낄 만큼. 그렇지도 않은데... 나도 여기 나오는 여자들과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과연 나는 무엇을 꿈꾸며 사는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