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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사회는 피할 수 없는 추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다민족 사회는 피할 수 없는 추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내용보기
언젠가 언뜻 본 기록에서 내 성(姓)이 우리나라 토착 성씨 중에 하나라고 해서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내 뿌리가 확실하게 이 땅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은근하게 자긍심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자긍심을 조심해야한다는 생각 또한 갖는 것이 혈통을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歸化) 성(姓)씨'를 읽다가
"다민족 사회는 피할 수 없는 추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내용보기

언젠가 언뜻 본 기록에서 내 성(姓)이 우리나라 토착 성씨 중에 하나라고 해서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내 뿌리가 확실하게 이 땅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은근하게 자긍심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자긍심을 조심해야한다는 생각 또한 갖는 것이 혈통을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歸化) 성(姓)씨'를 읽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이 있었다. 국내에 있는 성씨를 조사한 결과, 그 성씨 중 무려 46%에 달하는 성이 귀화 성씨로 판단된다는 점이었다. 인구로 따지자면 최소 20%에서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가 귀화 성씨로 추산된다고 하니, 이렇게나 많이 싶었고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외부에서 한반도에 들어와  한국인으로 자리잡은 성씨들이 그만큼 많다는 해석이 가능한 조사였다.

사실 이제와서 귀화성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겠지만 혈통을 따지는 게 아니라 이들 역시나 우리 역사라는 점에서 귀화 성씨를 살펴보는 것도 유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귀화성의 역사는 삼국시대 훨씬 이전 상고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하는데, 그 시기 기록이 희귀하다보니 사료 찾는 것이 어렵다. 그런 가운데 최초의 귀화자로 거론되는 인물이 무려 기자조선 설의 주인공인 기자(箕子)라니, 귀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3천년 도 더 될만큼 장구한 이력을 지닌 셈이다.

그런데 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삼형제가 있었는데, 이 삼형제가 각각 기(奇),선우(鮮于),한(韓)씨가 되었다고 한다. 청주 한씨가에서는 그 근원을 바로 이 기자에 두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지금 성씨중 귀화 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귀화성의 역사가 길다보니 흥미로운 사연들도 많았다. 베트남 첫 독립국가 리씨 왕조의 왕족이 고려로 망명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고, 1995년 화산 이씨 종친회에서 베트남을 방문해,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또 베트남 각료나 대사가 한국에 오면 화산 이씨 종친회장을 만날 정도로 화산 이씨는 한베 양국의 우애를 다지는 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지는 아유타 국 공주 허황옥과 가야의 수로 왕의 연분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양을 건너 귀화한 이국인이라는 설이 주를 이루는데, 그녀는 둘째아들에게 허씨 성을 잇게했고, 그런 연유로 김해 김씨의 김해 허씨는 서로 통혼하지 않는 불문율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출신 장수는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됐고, 여진족 출신 통두란은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물리치는가하면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우며 개국공신이 됐다. 훗날 이지란이란 이름으로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됐다. 그는 다른 여진족들이 귀화해 조선에 보탬이 되도록 한 업적도 세웠다.

이외에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가유약은  조선여인과 혼인하며 조선에 정착했다. 그리고 전사했지만 2000년에 실시한 바로는 그의 소주 가씨 후손 9000여명이 남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인조왕 시절, 제주에 표류했던 네델란드인 벨테브레, 그는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이 되었다.박연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여인과 혼인하고 남매를 두었다. 박연은 효종의 북벌 정책에도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고, 무기 제작에도 기여했다.

 

읽는 동안 한반도 역사에 흔적을 남긴 귀화자들이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귀화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주해오거나 자발적인 선태보다는 귀화할만한 정치경제적인 배경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이들이 처음 유입됐을 때에는 그 사회에 이질감과 새로움을 동시에 유발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이방인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우리가 되었음을 성씨로써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수용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에서 이렇게 귀화성씨를 살펴본 것은, 우리의 현실을 일깨워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즉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민족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상황이고 그렇기에 혈통과 피부색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과 다양성의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현실인식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e****0 2018.04.27.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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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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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인 곡산연씨(谷山延氏)는 작은 성씨이다. 10여 년 전 통계에 의하면 전국 249개 성씨 중에 27.940명으로 76위에 해당된다고 하니, 전체 인구의 0.1%에도 못 미친다. 지금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100여명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 중 <연가>는 나 하나였고, 전교생 600여명 중에도 <연가>는 우리 형제와 사촌들 몇 명 정도였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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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인 곡산연씨(谷山延氏)는 작은 성씨이다. 10여 년 전 통계에 의하면 전국 249개 성씨 중에 27.940명으로 76위에 해당된다고 하니, 전체 인구의 0.1%에도 못 미친다. 지금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100여명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 중 <연가>는 나 하나였고, 전교생 600여명 중에도 <연가>는 우리 형제와 사촌들 몇 명 정도였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성은 왜 김·이·박(金李朴) 같은 대성이 아닐까. 우리 선조 중에 부원군이 있었다는데, 부원군이란 무엇일까? 대원군 같은 건가?"

 

나의 성씨가 희귀성이란 사실이 오히려 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연개소문이 당신의 조상이냐? 연산군과는 어떤 관계이냐?" 우리 성씨의 사람들이 한두 번쯤 받아 본 질문이다. 연개소문은 우리 성씨와 관계가 없고 연산군 역시 마찬가지다. 연개소문의 성씨는 연(淵)씨이고, 연산군은 이(李)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조선시대 왕인 연산군과 고구려의 유명한 장군인 연개소문이 연가인 줄 알고 호감을 느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임금을 말해 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친구들의 대답에는 세종대왕이 가장 많았고 광개토대왕이나 무열왕도 나왔다. 내가 연산군이라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셨다.

 

"연산군? 왜 그 임금을 좋아하지?"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우리 조상이니까요."

 

담임선생님께서 파안대소하셨다. 왜 웃으시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 역시 그런 듯하다. 초등학생 수준으로는 연산군이 어떤 왕인지 몰랐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래. 훌륭한 왕을 조상으로 두었으니 좋겠구나. 선생님이 들려줄 것이 있는데….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로 오렴."

 

교무실로 가자 선생님께서는 연산군은 연씨가 아니라 이씨이고, 그는 별로 훌륭한 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따로 불러서 그 말씀을 해 주신 선생님의 심려가 지금도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면 연씨 중에 이순신 장군처럼 유명한 사람이 누구인지요? 우리 조상 중에 부원군이 있다는데, 부원군은 무엇이고요?"

 

나의 진지한 물음에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글쎄, 부원군이란 왕의 장인, 즉 왕비의 아버지인데…. 연씨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구나. 집안 어른들께 여쭈어 보려무나."

 

집에 돌아와서 우리 선조인 부원군 할아버지가 어느 왕비의 부친이며, 우리 집안의 유명한 인물이 누구인지 등을 아버님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님도 자세히는 모르시는 듯했다. 다만 내가 곡산부원군의 18대손이라는 정도만 들려주셨다.

 

그 뒤로도 몇 번씩 족보를 펼치고 옥편을 찾으면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12세 선조(연사종)가 곡산부원군이고 상당히 긴 이름의 관직을 갖고 있다는 정도밖에는 깊은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 국사 교과에 유난히 집착했던 것은 그런 관심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문헌을 뒤졌지만 나의 성씨(곡산연씨)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준 권위있는 서적은 없었다. 그저 막연히 중국에서 귀화한 성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우리 성씨를 밝힌 귀화성씨>를 통해서 우리 성씨의 정착과정을 알게 되었다. 즉, 뿌리를 찾던 내게 가장 밝은 빛을 던진 책이었던 것이다. 또한, 희귀성씨인 나의 성씨는 물론 여러 경로를 통해 이 땅에 들어와서 함께 어울리면서 한겨레로 동화된 여러 성씨들을 알게 되었다. 순간 뜨거운 동포애가 느껴졌다.

 

뿌리를 알게 해주면서 더불어 사는 마음을 키워준 이 책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y******3 2009.06.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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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계시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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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박기현               출판사 : 역사의 아침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라는 부제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적이듯 사적이든 우리 땅에 들어 온 이방인들 중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서 살고자 귀화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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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박기현               출판사 : 역사의 아침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라는 부제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적이듯 사적이든 우리 땅에 들어 온 이방인들 중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서 살고자 귀화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땅에 정착한 귀화인들 중에서 9명의 대표적 인물을 선정하여,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당시의 정황을 정리하고 시대별 귀화 성씨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대륙에서 이곳저곳의 난을 피해, 혹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수많은 집단들은 귀화한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미워하지 않고 서로 껴안아 일심동체의 문화적 구심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냈다.

 

  이 책은 두 개의 큰 흐름으로 정리 되어 있다. 1부는 "한반도를 선택한 사람들"로 유구 산남왕 온사도(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망명왕), 베트남 망명 왕족 이용상(화산 이씨), 흉노족 왕자 김일제(경주 김씨), 인도 아유타의 공주 허황옥(김해 허씨),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출신 장순룡(덕수 장씨), 이성계의 오른팔 여진족 이지란(청해 이씨),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사성 김해 김씨), 조선에서 전사한 명나라 장수 가유약(소주 가씨), 조선에 뿌리내린 네덜란드인 박연(파란 눈의 박씨) 등 9명의 귀화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2부는 "우리나라를 찾은 귀화인의 역사"에 대해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귀화인의 특성에 대해 정리하였고, 특히 DNA를 통해 본 한민족의 실체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진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열 명 가운데 세 명이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이다. 중국과 일본은 가까우니까 말할 것도 없고 네덜란드, 인도, 유구, 베트남, 몽골, 여진 위구르, 거란족과 흉노족, 발해 유민 등 실로 많은 민족의 출신이 한반도에 들어와 한민족이 된 것이다.

 

  성씨의 시조에는 악비 장군도 나오고 공자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삼황오제 시대에 기원을 군 귀화 성씨도 보인다. 또 전문 연구자들의 DNA분석 결과를 봐도 우리는 중국, 몽골 등 북방계, 일본계, 동남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의 DNA를 포함하고 있다. - <프롤로그 - 귀화 성씨, 역사를 만들다> 중에서

 

  지금부터 약 10년 전 화산 이씨의 종친회 대표들이 선조의 고향 베트남을 찾아갔다. 선조들이 고려 고종 13년(1226)에 망명한 지 770여 년 만이었다. 그들은 베트남이 선조의 땅이니 한번 만나보기라도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그러나 도착하고 나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국의 보통 시민들을 맞이하기 위해 베트남의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했고, 정부는 베트남인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며 깍듯이 왕손 예우를 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은 이 나라의 왕조가 남긴 유일한 왕손이 금의환향했다고 대서특필했다. - <베트남 망명 왕족 이용상 - 화산 이씨> 중에서

 

  “저는 태양 왕조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 제가 본국에 있을 때부터 부왕과 모후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우리 내외가 어젯밤 꿈에 하늘의 상제를 보는데 상제께서 가라국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 보낸 왕으로서 신성한 분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올라가셨다. 너는 이 자리에서 부모와 작별하고 가락국으로 떠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신선이 사는 곳에 있는 실과를 찾고,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린다는 반도 복숭아를 찾아 이렇게 감히 용안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 <인도 아유타의 공주 허황옥 - 김해 허씨> 중에서

 

  현재 국내에 있는 성씨를 조사한 결과 약 46퍼센트가 귀화 성씨라고 판단되는데, 인구 수로 보면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에서 거의 절반까지 달한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 차이는 몇몇 성씨들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쨌든 기원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귀화 성씨로 짐작되는 몇몇 성씨를 합하면 귀화인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다.

  어쨌든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외국에서의 귀화인 유입을 알면서도 단일 민족 운운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제는 무조건 순수한 혈통이라며 단일 민족을 논할 게 아니라 포용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다민족을 이야기해야 할 형편이다. - <얼마나 많은 귀화인이 들어왔을까?> 중에서

 

  고구려의 경우 귀화인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실제 수나라, 당나라에서 많은 귀화인들이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신라가 통일 왕국을 이룩하면서 많은 사료들이 묻혀버렸다. 또 있다. 해도 대부분 북한 지역에 있어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고구려가 요동에 가지고 있던 넓은 땅에 수많은 귀화인들이 들어온 것은 분명하다. - <삼국시대의 귀화인들> 중에서

 

  이밖에 전쟁 중 사로잡은 포로들은 노비나 천민으로 받아들여 왕실이나 관부, 각 현에 보내 노비로 살아가게 했다. 이 같은 결과를 종합해볼 때 고려 사회는 "들어온 이들은 거부하지 않는다"는 적극적 수용 원칙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고려 조정은 귀화한 이들은 사회 깊숙이 받아들여 이질적인 문물을 흡수하고 발전시켜감으로써 더욱 융화되고 성숙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고려시대의 귀화인들> 중에서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귀화인 우대 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초기 귀화 정책은 여진족에 대한 포섭과 격려, 결혼 정책, 강제 이주, 인질책 등으로 주로 북방 경계를 지켜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귀화인들을 통해 북방의 정보를 얻고 여진과 적당한 교섭, 통상을 계속했으며 유사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비책으로 귀화인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귀화인들> 중에서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나라보다 단결이 잘 되고 한번 뭉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 안에는 대륙을 달구던 뜨거운 기상과 모험심, 지평선을 바라보며 한없이 웅대한 꿈을 키운 유목민의 피, 반도체를 만들어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게 하는 섬세한 예술혼이 다양한 유전 인자와 함께 녹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 차례로 들어와 동화된 귀화인들 덕분이다.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우리 민족은 오천 년 동안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아 왔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처럼 과연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가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3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중국 대륙에 맞닿아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수많은 침략과 전쟁을 치렀던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고 고집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 민족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다름을 인정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 국제결혼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 배필들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와 문화가 다르고,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차별을 둘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이들도 이제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인,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동남아, 아랍, 심지어 아프리카인들이 우리나라에 귀화하면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며 시조가 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뉴욕 전씨, 상해 전씨, 런던 전씨의 시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고 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j*****6 2013.07.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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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 이제 그런 건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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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 배웠다. 우리는 그 사실에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며 자라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것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남씨다. 시조가 중국 여남 출신 김충이란 분이다. 그러면 남씨는 단일 민족에 누를 끼치는 한족漢族 출신이란 말인가?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성은 꽤 많다. 제갈, 독고, 선우, 공, 가, 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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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 배웠다. 우리는 그 사실에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며 자라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것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남씨다. 시조가 중국 여남 출신 김충이란 분이다. 그러면 남씨는 단일 민족에 누를 끼치는 한족漢族 출신이란 말인가?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성은 꽤 많다. 제갈, 독고, 선우, 공, 가, 감, 장, 편...... 대체로 희귀성씨는 거의가 중국 등 외국 성씨인 것이다. 우리민족은 정말 단일민족이 맞을까? 글쎄......

이 책의 229페이지에는 한국인의 DNA 분석 결과가 있다.

  21.9%:중국인 타입,
  40.6%:한국인 타입,
  17.4%:오키나와타입,
    1.6%:아이누인타입,
  18.5%:불분명한 DNA 타입(유래를 알 수 없음).

불분명한 타입 속에는 동남아 계통도 있을 것이고 유럽이나 아랍 계통도 많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인의 10명 중 6명이 외래 계통 인종인 것이다.

그렇다. 정답은 "단일 민족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게 뭐 어때서? 당연한 것 아닐까? 수천년 역사를 지닌 국가라면 이웃 국가, 이웃 민족들과의 전쟁과 반란 등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 혈통만 이어온다는 것이 가능할까? 너무나 당연히 혼혈에 또 혼혈이 일어났을 것이다. 국가, 영토, 민족의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 서로 섞여 살던 것이 뭐가 문제일까?

이 땅의 수 많은 김씨들이 모두 흉노의 후손이라는 것이 이제 정설로 되어가고 있다. 그게 뭐 어떤가? 흉노의 아들이 김이란 성을 받고 한나라의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다 반란을 일으키고 다시 쫓겨나 가야를 세우고, 신라의 주축이 된 것이 진실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에 편입된 여러 성씨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적고 있다. 역사와 조상, 자기의 성씨에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 본다.

r*****9 2011.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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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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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내용 중 나의 성씨(거창신씨)에 관한 얘기도 (짧게) 있는 관계로 그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요새 사람들 중에 이런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읽게 된 동기는 다소 고리타분할 것도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알 수 있는 바는, 우리가 단군 이래 한 핏줄로 이어져 내려온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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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내용 중 나의 성씨(거창신씨)에 관한 얘기도 (짧게) 있는 관계로 그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요새 사람들 중에 이런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읽게 된 동기는 다소 고리타분할 것도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알 수 있는 바는, 우리가 단군 이래 한 핏줄로 이어져 내려온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며, 이 부분은 역사에 내려오는 이야기보다는 각 가문(성씨)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주김씨도 사실은 흉노족으로부터 내려왔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제시(문무왕비 내용에 있다고 하는데, 조선후기에 발굴된 것이라고 함)하는 부분에서, "국사를 바라보는 시야"가 스팩타클하게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즉, 대륙의 격동기에 대규모의 이동이 있었으며, 그 이동의 종착점으로서의 한반도는 절대 단일민족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오늘날의 한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 더, 고려광종대나 조선세종대와 같이 국력이 주변으로 뻗어나가던 시기에는 항상 외부에서 사람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관용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그 반대로 국력이 움츠러들던 시기에 배타적으로 변해왔음을 역사가 보여준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현재에도 수많은 귀화 외국인들로 새로운 성씨가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주위의 많은 외국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 즈음에, 그들에게 좀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성씨를 다루는 책 치고는 상당히 훌륭한 결론 아닌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s******y 2009.04.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