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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희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다. 독서모임을 위해 요즘 다시 읽은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이야기와 작년에 멘토링 자원봉사 활동을 힘겹게 하고나서 얻은 결론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누군가의 희생은 결코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1870년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비곗덩어리> 이야기는 실제로 스무살 무렵 보불전쟁에 참가한 작가 모파상의 경험으로 인해 당시 노르망디 지역을 점령한 프로이센의 독일 군인들이 프랑스 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군림했는지 책 속에 묘사된 다양한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대세세계사2>를 보면 당시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 독일 장교가 별명이 '비곗덩어리'인 프랑스 매춘부를 하룻밤 원한다고 하며 지체 높은 귀족들의 발목을 붙잡아놓았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비곗덩어리(엘리자베트 루세)가 적군인 독일 장교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 때문에 발이 묶인 일행은' "그 여자가 결심을 하게 해야지요."라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게 그 창녀의 직업인데 왜 다른 사람은 되면서 그 사람만 거절한단 말인가?' 하고 한 귀부인은 분개한다. 그녀는 오는 길에 마차 속에서 굶주릴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곗덩어리가 싸가져온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를 얻어 먹고 친근한 척 했던 여자다.
사람들은 포위된 요새를 공격하듯이 오랫동안 포위 공격작전을 짰다.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어떤 논법, 어떤 술책을 쓸 것인가를 정했다. 비곗덩어리라는 살아 있는 성채가 그 안에 적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공격 계획을 세우고, 전략과 기습 공격을 준비하였다.
결국 적군에게 자신의 몸을 줄 수 없다고 지조를 지키던 비곗덩어리가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다수를 위해 희생을 허락하게 된다. 비곗덩어리의 하룻밤 희생 덕분에 일행은 다시 마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수 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그들은 비곗덩어리에게 감사하지도 축복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외면하고 소외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죄책감으로부터 멀어지길 바라는 듯하다.
처음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비곗덩어리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는 일행 모두에 대해 화가 났다. 동시에, 자신이 굴복한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꼈다. 또한 이들의 꾐에 빠져 프러시아인의 애무를 받음으로써 자기 자신이 더럽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화가 났다.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다시피 해서 그 수혜를 받은 자들이 감사하지 않는다니,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이렇게 이기적이고 비열한 존재였나. 아니, 그들은 비곗덩어리와 신분이 다르기 때문인가. 비곗덩어리 역시 자신의 희생을 통해 보람을 느낀다거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일행 속에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며 억울해할 뿐이다.
비곗덩어리의 희생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작년에 8개월 간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얻은 내 경험은 보람도 기쁨도 없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자원봉사에 대한 오랫동안의 로망에도 불구하고 막상 해보니 내게 맞지 않았고, 인내심을 발휘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버텼지만 그야말로 간신히 시간을 떼우는 정도에 그쳤다. 남들이 아무리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칭찬해도 내게 의미가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난 8개월 간 몸으로 배운 거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남의 희생을 함부로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 받아들이지도 말아야 한다는 작품의 메시지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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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책꽂이에 육중하게 꽂혀 있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보면서 꼭 저것을 읽어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이미 나는 그 소설이 말하는 바가 무엇일지를 대충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여자로서 힘겨운 맛을 조금씩 보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식사 시간, 아빠와 남동생은 놀고 있을 때 나와 언니는 수저라도 놓고 있을 때같이 사소하고 단순한 순간에조차 말이다. 어쨋든 두껍고 세로줄인 그 책을 읽다 말다하다가 결국 지금은 무엇이였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는 -이건 그야말로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말하는 '문학적 건망증' 그 자체이다- 단편 몇 개만 읽어버리곤 결혼을 하고 그 전집과 멀어진 지금, 갑자기 그 책이 읽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기를 보면서 장편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나 아이에게나 힘들다는 것을 안 상태에서 무리를 감행할 순 없어 대체한 것이 모파상의 단편 읽기이다. 그래서 고른 것이 이 책이다. 사실 모파상의 작품이라면 겨우 '목걸이'정도나 희미하게 겨우 기억하고 있는 상황이었지 모파상이 어떤 류의 작가인지는 도통 알지도 못했다가 책에 앞서 소개하는 모파상의 작품세계를 보며 나는 한 단편 한 단편 매우 기대를 했다. 나는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비관주의적인 관점에 때론 열광한다. 아마 그 비관주의를 딛고서 그래, 삶이란 이런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내 이상을 좀 낮추고 그렇게 행복을 느끼는 것이 내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비관주의 작가의, 나는 그동안 몰랐던 모파상의 작품 세계를 접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엮은 이는 그래도 모파상의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따뜻한 시각을 담은 그런 작품을 선별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14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데 엮은 이의 의도가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뒤로 갈수록 모파상의 불안한 정신세계가 반영된 듯 보인다. 전반적으로 재미도 있고 치밀한 구성에 감탄을 하며 보았는데 특별히 네 개의 단편이 흥미로웠다. 모파상의 가장 유명하다는 단편 중 하나인 '비곗덩어리'에서 비곗덩어리로 불리우는 창녀에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상당히 재미있었고 분개하면서도 역시 인간은 그런가보다 하는 자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침대에서 나서, 침대에서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내고, 결국 침대로 돌아가서 죽는다고 말하는 '침대'라는 단편도 흥미있고 눈 속에 고립되어 함께 살던 한 남자가 죽자, 점차 피폐해지는 정신상태를 매우 극적으로 묘사하는 '산장'이라는 단편도 재미있다.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가장 마지막으로 편집된 '안락사용 안락의자'이다. 그 소설은 아마 모파상의 자살 기도와 함께 이해해야할 소설이며, 또 그의 비관주의적 사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가난한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의자, 부유한 사람에게는 값비싼 돈을 받고 고통없이 죽여주는 그 의자, 그런 의자가 있다면 서슴없이 자살을 택할 사람이 많이 있을까. 사후의 세계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과 염려가 없는 사람이라면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와 그들의 고통을 신경쓰지 않는 자라면 그 의자에 앉고 싶어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러한 의자가 있다는 것이 마음 한 켠의 위안과 보장이 되어 죽고 싶은 그 극한의 마음을 덜어줄수도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