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과 같이 주어진 나에게 주어진 너를, 나는 기적처럼 받아 안았다. 참새를 키우듯 가지에서 가지로, 모이를 모아다 너에게 먹였다. 나날이 아름다워가는 너의 눈과, 너의 분홍빛 몸을 매일 씻겨주면서 나는 매일 기적을 생각했다.' 한때 참 좋아했던 책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이 딸을 낳고 쓴 육아일기의 일부분인데 이 책의 어느 페이지에 인용이 되어있어 다시 만났다. 이 책을 보며 이상할 정도로 감상적이 되어 오밤중에 혼자 펑펑 울었다.옆에는 우리 애기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11명이 엄마들의 글을 모은 책이라기에 어느 분의 말씀처럼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자신 인생의 성공도, 아이와의 완벽한 교감도 어느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회한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와 그럼에도 착하고 좋은 아이로 자라준 아이들에 고마움,사회의 장벽이나 주변의 고정관념, 시선 등에 대한 비판 등.... 우리나라의 엄마들이라면 누구나가 갖게 되는 공감대가 퍽 많았다. 나 또한 아기는 기적처럼 나에게 왔지만, 그 존재감은 나에게 바위덩어리 이상이 되었다.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말 그대로 '무한대'였다. 무한대의 책임감, 무한대의 인내심, 무한대의 돈(!), 무한대의 시간..... 때로 나도 '엄마'라는 내 주제를 까먹고 뚜껑이 파드득 열려 버리는 경우가 있다. 무서워하거나, 어리둥절해하거나, 깜짝 놀라는 아기의 표정을 보면서도 제어를 하지 못하는 내 자신. 이책의 어느 엄마는 말하길, 어떤 면에서 첫째들은 서툰 부모를 훈련시키는 트레이너이자 희생양이다. 부모는 첫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과도한 기대를 걸면서 어린아이가 아니길 강요한다...고 하였다. 난 그말에 10000% 공감 한다. 모든 장녀와 장남들은 사랑과 관심을 최고로 듬뿍 받는 면에선 행운아이지만, 준비가 안된 무경험자 부모들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때로 나의 애기를(겨우 십몇개월 된!) 야단치면서도 황당한 부분이 대상이 아기임을 때로 내가 망각한다는 점이다. 어제 또 밥 가지고 장난치고 먹지도 않거나 까까만 찾는 아기를 암청 야단을 쳤다. 너도 다 알아듣지? 엄만 정말 너 이러는 거 싫어! 하지말란 말야!하고 고함을 치며. 그리고나서, 밤에 애기가 졸린 얼굴로 깔아놓은 이불로 살살 기어와 내 품에 얼굴을 비비는데 그 때 이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기적에 나는 무슨 짓을 하는것인지....내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평소에도 별루지만)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내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가장 나의 깊은 곳을 까발리는 일이다. 나의 유년기, 나의 인간성, 나의 인간관계, 나의 고정관념과 속물근성, 나의 한계.....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근본적인 면을 아기를 통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괴롭다. 아기는 냉혹한 거울과도 같이 나를 비춘다. 난 왜이다지도 얄팍하고 미성숙한가!에 대한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나의 유년시절에 아침에 엄마가 없었던 기억은 드물다. 엄마가 여행을 가셨을 때 텅빈듯한 허전함이 마음에 남았던걸 보면 아마 드물었단 얘길 거다. 그러나 우리 아기는 대부분의 경우, 아침엔 부모가 없는 상태로 깨어난다. 얼마전 여행 기간 내내 아기랑 붙어 있다가 월요일 아침에 아기가 깨어나기 출근을 했다가 돌아오니 애기 돌봐주시는 아줌마가 '엄마를 많이 찾네요. 잘 안 그랬는데...' 계속 안방을 들여다보며 엄마? 엄마?를 하며 슬픈 얼굴을 한다는 것이다.(이 책의 나오는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나처럼 부실하고 얄팍하고 헌신과는 거리가 먼 이기적인 엄마인데도 그리도 사랑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난 사실 고마움을 느끼기 앞서 부담스러워하는건 아닐까. 그리고는 또 죄책감에 부르르 몸이 떨린다. 나의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또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일하는 엄마, 바쁜 엄마, 늘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는, 또 보육시설과 그에 대한 인식이 미개한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엄마와 자식관계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를 통털어 평생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나는 믿는다. 가장 힘들고 아프지만... 회사일 때문에 속이 너무 상해 남편에게 하소연하다가도(역쉬 별루 속푸는 덴 돔은 안된다..쩝)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의 천국이 따로 없으니.... |
| 여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고, 또 남들은 말없이 걸었던 길이었다(할말이 있더라도 집밖으로는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일은 남자들이 군대이야기만큼이나 진부하게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길을 혼자 걸어내야 했던 나는 왜 그리도 외롭고,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했던지... 좋은엄마 콤플렉스와 지금껏 누려왔던 자기중심적 생활세계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무척이나 괴로운 날들이었다. 그래, 그래서 나역시 위로가 필요했다. 책을 집어들고 난 뒤 정말로 순식간에 책을 읽어내었다. 그만큼 목말라 있었으니까... 하지만, 읽는 동안의 카타르시스는 잠시 있었지만, 이후에도 목마름이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왜일까? 일단 글들이 너무 급하게 쓰여졌다는 느낌, 전체 필자들간에 조율이 덜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여자들, 모여서 책엮을 궁리는 했지만, 책을 잘~ 만들어 보자는 것을 실천하기에는 참 바쁜 여자들이었나 보다 싶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불만. 소개되는 글들에서 남편과 육아및 살림의 분담을 위해 투쟁하고 실천한 사례들은 소개되지 않았다. 속상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그것이련만.... 나아가 책이 육아 문제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번지지 못하고, 아무튼 그 시기를 겪어낸 이후의 그 시기를 회고하는 형식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지점이다. 육아의 공공성이라... 언제쯤 실제적인 문제제기와 실천적인 사례들이 소개될 수 있을까?... |
|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인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두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우우... 일과 집안일의 병행이라는 게 힘들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실제로 체험하지도 않고 체험담만 들어도 이렇게 무섭다니. 나처럼 겁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은 '결혼하지 마!' 라고 가르치는 책으로도 보입니다. 어떤 필자의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머리로는 가사를 도와야한다는 걸 알지만 가슴으로는 잊기 일쑤였고, 또한 자신이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에 힘들어했다고.... 하긴, 아무리 자신이 깨인 남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도 힘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장 우리만 해도, 시집가기 전까지는 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살아가지 않는지.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당장 내가 편하고, 엄마가 그걸 용인해 주시니까. 하지만 그걸 내가 참아낼 수 있을까. 내 자식이 아니라 남편이 그모냥 그꼴로, 자신은 아침에 샤워하면서 '그래 난 제멋대로야' 라고 외쳐댄다면. 자기만 일하는 거 아니고, 마누라도 일하는데, 왜 집안일은 여자만이 떠맡게 되는지. 왜 사회는 엄마들에게만 저 많은 짐들을 강요하는지... 너무나 절절한, 내가 곧 뛰어들게될 현실의 암담한 모습에 한숨만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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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13개월때 직장에 취직하게 됐다.
아이를 8시부터 7시까지 11시간을 맡긴채 회사를 다니게 됐는데, 그 이후로 오랫동안 모성애와 사회인의 괴리에 빠져 무척 맘 고생했다.
그시절 나에게 힘을 주고 기운을 주던 좀더 맘 편히 좀더 나쁜 엄마가 될 수 있게 해주었던
나에겐 넘나 주옥 같은 책이다.
이 책은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에 여행갔을때 열차 안에서도 읽었었다.
그때 그시절의 감동은 그대로... 였다. |
| 직장생활하면서 야간대학원까지, 주위에서 다들 격려해 주지만, 실제로 말못하게 힘든 제 심정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제목처럼 초등학교 1학년과 4살짜리 우는 아이를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데려댜 주면서 "엄마 없더라도 용감하고 씩씩하게 알았지!" 다짐을 받지만 돌아서는 길에 길위에 털썩 주저앉아 운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처럼만 잘 자라주기를 백번천번 기도하는 마음 이 책을 보는 모든 엄마의 바람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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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하나하나가 다 내 얘기였다. 글쓴 이들의 성향이나 연령대도 다 달랐고 처해있는 상황들이나 대처법에서도 다 달랐다. 그런데도 모두가 결국은 하나의 문제였고 그 문제는 곧 내 문제이기도 해서 참 많이 공감하고 많이 울었다. 누군가가 겪은 엄마와의 갈등, 딸을 기르는 것과 아들을 기르는 것의 차이, 전업주부로 오직 내 새끼를 미친듯이 물고빨고 기르다가 어느 순간 무너져가고 찢어발겨져가는 나를 지켜보는 모든 경험, 일을 하기 위하여 아이를 처음 떼 놓을 때의 서러움과 고통스러움. 그 모든 것들이 다 내얘기였다. 아이 기르기는 자부심보다는 아픔의 기록이다. 특히, 열살까지는.
크레이머크레이머라는 외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려서 그 영화를 별 생각이 없이 보고 최근에 엄마가 되어 다시 보니 그 영화의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도 결국 모성신화를 버린 엄마대신 부성애의 손을 들어준 것이고 그리하여 자기를 포기하지 못 하는 엄마들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외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도 결국은 이 책에 나오는 문제들과 똑 같고 바로 나의 문제이기도 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경제적인 상황이나 직업, 처해있는 여건에 상관없이 엄마들은 다 똑같다. 전업주부이든 취업여성이건 모든 엄마들은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할 수도 없는데 세상은 엄마들에게 완벽한 모성을 요구한다. 엄마도 화낼 수 있고 엄마도 우울할 수 있고 엄마도 아플 수 있다.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를 향해 항상 웃을 수 만은 없다. 어른이기에 잘 통제를 해야 하지만 그러나 엄마도 실수하는 것이다. 아빠의 실수는 잘 용납하고 엄마의 실수는 잘 용납하지 않는다. 아빠가 화내면 남자들이란 원래 그렇다고 하고 엄마가 화내면 신경질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엄마답지 못 하다고 한다. 아빠들은 자기가 육아에 많이 참여하면 엄마가 책임을 방기하고 아이로 부터 해방되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현실을 우리가 산다. 끊임없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엄마에게만 묻고 조금만 실수해도 심각한 죄책감으로 엄마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모성이라는 신화로 집안에 꽁꽁 엄마들을 끌어묶어두는 그런 사회에. 이 책에 나오는 엄마들은 그런 점에서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그 많은 갈등들을 어찌되었거나 "견뎌나온" 사람들이기에. 극복하였든 못 하였든 그 불 속을 헤쳐나온 것 만으로도 칭찬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솔직한 기록을 나눌 수 있게 해 준 열한명의 엄마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 때 말은 안 해도 전업주부인 나는 현실에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이 짚어졌다. 술을 잘 먹고, 나름대고 시도 쓰고, 밤늦게 잘 돌아다니고, 마음 내키면 멀리 여행을 확 떠나버리곤 했던 자유분방한 여자가 자기 모습을 한 순간에 버리고 생전 술도 한 모금 안 마시던 여자처럼 집밖의 일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요조숙녀나 바보처럼 스스로 속이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남 보기 좋으라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여자처럼 살고 싶어 그랬다는 사실까지도...당시 난 아무와도 소통이 없었다. 이웃의 전업주부인 여자들과의 교류는 너무나 답답했다. 도무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생각도 너무나 달랐고 그들이 가진 상식과 내가 가진 상식이 맞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놀이터에서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도, 아이나 남편이나 결혼에 대해 나누는 약간 진지한 말도 전혀 재밌지 않았다. 서서히 그들과 연격되던 약간의 교류도 끊어져 갔다. 복도식 아파트의 한 층에 있는 다섯가구의 여자들이 나만 빼고 아이를 안고 이집저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빈대떡을 부쳐먹고 백화점에 쇼핑가는 것을 홀로 떨어져서 봐야했다. 소외된 서러움 |
| 결혼을 하고 나서 계획에 없이 생긴 아이라(다들 첫아이는 얼결에 생긴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처음엔 낳지 않으려고 고민했다가 유산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너무 슬퍼했던 기억이 났다. 아이를 낳고 친정엄마가 아프셨고, 그래서 아이는 언니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거리가 있어 토요일에 가서 데려오는 주말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언니가 임신을 해서 아이는 시댁으로 가게되었는데 너무 멀어서 한달에 한번이나 겨우 갈까 말까한 거리였다(인천과 포항) 아이는 커가는데 엄마를 몰라보는 아이를 보면 너무 속상해서(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백일때 내려보낸 아이를 11개월에 데려오고 말았다. (물론 시부모님, 같이 살던 시누이, 남편이 다 말렸지만)그리고 나서 주위에 애를 맡기고 30개월부터는 6살이된 현재까지 직장근처 보육시설에 보낸다. 요즘들어 자꾸 가기싫어하는 아이를 보며 죄책감도 많이 느끼던 차에 주간지를 보고 알게된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래도 힘들지만 안심하게 해준 구절은 '그래도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준다'는.. 지금도 감사한다. 아이가 이만큼 잘 자라준 거, 그리고 잘 자라주리라고 믿게 해준 먼저 경험한 엄마들의 경험담을 믿고 현실에서 열심히 주어진 시간에서 아이를 사랑하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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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도덕시간이었나.. 북한에 대해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북한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엄마에게서 떼어놓아 탁아소에 맡기고 획일적인 교육을 하며 엄마와 아기의 정을 끊어놓는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나 보다. 비인간적이라고 했던가...
지금 나는 탁아소의 필요성을 절실히 아주 절실히 느끼며 산다. 수많은 탁아소가 생겨나서 갓 태어난 아기를 맡아서 봐줄 곳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직장을 다니는 여자는 아기를 낳으면 모두 휴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하게 된다. 휴직을 안하고 아기를 맡길 곳을 찾아도 집에 오면 전쟁터다. 나는 일찍 퇴근하는 직장을 가져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일찍 데리고 온다. 그러나 데리고 오는 순간 다시 저녁준비, 청소, 빨래, 아이랑 놀아주기, 등 다른 일로 너무 지친다. 물론 그 일들도 다 제대로 못한다. 저녁준비는 제대로 하는 음식이 하나도 없다. 빨래는 그냥 다 섞어서 빨고, 속옷이고 색깔옷이고 나는 구별이 없다. 가끔가다 삶을뿐. 우리 아이 운동화와 신발은 더러운 것이 보이지 않도록, 진한 색깔로 구입하였다. 아이랑 놀아주기는 커녕, 빨리 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집에 오면 나도 눕고 싶은데. 쉬고 싶은데 하면서 지친다는 한숨만 쉰다.
예전의 우리 엄마는 안 그러셨는데. 집에 오면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맞이하셨는데....나는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와 같은 엄마가 또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지만, 이질감도 느꼈다. 나는 이 책속의 엄마처럼 페미니스트도 아니요, 그냥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는 아줌마인데. 이책의 저자들이 보면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싶다. 정말 노력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더이상 엄마가 만들어준 그런 집은 없다. 여자가 직엄을 갖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병행시키기에는 모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애기다. 나는 사회적인 기준치 엄마에 맞출 수가 없었다. 그 말은 내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갈 때나 집에 혼자 있는 아이를 생각할 때나 주부의 따사로운 손길이 가지 않은 티가 역력한 내 집을 볼 때나 텅텅 비어 있기 일쑤인 냉장고를 열었을 때나 쌓여 있는 빨래거리르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때 수도 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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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던 내가 여성주의를 처음 공부한 건 계간지 <IF>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저절로 손이 가버렸다.
이 책에는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운 엄마도 있다.
대부분 아이들이 열살 남짓까지 큰 상태여서 그런지 전쟁같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글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더라.
모두들 엄마가 염려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강하고 건강하고 적응력도 있으며 현명하다는데, 어느정도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는데, 아직은 겁이나기만 한다.
10년전 책도 이렇게 공감이 되니, 최근 책들은 또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을까.
p12 첫아이를 낳은 후 10년, 경험해본 이들은 다 알겠지만 취업모에게는 가장 혹독한 기간이다. 그 시련의 기간을 정면으로 맞서 지나온 우리는 (세상에! 피해갈 길이 없었다) 훨씬 강해지고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졌다. 그러고 보면 초보엄마 시절 우리는 정말 막막하고 외로웠으며, 너무 민감해서 쉽게 지쳤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 지난 세월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의 지난 시간을 살고 있는 후배 엄마들에 대해서도 끈끈한 애정을 느낀다.
p13 이 책에는 아이를 더 똑똑하고 완벽하게 키우기 위한 노하우는 없다. 다만 열한 명의 엄마들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통해, 엄마란 절대 위대하거나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엄마란 고단한 일상 속에서 쉽게 지치고 약해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며, 그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와 나누면서 그 아이와 함께 커 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p53 부모가 없는 아이는 외롭다, 쓸쓸하다, 불쌍하다는 일종의 가치평가까지 해서 아이를 위축시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난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늦은 퇴근을 가지고 미안하다 말하는 건 삼간다. "너를 돌봐주지 못하니 너무 미안하다. 불쌍한 우리 딸, 엄마 많이 기다렸지?" 등등의 대사보다는 "야, 우리 딸, 이젠 이렇게 늦게까지 혼자 있다니 대단한데.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서 숙제를 해내다니, 목욕도 혼자 했단 말이야? 우리 희경이는 정말 혼자서 못하는 게 없구나!"같은 칭찬을 해준다.
p83 일을 엄청나게 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주변의 도움을 받을 부분을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아이의 잠재된 능력, 자율성을 믿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 아이에게 관심은 많이 두되 지켜보고 기다리는 여유로 이어질 것이다.
p146 "기적과 같이 나에게 주어진 너를, 나는 기적처럼 받아 안았다. 참새를 키우듯 가지에서 가지로, 모이를 모아다 너에게 먹였다. 나날이 아름다워가는 너의 눈과, 너의 분홍빛 몸을 매일 씻겨주면서, 나는 매일 기적을 생각했다." - 전혜린 p165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발 자신의 밥을 자신이 책임지는 것, 즉 경제적 자립뿐이었다. 무얼해서든 세상에 사는 동안은 절대 남에게 기생충처럼 붙어살지 않기, 그리고 내가 가진 생각으로 남의 목을 조르지 않기, 내 일은 내가 하기....
p223 다른 이들이 현명해 자동차로 스쳐가는 그 길을 나는 맨발로 걷느라 속속들이 깃든 언덕의 비밀과 아름다움을 직접 맛볼 수 있었다고. 가끔 굴러 떨어져 다치기도 했지만 물기어린 눈에 비친 세상의 부연 풍경 또한 나름대로 괜찮았노라고. 훗날 아이가 같은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의 답을 하리라. 어리석은 엄마 때문에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엄마는 매순간 삶의 의문 앞에 최대한 솔직하려 애썼던 것 뿐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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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제도가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는 하는걸까? 부모와 자식, 남보다 더 멀어지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부라는 관계, 시집과 외가집... 가족이라는 제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을지언정, 가족이라는 제도가 인간에게 행복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 책을 펴들었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이혼 후 자식과 떨어져 살거나, 이혼을 하면서 자식과 함께 사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그렇다. 대체 자식이 뭔데, 그리고 부모가 뭔데, 아니 엄마가 뭔데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자식과 엄마의 관계가 너무나도 처연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서? 아님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엄마라는 역할 자체가 원래 그런것이기 때문에? 난 아직도 해답을 못찾겠다.
이 책에서 기대했던 단단하고, 논리적일것 같던 자식과 어머니의 관계는 내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감동받았고, 슬퍼졌다. <엄마 없어서 슬펐니?>는 어쩌면 엄마들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다.
10명의 저자는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펼쳐놓는다. 그리고 독자는 각각의 사연들을 읽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독자가 부모가 되었을 때 그가 느낀대로 또 행동하겠지. 10명의 저자가 공통적으로 말했던, 자식에 대한 교육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인상깊은구절] 온통 매끄럽고 단단하며 두터운 대리석 벽이 내 앞에 가로막혀 있다. 나는 그 앞에 웅크리고 양손톱을 모두 세워 그 벽을 피나도록 긁는다. 벽 너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엄마, 엄마'하며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간신히 몸을 일으키지만 나는 다시 주저앉는다. 벽이 너무 두텁고 단단하다. 내 울음소리는 목이 막혀 꺽꺽대다 그만 잦아든다. 어떤 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처음 보는 아이인데 웬지 낯이 익다. 세상에, 그런데 저 아이의 머리가 왜 그런가... 자그만 머리통은 녹슨 기계 따위로 듬성듬성 흉하게 박박 밀려있고 얼굴과 팔다리는 끔찍하게 말랐으며 머루 같은 눈만 커다랗게 흡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엄마!'라고 나를 부르던 처연한 음성. |