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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만 느껴지는 가을, 그 나름의 멋을 뒤로하고 십이월을 맞는다. 하늘은 하늘인데 익히 보아오던 그런 하늘이 아니던 날, 한 뼘의 청한 곳도 없는 형광등 빛 하늘에서 '우수수' 비가 내렸다. 무심히 내리는 비에 짓이겨진 낙엽처럼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으로 이 겨울을 맞을 채비도 못한 채 침침한 방안에서 멍하니 누워 천장만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에 아내도 없고, 집도,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 어느 한 목수네 추운 방에 앉아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백석이 생각났다.
아! 백석.
시집이라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설, 희곡이든 가슴아픈 날들을 달랠 수만 있다면, 어떤 글이라도 정력적으로 읽어 냈던 중학교 시절, 처음 다가온 백석의 시는 내게 상당히 낯설었다. 이북 사투리, 그리고 여유가 없던 내게 가슴의 여유를 가진 그의 시는 내게 와닿지 않은 그런 시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 시절, 백석 시 선집「멧새 소리」에 실린 많은 시들 가운데 내게 있어서 정말 가슴으로 봤던 시는 「흰 바람벽이 있어」 와 「南新義州 柳洞 朴詩逢方」 두 편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이 구절을 나는 몇 날, 몇 일 동안 곱씹어 읽었었다. 그 구절은 학창시절 내내 나의 귓가에서, 나의 심장에서 맴도는 울림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곤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을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시를 생각지 않게 되었다. 백석 뿐만 아니라 사르트르도, 김승옥도... 많은 영혼들을... 학창시절 내내 줄곧 연극을 전공하려던 내가 고3 시절, 일년만에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를 하여 대학을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의미 없는 학문의 전당에 들어섰을 때야 부끄럽게도 나는 다시 백석을 찾게 되었다. 이미 책장엔 백석 대신 죽은 지식들만 가득한 문제지 만이 가득했다. 다 풀든, 풀지 않았든 모든 수험서를 모두 버리고, 「미래사」에서 나온 백석 시 선집을 다시 구했다. 그리고 학교로 오는 지하철에서는 언제나 백석과 함께 했다. 사춘기때는 그렇게 유치하게만, 시덥잖게만 읽었던 백석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내가 시를 몰랐던 것이다.
듣기 좋은 서북 지방 사투리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나는 엄매, 아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삼촌, 삼촌 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모인 시골집에 와 있다. 장지문틈으로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내음새를 맡기도 하다가 모닥불을 쪼이면서, 나의 나타샤를 생각하며, 그녀를 생각하는 김에 잘은 모르지만 프란시스 잠이 좋아했다던(어느 책에선가 본 듯) 흰 나귀도 그려본다. 그러면은 처마 끝에서 말리고 있는 꽁꽁 얼어붙은 명태도 보인다. 그렇게 별 많은 밤이 찾아오면 하늬바람이 불어서 떨어지는 푸른 감에 개도 짖고, 개소리에 놀란 노루도 껑충 뛰어 다닌다. 아름다운 백석의 시를 쫓다 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생전에 듣지 못했던 멧새 소리가 울려옴을 느낀다. 그러한 울림 속에는 코를 흘리며 감자를 먹는 산골 아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슴이 아려오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도 있고, 평안도 금광입구에서 옥수수를 파는 파리한 여인이 여승이 되는 슬픈 생애도 있고, 열다섯살에 늙은 말꾼에게 시집간 가난이도 있다. 이네들의 삶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또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 정말 이네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도 한가!' 생각해 본다. 이네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삶의 아픔을 치열하게 이겨내고 살아온 온전한 우리 민중의 모습이 아니던가. 나처럼 삶에 투정부리는 어린 영혼이 아니지 않은가. 백석 시를 읽으며 성숙해지는 영혼을 어느샌가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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