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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컬쳐 그룹 생활국어(윤여탁 외) 1학년 1학기>에 실린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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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새 권정생
뻐꾹새야 뻐꾹새야 뻐꾹뻐꾹 울어 주면 밭을 가는 우리 엄마 허리 허리 덜 아프고
뻐꾹새야 뻐꾹새야 뻐꾹뻐꾹 울어 주면 먼 길 가신 아버지가 걸음걸음 가벼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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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연 생각 :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새가 뻐꾹새입니다.
뻐꾹새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로 시작하는 <오빠생각>을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요즘은 이 노래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진 듯해서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시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뻐꾹새가 울어 주면 밭에서 고생하는 엄마의 허리가 덜 아프고, 먼 길 가신 아버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피곤할 때 음악을 들으면 피로가 풀리듯이 예전 사람들은 뻐꾹새 울음을 그런 음악으로 들었나 봅니다. 그냥 어린 시절의 뻐꾹새 울음 소리가 생각이 나서 반가웠던 시입니다. 뻐꾹새를 정답게 생각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고요.
* 권정생(1937~2007) : 동화작가. 일본 도꾜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귀국함.
경북 안동에 정착. 1969년 동화 <강아지 똥>으로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받음.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무명저고리와 어머니>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함. 동화집 <강아지똥>, <사과나무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하느님의 눈물> 장편동화 <몽실 언니>, <점득이네>,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이 있음.
* 자료 출처 :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 생활국어교과서인 <미래엔컬쳐 그룹(윤여탁 외) 생활국어 1학기>에 실려 있으며, 감상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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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2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 지식산업사 1996.1.25. 노래할 수 있기에 하루를 열고, 노래할 수 있어서 하루를 마무릅니다. 노래할 수 없기에 하루를 열기 벅차고, 노래할 수 없으니 하루를 마무르지 못합니다. 즐거이 맞이하면서 웃음노래를 부르고, 슬프게 맞이하면서 눈물노래를 부릅니다. 웃음하고 눈물은 모두 노래입니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는 삶을 이루는 노래 가운데 눈물노래가 가득합니다. 눈물로 어룽지고, 한숨으로 아룽집니다. 그런데 이 눈물하고 한숨은 어느새 웃음하고 이야기로 거듭나요. 눈물이 그저 눈물에 갇히지 않고, 한숨이 끝까지 한숨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눈물을 잔뜩 쏟고 나니 마음에 깃든 앙금이 어느새 씻겨요. 한숨을 푹푹 내쉬고 나니 마음에 서린 응어리가 어느새 털려요. 노래란 참 대단하지요. 아파서 아프다 노래했더니 아픔이 차츰 스러져요. 슬프다 외롭다 벅차다 노랬더니 슬픔도 외로움도 벅참도 조용히 사그라듭니다. 소를 보면서, 쥐를 보면서, 토끼를 보면서, 아재를 보면서, 어머니를 보면서, 하늘을 보면서, 땅을 보면서, 길을 보면서, 이러다가 내(권정생) 몸을 다시 돌아보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니 새로 기운이 돋습니다. ㅅㄴㄹ 새앙쥐야 / 새앙쥐야 / 쬐금만 먹고 / 쬐금만 먹고 / 들어가 자거라 // 새앙쥐는 / 살핏살핏 보다가 / 정말 쬐금만 먹고 / 쬐금만 더 먹고 / 마루 밑으로 들어갔어요. // 아픈 엄마개가 / 먹다 남긴 밥그릇을 / 달님이 지켜주고 있지요. (달님/13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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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4
벙어리야, 벙어리야, 소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소는 가슴 속에 하늘을 담고 다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어디서나 고달프지만 소는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소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
코뚜레에 꿰여 끌려 다니면서도 소는 자유를 잃지 않으려 남을 절대 부리지 않는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 하는 벙어리야, 벙어리야, 벙어리야, 소는 무거운 짐 혼자서 끌고
소는 온몸으로 이야기하면서 간다. 슬픈 이야기 한 발짝 두 발짝 천천히 천천히 들려 준다.
선생님은 열아홉 살 때부터 결핵을 몸에 달고 살았습니다. 늑막염과 폐결핵에서 신장결핵 방광결핵으로 온몸이 망가졌습니다. 선생님을 진찰한 의사는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불편한 몸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았기에 가까운 지인이 도와드리고 싶다고 하면 “내 병을 사흘만 아니 이틀만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대신 앓아줄 수 있느냐?”고 되묻고는 했답니다. 병의 속박에 묶인 현실은 ‘코뚜레에 꿰여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짐수레는 무겁고 / 바퀴는 뒤로 잡아당기는 오르막길’(「소․2」)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척박한 현실일지라도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온몸으로 시를’ 썼습니다. ‘자유를 잃지 않으려 남을 절대 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토끼는 꿈을 커다랗게 꾸지 / 그물상자 안에서 자유롭게 살지’(「토끼․4」)에서 보는 것처럼 구속에서 자유를 살았습니다. 그러한 자유는 선생님 개인은 물론 사회를 보는 시각에서도 유효했습니다.
이를테면 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에 선생님은 ‘삼팔선, 휴전선 / 그게 뭐 그리 무서운 건 아니어요’(「할아버지 금강산 구경가요」)나 ‘백두산, 금강산, 태백산, 한라산 / 우리들의 산에 나무가 자라듯 / 푸르게 나무들이 자라듯이 / 우리는 한 빛깔’(「얘들아 우리는」)이라며 경계를 걷어내고 하나로 합치는 통일을 노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깜장 토끼가 노란 토끼를 핥아 주고 / 하얀 토끼가 잿빛 토끼한테 기대어 자’(「토끼․5」)는 상생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러한 마음 바탕에는 당신을 구하려고 목숨을 다해 병구완을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서시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으니 ‘쇠그물에 달빛이 아른거리면 / 엄마 보고 싶은 아가 토끼가 / 달님을 가만히 쳐다’(「토끼․1」)본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실상 선생님의 시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과 삶의 바탕에 어머니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울러 빼놓을 수 없는 선생님의 천진함,
달팽이․2
색시 달팽이가 방귀 뀌어 놓고
누가 보았을까 봐 누가 들었을까 봐
모가지 기다랗게 늘이고는 요리조리 살피다가
아무도 없으니까 집 속에 쏘옥 들어가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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