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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그람시 하면, '헤게모니'라는 말만 하면 안된다
"그람시 하면, '헤게모니'라는 말만 하면 안된다" 내용보기
매우매우 드라이하게, 먹고살기 힘들게 만들어놓은 현 상태가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이고, 이런 제반의 여건은 더더욱 있는 자들을 위한 -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 부의 세습이 더욱 공고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진보적이라는 말 대신,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개혁적인 테제를 호소하려고 해도, 일반 노동자층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친 나머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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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매우 드라이하게, 먹고살기 힘들게 만들어놓은 현 상태가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이고, 이런 제반의 여건은 더더욱 있는 자들을 위한 -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 부의 세습이 더욱 공고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진보적이라는 말 대신,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개혁적인 테제를 호소하려고 해도, 일반 노동자층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친 나머지, 비판적 논조의 프로그램을 시청할 체력적인 안락함과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방송권력 역시, 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간파하고 있어서, 자정무렵에나 이런 사회고발적인 시사프로를 내보냄으로서 아예 보기 힘들게 - 진보적 사고를 가지는 것 조차 어렵게 - 기울어진 운동장 형태를 계속 유지해가고 있다.

 

 

즉,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더더욱 지키고 싶어서 민주주의라는 형해화된 제도를 악용해가면서 정치참여에 적극적이고, 빈곤층은 그들 하루하루 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그들을 지켜주겠다는 정치집단(대체로 진보적성향의)에 대한 지지를 할 겨를 조차 없는 것이다.

 

 

흔히, 그람시 하면, '헤게모니'라는 말만 떠올리는데... 그거.. 좋다. 하지만, 그래서 왜??

 

이 책은 그런 상황들을 아주 명쾌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특히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충분히 예견 가능한 모형으로 제시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인 것이다.

w****s 2016.04.09.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오늘날을 묻다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오늘날을 묻다" 내용보기
독서를 마치고 글쓴이의 생을 돌이켜 본다. 시대가 암울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다. 당시엔 폭력이 난무했다. 나치즘 그리고 파시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떨게 만드는 용어인데, 그 땐 그 모든 게 실재했다. 권력은 언제나 강하다. 사람들을 제멋대로 짓누른다. 독재라고까지 불리지 않을지라도. 특히 사람들의 지지에 의해 성립한 권력은 더욱 악랄하다. 그들은 정당성이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오늘날을 묻다" 내용보기

독서를 마치고 글쓴이의 생을 돌이켜 본다. 시대가 암울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다. 당시엔 폭력이 난무했다. 나치즘 그리고 파시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떨게 만드는 용어인데, 그 땐 그 모든 게 실재했다. 권력은 언제나 강하다. 사람들을 제멋대로 짓누른다. 독재라고까지 불리지 않을지라도. 특히 사람들의 지지에 의해 성립한 권력은 더욱 악랄하다. 그들은 정당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이후 행하는 모든 폭력마저도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당대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다. 그들이 짙은 암흑의 시대를 열리라고 의문과 우려를 제기한 이들도 있긴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그래서 핍박 받았으며,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게 공산주의다.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 놓인 우리는 이 단어에 격렬히 반응하고는 한다. 자본주의에 반대되는 말이 공산주의라고 이해하는 탓이다. 그람시가 주장한 공산주의는 북한사회를 지배하는 질서와 결코 같지가 않다. 오늘날의 시선에선 위험하기 짝이 없으며 당연히 저항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무솔리니에 맞선 게 그람시였음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공산당 총서기로 있었던 기간은 불과 11개월 남짓. 20여 년을 감옥에서 대중들로부터 격리된 채 그는 살았다. 1915년 발표한 법령에 따라 모든 출판물이 검열을 거쳤고,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역시도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일련의 복원을 위한 작업을 거쳐 세상빛을 본 그의 글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연상시켰다. 
먹고 살기 바쁘면 제 안에 매몰되기 쉽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희망을 논하면서도 정작 선거가 다가오면 소중한 한 표를 행사치 않거나 제 계급적 이해에 반하는 세력을 향해 기꺼이 표를 던진다. 이해가 쉽지 않은 이 현상을 해석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행해졌지만, 결론은 기대 이상으로 간단하다. 어떠한 정치적 색채를 지녔느냐는 중요치 않다. 주린 배를 채워준다면 그 세력이 얼마나 위험한 방향을 지향하느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 여느 때보다도 현명해야 할 이 시대의 선거는 가난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생존을 보다 많이 외치는 이들의 편이다. 
먹고 사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 궁극적 지향점이 돼 버리면서부터 모든 화두는 버림 받는다. 일상에 난무하는 폭력도 그럴수 있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야 만다. 심지어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인물이 구세주라도 되는 것마냥 각광을 받기도 한다. 지금 우린 어떠한가. 꼭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더라도, 전반적으로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며 의문없이 받아들이는 많은 것들이 무능한 관료주의의 산물이 아닐까.

이달의 사락 q*****2 2016.09.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